2007. 4. 3.
그리움에 대한 나의 변명
삶이 삶 답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나의 졸고에서 그리움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움도 삶의 시간에 따라 그 대상이 변하는 것 같으나,
지나고 보면 그 모두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느낍니다.
10대에는 그리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파랑새에 기대이고,
20대에는 누구인지도 모를 나의 짝꿍에 대한 서성거림으로,
30대는 미래의 삶에 대한 기다림으로,
40대에는 문득 자라 있는 자식을 보면서 그 나날을 기다리며,
또한 더러는 유년 시절의 첫사랑에 대한 안녕을 기원하면서,
50대에는 홀연히 나타난 손자의 재롱 속에 비춰지는, 먼저 가신 할머님·할아버님,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인 듯 한데,
이제 50대 초입에서
60대에는 그 무엇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돌이켜보면, 그리움은 정情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情은 마음忄·心을 나타내고, 청靑은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그리움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정情의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봅니다.
그렇다하여도 그 기다림에 너무 얽매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얽매임은 또 다른 얽매임을 잉태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에는 많은 인내와 헤아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나도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대하여 얽매인 적은 없습니다.
그 종교를 수행하는 성직자님들에게는 그 교주가 절대적이어야 하겠으나,
나는 종교에 기대이는 편입니다.
나의 삶이 고단하거나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그 고단함을 달래주고 필요한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 종교라고 봅니다.
이러한 기다림에 나타나는 그리움에 대하여 저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반드시 머무르는 대상이 없이 그 마음을 나타내어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입니다.
이 구절은 금강경 장엄정토(분)에 나와 있습니다. 석가모니께서 수보리에게 장엄정토를
설명하시면서 “응당히 머무르는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금강경을 해석한 야부스님은 이 구절에 와서,
“토굴에 홀로 앉아 말이 없으니,
적적하고 고요함이 본래 그대로인걸,
무슨 까닭으로 서풍이 불어와 숲을 움직이게 하여,
차가운 겨울 구만리 밤하늘을 기러기 울며 날게 하시는가.
”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鴈唳長天.
저의 생각으로는 여기서 말하는 서풍은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와 중국에 불교를 전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사실 낸중에 알고 보면, 기다림도, 그리움도 그 실체가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 일 것입니다만,
하릴없이 그림자 따라 마음만 분주한 어리석음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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