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
무당내력입니다.
19세기 당시
서울지역 무당이 하는 각종 거리에 대하여
난곡(蘭谷)이라는 분이
을유년 봄에 채색하여 놓은 도록입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이 책은 큰책과 작은 책,두 종류가 있는데,
모두 한사람의 작품입니다.
이 자료를 통해
19세기
서울무당이 입었던 복식을 비롯하여, 무구, 젯상차림 등
어떤 굿거리에서 무슨 옷과 무구가 필요했는지
살피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무당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가교일 뿐만 아니라
민간신앙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토속신앙의 모태입니다.
이러한 무당을 지역에 따라서는
만신, 박수, 당골, 무녀, 심방, 나그네 등으로 불려집니다.
먼저 작은 책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책의 규격은 가로 17cm, 세로 21cm, 14면으로
표지 다음으로, 무당내력의 서문, 악공, 감응청배, 제석거리, 별성거리.
대거리(최장군거리), 호구거리, 조상거리, 만신말명, 축귀, 창부거리, 성조거리, 구릉, 뒷젼 등
1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당내역 표지입니다.
서문입니다.
上元甲子 (唐堯時) 十月三日 神人降于太白山 (白頭山 或云 妙香山) 檀木下 是爲檀君 / 상원 갑자 요임금 시절, 시월 삼일에 신인이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강림하니 이가 바로 단군님이시다.
乃設神敎而敎之 長子扶婁賢而多福故 人民尊信 後日擇地等壇 土器盛禾穀 編草掩之 稱曰 扶婁壇地 業主嘉利 / 이에 신교를 열어 장자 부루(扶婁)에게 가르쳤는데, 부루는 어질고 복이 많아 인민이 존경하고 신임하여 후일 터를 골라 단을 쌓고 토기에 벼 곡식을 담아 풀을 엮어 가려놓으니, 이를 가리켜 ‘부루단지’ 또는 ‘업주가리’라고 하였다.
每歲十月 新穀旣登以甑餠酒果致誠祈禱 祈禱時必用老成女子 世稱巫人 / 매년 시월에 새곡식으로 시루떡, 술, 과실을 올려 치성 기도하였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나이 많은 성숙한 여자를 쓰는데 세상에서는 이 사람을 무인이라고 불렀다.
其後數爻增加 謂之巫黨 邇來百弊端疊出 漢唐以來 巫獄頻繁 / 그 후 무인의 수효가 증가하여 무당이라고 이르게 되었는데, 그 이래로 백 가지 폐단이 겹쳐 나타나서 한당 이래로 무당으로 인한 옥사가 빈번하였다.
近日佛家謂之新羅中葉 咸陽等地 有法雨和尙 生八女分遣八路 爲巫云 無據訛言莫此爲甚 時乙酉仲春 蘭谷破寂耳. / 근일 불가에서 이르되 신라 중엽 함양 등지에 법우화상이란 사람이 딸 여덟을 낳아 팔도에 나누어 보내 무당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말로서 이에 더 심한 것이 없다. 을유 중춘에 난곡이 그냥 심심풀이로 쓰다.
작은 책에는 설명이 없습니다만,
큰책에는 부정거리(不精巨里)라고 되어 있습니다.
부정거리는,
굿 처음 시작할 때 부정한 것을 안정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처음 의식을 할 때,
정구업진언, 정삼업진언, 도량내외안위제신진언 등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그림의 악사들은
신을 즐겁게(娛神)하는 역할을 합니다.
남자는 피리와 해금을
여자는 제금과 장고를 울리고 있습니다.
감응청배, 속칭 산바리기
굿을 할 때는 신을 청하는 청신
신을 즐겁게 하는 오신
신을 다시 오신 곳으로 돌려 보내는 송신 등으로 엮어집니다.
이는 굿뿐 만이 아니라
제사, 제례의식 등 모든 의식이 대동소이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먼저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나서
주신과 제신을 차례로 청하여 좌정 시킵니다.
여기에서는 태백산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 계신 단군신을 모시기 위해
무녀가 세번 청을 합니다.
향로와 술잔만으로 매우 단촐합니다.
제석거리
제석은 단군신을 말합니다.
단군이신 삼신(三神)을 모시는 거리입니다.
제주도에서 삼신은 육아를 담당하는 '삼승할망'을 말합니다만,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거리마다 무녀가 착용하는 무복이 서로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굿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별성거리
단군을 모시는 고시례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오곡을 파종하여 사람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켰습니다.
그 고시례 별성을 위한 굿거리입니다.
향로와 술잔이 없습니다.
대거리
단군을 모신 뒤에 성스러운 뜻으로 소원을 이루도록 하여 준다고하나,
옛날에는 단군 복식을 사용했는 데,
지금에 와서는 최영장군의 복장을 하고 있다.하였습니다.
호구거리
천연두 신을 호구라고 한다. 집안에서 홍역을 넘기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치성 드릴 때 호구신이 무사히 지나 가기를 기원하나,
이 호구신을 최근에 와서는 최영장군의 딸 또는 최영장군의 첩이라고 하니 이는 망발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향로와 술잔이 없습니다.
조상거리
치성드릴 때는 일월조상들이 차례로 와서 길흉화복을 미리 알려준다고는
하나, 이는 무녀들의 토색에 불과한 것으로서 가소로운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신말명
무녀를 만신이라 하는데, 어느 것이 옳은지 알수가 없다.
대게로 이 춤은 무녀의 근원을 알려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명은 무녀들의 조상신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축귀거리
오방기를 들고 있습니다.
이 오색기는 오방신장이 일체의 모든 악한 것을 물리치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치성드릴 때 많이들 사용하고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창부거리
무녀 가운데 젊고 아름다운 자를 선발하여 다 같이 유희할 때 하는 것으로,
돈을 거두려는 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60년 이래 점차로 성행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조거리
단군 때에는 매해 10월, 무녀로 하여금 집을 지은 것을 축하하여 주도록 하였는데
그 의미는 사람들이 그 근본을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치성 시에 의례로 행한다. 속칭 성주풀이라고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구릉거리
명나라 때, 수로를 통해 왕래하였기 때문에, 매번 사신이 출발할 때가 되면
사신성황(모화현 앞)에게 무녀가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오기를 기원드리는 행위이다.
이로 부터 풍속이 유행하여 치성 시에도 의례를 행하고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뒤젼거리
치성을 마치면, 이름 없는 모든 잡귀 까지도 메었던 것을 풀어
공양토록 하며 안정을 시킨다.
연대는 알 수가 없으나, 이미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 풍속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35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