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귀일歸一

相民 윤봉택 2012. 2. 7. 11:11

2012. 02. 06.

        귀 일(歸一)

 

 

임진년을 맞으며 내 나이 쉰일곱이 되었다.

아버님은 다소 늦은 쉰다섯에 나를 낳으셨는데,

 그런 나는 시방 손자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지천명을 넘기고도 일곱 해 즈음,

천명을 넘기면서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지난해 여름 41일 단식을 하면서 새삼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천명을 넘겼으니 이제 나머지의 삶은 나 아닌 나를 위한 삶으로의 귀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내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자식들은 저마다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손위 누이도, 손아래 동생 둘이도 나름대로 생활하고 있으니

참으로 내게는 기쁨이요 행복이 아닐 수가 없다.

 

이미 십오 여 년 전부터 아내와 아이들에게

입버릇처럼 공직 마감 후에는 나의 삶으로 귀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였고,

요즘에 와서는 식구들도 나의 뜻에 이해하여

남은 여정에 힘을 보태 주고 있음이 너무나 고맙다.

 

어제는 위리안치된 섬을 만나 새벽까지 얘기를 주고받았다.

삶에 대한 관조와 사유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진면목인가에

대해 마음을 나누며 자연으로의 귀일을 그려보았다.

 

삶이란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아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니 삶의 길 또한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누구나 함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혼올레의 기쁨인 것이다.

 

이제 천명을 넘겨 일곱 해를 맞았으니,

남은 삶은 남에게 폐를 남기지 않고, 어렵게 하지 않으며,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거듭해 본다.

 

여태 내 마음의 그림자도 살피지 못하였는 데,

어찌 더 이상 문자(文字)에 얽매어

실체 없는 주석을 쫓아 다닐것인가.

 

요즘 인생은 80이 정년이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80이 아니라,

80까지의 삶의 과정이라고 본다.

 

이제 더 이상 그 무엇을 추구하여

부귀와 명예를 얻는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거리인가.

가족들이 건강하고 내 벗들과 이웃이 평안 하는 것으로 자족함도

오히려 욕심일진데…….

시방은 내 자존심을 남에게 내보이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진다.

 

 

 이제는 삶 전의 그림자를 회광반조(廻光反照)하면서

 바람처럼 물처럼 쌍계(雙溪)에 기대어

 석문(石門) 밖에 서성거리는

 내 마음의 각연(覺緣)을 찾으리니.

 

 봄이 오면 우영 밭에 씨를 뿌려 온 여름 땀 흘려 넘겨 가꾸며

 가을에는 두 팔 벌려 수확하여

 겨울에는 내 좋은 벗을 맞아 지신밟기 함도 좋으리라.

 

 하면 누구는 현실 도피라 하고,

 또 하면 누구는 벌써 그럴 거냐고 하지만,

 어찌 세상이 내 없음을 고민할 것인가.

 

 내가 내려섬으로 하여 세상은 더욱 더 빛이 나고,

 내가 떠남으로 하여 지혜로운 이들이 있어

 그 길을 열어갈 것인데,

 더 이상 예서 무얼 주저하여

 남은 여정을 욕되게 할 것인가.

         

                                                  ------ (2012. 임진 정월 대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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