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디아 게이트

相民 윤봉택 2015. 6. 8. 08:19

2014. 12. 12.

 

인도의 문

인디아게이트 India Gate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행한 종교지도자 국제연수에

함께 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41211일 부터 19일 까지

인도 북부지역

뉴델리. 바라나시. 아그라. 카즈라호, 자이푸르 등을

답사 하였습니다.

 

2014. 12. 11. 오전 8:35분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제주를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출국 수속을 마치고

2014. 12. 11. 오후 120분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인천 공항을 출발

2014. 12. 11. 현지시간 오후 650분에 인도 델리 인디라간디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델리에 있는 피카딜리Picadilly 호텔에 하룻밤을 머문 다음

2014. 12. 12 아침 식사 후 이슬람사원 중 인도에서는 가장 크다는

인도의 수도 델리에 있는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를 방문한 다음

 

델리 중심에 있는

인도의 문

인디아 게이트를 찾았습니다.

 

인도의 문이라 불리는 인디아 게이트는

세계 제1차대전(1914.7.28.~1918. 11.11)에 참가했던

85천여명의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로서

당시 인도를 강제로 식민지 지배(1859~1948)했었던

영국의 건축가 에드윈 루티언스(Sir Edwin Landseer Lutyens, 1869~1944)의 설계로

1921년에 세워진 델리의 대표적인 기념물 중 하나입니다.

 

뉴델리의 중앙 교차로 왕의 길이라는 라즈파트Raj Path

42m 높이로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키는 석조로 건립된 인도의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인도가 이 전쟁에 참전하면 독립 시켜주겠다고 하였지만,

전쟁 후에도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게되자,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로 불려지는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1869~1948. 1. 30)를 중심으로

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이 전개되자, 1947. 2월 영국 정부는 인도의 자치를 약속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도내의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 지역의 독립을 요구하였고,

힌두교와 충돌이 시작되면서 1947. 8. 15. 인도에는 힌두교 중심의 인도공화국과

이슬람 중심의 파키스탄 공화국 임시정부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50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되었고,

1956년 파키스탄은 이슬람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계속 두 나라간의 분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하트마Mahatma는 시성이라 불리는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Tagore, Rabindranath, 1861-1941)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당시 비폭력독립운동을 주도한

간디에게 마하트마 간디라고 붙여준 이름입니다.

 

시성 타고르는 우리에게 동방의 등불이라는 시를 건네 준 시인입니다.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당시 동아일보 동경지국장 이태로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였으나,

한국을 방문하지 못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즉석에서 시동방의 등불을 써서 건네준 것을

주요한 선생에 의해 1929. 4. 2. 동아일보에 번역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도는 우리의 대표적 우방 가운데 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인도는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 11. 20일 의료지원부대를 파병, 부산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1953. 7월 전쟁이 휴전될 때 까지 제60야전병원을 세워

전사자 1800여명, 부상자 9000여명을 치료하여 준 은혜의 나라이며,

우리나라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외국으로부터 강제로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또다른 아치형 모양의 기념비가 있는데,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전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인도게이트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 파병을 하면 독립시켜 주겠다는 영국의 약속을 믿고 참전하였지만 결론은 8만5천명이란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신사의 나라로 자부하는 영국은 거짓말 국가라는 치욕을 안겨 준 상징이기도 합니다.  

 

 자료(구글) 

델리의 중심에

1차대전 당시 영국의 꾐에 의에 희생된 인도군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인디아게이트가 세워져 있습니다.

 

 인디아게이트 광장 한켠

 인도 집시의 여인입니다.

 

 인디아게이트에 행사가 있는지

 내부로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석재로 42m 높이로 쌓아 올린 인디아게이트

 게이트 전체 면마다 1차대전에 희생된 인도병사 8만 5천여명의 이름들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내부에는 꺼지지 않은 '불멸의 성화'

 1972년 인도 독립 25주년을 기념하면서  점화된 이래 계속 타오르고 있습니다. 

 

 

 벽면의 면석마다에는 8만5천여 병사 이름들을 새겨 넣어 1차대전의 치욕스런 인도병사들의 희생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동절기로 접어들게 되어 서인지

 하얀 하복에서 동복으로 갈아 입은 인도 병사들이 행사가 예정되어 있는지 부지런히 점검하고 있습니다.

 

 1972년 인도 독립 25주면을 기념하면서

 안치된 불멸의 성화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중심에는 철모 아래로 총을 꼽아 놓았고,

 제단 사방에는 각각 1기씩 총 네개의 불멸의 성화를 지펴 놓았습니다.

 

 

 인도게이트 '불멸의 불꽃'을 지키는 병사

 

 인도게이트 후면에서 바라본 천정 구조와 조형물

 

 인도 아저씨의 궁둥이

 헌데 절대로 일부러 담지 않았는데 .... 그 순간에

 행사가 있는 지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각종 향로들을 살피고 있네요  

 

 

 왕의 길이라는 라즈파트Raj Path,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디아게이트 '불멸의 불꽃' 현장 근무를 마치고, 다시 근무지로 복귀하는 인도군 병사

 계속 따라 가면서 사진을 담아내자, 참고 참았던 한 병사가 간지러운 코를 만지작 거리고, 옆에 병사는 웃는 표정을 애써 참는데 .... 

 

  맞은 편에는 또 다른 아치형 모양의 기념비가 있는데, 1971년 인도와 파키스탄 전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광장에는 이와 비슷한 조형물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 조형물은 광장 중심에 세워진 분수대입니다. 

 

 

 

 

 우리 일행입니다.

 성균관유도회 고생근. 도청 고명우.  제주도기독교교단협의회 정구호 장노님

 

  유도회본부 고생근. 유도회본부 교육홍보국장 오문석.

 

천주교 고산성당 이옥자. 도청 정미숙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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