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8. 03.
구릉거리
무속의 한 제의입니다.
이 자료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무당내력에 있는 내용입니다.
19세기 경에 채색도록으로서
한양 무당들의 행하는 각종 제의에 대하여
기록하여 놓은 자료집으로
작은책(규격 가로 17cm, 세로 21cm),
큰책(규격 가로 19.5cm, 세로 28cm)
2종이며, 전체 14면 이나,
복식과 상차림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같습니다.
이 두가지의 자료 저자는 난곡(蘭谷)이나 제작시기는 미상입니다.
자료에 나타나는 각종 무당 복식에 의하여
년대 추정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또한 과제입니다.
여기에서는 각 굿거리 별로
앞의 사진이 작은 책,
뒤의 사진이 큰책 그림입니다.
(작은 책) 구릉
구릉거리입니다.
- 이 구릉거리는
명나라 때에는 해로를 통하여 왕래하였기 때문에 사신이 출발할 때는
모화현 밖에 있는 사신성황에게 무녀가 무사안전 귀국을 기원하는 굿거리입니다.
이로 인하여 제의 시에는 의례로 행하였습니다.
오른 손에는,
백지에 금전을 싸서 먼 항로 중에 떠도는 중음신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을 먹이는 데 쓰였던. 봉지를 들고 있습니다.
- 이와 비슷한 예로,
지금도 제주도 좀녀들은 특정한 날 또는 꿈길이 좋지 안했을 경우에는
백지에 쌀과 동전을 싸서 입수하기 전에 바다에 드리는 데
이를 '지(紙)들인다.'라고 합니다. 이는 망자의 혼에게 지를 드림으로서
물길을 잘 열어 달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큰 책) 구릉
기재된 설명은 앞의 내용과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국가기관에는 국무(國巫)가 있었으며,
국무들은 왕궁에 출입하면서 왕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국무들은 국무당(國巫堂)에서 굿을 하였으며,
연산군 때에는 도무(都巫)라고 하였으며,
여자 무당을 도무녀(都巫女)라 하였고, 당시에는 성숙청(成宿廳) 소속이었습니다.
때때로 이들은 활인원에서 대민 의료 구휼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