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제주올레 11코스

相民 윤봉택 2022. 8. 16. 10:09

2021. 9. 25.

 

제주올레 11코스

 

2022년 1월 6일 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에

격로 제주올레 27코스 29개 노선에 대하여 연재를 합니다.

 

그 연재 중 열다섯 번째 11코스 내용을 이곳에 링크합니다. 

 

제주의소리  형극, 청빈으로 열리는 제주올레 11코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 매거진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형극, 청빈으로 열리는 제주올레 11코스 - 제주의소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www.jejusori.net

 

서귀포신문 형극, 청빈으로 열리는 제주올레 11코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형극, 청빈으로 열리는 제주올레 11코스 - 서귀포신문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곳에서 올레가 열리고, 그 올레로 들어서면 모든 경계가 일순 사라지며 영혼의 숨결로 서벅거리는 서쪽 끝 모슬포, 탐라국에서 대정만큼 상흔 많은 고단이 어디 또 있

www.seogwipo.co.kr

 

기사 134710.pdf (seogwip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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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코스134710.pdf
3.79MB

 

925일 토요일

오늘은 제주올레 11코스를 걸었습니다.

 

어제 한라산 백록담을 순례 마치고

오늘은 서미모 모니카 김소현 님

공동대표 허정옥 박사님과 같이

동행했습니다.

 

오전 08시 40분 부터 순례하여

오전 11시 10분 모슬봉 중간 인증

오후 15시 55분 무릉외갓집 종점에 도착했습니다.

 

제주올레 11코스는

하모리 체육공원에서부터 무릉리 무릉외갓집 까지

17.3km. 44리 올레입니다.

 

지난5월 1차 순례 때 살피지 못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모슬포항을 지나 동일포구, 모슬봉, 정난주 묘역,

신평도요지, 신평·무릉 곶자왈, 인향동

서부지역 해안에서부터 산간지역 까지입니다.

 

마을 지명 관련하여서는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

남제주군 고유지명(1995.1996)

북제주군 지명총람(2006)

해당 마을 향토지

해당 읍·면지를 참고하여 현장을 담았으며

지번이 잘못 표기된 곳은 수정하였고,

순례 도중에 마을 분(토박이)을 뵈면

추가 조사를 담았습니다.

 

지나는 동네는

하모리. 동일리. 상모리. 보성리. 신평리. 무릉리. 청수리.

 

1. 오좌수의거비

2. 신영물(하모리 2148-1 /하모리938)

3. 모슬개/모살개/모슬포항

4. 대정면어업조합(대정읍 신영로72번길 10)

5. 예조물/예지물(하모리 2120 해안

 

6. 쥉이모살/중이모살(하모리 1089-20) 오일장 건물 내부의 서남쪽

7. 대정오일시장)

8. 삭시왓(하모리 1089-53/대정오일장 북쪽 밭 지경)

9. 새원(서방파제 서쪽)

10. 논못/논못거리/논물거리/사니물머리/섯사니물머리(하모31102)서산사 북동<동일리 하모리 경계)

 

11. 돈짓동네/돈지동/돈짓물/예물/예조물/예지물(하모3리 해안 해수사우나 일대)<하모리 1089-23)

12. 모도리수눌(하모리 1098)

 

동일리/알날외/동날외/일과(날웨)/일과촌/일과리/천미동(泉味洞)/세밋동네

13. 등독돌(하모. 동일 경계 코지)

14. 사니물(동일리 3167-5)

15. 서산사

 

16. 강창규 항일애국지사 비

17. 섯사니물당(단골은 하모3. 문수물당 가지당/동일리 3143-6)

18. 모도리수눌늪(동일리 3120-1) 물 웅덩이 2개가 있음

-동일리 불턱

19. 알늪(모도리수늘늪 아래에 있는 해안)

20. 생이물(방파제 입구)

 

21. 구시물(방파제 남쪽 30m)

22. 동일리포구

23. 새개(포구 서쪽)

24. 홍물(동일리 3077. 서방파제 북쪽)

25. 히는늪(홍물 남쪽) 헤엄 배우는 늪

 

26. 홍물동

27. 하모리 고인돌(청소년 수련관)

28. 독다리왓(하모리 1245) 송악도서관 일대

29. 장갈못/장간목(하모리 1328)

30. 노롱고지(하모31357)여고 남서쪽

 

31. 98육군병원 병동(대정여고 내)

32. 솟은밧/소신밧(하모리 1744)

33. 비케왓(하모리 1815)

34. 우중모루(하모리 1950)

35. 모슬봉/모슬개오름/모슬악

 

36. 모슬포악봉수/모슬봉수/모슬망

신평리/옹기밧/서성리(보성리 일부서사리(일과리 일부)/웃날외

37. 존섭(정난주묘역 서북/ 동일리 33)

38. 개동산(신평리 233)

39. 개구밧(신평리 255-1)

40. 도로못(신평리 1261)

 

41. 몰방애동산(신평리 1267-1)

42. 하동굴동산(신평리 391-2)

43. 한진못(신평리 400-1)

44. 향사터(신평리 451-1)

45. 조로방내(신평리 462)

 

46. 신물도리(신평리 466)

47. 간데기(풍로)가마(신평리 80)

48. 서녘물(신평리 555)

49. 식물동네(신평리 532)

50. 누왓부리(신평리 635)

 

51. 모루왓(신평리 861)

52. 신평곶자왈

53. 할망당(신평리 산 28)

54. 거림밧(신평리 산14)

55. 고린다리(신평 무릉 경계)

 

56. 테우리동산(신평리 산 31)

57. 꼬리볼레동산(신평리 산 31)

58. 정개왓(무릉리 산41)

59. 더러신남빌레(무릉리 산1)

60. 성제숯굿(무릉리산40)

 

61. 고래머들수덕(무릉리 산40)

62. 오찬이굴(무릉리 산 1)

무릉1/둔포리(屯浦里)/구목리(枸木里)/도원리(桃源里)/무릉리

무릉2/평지동(고바치인향동(인냉이좌기동(사기수)/웃날뢰(신평리날뢰(일과리)

63. 인향동(무릉리 132-1)

64. 구남물(무릉리 114-1)

65. 고인교(古人橋)무릉리 339

 

66. 왕개동산(무릉2640)

67. 좌기동(무릉리 640)

68. 무릉외갓집

제주올레 11코스 종점

 

제주올레 11코스 촐발점

대정읍 하모리 체육공원(서부보건소)

 

오전 08시 40분에 출발핸요

 

동행하시는

김소현 모니카님, 허정옥 박사님

 

모슬진 유적

탐라국 방어는 3성, 9진, 25봉수, 38연대로 구축되는데,

3성은 제주목성, 정의현성, 대정현성을 말한다.

9진은 제주도 전역을 9진 관할로 분류하여, 해안 왜적(일본) 방어에 집중하게 되는데, 화북, 조천, 별방, 수산, 서귀, 모슬, 차귀, 명월, 애월등 9진이 있었다.

여기에 해안봉수의 중추가 되는 오름마다 25개소 봉수를, 해안선 요지마다 38개소의 연대를 세워 왜적 침입에 대비하였는데, 차귀봉수는 대정현 차귀진 관할이었으며, 북서로는 판포봉수, 동으로는 모슬봉수와 교신했다. 

 

25봉수

제주읍성 관할(화북, 조천, 별방, 애월, 명월진)에는 사라, 도두, 수산, 원당봉수(화북진), 서우봉수(조천진),  입산봉수, 왕가봉수(별방진),  고내봉수(애월진), 어도봉수, 느지리봉수(명월진)

대정현성 관할(차귀, 모슬진)에는 송악/저별봉수, 호산/월라봉수(현 직할),  당산/차귀봉수(차귀진), 모슬봉수, 구산봉수(모슬진).

정의현성 관할(서귀진, 수산진)에는 토산, 달산, 남산봉수(현직할), 삼매양, 호촌/예촌봉수(서귀진), 수산, 성산봉, 독자봉, 자배, 지미봉수(수산진) 

 

38연대

제주목성 관할에는 수근,조부,별도,함덕,왜포,조천,입두,좌가,무주,남두,애월,귀덕,우지,죽도,마두,배령,대포,두모연대

대정현 관할에는 당포,산방,별로천,대포,마희천,변수,서림,우두,무수연대

정의현 관할에는 벌포, 소마로,천미,말등포, 연동,보목,우미,금로포,협자, 오소포, 종달연대. 

 

 

 

모슬점부摹瑟㸃簿

위치는 하모리 770번지 일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형상 복사가 제주목사로 부임 후 제주도내 3성9진을 시작으로 요처를 순력하며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를 <탐라순력도>라고 한다.

"모슬점부"는 이 순력도 내에 41폭 화첩 중 29번째 화폭이다.  1702년(숙종 28) 11월 13일에 군관 전만호 유성서를 보내 장부상 기록과 맞는지를 점검하였다.

자료에는 동쪽 부터 深浦(심포/하모리 143번지),  烟臺<(연대/멜캐연대/행어포연대行魚浦/무수연대無水·茂首. 하모1리 566번지), 行魚浦(행어포/우진항), 摹瑟浦(모슬포), 모슬진이 묘사되어 있다.

이 모슬진은 1676년 윤창순 목사가 동해방호소를이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그리고 동해방호소(지금 서귀포시 회수동)는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던 가래방호소를 장림 목사때 동해로 옮겨 동해방호소를 세웠던 것이다.

임오십일월십삼일壬午十一月初十三日(1702/숙종28년 십일월 십삼일)

대점군관전만호유성서代點軍官前萬戶柳星瑞

목사를 대신하여 군관 유성서가 점검하였다.

조방장(9급) 오세인助防將吳世仁
방군기보병이십사명防軍騎步兵幷二十四名

모슬진성을 지키는 방어군은 24명,

이외 군기십물軍器什物

 

 

대정현 오좌수 의거비

 

거룩하도다. 대정현 하모리 다섯 장정들! 

이만송(李晩松), 이흥복(李興福), 정종무(鄭宗武), 김성만(金成萬), 성일(成鎰) 형제 등.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과의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침략을 일삼아오던 중 1887년 봄(고종24년) 일본 잠수기선 14척이 가파도 주변에서 어획물을 침탈하면서 식수는 이곳 신령물을 이용하였다.

가파도에 천막을 치고 전복을 침탈하던 왜선(倭船) 6척의 선원들은 1887년 8월 13일 모슬포에 상륙하여 민가의 돼지, 닭 등 가축을 약탈하고 신령물 샘터에서 물 긷는 지역 아녀자를 능욕하려 들자 이 처사에 격분한 이만송, 이흥복, 정종무, 김성만, 성일 형제가 주동이 되어 청년들을 이끌고 격투를 벌였는데, 그들의 환도에 이만송은 참수(斬首)를 당했고, 김성일은 손이 절단되는 등 칼로 무장된 그들을 몽둥이로 응징하려 함은 불가항력이었다.

그 후, 이 사건은 조정(朝廷)에 알려지며 맞서 싸웠던 다섯 사람에게는 이들의 용기를 포상하여 각기 좌수(座首)의 벼슬을 하사하였고, 함께 싸웠던 이름 모르는 하인에게는 벼슬 대신 하사금 30냥을 내려주었다. 
120여년 전 관군(官軍)도 나서지 못했던 역할을 약소국의 백성으로서 목숨을 걸고 실행했던 거룩한 행동을 후세에 영원히 기리고저 모슬포청년회의소 이름으로 이 비(碑)를 세웁니다.

광복64주년 모슬포청년회의소 창립35주년 기념〉

 

신영물. 그신태물. 신영수神瀛水. 신령수神靈水. 영신정靈神井

신령스런 물이라 불려진 명칭이다.

하모2리 영수동 도로변에 있는 물이다.  과거에 한 풍수가 지나가면서 물맛을 보고나서 물 맛이 너무 좋아 불려진 이름이다.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까지는 중요한 식수원이었다. 

 

 

모슬포항/모슬개/모살개/모살포

  '모살'은 모래, '개'는 포구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대정면 어업조합창고 터

1930년 지역 어민들이 어업조합을 설립한 후 세운 물류창고터였다. 모슬포 내항 북족 경계에 있다.

 

예조물/예지물/여겨물/여물/돈짓물

하모3리 2120번지 해안 어톤계 선가대 아래에 있는 용천수이며, 여성들이 주로 이용을하여 '여물'이라고도 하였다.

 

대정오일장

  탐라국에는 오일장이 열리는 지역이 서귀포시 대정, 표선, 중문, 서귀포, 고성(성산포) 오일장이고

제주시 지역은 세화, 제주시민속오일장이다.

 

 오일장마다 장날이 다르다.

 11코스/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대정오일장은 매월 1일 6일( 1. 11. 21. 6. 16. 26)이다.

3코스 표선/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있는 표선오일장, 제주시 민속오일장(제주시 오일장서길 26)은 매월 2일 7일이다. 

서귀포시 중문동 중문오일장은 매월 3일 8일이다.

1코스 성산/서귀포향토오일장(서귀포시 동홍동).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오일장, 제주시 한림민속오일장은 매월 4일 9일이다.

20코스/제주시 구좌읍 세화오일장은 매월 5일 10일이다.

 

 

삭시왓

하모3리 1089-53번지 주변에 있는 대정오일장 북쪽에 있는 농경지이다.

 

 

논못/논못거리/논물거리/사니물머리/섯사니물머리

하모3 1102번지 주변으로 서산사 북동에 있으며 동일리 하모리 경계이다. 과거에 작은 물통이 하나 있었는데, 이 물통을 논못이라고 불렀다.

 

 

돈짓동네/돈지동/돈짓물/예물/예조물/예지물(하모3리 해안 해수사우나 일대)<하모리 1089-23)

 

새원/알새원/웃새원/동녁새원

하모리 모슬개 안쪽에서 서방파제 서쪽에 있었던 원 이름이다. 새로 원을 만들었다하여 불렀다. 주변에 원이 많았었는데, 아래 있는 원은 '알새원', 위에 있는 원은 웃새원이라 불렀다.

 

 

산이물

하모리와 동일리 경계 서쪽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이다.

 

동일리/알날외/동날외/일과(날웨)/일과촌/일과리/천미동(泉味洞)/세밋동네

 

산이물 용천수 내부

 

산이물 빨래터

 

서산사

동일리 소재 1943년 항일애국지사 강창규 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무오법정사 항일애국지사 강창규 스님비

  1918년 10월 7일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 법정사에서 무장항일운동을 주동하신 스님이시다.

 

강창규 애국지사 비

 

하모리본향당/섯사니물당/할망당/돈짓당

위치는 동일리 3143-6번지 해안이지만, 단골은 대부분 하모3리 주민들이다.

문수물당에서 갈라온 가지당으로서 하모3리 본향이기도 한다.

 

진성기의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섯사니물당 본풀이

이 모슬 섯사니물 토지본향은 / 난는 날은 생산초지 / 호적 초지 / 장적 초지 / 억만수게 오가일통 초지허던 / 신도본향 상감상 / 어진본향 한집 / 섯사니물에 사는 한집님 / 섯사니물은 삼천백매또 / 상어재기 상좀수 / 중어재기 중좀수 / 하어재기 하좀수 / 만민백성에 제비공년 받아 오던 / 청지재집 일뢰본향 / 한집님

제일은 1월 7일, 17일, 27일  

 

 

하모리본향당/섯사니물당/할망당/돈짓당

 

섯사니물당

모르면 병이 된다. 2015년 6월 당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신궤 구멍 3개를 막아버렸다. 무식한거다. 이런 곳에 공사할 때는 주변 좀네분들께 물어보아야 한다. 이 무슨 짓거리인지, 

망알

하모리 경게 서쪽(망알)에서 망동산까지 부르는 해안선 지명이다.

 

등독돌 해안

산이물원 동쪽으로 뻗어나간 코지를 말한다.

 

망동산

이 동산에서 망을 보았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과거에는 전경초소가 있었고, 현재 그 자리에는 행양경찰의 관측장비가 설치되어 있다.

 

모도리수눌늪

썰물때가 되면 원처럼 지형이 나타나며 큰 늪처럼 보인다. 이곳에 원을 만들어 해안으로 밀려오는 돌묵상어(모도리)를 포획하였다

 

모슬봉

 

동일리포구

작은 포구이다. 대부분 포구를 공사할 때는 기존 포구를모두 허물어버리는데, 이곳은 그대로 오고생이 남겨 주셨다. 참 눈물나도록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계속 현 상태로 유지되어 다른 포구를 개발할 때 한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동일리포구

 

동일리에서 모슬봉

 

물배왓

동일리 3037-1번지 주변이다. 이 지역은 지대가 낮아 비가 많이 오면 밭에서 지표수가 나오기 때문에 물려진 지명이다.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동카름

동일리 동쪽 지역 동네 별칭

 

벨레기동산

주변 동산에 벨레기(청미래덩굴)가 많이 있어 불려진 동산 지명이다. 동일리 3021번지주변이다.

 

동카름

동일리 동쪽지역 마을 동네

 

하모리 지석묘

대정 청소년수련관 건물 서쪽에 있다. (1차 순례 자료 사진 인용)

 

 

장갈못/장간못

하모3리 1357번지, 당밧동네(당전동) 위, 대정여고 북쪽 길가에 있다. 연이 심어져 있다.

 

솟은밧/솟은밭

하모3리 1744번지 일원이다. 주변보다 이 밭이 높게 솟아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비케왓

하모3리 1815번지 주변이다. 주변이 다른 곳 보다 비탈이 져 있어 불려진 지명으로 주변이 급경이다.

 

우중모루

하모3리 1914번지 일원이다. 

 

모슬봉 가는 올레

 

모슬봉 올레 숲

 

한라산. 단산. 산방산. 월라봉. 범섬

 

한라산. 단산 . 산방산. 월라봉 박수기정. 범섬. 형제섬

모슬봉 가는 올레 무덤가에서

 

5km 지점.

11시에 지나다.

 

정물오름. 왕이메. 영아리오름. 백록담. 방애오름. 시오음. 군산. 단산. 산방산. 월라봉. 범섬. 용머리. 형제섬. 송악산

 

모슬봉  인증샷

 

모슬봉 레이더기지 출입할 수 없습니당

 

7km 지점

12시 02분에 지나다. 멀리보이는 곳이 '한물밧'이다.

 

한굴밧/한굴동산

보성리 1400~1888번지 주변으로, 보성리 상동 서남쪽이다. 주변지형이 높 낮이가 편차가 심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보성리/동.서성리(안성. 인성. 구억. 보성. 신평리)/서성리

 

한물동산/한굴밧

 

가시오름 가는 올레

 

광대왓

주변 지형이 드 넓어서 불려진 지명이다. 동일리 1223번지 일대이다.

 

광대왓과 가시오름

 

광대왓에서 가시오름

 

광대왓에서 모슬봉

모슬봉에도 모슬봉수가 있었다. 서쪽으로는 당산봉수, 동쪽으로는 저별봉수와 교신했다.

25봉수

제주읍성 관할(화북, 조천, 별방, 애월, 명월진)에는 사라, 도두, 수산, 원당봉수(화북진), 서우봉수(조천진),  입산봉수, 왕가봉수(별방진),  고내봉수(애월진), 어도봉수, 느지리봉수(명월진)

대정현성 관할(차귀, 모슬진)에는 송악/저별봉수, 호산/월라봉수(현 직할),  당산/차귀봉수(차귀진), 모슬봉수, 구산봉수(모슬진).

정의현성 관할(서귀진, 수산진)에는 토산, 달산, 남산봉수(현직할), 삼매양, 호촌/예촌봉수(서귀진), 수산, 성산봉, 독자봉, 자배, 지미봉수(수산진) 

 

정난주 마리아 묘역 가는 올레

 

존섭/존섶

동일리 33번지 일원, 주변이 명당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한쪽에 섶(숲)이 있다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9km 지점

12시 41분에 지나다.

 

정난 마리아 묘역

 

정난주 묘역 내부

 

묘역 입구

 

묘역 입구 내 야자

 

신평리

255-1번지 일대이다. 

 

신평리/옹기밧/서성리(보성리 일부서사리(일과리 일부)/웃날외

 

개동산

신평리 233번지 주면이다. 동네 개들이 유난스럽게 모여드는 동산이라 하여 불려지는 지명이다.

 

하동굴동산

신평리 391-2번지주변이다. 황색옹기와 흑색옹기를 동시에 구울 수 잇도록 만들어진 쌍굴가마가 아랫동네에 있었다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한 가마에서 유일하게 두 종류의 옹기를 생산했던 유일한 가마터였다.

 

한진못/한질못/신작로못

신평리 400-1번지 도로변에 있다. '한질'의 '한'은 크다. 많다. '질'은 길의 제주어이다. 큰 길가 옆에 있는 못이라 불려진 지명이다.

 

조로방내

신평리 460-11번지 구거(도랑)이다. 이 물길이 가시오음 동쪽 저류지까지 이어진다.

 

신물도리

신평리 466번지 주변이다. 과거에는 도요지 굴가마가 있었던 곳이다.

 

서녘물

신평리 555번지에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한 지역임

 

식물동네

신평리 532번지 주변이다.  4.3사건으로 마을이 사라졌다.

 

모루왓

신평리 861번지 주변이다. 언덕(모루)에 있는 밧(밭)이라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모루는 언덕,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신평곶자왈 할망당입구

신평리 본향당/할망당/일뤳당

신평리 곶자왈 입구 오른쪽에 있다. 신목은 팽나무이며, 돌담으로 담장되어 있다. 

과거에 당굿을 할 때는 돼지를 산에 풀어 놓고난 다음에 다시 산돼지를 잡듯이 그 풀어 놓은 돼지를 잡는 산신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음력 정월 7, 17, 27일 중에 하루를 택일하여서는 당제를 지낸다. 

이 당은 현씨 집안이 상단골이다. 

1901년 신축년난때 이재수가 출정에 앞서 이 당에서 제를 먼저 지냈다고 전한다.

 

진성기<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신평본향

신평리 일뤳당은/예날 체얌이 육지서/서월 양반 시(3)성제가/유람차로 오랐다가/좌정하였습네다/이 시성제 중에/큰가지는 조숫물/허릿궁전으로 좌정허고/둘첸 신평리 일뤠한집으로 좌정허고/셋첸 대정골 인성 산짓당 요피 좌정허였습네다/이 당은 이제수 시절에/성교가 우리 신평을/전권 잡젠 헐 때에/ 이제구가 난을 일으켜서/성교가 신평리에 이제술 잡으러 들어올 때/그 당 신령으로/신평린 운(액운)을 멘했습네다/여태꼬지 전대전손허연/댕이는 토지관 본향 한집

 

신평 본향 

외부는 담장으로 둘러 있고, 내부에는 팽나무가 신목으로 우뚝 서 있다.

 

제단

시멘트로 바닥을 정리하여 단을 세웠다.

 

신평 할망당

입구

신평 일렛당

내부

신평 곶자왈 초입

이 자왈은 신평, 무릉, 산양, 청수, 저지곶자왈로 이어진다.

 

'곶'은 머을에서 떨어진 곳에 형성된 낮은 숲지대를 말하며, '자왈'은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숲을 의미하는데, 나무보다는 덤불이 많다.  

과거에는 '곶디' 또는 '자왈'이라고 하였지, '곶자왈'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곶자왈이라는 표현은 1990년대 후반에 나타나게 되는데, 일부 단체들이 '자왈'을 '곶자왈'이라 사용하면서 이제는 대명사가 되었다.

 

꼬리볼레동산

신평리 산 31번지 주변이다. 높은 곳에 볼레낭이 많아서 불려진 지명으로, 볼레는 보리수의 제주어이다.

 

테우리동산

신편리 산31번지와 산 30번지 경계 지점 주변이다. 

자왈에 방목한 소를 돌보기 위해 테우리들이 보여 놀던 장소이다. '테우리'는 목동의 제주어이다.  

 

거림밧/거린밧

신평리 산14번지 일원이다. 

이곳에서 '한숙이'와 '고른질'로 가는 길이 나누어지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거린'은 하나에서 둘로 나누어진 것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13km 지점

14시 26분 지나다.

 

신평 곶자왈 잣도

이렇게 목장에는 경계 따라 담을 쌓게 되는데, 이를 '잣담' 또는 '성담'이라고 한다. '잣'은 성城을 말하는 우리말이다. 현재 일부에서 이러한 '잣담'을 '잣성'이라고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표현이다. 이는 마치 '역전앞' 이라고 하는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잣'은 목장 경계선 따라 돌담을 쌓은 상태를 말하며, '도'는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출입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이러한 '잣도'로 우마가 함부러 넘나들지 못하게  막아 놓은 것을, '살채기'라고 하고, 이러한 살체기가 설치된 출입구를 '살체기도'라고 말한다. 

  

무릉곶자왈 잣도

무릉리 산40번지 경계에 있는  잣도(출입구)이다.

 

무릉곶자왈 잣질

'잣'과 '잣' 사이 좌우에  70~80cm 높이로 담장을 쌓아 우마가 목장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또한 목장에서 우마를 가려내어 따로 몰고 나다닐 때 이용하는 길을 '잣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마를 마을 가까이에 있는 물을 먹어러 출입하는 길을 '몰질'이라고 하는데, '몰'은 말, '질'은 길의 제주어이다.

 

 

새왓

새와 띠茅는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이지만, 탐라국에서는 띠라하지 않고 '새'라고 말한다.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여기서 '왓'은 농경지가 아니라 새를 재배하는 밭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새는 초가지붕을 덮고, 초가지붕을 덮은 새를 고정시키는 '집줄'을 놓는 중요한 재료롤 사용된다. 따라서 '새'는 탐라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소중한 자원이다.

 

'새'와 더불어 함께 쓰이는 게 '각단(脚短)이라는게 있는데, 이는 표현 그대로 무릅 정도 높이로 자란다. 주로 처마 처지는 것을 보충하거나, 지붕 썩은 곳을 보수할 때 쓰이는데, 

탐라에서는 "각단 밧디가서 새 소리헌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각단 베러 각단 밭에 가고서는 왜 이 밭에는 새(띠)가 없냐고 전혀 앞 뒤가 맞지 않은 엉뚱한 소리하는 이를 말하는 제주 속담이다.

 

 

 

무릉리 곶자왈 잣도

무릉리 곶자왈에는 유난히 잣도가 많다. 이는 동일 번지 내 다른 번지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경계를 표시하고자 함이다.

 

정개밭/정가밧

무릉리 산40번지 일원이다. 이래전 정씨 성을 가진 분이 이곳에 머물면서 자왈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면 생활을 하였으며, 지금은 탱자, 복숭아, 벚나무 등 당시 생활 흔적을 알려주는 수목들이 자라고 있다. 정씨의 유언대로 그가 머물던 곳에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정가밭 잣질

 

오찬이궤

지난 날 오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한 손으로 소를 때려 잡을 정도 힘이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끼에 쌀 한가마 분량의 밭을 지어 먹어도 모자라 부잣집 소를 잡아 먹으며 이 궤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궤'는 바위그늘집 또는 작은 굴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지금은 오찬이궤에 박쥐 등이 서식하고있어 이를 보존하기 위해 통제하고 있다.  

 

 

성제숯굽터

과거 인향마을이 설촌될 당시 한 형제가 이곳에 들어와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구워 생활하였다고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현재는 당시 숯가마터는 지역 주민들이 가마 석조 돌을 헐어다가 구들장 놓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제숯굽터 주변

 

15km 지점

15시 07분 지나다.

 

고래머들

'고래'는 맷돌, '머들'은 돌무더기 또는 땅에 박혀 있는 암석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이곳에는 다른곳과 달리 강한 성질의 돌 보다는 연한 성질을 지닌 돌이 많았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쇠물통/구시통

목장에는 무엇보다 중요한게 우마의 급수원이다.

소말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진흙 있는 곳에 웅덩이를 파거나, 보이는 것 처럼 바닥에 빌레가 많은 곳에는 이렇게 구시통을 만들어 물을 먹였다.

 

쇠물통 주변

 

무릉리 산51-2

바로 옆에 곶자왈 현순여할망집이 있다.

 

양봉장도 있고

 

곶자왈 올레는 다시 모슬올레로 이어지고

 

낯 선 기다림의 그림로 남아 순례자를 안아 주시니

 

구남물/구남수

이 연못은 360년 전 처음 모슬개 주민들이 이곳에 우마를 방목할 때, 이곳에서 솟아나는 물을 발견하여 사용하면서 부터,가축 급수원으로 사용되었다. 1980년대에는 작은 못이었으나 후에 확장되었다.  연못 서쪽에는 돌로 만들어신 구시통(돌확) 2개가 좌우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빨래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빨래 전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선인들은 가축을 먹이는 물이라 하여도 깨끗하게 보전하려는 실천 의지가 강하였음을 이 돌확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처럼 연못가에 구시통을 놓아 빨래를 하였던 곳은 현경면 낙천리 저갈못과 이곳이 유일하다.  

'구남'은 굴참나무를 말하는데, '남'은 나무의 제주어이다.

 

연못에 떠 있는 부레옥잡

 

구남물 영주산

연못을 조성할 때는 물의 흐름과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돌을 이용하여 산을 세워 작은 섬을 만들어 놓는데,  3개를 만들면 봉래. 방장. 영주산을 상징하며, 하나를 만들때는 영주산을 상징하는데, 이는 봉래와 방장산은 육상에 있는데 비하여, 영주산은 바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산을 세워 섬을 만드는 것을 조산造山 또는 석가산石假山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영주산 주변에는 복두꺼비를 세워 놓았다. 두꺼비는 재물을 상징하며 음양으로는 달(月)을 의미한다. 

개구리는 다산과 재물, 성취를, 거북이는 장수를, 게는 출세를 상징하기에 동양화에 자주 등장한다.

 

 

구남물 돌확/구시통-1

연못 서쪽에는 돌로 만들어신 구시통(돌확) 2개가 좌우로 놓여져 있는데, 이는 빨래로 인하여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위하여, 빨래 전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구시통에는 구멍을 뚫어 빨래하고난 물을 빼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우리 선인들은 가축을 먹이는 물이라 하여도 깨끗하게 보전하려는 실천 의지가 강하였음을 이 돌확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이처럼 연못가에 구시통을 놓아 빨래를 하였던 곳은 현경면 낙천리 저갈못과 이곳이 유일하다.  

 

구남물 돌확(구시통)-1

 

 

3.5정/왕돌단/대돌목

무릉리 133-3번지 길가이다.

인향동 길목에 큰 돌이 단처럼 되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구남물에서 마을 방향으로 130m 가면 삼거리에 팽나무가 보이는데 여기가 3.5정이 있고, 마을 유공자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당초에는 왕돌단이라고 하다가, 1970년대 인향동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3강 5륜을 통하여 마을문화가 전승 발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3.5정이라고 하였다.

 

 

3.5정 표석

표석이 정자 옆 돌담 위에 세워져 있다. 

 

정주먹/정주목/정주석

정낭(정남)은 탐라국의 대문이다.

집집마다 올레로 나가기 전 마당 입구에 이러한 정낭을 정주먹에 걸쳐 놓아 대문을 대신하였다.

이는 탐라국에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바람으로 부터 대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이고, 우마의 출입을 마음대로할 수 없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마는 특성상 소나 말의 다리 높이로만 나무를 걸쳐 놓아도 뛰어 넘지를 않은 습성을 이용한 탐라 선인들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올레에 구멍 두개와 세개 뚫린 정주먹이 두개나 세워져 있다. 구멍 세개 짜리는 마을에서 최근 사업으로 집집마다 새롭 조성하여 설치한 것이고, 구멍 두개 짜리는 본래부터 있던 것이다.

정주먹은 대문을 세울 때 기둥의 역할 하는 돌 기둥을 말한다. 이러한 정주먹은 용도에 따라 구멍이 하나, 둘, 셋, 네개 짜리가 있는데, 여기서 용도라 함은 상잣, 중잣, 하잣, 집을 말함이다.

'잣'은 성城의 나랏말이다. 제주에서는 돌로 쌓은 담장을 '잣'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잣'은 경계를 표시하여 소나 말이 마음대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산간지대를 상잣, 중산간 지대를 중잣, 인가 주변을 하잣이라고 한다. 

 

구멍 하나 짜리는 주로 상잣의 '잣도'에 설치를 하며, '살체기'로 대신하기도 한다.

구멍 두개 짜리는 중산간 지역에 주로 설치한다.

구멍 세개 짜리는 집에 설치한다.

구멍 네개 짜리는 이문집(대문이 있는 집)에 설치하였다.

 

동네 입구에도 이러한 정주먹을 세우는데, 이를 '정도'라고 한다. '정'은 정낭/정남을 말하는데, 정주먹 구멍에 끼워 걸쳐 놓는 나무를 정낭(정남. 정살낭)이라 하고, '도'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세조 때 부터 통금을 관리하기 위해 마을 어귀마다 이문里門을 세웠는데, 탐라국에서는 이를 '정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문裏門은 집 뒤 통로로 만들어 놓은 문을 의미한다.   

 

 

인향동 정주먹

 

인향동 입구

 

고인교古人橋

무릉2리 339번지 일원이다. 조선조 초기 대정현이 설치되고 나서, 이곳에서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어 현청으로 물류를 운반하기 위해 다리를 설치하였다고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제주올레 11코스 종점

제주올레 12코스 출발점

무릉외갓집

 

 

15시 55분에 도착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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