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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여섯 선풍기

相民 윤봉택 2009. 11. 16. 01:10

2009. 11. 16.

 

26년 전

그러니까, 우리 큰 아들이 태어 나던 1984년 여름,

아가가 태어 나자 선풍기 하나를 우선 구입하였습니다.

 

음력 5월에 태어 났으니

백일을 삼복 더위와 함께 한 것입니다.

 

그 때는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

지붕만 새마을 사업으로 슬레이트로 바꾼 키 낮은 3칸 초가집,

 

날씨가 넘 더워 아기에게는 땀띠가 하루가 다르게 돋아나던 시절

서귀포 시내로 나가 거금 오만원, 금 한 돈 값을 지불하고

가장 좋은 선풍기 한 대를 구입하였답니다.

 

당시만 해도 첨단이라 하던

풍향과 풍속을 일반과 컴퓨터로 전환할 수 있는

그런 선풍기를 아기가 더위 먹지 않도록

2m 후방에 놓고 켜 놓곤하면서

한 여름 넘겼던 선풍기 ......

 

그동안 이 선풍기 하나로

큰 아들과 막내 아들 두 녀석의 한 여름을

키워 넘기면서

 

초 여름에는 수확된 보리를

늦 여름에는 털어 온 참깨를

가을에는 거둬들인 벼를 정리하기 위해

 

바람에 불릴 때에는 올레 밖 까지

긴 전깃줄을 이어 선풍기를 강풍에 놓고 켜면

아내는 키 질을 하며

바람을 날리던 그러한 한 시절 .........

 

그러던 어느 여름 날엔

아내와 다투다가 오곧 선풍기가 넘어지는 바람에

모다 박스가 깨어진 것과

오래 사용하면서 날개가 금이가 교환한 것 제외하고는

 

오고생이 26년 전 그대로

지금가지 선풍기를 요긴하게 쓰고 있습니다.

 

사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그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자라난 큰 아들은 결혼하여

벌써 손자 둘을 안겨 주었습니다.

 

큰 손자가 태어나 첫 여름이  다가오자

이제는 가정 형편도 풀리고 했으니

손자 더위 먹지 말라고

선풍기 대신 에어컨 하나를 사주면서

 

손자가 우리 집에 왔을 때도 더위 먹으면 안될 것 같아

핑계에 우리도 한 대 마련했답니다.

 

오늘은

지난 몇 일 추적거리던 비도 멈추고 하여

그동안 선풍기 정리하지 않는다고 쓴소리하는 아내가 넘 미워

여름에 사용하였던 선풍기 먼지를 털어 내고

다시 잘 간수를 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이 선풍기가 지 나이와 같다며 달라고 하지만

아직도 선풍기가 날 선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앞으로 사는 날 까지 갖고 있어도 될 것 같아

나중에 그 날이 오면 갖고 가라고 했답니다. 

 

 

 스물 여섯 해 동안,

 빛 바랜 바람으로

 결선도를 따라

 날 선 바람을 안겨 주었던

 그러다 고장이 나면

 A/S점을 찾곤 했지만,

 시방 그 점들은 모두 점이 되어 떠나 가버리고

 삶이 그러하듯

 기氣를 놓으면 사물 조차 움직일 수가 없나니

 오늘은 볕 따스하여

 잠시 놓아 두었던 선풍기를 분해하여 먼지를 털어 내었지만

 하여도 어쩌랴

 내 마음의 먼지는 털어도 털어도 다 털어 낼 수가 없는 걸

  이 다음

  울 손자가 자라면, 내 마음 한 이랑

  물결로나 씻어 낼 수가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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