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별장
2010. 06. 26.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는
진해 이승만대통령 별장 및 정자입니다.
지난 6월 26일 토요일 오후
가랑비와 더불어
진해 이승만 대통령별장으로 알려져 있는
대통령 별장을 찾았습니다.
한일합방 시기에
일본군이 통신대 시설로 사용하던 것을
1945. 10. 5. 해군에서 인수한 후 개조하여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되었습니다.
별장 부지는 998㎡, 건물 218㎡로서
전체 구조는 ┏ 형이며,
지붕은 겹처마 형식의 한옥이나
내부 구조는 양옥을 절충하여
집무실(응접실), 침실, 경호실, 회의실, 주방 등으로 구분 배치하였습니다.
또한, 별장에서 바다 방향 50여m 지점에는
1949. 8. 8. 반공산주의의 태평양 동맹 결성을 위해
이승만 초대대통령, 장개석 총통, 신익회 총리, 하지 중장(군정장관)이
필리핀 퀴리노 대통령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하고자 회합을 가졌던
남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기슭에
작은 모정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시에 네 곳에 별장을 두었습니다.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산 155번지에 있는 제주 이승만별장(원형)
서귀포시 동홍동에 있는 서귀포이승만별장(구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 내)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 화진포 이승만별장(복원) 등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 입구입니다.
식재된 수목을 잘 가꾸어서인지 참으로 아늑하게 느껴진 아름다운 숲길이었습니다.
별장 입구에 세워진 문화재 안내문
해군 사병들의 도움으로 현장을 살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입구 좌측에는 장개석 총통이 식재했다는 기념수가 있었으나,
지난 2002 태풍 때 쓰러져 고사되자, 후계목을 식재하여 키우고 있었고,
그 옆에는 당시 통신대를 별장으로 개조하면서, 한반도의 지형과 닮은 연못 하나를 두었습니다.
연못 가운데에는 돌다리를 두어 남북 분단의 38선을 상징하였고,
이 대통령은 후일, 남북통일이 되면 이 38돌다리를 걷어 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별장 입구 현관
전체 구조는 ㄴ자형으로서, 지붕은 한옥 겹처마 양식이나
골조는 양옥을 따라 건축하였으며, 구조상으로는 2동을 연결하였습니다.
현관 좌측면 구조입니다.
현관 우측면 구조이며 전면7칸, 측면 3칸입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좌우 2동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전면 우측에 배치된 건물은 한옥 겹처마 팔작지붕 전면3칸 측면 3칸으로
좌측 건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좌측 건물에 있는 응접실입니다.
전면에는 주자(1130-1200)의 '무이산구곡가'를 10폭 병풍에 鶴山의 글씨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민족정기' 입니다.
대통령께서 쓰셨다는 책상과 실내 장식물
좌측 문을 넘어서면 바로 침실 공간입니다.
대통령 내외께서 주무셨다는 침실입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고즈넉한 공간,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잔영을 느껴봅니다.
삶의 여적도
이쯤에서는 모두 놓아야 하는지,,,,,,, 제행무상인 듯
침실 맞은 편에 놓여진 장롱
거울 빛에 담겨진 노부부의 그림자
작은 회의실
경호실, 비서관실, 주방, 비밀통로로 연결되는
전체 건물 배치 상 우측에 위치한 전면 측면 3칸 건물 내부 구조입니다.
회의를 할 때 대통령께서 앉으셨던 의자였는지
이제는 시간의 흐름 따라 한 올 한 올 여위에 가고 있나 봅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경호실장(곽영주)이 머물던 침실,
바로 회의실 좌측 면에 있습니다.
이태리 양식의 주방가구
현관 우측에 당시 경호원들이 사용했었을 작은 공간,
그 모퉁이에는
다이얼 전화기 한 대만
그 날의 모든 대화를 간직한양 세월의 무게를 꾹 꾹 누루고 있었습니다.
별장 집무실을 나서면 바다로 이어지는 작은 숨길
그 길 다한 곳에
육각 모정 한 채가 낯선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49. 8. 8. 반공산주의의 태평양 동맹 결성을 위해
이승만 초대대통령, 장개석 총통, 신익회 총리, 하지 중장(군정장관)이
필리핀 퀴리노 대통령에게 예비회담을 제의하고자 회합을 가졌던 10㎡의 작은 영역
빛 바랜 나무의자는 시방도 그 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데
사람은 가고, 빈 의자만 남았습니다.
주변에는 당시 조경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 있어
그 날을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내려서는 계단마다, 돋아나는 6월의 마지막 푸르름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낯 선 기다림으로 돌아 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