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라틴다리

相民 윤봉택 2024. 3. 3. 18:25

2014. 02.. 18.

 

사라예보의 라틴다리 Latin bridge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다리입니다.

 다리 길이 39m, 너비 4.3m, 높이 2.4~3m

 재료는 대리석과 테라코타입니다.

 

라틴다리는

도심 사이를 흐르는 밀라츠카강Miljacka의 지류에 있는데,

오스만시대에 세워진 다리입니다.

 

대부분 1차 세계대전이

이 다리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데

이는 사실과 다름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0시

당시 세르비아의 보스니아계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사전에 계획된 대로

라틴다리 입구 북쪽 모서리에 있는

카페 모리쉴러Moritz Schille 입구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내외를 기다리다가

 

차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자

바로 준비된 권총을 가지고 1.5m 앞에서 두발을 쏘아 사망하게 하였고

이로 인하여 세계1차대전이 일어났으며

전쟁으로 인하여 9백만의 사망과 보스니아의 인구 23%가 몰살되는 비극이 발생됩니다.

   

지금은 사라예보 박물관Muzej Sarajevo으로 사용되고 있는

당시 3층건물 카페 모리쉴러Moritz Schille가

라틴다리 북쪽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이 다리 운운하는 것 뿐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다리 명칭을

프린치프 Princip다리라고 하였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체제에 와서야 라틴다리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다리는 사라예보에서는 가장 오래된 다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541년 자료에는 당시 이 다리는 나무로 된 목교木橋였다고 하였으며,

1565년 기록에서는 돌다리(石橋)가 있었다고 하였고,

1791. 11. 15일 대홍수 때에 다리가 크게 붕괴되자

당시 사라예보에 오스만 상인들이 돈을 모아 복구를 하였는데

현재 이 지류에는 21개의 다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다리 형태는 석교이나

교각 기초와 기석은 대리석, 아치는 테라코타를 이용하여

세개의 아치와 교각에 다시 원형통을 만들어 놓은 게

특이합니다.

   

그러나 사라예보는 우리에게 있어서 탁구로 알려져 있습니다.

 

1973. 4. 9일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여자단체전(이애리사. 정현숙. 박미자)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하여 새벽종을 울려주었던

유서깊은 도시 사라예보를 기억하면서

 

유적을 답사하였는데

현지에 계시는 교민 이채원 여사님께서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 소콜로비차 다리를 살핀 다음,

 사라예보로 향하였는데, 강변과 협곡 사이로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터널이 많았습니다.

 

 

6번 비셰그라드의 소콜로비치다리.  7번 사라예보입니다.

 비셰그라드에서 10시 20분에 출발하여 12시 10분에 사라예보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라예보로 가는 길,

  소콜로비차 다리로 흘러가는 드리나강의 협곡입니다.

 

 

 사라예보로 가는 주변 목장 풍경들,

 양의 먹이용으로 건초를 낟가리로 만들어 놓고, 주변에는 양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목책을 둘러 놓았습니다.

 

 

 복실 복실한 양떼들이 초봄의 훈풍을 맞으며 풀을 뚣고 있습니다.

 

 

 그 건너 목장에서는

 목장의 진드기 등 해충 방제를 위해 불을 놓고 있네요. 제주 목장에서 이처럼 하는데,  '방애'와 비슷합니다.

 

 

 호젓한 농가 풍경,

 나무 울타리와 낟가리, 그리고 멀리 능선 너머로 이어지는 봄날 풍경

 누가 이런 평화의 대지에 전쟁의 화살을 던졌을까요.

 

 

 드디어 닿았습니다.

 이 터널만 지나면 .... 사라예보입니다.

 

 

사라예보에 거주하시는 이민 개척자 이채원 여사님이십니다.

방문한다고 이렇게 나와 주셨습니다.

시내 구석 구석 다니시면서 오스만풍이 완연한 사라예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주셨습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자료로만 보았던 라틴다리입니다.

 다리라 부르기엔 너무나 작은,  다리 길이 39m, 너비 4.3m, 높이 2.4~3m

 

 

 

 바로 그 건물입니다.

 다리 북쪽에 위치한 3층 건물, 지금은 사라예보박물관Muzej Sarajevo으로 사용되고 있는

 당시 3층건물 카페 모리쉴러Moritz Schille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와  건물 앞에서 서성이던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는 앞으로 다가오는 차가 보스니아를 지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오픈카임을 알아 차리고 브라우닝 권총 FN M1910(38구경 6연발, 일련번호 19074)을

 뽑아서 1.5m 전방에 있는 황태자 내외에게 두발 쏘아 명중시킵니다.

 

 

 다리의 석재는 기초와 기단, 기석은 대리석, 아치 부분에 해당하는 안둘레, 겉둘레,

 정석들은 테라코타로 쌓았고, 가운데 교각 2개소에 원통을 뚫어 놓았는데,

 아마 1791. 11. 15일 대홍수 때에 다리가 크게 붕괴되자, 복구하면서 홍수 예방 차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다리를 건너 가면,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이 서성이는 이 장소에서, 보스니아를 지배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19세의 젊은 보스니아 청년으로 부터 저격되는데 

 

 

 그 장소 앞에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할 수 있도록 자료 사진들이 게첨되어 있습니다.

 황태자를 저격한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가 사용했던 권총은

 1909. 10. 26. 안중근 의사께서 하얼빈에서 당시 우리나라를 억압하였던

 원흉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던 거사 권총도 같은 브라우닝 제였습니다.

 아마 당시 19세 청년 프린치프도 안중근 의사와 같은 심정에서 조국을 억압하는 황태자에게 총을 겨눴을 것입니다.

 

 

 하여 이 다리 이름이 이때 부터 

프린치프

Princip다리라 불려지다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 되면서 다시 '라틴다리'라고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사라예보의 시내 중심에서 흘러 밀라츠카강Miljacka으로 흘러가는 지류인데,

 이 지류에는 모두 21개의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좌우 석축 또한 당시 폭우로 훼손된 다리를 복구할 때

함께 복구된 당시의 석축 양식이라고 합니다.

 

 

 라틴다리 주변 안내도입니다.

 

 

라틴 다리 건너 소공원 풍경입니다.

사라예보는 발칸반도에서도 가장 이슬람풍이 많이 남나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히잡 hijab을 머리에 두른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19세 청년이 거사를 일으켰던 3층 건물, 오른쪽 1층 입구에 카페 현판이 보입니다.

 청년은 

모리쉴러Moritz Schille에서 커피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다가 황태자를 저격하게 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태자 내외가 탔던 승용차입니다.

 

 

 그러나, 당시 카페가 이제는 사라예보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당시의 역사 현장을 전시하고 있는

 건물 남쪽 외벽에는 "지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면서, 이 장소가 그 때 그곳이었음을 알리는 석판이 있습니다. 

 

 

 라틴다리에 대한 안내문

 

 

 다리의 양식나 석축 형태로 보아서는 다리 건너 남서쪽으로  교각 하나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그날,

 라틴다리에 서성이는 낯선 영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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