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계명사

相民 윤봉택 2007. 4. 21. 23:15

2007. 07. 11.

 

 2007. 4. 11일부터 21일 까지 11일 동안 조계종 전국 선원장이시며 수좌 대표이신

혜국 큰스님을 모신 불제자님 120여 분의 스님 보살님 거사님들과 같이

중국 선종사찰을 순례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날 11일 12시 50분 인천공항에서 남경으로 향한 일행은, 오후 15시에 남경공항에 도착하여

16시 부터 남경시에 있는 계명사를 찾아 혜국 큰스님의 주제로 대웅전에서 예불을 모셨다.

 

 계명사鷄鳴寺는 중국 남경시의 남경성에 있다. 남경성은 명나라가 도읍으로 정하여

축조(1356년~1441년)하였으며, 성 길이 33.76km, 성 높이 14~21m나 되는 성이다.

 

 계명사는 서기 300년 경인 서진 때 처음으로 절이 지어졌고, 양무제가 서기 527년 동태사로

건립하였으며, 1387년 개축하면서 계명사로 절의 명칭을 바꾸었다.

 

 바로 이 계명사가 중국에 선종의 첫 씨앗을 심으면서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부터 28대가 되시는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선종을 펴시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와 양무제와 법담을 나눈 유서 깊은 절로서, 중국은 물론이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에 이르기 까지 참선 수행법을 처음으로 전하여 준 수행도량의 성지이다.

 

 이번 선종 사찰 순례는 2조 혜가대사와 6조 혜능대사의 수행처를 제외한 초조 달마대사,

3종 승찬대사, 4조 도신대사, 5조 홍인대사를 비롯한 불조의 혜명을 이어오신

선지식의 수행처소를 살펴보는 것으로서,

 

 당시 이 절에서 달마대사를 친견한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짐이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을 번역했으며 수 많은 승려를 공양하여 왔는데 그 공덕이 어떠한가.”라고 하자,

이에 대사는 “하나도 없습니다.(소무공덕 所無功德)”라고 하였다.

 

화가 난 양무제는 “그렇게 말하는 내 앞에 선 그대는 누구냐.”고 하자 대사는 “그런 것은

나는 모릅니다.”라고 한 후, 양무제와 인연이 없음을 알고 홀연히 양자강을 건너

숭산 소림굴로 들어가 9년 동안 면벽을 한 후, 2조 혜가대사에게 법을 전하였다.

 

 현재 이 절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면서 강원을 개설하여 승려를 양성하고 있다.

 

 

20242

 

 

남경공항 입구입니다.

 

 

공항 입구에 우리나라기업의 선전탑이 있었습니다. 

 

 

 

계명사입니다.

 

주지 스님께서 혜국큰스님의 일행을 맞이 하시려

현수막을 걸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혜국큰스님과 통역원,

우측 황색 법의가 계명사 주지 비구니 스님이십니다. 

 

 

주지스님 안내로 계명사로 들어서는데

저는 보이질 않습니다.

 

 

고계명사, 당초의 계명사라는 의미입니다.

 

 

중국에서는 정부에서 직접 사찰을 관리합니다.

 

입장료 징수도 시정부에서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그랬습니다.

하루 빨리 스님들께서 직접 사찰을 관리할 날이 오시길 축원하였습니다.

 

이는 문화혁명 때 부터 그랬다고 합니다.

중국의 주요 사찰 대부분 이 때에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사찰은 문화혁명 이후

중수되거나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 주종을 이룹니다.

 

 

 

계명사에서 수도하시는 스님들이 창작하신

작품을 전시하여 놓은 서화원입니다.

 

 

주지스님의 요청으로 혜국 큰스님께서 서명을 하고 계십니다.

 

 

무념위종 無念爲宗입니다.

 

 

입구 벽면에 조각하여 놓은 호신상입니다. 

 

 

달마대사 상을 조각하여 놓았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계명사는 서진 때(300년) 처음 불도량으로 지어진 이래 서기 527년 양무제가 지었고 그 이후 계속 중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기록에는 서기 532년에 남경( 계명사)에서 달마대사가 양무제 초청으로

양무제와 처음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천왕전입니다.

입구에는 포대화상을, 좌우에는 4대천왕을,

후면에는 동진보살상을 모셔 가람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전각 내부 가구입니다.

우리나라 건축 양식과 좀 다릅니다.

 

 

 

천왕전 내부 입구의 포대화상입니다.

 

중국에서 포대화상(布袋和尙,-916) 은 실존 인물입니다만, 중국에서는 미륵보살 화신으로 추앙받는 다복의 상징입니다.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하나의 바룻대를 들어 중생의 집을 찾아

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홀로 두타행으로 만리를 거닌다네

靑目覩人小(청목도인소)-내 알아 보는 이 진즉 없으나,

問路白雲頭(문로백운두)-구름인 듯 바람인 듯 길에서 길을 묻는다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미륵이여 진정 미륵이었고나

分身千百億(분신천백억)-천 백 억의 화신되어

時時示市人(시시시시인)-중생에게 보이고 또 보여 주어도

市人自不識(시인자불식)-저 사람들은 나를 알지 못한다네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나에게는 오래전부터 한 걸망(포대)이 있었으니

虛空無掛碍(허공무과애)-허공에 펼쳐도 걸림이 없고,

展開遍宇宙(전개편우주)-열어 펼치면 우주를 두루 감싸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가고 옴에 걸림이 없나니

 

 

천왕문 내부의 사천왕 상입니다.

 

 

 

 

 

 

 

동불전으로 가는 계단 

 

 

회랑 좌우 건물 가구

 

 

대비전과

 

 

약사불탑

 

 

좌우에는 고루와 종루가 있는데,

우측에 있는 종루입니다.

 

 

죄측에 있는 고루입니다.

 

 

가까이로

건물 건너

남경시가지가 훤하게 보입니다.

 

 

주지스님이 혜국 큰스님께

달마대사와 양무제가 법담하는 것을 형상화하여 석각한 것을

탁본하여 기증하셨습니다. 

 

 

통불전의 처마입니다.

건물 가구는 하앙식과 절충형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 중창된 것입니다.

 

 

 

비로보전 내부입니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셨습니다.

 

 

 

 

 

혜국 큰스님 일행이 불전에서 예배를 모시고 있습니다.

 

 

계명사 건너로 양무제가 쌓은 남경성 석축이 보입니다.

 

 

통불전 내부의 장엄물입니다.

모두 신도님들이 자수하여 놓은  장엄물 들입니다.

 

 

법당 내부의 가구입니다.

 

 

예불 후, 간단하게 달마대사의 선풍에 대하여 혜국 큰스님의 설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불이십니다.

 

 

후면에는 관음보살의 33화신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양무제와 달마대사의 상견례입니다.

 

 

남경성 내벽입니다.

 

 

성 건너로 양자강의 지류가 흘러 가고 있습니다.

 

 

성 석축 위면의 통로와 타구 등입니다.

 

 

뒤에 약사불탑 보이고

이 탑은, 높이 45m의 8각7층 전탑으로서

1990년에 중수하였고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개보수하였습니다.

 

 

절반은 다 어디로 가셨나,

비로보전을 뒤로 하여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청양현에 있는 숙소 정전에서

스님을 모셨습니다.

 

3번 버스의 일행 중 몇 분이십니다.

 

 

숙소의 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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