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29.
쌍계암 묘법연화경(雙溪菴 妙法蓮華經)
명칭 : 쌍계암 묘법연화경
권수/책수 : 7권 7책
개간시기 : 1539년(중종 34년)
인경시기 : 18세기
지정일 : 2012. 5. 23.
지정종류 : 제주특별자치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1호
소재지 : 서귀포시 1100로 740-91(하원동)(쌍계암)
쌍계암에 소장되어 있는 ‘쌍계암 묘법연화경’은
세종 16년(1434)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를 저본으로 하여
중종 34년(1539)에 경상남도 함양 덕유산 영각사(靈覺寺)에서
중각(重刻)된 목판(木版)을 이용해
18세기 전후에 인출(印出)된 불경이다.
갑인자(甲寅字)는
조선 태종 3년(1403) 계미자(癸未字)ㆍ세종 2년(1420) 경자자(庚子字)에 이어
세종 16년(1434) 갑인년에 구리를 주성분으로 주조된 금속활자이다.
갑인자는 세종 대의 고도의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주조된,
한국 활자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활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 활자는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 활자로 여섯 차례 이상 보완하여 주조하였기 때문에
맨 처음 주조된 갑인자를 ‘초주갑인자’라 부른다.
‘쌍계암 묘법연화경’은 개간된 조선시대 초주갑인자본 계통의 목판본을 연구하는
귀중한 서지학적 학술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세종은 왕비를 일찍 여의고 동궁인 문종마저 병세가 악화되자,
불경을 간행하여 부처님의 힘을 빌려 동궁의 병을 치유하고자 하였다.
이에 세종 32년(1450)에 '화엄경'을 목판으로 인출(印出)하고,
'법화경'은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33부를 간행하게 하였다.
이때 사용된 활자가 ‘초주갑인자’이다.
그 후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는
이 '초주갑인자본 묘법연화경'을 저본으로 30여 차례 중각하였다.
‘쌍계암 소장본’은 7권 7책의 완본으로
판각은 ‘가정십팔년기해정월일경상도안음지덕유산영각사중각
(嘉靖十八年己亥正月日慶尙道安陰地德宥山靈覺寺重刻)’이라 되어 있어
중종 34년(1539)에 개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7책 모두 표지 없이 한지로 만든 노끈으로
책의 몸통을 2침(針)의 끈매기로 마무리한 모습이다.
글자체는 갑인자체(甲寅字體)의 특징을 그대로 보이고 있고,
형태는 둘레가 굵은 검은 선이 둘러진 사주단변(四周單邊)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가로 16.2㎝×세로 24.9㎝이며, 계선(界線)은 없으며,
반엽(半葉)은 10행으로 한 행의 글자 수는 18자이다.
'묘법연화경'은 '화엄경'과 함께 대승불교를 상징하는 경전으로,
부처가 세상에 나온 본뜻을 설하고 있다. 줄여서 '법화경'이라고도 한다.
한편 1539년 영각사 판본 '묘법연화경'은 동국대학교에 완본 1부가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과 사찰과 개인 등이 영본(零本) 일부를 소장하고 있다.
본 경전의 전래 유통 과정은,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 제15회로 졸업한 정효(상민) 시자가
당시 조계종 종정을 지내시고 해인총림 방장을 역임하신
尹古岩 대종사로부터 승가대학 졸업 후 이수하는
隨意科 과정에 필요한 묘법연화경을 전수받아 보존하여 오다가
문화재로 지정 신청하면서 공개되었다.
이 책의 가치는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이라는 점,
둘째, 완본으로 전한다는 점,
셋째, 보존상태가 대체로 온전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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