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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相民 윤봉택 2007. 5. 25. 11:18

2007. 05. 25.

 

 

동갑내기 치매 사돈 병수발하는 곽윤생씨



【울산=뉴시스】


"처음엔 시어머니 병수발하는 딸의 '짐'을 나누겠다는 맘에서였다. 그러나 이내 그것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칠십년 세월 풍상을 겪은 '늙은이' 그 심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연민이었고, 동질감이었고, 함께 아파서였다. "


 

 


치매에 걸린 동갑내기 사돈을 위해 지난 2월부터 밀양과 울산을 오가며 병수발을 들고 있는 곽윤생씨(69. 경남 밀양). 관절염으로 본임 몸도 성치 않지만 밀양의 시골 집에서 버스를 세번 갈아 타며 울산시 동구 전하1동에 있는 딸 이옥희(36), 사위 김창섭씨(37)의 집을 오가고 있다.


1주일에 닷새 이상은 딸집에 와 있고, 나머지 이틀은 남편 혼자 남아 있는 집에 가서 살림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울산과 밀양을 오가는 시간이다.


이 씨의 시어머니 홍종균씨(69)는 15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아오다 2년 전 쓰러진 뒤로는 치매가 와서 현재 거동도 제대로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7세 아이 정도 정신연령 상태로 지내고 있다.


이 씨는 시어머니와 따로 살다 2년 전부터 집을 합쳐 살았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시어머니를 돌봐왔다.


시어머니가 낮에는 동구노인복지회관 내 주간보호센터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5살, 8살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면서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보다 못한 곽 씨가 딸집에 와서 일주일의 대부분을 보내기 시작했다. 딸도 딸이지만 무엇보다 '늙은이 서러운 심정은 같은 늙은이가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곽씨는 사돈 대소변 볼 때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다 도와주고, 아기한테 밥 먹이듯 일일이 떠먹여주고, 또 밤엔 잠도 함께 잔다. 겨우 한발씩 떼는 정도인 홍 씨와 함께 주말에 산책 나가는 것도 곽 씨의 몫.


"당연히 힘은 들죠. 그치만 사돈 옛날 모습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사무치는지...이 양반이 얼마나 품위 있고 인물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리 됐을까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


딸이 결혼하던 98년 당시 홍씨는 모 중학교 교감으로 지내다 퇴직한 상태였으며, 곽 씨 눈에는 '둘도 없이 멋진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렇게 멋있고 딸에게 잘해준 사돈이 하루 아침에 말도 거의 못하고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신세다 되다니,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런 애틋한 맘을 아는지 홍씨도 곽씨가 밀양으로 가 있는 동안은 더듬거리는 말로 "왜 안오나..왜 안오나.."하며 연신 찾는단다.


두 사람은 어디를 가든 손을 꼬옥 잡고 다닌다. 홍 씨가 혼자서 걷기 힘든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세월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동갑내기 인생 길동무로 손을 맞잡고 걷는 것이다.


이 달 초 이씨가 사는 아파트 부녀회에서 보내준 '어르신 온천 관광'에 함께 가서 자신은 온천욕도 안하고 내내 사돈 목욕 시키는 데만 땀을 흠뻑 쏟았다.


그걸 안쓰럽게 본 부녀회 회원들이 자기들이 해드릴테니 어르신도 목욕하시라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 맘같이 편하게 잘 못한다, 행여나 손 놓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며 끝까지 사돈을 보살폈다고 한다.


곽 씨는 "나는 아직은 더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사돈은 언제 다시 온천에 한 번 가보겠냐"면서 "안 아프면 함께 관광도 다니고 참 좋았을텐데..."하며 붉어지는 눈시울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곽 씨는 "사위가 효자상까지 탈 정도로 어머니한테 잘하는 사람이고 내 딸도 마찬가지인데 자식들이 하는 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며 "사돈에게 힘이 돼주는 것이 함께 인연을 맺은 가족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돈 사이가 남달라서인지 '치매 때문에 겪는 불화'는 이 집안엔 없다. 물론 가족들 사이에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홍 씨가 병을 앓기 전부터도 양쪽 집안 가족들의 애정은 각별했기에 여전히 화목하다.


보통은 사돈 쪽 가족들이야 결혼할 때 인사 나누는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양쪽 집안은 평소에도 서로 내 부모, 내 자식처럼 편하게 너나없이 지내왔다고 한다.


지난 5일 이 씨의 시댁과 친정 양쪽 집안 어르신, 형제, 자매는 물론 시누이네와 그 시부모, 형제들까지 다 모여 1박2일로 여행까지 다녀왔을 정도다. 흔치 않은 일이다.


24일 부처님 오신 날. 곽 씨는 해마다 가던 사찰에 올해는 가지 못하고 미리 등만 달아두고 왔다고 한다.


"사돈 곁이 '절'이지요. 오늘 절에 가서 기도드리는 것 보다 몸 불편한 사돈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는 게 진실한 공덕이고 부처님 마음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내가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지금처럼 할 겁니다. 사돈이 조금이라도 건강해질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지요."


<관련사진 있음>


장지승기자 jsj@newsis.com


[ 기사제공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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