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한림성당

相民 윤봉택 2024. 5. 7. 17:02

2008. 12. 25.

 

한림성당입니다.

 

한림성당은 제주도의 서부지역 관문 한림항

그 물결 일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1953년

세계지도를 보아야만 보이는 섬,

바다 건너 남아일랜드에서 온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님에 의하여 세워진 성스러운 반석

 

이곳에는1954년에 준공된 한림성당의 석조전당이남아 있습니다.

 

저가 아끼는 성당 건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오늘아기 예수님 성탄일을 맞아 함께 찬양하면서지난 시간에 담아 두었던 자료로 되새김해봅니다.

 

만약이 춥고 어두운 연말에 성탄이 없었다면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가 아기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마음 가난한 역사를 빚어 낼 수가 있다면요.

 

 

 

 천주교

 한림성당입니다.

 

 천주강신 1954년에 건립되었음을 알리는

 석조전당의 표석.

 

 한국전쟁으로 피폐된

 모두의 마음을 어우르며 창건된

 한림성당은

 1953년 당시 제주의 아픔을 치유하는 실로암이었습니다.

 

 한림을 지나갈 때면

 이곳에 닿아 저 전당의 첨탑을 바라보며

 선인들의 예지와 숭고한 의미를

 되새김합니다.

 

 모두가 마음 가난할 수 있다면

 

 한림성당은

 한림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어둠을 밝히는

 

 이 시대의 빛으로

 구원의 불을 밝혀 왔습니다.

 

 이제는

 성당의 첨탑도

 

 시간의 그늘로

 한겹 무게를 더하고 있는 데

 

 아늑하여라

 그날

 이시돌 광야에 울려 울려 솟아 오르던

 

  생명의 탯줄 같은

  그리움이여

 

 1999년에 착공되어

 2001년 7월에 준공된 성당.

 

 문을 지나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씀으로 열어 오시는

 

 문 상단 홍예의 부조상

 

 성당 출입문 손잡이

 

 성당 출입문 잡이 하나

 

 성당 출입문 잡이 둘

 

 

 

 성당 정면 좌측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상

 

 성당 정면 우측에 세워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상

 

 

 

 

 

 

 

 성이시돌병원

 이제는 종합병원으로 개원하면서 이시돌로 옮겨졌지만

 지난 날 성이시돌병원은

 상처난 제주인의 영혼을 치유하는  요람이었습니다.  

 

 성이시돌병원 입구

 

 

 

 

 

..............................

 

(펌) 제민일보

 

[제주 제주인]“제주여성 헌신적인 삶 인상적”

 

1953년 선교위해 제주에 들어와 53년째
신용협동조합·수직사업 등 주민위해 봉사
"호스피스사업 지원 많은 관심 가져 달라" 당부

 

2006년 12월 15일 (금)   이영수 기자

 

 

 

“한림성당을 건립할 당시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계란과 닭, 쌀 등을 가져다줘 감동을 받았다.

제주여성들을 존경한다. 못 입고 못 먹으면서도 물질과 밭일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온

제주의 여성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제주사람들은

내가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참으로 따뜻하게 맞아줬다”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78·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

그가 지난 53년간의 제주 생활을 소회하며 기자에게 건낸 말이다.

제주도 제2호 명예도민증의 주인공 맥그린치 신부. 1928년 6월 남 아일랜드의 레터켄이란 마을에서

그는 수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로 머나 먼 제주섬으로 와

제주의 신자들, 주민들과 각종 시련과 아픔을 함께 해 온 그가 이제 어느새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4·3과 한국전쟁 등의 후유증으로 가난과 배고픔, 질병에 고통받던 제주에서

중앙성당 한림공소 부임과 동시에 한림지역 20여명의 신자들과 시작한 그의 제주 삶은

이제 53년째에 접어든다.  

어떤 인연의 끈이 연결된 것일까. 아일랜드 선장이 몰던 9000t급 화물선이

한림 해안에서 좌초돼, 그 배에 있던 목재를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맥그린치 신부는 많은 신자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마치 기적과 같이 한림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

신자는 물론 용운동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멀리 신창에 사는 신자들까지 모여들어

 마차로 100대분이나 되는 많은 목재를 날라 성당을 건립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이후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그의 인생 드라마의 시작이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후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많은 일들을 해낸다.

곗돈을 떼여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촉매제가 돼

신용협동조합을 제주에 최초로 설립, 신용협동조합이 도내에 확대될 수 있도록

한 일은 세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가난 극복에 도움을 주고자 양을 구입, 신자들과 양을 키우고

고향 아일랜드에 있던 아버지가 보내준 물레로 양털을 꼬아 실을 만들어

털양말을 짠것에서 비롯된 한림수직사업은 지역의 처녀와 주부들에게 기술과

일자리를 제공, 많은 도움을 줬다.

새 교우이기도 했던 소녀가 육지로 돈을 벌러갔다가 안타깝게 사망한 것에 충격을 받고,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양털로 실을 뽑아 옷감을 짜서 팔자’라고

맥그린치 신부는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황무지에서 무슨 목장을 만드느냐’, ‘불가능하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

제주 중산간 황무지를 개간, 돼지와 소와 양을 기르며 이시돌목장과 사료공장,

우유 및 치즈공장 등을 설립한 것은 그의 억척스런 고집과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수의사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존경하며 아버지의 뒤를 쫓아 가축진료에 나서며

소년시절 수의사를 꿈꿨던 맥그린치 신부. 대규모의 목장 조성 등은 어찌 보면

척박한 제주에서도 목축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맥그린치 신부는 이러한 사업의 수익을 복지사업에 투입하게 된다.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지역사정을 감안,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성 이시돌 의원을 열었고,

 이후 양로원, 경로당, 노인학교, 유치원과 유아원, 농촌노인복지회관, 어린이집,

 젊음의 집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맥그린치 신부는 기자에게 한가지 당부하고픈 말이 있었다. 

성 이시돌 의원을 보수, 확장해 4년 전부터는 말기암 환자 등을 받는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는 상황 속에서 이곳 저곳에서 후원의 손길이 답지하고 있지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전했다.

“성 이시돌 복지의원 호스피스병동 운영이 어렵다. 호스피스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이시돌에서 호스피스병동을 하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호스피스병동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다른 곳에도 많이 생겨나야 하기 때문이다”

 

 

△성 이시돌 복지의원 후원계좌 = 농협 901060-51-021607(예금주 (재)성이시돌복지병원),

제주은행 30-13-00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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