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림사 패방

相民 윤봉택 2012. 4. 8. 23:30

 

2010. 09. 27.

 

 소림사少林寺의 산문 입구 뜨락에 좌우로 세워진

 패방(牌防) 즉 석조문입니다..

   

첫째날(09. 25) : 북경 계대사

둘째날(09. 26) : 하북성 중심도시 석가장, 백림선사, 광혜사화탑

                       임제사 징령탑, 륭흥사

셋째날(09. 27) : 하남성 정주시에서 머무른 다음 일찍 숭산 소림사로 향하였습니다.

 

소림사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찰로서

중국 하남성 정주시 숭산 오유봉(五乳峰)에 있습니다.

 

불자가 아니라도 찾고 싶은 사찰 가운데 하나,

 

그런데 대부분 소림사하면 수행보다는 무술에 대하여 집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단지 무술은 수행 과정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세속화되면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소림사는 북위 태화 19년(495) 효(孝)문제가

인도에서 온 발타라존자를 위해 처음 창건되었고,

당시에 혜광慧光, 승조 僧稠 등 수백의 승려들이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림사가 선종가람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527년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로 오면서 부터 입니다.

 

그후 서기 536년 혜가慧可대사가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면서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남북조시대에 불교 중흥에 힘입어 크게 번창하다가

북주(北周) 무제에 이르러 사찰이 훼손되는 등 크고 작은 부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당시대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는 데

수문제 때에는 척호사陟岵寺로 사찰 명칭을 달리하다가

다시 소림사라 부르게 되었고,

 

당나라 건국 때 소림사 13화상이 건국에 참여하면서

소림사는 천하제일가람이 되었고,

 

당송시대에는 가람 규모가 5000여칸,

수행승만하여도 2천여명이 넘는 거찰이 되었습니다.

 

소림사는 이처럼

선무합일禪武合一 사상이 담겨오는 소림공부少林功夫와

중원의 한 중심축을 이루는 소림파少林派

중원의 독창적인 권법 소림권少林拳

진법의 효시 18동인十八銅人, 즉 18나한진으로 널리 알려진 진법과

당태종을 도와 건국에 일익함으로서 천하소림을 세운 13곤승구당왕 十三棍僧救唐王 등

전설처럼 전해오는 가람으로서

 

가람 배치는

산문山門-천왕문天王殿-대웅보전大雄宝殿-법당法堂-방장원方丈院-입설정立雪亭-천불전千佛殿 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파괴된 것을

복구하여 놓은 것입니다.

 

지난 2010년 9월 27일에 찾았습니다.

 

림사 산문山門 앞 넓은 뜨락에는 당간지주가 한개 세워 있고

그 전면 좌우로 석조로 된 석문(패방牌坊) 2기가 마주 세워 있습니다.

 

패방(牌坊) 또는 패루(牌樓)로 불리는 특이한 건조물은,

본래 인도의 부처님사리탑 전면에 세우는 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마을 입구나 권위의 상징으로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한나라 때 부터 중국의 독자적인 건축 양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왕릉, 사찰, 정원 등 입구에 장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주로 세웠으며,

작설(綽楔)이라고도 합니다.

 

나무로 만들면 목패방(木牌坊), 돌로 만들면 석패방(石牌坊)이라 부르며,

구조에 따라 一间两柱一楼坊一间两柱三楼坊三间四柱三楼坊三间四柱七楼坊

                 三间四柱九楼坊五间六柱五楼坊五间六柱十一楼坊로 구분하며 

기둥 모양에 따라 불출두식(不出頭式) 충천주식(沖天柱式/柱出頭式)이 있는 데,

전자는 명나라 후자는 청나라 때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소림사의 산문 좌우에 세워진 이 석패방은 불출두식으로

동쪽의 것은 명나라 가정23년(1544)에 세워졌고, 전후로 跋陀開創 祖源諦本 이라 쓰여있으며,

서쪽 패방은 10년 후인 가정34년(1555)에 세운 것으로 崇少禪林 大乘勝地 이라 쓰여 있습니다.

 

 산문 앞에 옛 우물(古井)이 있고  그 다음에 이 패방이 있습니다.

 우물의 둘레는 그리 넓지 않았으며, 두레박을 묶었던 줄은 .............

 소림사의 산문 뜨락 서쪽에 석조문으로 세워진 패방(牌坊)입니다.

  이 문은 명나라 가정34년(1555)에 세운 것으로 통석으로된 현판에는

  숭소선림崇少禪林 대승승지大乘勝地 이라 하여,

  숭산의 소림사가 대승불교의 산실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림사의 패방은 불출두식(不出頭式)으로 1칸2주, 다포양식입니다.

전면에는 수양도인(首陽道人)이 쓴, 대승승지大乘勝地라 는 편액이 암각되어 있어

이곳 소림사가 대승불교의 승지임을 나타내고 있고,

현판석 아래에는 두마리의 봉황과 구름문양을 넣어 장엄을 하였습니다.

 심전고동엄동설옹신광슬心傳古洞嚴冬雪擁神光膝

 초조달마대사로 부터 불법을 전해받기 위해 엄동설한 굴 앞에서 법을 구하는 신광대사의 고고함이여  

면접고봉정야풍문자진생面接高峯靜夜風聞子晉笙 고요한 밤 숭고산에서 들려오는 자진의 피리소리

--- 자진子晉은 주나라 영왕(靈王)의 태자로서 피리(笙)를 잘 불어서 봉명곡(鳳鳴曲)을 짓기도 했으며,

     후에 신선을 따라 숭고산 嵩高山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후면 현판은 숭소선림崇少禪林이라 하여 이곳이 숭산 소림선사임을 나타내고 있는데

글씨는 전면과 같이 수양도인의 글씨입니다.

아랫면에는 가운데에는 여의주를 두고 좌우로는 환장(環杖)과 서수(瑞獸)를 두었습니다. 

 평방 위로 포를 넣었고, 포벽에는 불상을, 지붕구조는 겹처마로 처리하였습니다.

 이 글씨 또한 수양도인이 쓴 것입니다.

 

우측 기둥 주련입니다.

쌍옥정벽징냉침천추월雙玉井碧澄冷浸千秋月 , 산문 앞 쌍옥정엔 천추의 달이 걸렸는데

좌측 기둥 주련입니다.

  육현봉취용광연만벽운六玄峰翠聳光連萬壁雲,  육현봉에 서리는 소림의 상서로움이여

동쪽에 세워있는 패방입니다.

 동쪽문 지나 건너에 서문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서문과 마찬가지로 현판 애부에는 여의주를 놓고 두마리의 서수瑞獸가 있는데

좌우의 서수가 위치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현판, 조원체본祖源諦本는 중국 선법禪法이  소림사가 근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공포마다 화엽문양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동문 기둥 주련입니다.

 지재천중사해명산위제일地在天中四海名山爲第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하명산 숭산이여

심전언구십방법교시초원心傳言久十方法敎是初元  소림 선법이 시방세계를 비추는 근원이라네  

석주는 사각형으로 전후로 신방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소림사 산문의 신방석 처럼 둥근 북모양으로 장엄을 하였고,

 테두리는  서수瑞獸로 마감하였습니다. 

 

 

 측면에서 본 주초와 신방석입니다.

 판석은 후에 맞춘 것이라, 분명 아래에는 주초가 있을 것입니다.

 동문 후면입니다.

발타개창跋陀開創, 발타존자에 의해 창건(495년)된 소림사가

 여의주를 향해 비상하는 용이 날아갈 듯합니다.

 자세히 보면 과거에 채색하였던 듯 하지만, 장비가 없어 다 살필 수가 없음이 유감스럽기만 합니다.

 지붕 좌측 용마루와 용두치미입니다.

전면의 패방 가구입니다.

사각 기둥 위에 평방을 놓았고, 그 우로 공포 마감을 하였습니다.

지붕 마감은 두꺼운 판석으로 하면서 공포 또한 통석으로 처리하였습니다.

 패방의 평방 아래에 현판석을 넣었고 그 아래로 다시 용문양을 넣은 판석으로 장엄을 하였습니다.

역시 소림사 산문 뜨락에는 패방을 전면 좌우에 두면서

다시 입구 좌우에는 벽사를 놓아

외부로 부터의 잡신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마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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