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스님 차 이야기

일지암

相民 윤봉택 2007. 10. 18. 00:00

2007. 10. 14.

 

지난 14일 오전

대흥사 대웅전 처마 끝 풍경소리 울리며

다가서는 가을 초입,

우리나라 동다(東茶)의 성지인 일지암을 찾았습니다.

 

일지암에는 저의 사형이신 여연스님께서 주석하여 계시는 곳입니다.

 

일지암 초당에서

유천의 감로수를 들고,

 

자우홍련사 난간에 기대어

산빛 나려 법열의 다화(茶花) 빚는

 

다감(茶龕)에 어리는 물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내 오랜 숙연과의 반연의 그림자 따라

가는 길......

......

 

일지암

 

초의선사께서는

40세가 되시던 1825년에 오시어

초당을 지어 놓으시고,

 

52세가 되시던 1837년, 우리 차의 성전인 ‘동다송(東茶頌)´을 빚어

다선일미(茶禪一味)를 나리신 일지암.

 

시방 일지암은 낡은 건물을 새롭게 고치면서

중창불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12월 오기 전 모든 게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날에

점심을 차려주신 사형님과 공양을 마치고,

 

11월 다하는 날

다시 뵙기로 하면서 사형님의 손깃을 따라

바다를 건넜습니다.

 

 

26459

 

 

 

초의선사  진영

 

일지암 현판 

 

일지암 뜨락에 핀 차나무의 꽃 

 

 

 

일지암 정전의 차나무

꽃이 피고

다시 꽃은 피는 데, 

 

일지암의 유천 

 

유천의 감로수를 떠 주시는 여연스님 

 

 일지암의 다감(茶龕)

 

자우홍련사  수련 그늘의 출수구

 

가을 빛 놓아

흐르는 두륜산 3부 능선 

 

산빛에 젖어드는 일지암의

여연 사형님과 스님과 나그네  

 

대흥사 대웅전 처마 끝에 조으시는

초의선사의 동다송

풍경소리에 놀란 가을 빛

낮게 젖어드는 데 

 

자우홍련사의 누대에 기대인

가을 그림자 

 

다茶가 아니면

다 또한 아닌데 

 

누구를 기다려 예까지 오시었는가. 

 

수련에 놀란 산 그늘

해인에 점심하고 

 

고즈넉한 삼매

그림자 또한 없어라

 

 

기다림도

그리움도 모다 가고  

 

다감(茶龕)은

자우홍련사 아래로 그림자 드리우는

다색(茶色) 청아한 물빛 감는

호젓한 다심(茶心)

 

 

다의 감실에

홀로 앉아  

 

추녀의 긴 사래로

노 저어 가는 가을 빛이어라  

 

나그네여

나그네여 

 

다감의 그림자를 보셨는가

보셨다면

게송으로 빚음을 허하나니 

 

차 잎에 묻어 온

사바의 번뇌 

 

 바람에 스민

일지의 다향

 

대웅전 부처님은 말이 없는데 

 

 

11월이 다하여

12월이 오면

 

모든 것 인연 따라 길을 떠나가리니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다시 내리려 하시는가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여 

 

 계향-정향-혜향-해탈향-해탈지견향에 머무름이여

 

감로다에 스며

삼보전에 나리심이여 

 

나그네라면

점심하시게나

 

그대 마음에 점을 놓으시게나 

 

 과거의 마음이 아니라면

 현재의 마음이 아니라면

 미래의 마음이 아니라면

 

 그대의 점 하나는

 어느 마음에 두시려 하심인가.

 

 아 !!! 부질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