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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

세르비아

by 相民 윤봉택 2014. 3. 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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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8.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거리 풍경입니다.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는

고트족과 뒤이어 슬라브족이 7세기경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5세기말 오스만 제국의 투르크에게 점령당한 후

교역 중심지와 이슬람 문화의 거점으로 발달되었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의 상인들은 라틴 구역인 라틴루크를,

이주해 온 세파르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역인 치투타니를 세웠습니다.

 

17~18세기는 재난이 많았던 때로

화재와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한편

이로 인해

1697년에는 사보이의 에우제니오 공(公)이 이 도시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오스만 제국이

1850년 사라예보를 행정중심지로 삼았고,

다음해에는 시민들이 유혈폭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1878년 투르크를 축출하고

1908년에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공식적으로 합병하자

믈라다보스나 저항운동이 계속 전개됩니다.

 

이러한 자주독립운동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19세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왕위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을 암살했던

1914년 6월 28일에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그만큼 사라예보의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은

이슬람, 정교회, 카돌릭 등

종교 성향에 따라 민족주의 의식이 투철하여

늘 분쟁의 불씨는 상존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사라예보에서 만난 첫 풍경입니다.

 왼쪽 건물은 1992. 8.25~28일 사라예보 내전 때 파괴되었던 국립도서관입니다.

 1894년 사라예보 시청사로 출발하여 1949년 부터 국립도서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전차가 지나가는 삼거리에서 하천 맞은 편에 설치된

 노상 매점입니다.

 

 사라예보의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 골동품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가까이로 1530년에 건축된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사원)이 보이네요.

 

 거리는 이렇게 깔끔하게 대리석으로 개선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비가 오면 빗물이 가운데로 모이도록 한 것입니다.

 

이 거리에는 특히 구리로 만든 제품을 직접 가공 판매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대장간에서 직접 솥을 비롯하여 생활민구류를 제작하는 모습들을 살필 수가 있었구요.

 

 중세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라예보의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거리. 

 

 여기서 부터

 사라예보의 명소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입니다.

 

 바닥은 갖은 대리석으로 마감을 하여 중세풍을 느끼게 하구요

 

골목마다에는 이렇게 구리를 이용한 이슬람풍 민구류들이 진열되어 손님을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 주변에는 이와 같이 노천 카페가 즐비합니다.

우리는 저들이 신기하고, 저들은 우리가 이색적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거리로는 이렇게 일반차와 전차가 공존하구요

 

 오스만제국 영향이 많아서인지 거리 모습이 대부분 이슬람풍입니다.

 

오른쪽은 16세기 캐러번 숙소 유적을 활용하여 조성한 상가들

 

도시 개발과정에서 지하유적이 나타나면 이렇게 활용하는 것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사라예보 개척 1세 이채원 선생님

 사라예보의 대한국인으로 굳건하게 뿌리 내리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거리에서 조우한 이채원 선생님의 이웃들입니다.

 

사라예보의 명물이자, 문화의 산실인 바슈카르지아 Bascarsija 광장 입니다.

광장 가운데 보이는 8각 기둥식 건물이 바로 유명한 '세빌리샘'입니다.

1754년에 만들어진 후, 1852년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다가, 1891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이 샘물을 마시면 다시 사라예보를 찾게된다는 전설의 샘. 헌데 시방은 오염이 되었다하여서 .....  

 

 

 원 광장과 비둘기는 불가분의 관계인 듯.

 아들과 함께 걷는 중년 여성이나,

 

함께 하는 연인들 모두가 시선이 다릅니다. 

아마 생각이 달라서일까요.

 

 광장 너머에 있는 공동묘지입니다.

 유독,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라들의 마을에는 무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도 그렇구요.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 Gazi Husrev-Beg's Mosque입니다.

1521~1541년 이곳을 통치하였던 가지 후스레프 베그에 의해 1530년에 지어진 이슬람사원입니다.

 

 그 사원에서 만난 사라예보의 연인들

 히잡 hijab을 두른 여성과 청바지의 남성

 

 여기서는 인사가 뽀뽀입니다.

 히잡 hijab과 관계 없이 교우를 하는데,

 

 

 

 

 

 

 

 

 돌아 오는 길

 내전 당시에 희생된 넋을 추모하는 향화는 끝 없이 타오르는 데

사라예보를 살피고 나서,

우리 일행은 다시 다음 목적지인 모스타르를 향해 이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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