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신흥사

相民 윤봉택 2024. 7. 18. 13:36

2007. 02. 10.

 

설악산 신흥사입니다.

 

지난 2월 10일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에 있는 설악산 신흥사를 찾았습니다.

 

신흥사에 가면

 

조계종 종정을 3대나 재임하신

우리 노사님이신

고암대종사님의 사적비와 사리탑이 모셔저 있어

더 그리운 산사입니다.

 

오늘 까지 나들이 하면

다섯 번 째가 됩니다만

 

갈 때 마다

노사님 영전 뜨락에 서면

더 아스라이 아늑하기만 합니다.

 

 

18359

 

 

 

설악의 상징 반달곰입니다.

 

 

 

 

지난 밤 나려 쌓인 백설이

설악의 능선을 다독이고

있는지

 

골 바람 불어 서러운 날,

 

 

 

설악의 산문인

 

신흥사의 일주문이

다시 열리고,

 

 

중앙에는

청용과 황용이

트림을 하며

설악을 지켜 섰는데,

 

 

일주 새이에

판재와 부재를 두어

안정감을 주고 있나 봅니다.

 

 

지난 '97년,

청동 석가여래의 통일대불은

완성 되었다 하는데,

 

북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머흐러보입니다.

 

 

 

 

권금성

자락에 기대인

서방정토의

안락암

 

 

 

권금성 안락암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일붕스님

자취.

 

 

대웅전 내 모셔진

칠성탱화의 우측 후면에

 

문어머리 모양을 한

 

수노인(노인성)만이

 

사바의 수를 헤아리고 있는 듯,

 

--

수노인이 문어 머리모양을 한 까닭은

남극에서

잠시

이승으로 나들이 오셨을 때

 

문어처럼

메주처럼

괴상망측하게 생긴

한 노인이 있어

 

'당신 뉘시오.'하고

여쭈었더니

 

'내가 남극노인성이라오.'했다하여

그 때부터 노인성 모습을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했다하나 .....

 

칠성탱에 수노인인 반듯이 포함되는 사연은

수노인이 수명과 무병장수를 담당하기 때문이라지요. 

 

 

누가 홑씨를 날려

이 바위에 두었는가.

 

무학송 연륜만

설악의 아픔을 안다고 하네.

 

 

아직도 권금에는

기다림의 흔적이 남아 있어 

 

바람의 방향으로

머리를 풀어내는 잔송의 가지들

 

 

천년바위를 뚫고 선

낙낙장송의 아늑함이여

 

 

그대

권금에 가거든

 

 

산장의 나그네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도 용서함을

얻으리니

 

 

나그네을 기다리는 다심의 호연엔 

 

 

깊은 시름 나눠 온기를 덜어 내는데

 

 

가고 옴에 대한 흔적도

이곳에서는

오히려 퇴색하는걸

 

 

불빛 어려운 세상의 등불로

 

 

더러는

산정의 아픔으로 기대어 설

 

 

 

또 다른 삶의 무게로 

 

 

그대가 아니면

뉘가 있어 주인이겠는가

 

 

 

 

삶의 흔적,

 

빛 낡은

 

여백에

다시 기대이는 나그네여 

 

이제는

다시 하산 하시게나.

 

 

신흥사 가는 길

 

잠시 쉬

함도 좋지 않겠는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돌아서려는

마음 자락이여 

 

 

 

누구나

사천왕문 앞에 와서는

 

마음의 문을 내려 놓는다 하지 

 

 

 

이쯤에서 사바의 번뇌를

범종에 달아 놓음도 가하련마는

 

 

아직도 설악은

호올로

저곳에 머물러 있어

 

이름을 다

부르지 못하고 있다하네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보제루.

 

누하로는 중심생을 받아 들이고

 

누상에는 책판을 모셔

삼보의 아름다운 불연을 빚고 있는데,

 

....

 

이쯤에서 다시 보제루

아래로 나려

내 삶의 옹이를 지펴나 볼꺼나

 

 

 

 

 

누하주의 주초석은 자연석으로 그

극치를 더하는데

 

 

누하의

갠지스를 건너는 중생심이여

 

 

돌아보면

사천왕문을 나서는 이도.

 

 

다시 돌아보면

극락정토의 금당을 안기려는

법열

 

 

산사의 아침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한데,

 

 

이산과 저산의

경계는 여전하기만 하고나

 

 

보제루로 이어진 목교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적묵당. 

 

 

신흥사의 금당인 극락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계의 팔작지붕으로

청기와

 

 

스님들께서

수행하시는 공간

-요사-

 

 

 

외3출목 겹처마로서 매우 웅대합니다.

 

 

 

금당 정면 문살 문양입니다.

 

 

문살 문양에 기대인

삶전의 아픔과

 

 

지나 건너 갈 또 다른 무게여

 

 

이젠

문고리에 기대인 그림자조차도

방하착해야만 하는데,

 

 

극락정토에 피어나는

온갖 방초인듯

 

 

문살 건너에 뉘인 고뇌의

미진들

 

 

더러는 저처럼

 

 

연화가 되어 가는 것을.

 

 

금당 내에는

극락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불과

좌우에는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습니다. 

 

 

금당 내

주불을 모신 내부를 장엄하기 위해

닫집을 세웠습니다.

 

 

금당 내

외 3출목

내 8출목의 내부 가구입니다.

 

 

금당 정면의 어칸 좌우의 기둥 포 머리에

귀면을 그려 넣었습니다.

 

금당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정면 계단 소맷돌 측면에도 귀면을 세겨 놓았습니다. 

 

아마 해태의 모습과 같이한 것으로 보아서는

화마를 방지하려는 의미가 가미된 듯 합니다.

 

 

금당 정면 좌측의 황귀면

 

 

금당 정면 현판 우측의 청귀면

 

 

소맷돌에 귀면과 해태 모양의 석조상입니다.

 

 

귀면 우측에는 태극문양을 하였습니다.

 

 

금당 전면의 석계 양각문양과 정전의 괘불대

 

 

주련의 글씨가 구름에 날아갈 듯 합니다.

----

아미타 부처님(옥호금색)이 모든 세계를 비추이고 계시니

만약 어떤 사람이 일념으로 아미타부처님 명호를 부른다면

 

 

 

극락정토에 영가를 보내는 마지막 장소

소지하는 곳입니다.

 

 

금당 좌측 우에 모셔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삼성각입니다.

 

정면 좌우로

우리의 전통 양식에 맞게 석축을 잘 해 놓았습니다.

 

 

가지런한 석축과 계단

그 아래에 놓여진

헌식대 

 

 

 

삼성각 좌측면

벽체는 판재를 두었습니다.

 

 

삼성각에서 금당 후면의 풍경입니다.

 

 

삼성각 내에 모셔진 칠성탱화입니다.

 

안락암의 칠성탱에는

문어머리 모양을 한

수노인이 우측에 모셔저 있는데

이 탱화에는

수노인이 좌측에 모셔저 있습니다.

 

수노인은 노인성이라고 합니다.

이 노인성은 일년에 두번

중국에서는 형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아랫동네 존자암과 서귀진에서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이 노성을 보면 수명장수를 합니다.

나라에는 풍년이 오고요

불로장생의 상징입니다 .....

 

 

금당에서 바라 본 보제루입니다.

 

정전에는 석등과 괘불대가 놓여 있습니다.

 

 

명부전입니다.

 

 

명부전과 금당입니다.

 

 

명부전 현판입니다.

현판이 청색인 것은

명부이기 때문입니다.

 

 

명부전 내에 모셔진

지장보살입니다.

 

불보살님 중에 유일하게

지장보살님만 삭발을 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이 지옥고통에서 벗어날 때 까지

성불을 뒤로 미루시겠다시면서 대원력을 세우시고

지옥 문전에서 중생의 고통을 삭혀주시는 보살님이십니다.

 

 

명부전에 모셔진 진영입니다.

 

스님들의 영정을 진영이라 합니다.

 

 

우리 노사님이십니다.

 

조계종 종정을 3대나 지내신 큰스님이십니다.

 

자비보살님으로 더 알려지신 윤고암 대종사이십니다.

 

 

진영각에서 바라본 설악의 풍경입니다.

 

 

적묵당 후원입니다.

 

 

적묵당 후원 건너에 모셔진

고암대종사의 탑비와 사리탑(우측)입니다.

 

 

좌측이 노사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

우측이 대종사의 탑비입니다.

 

고암대종사의 행장은

 

노사님의 문도이시자

직지사 조실이신 녹원스님이 기록하고

노사님의 손상좌이신 정민스님의 글씨로

세겨 놓았습니다. 

 

 

노사님의 행장이 기록된 탑비입니다.

 

 

노사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부도입니다.

 

 

고암당 상언대종사 사리를 모셔 놓은 부도

 

 

대종사님의 본향은 파평이시고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십니다.

 

 

 세수 90세

 법랍 71세

 9월 15일 입적하셨습니다.

 

 

노사님의 상좌와 그 후예들입니다. 

 

 

 

 

 

 

 

사천왕문 이르기 전

스님들의 요사를 경계하는 담장입니다.

 

 

보제루 왼쪽

 

종각 좌측에 있는

 

요사 아래의

정전입니다.

 

석축 오른쪽 변에는 우리 전통양식으로 석축을 잘 하셨는데

 

헌데,

이를 우찌할꺼나

 

그로 부터 좌측 다한 곳 까지는

일본양식인

견치석 쌓기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아마

이는 석축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 석공이

우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다음 보수할 때에는

우리 석축양식으로 복원될 것이라 믿습니다.

 

 

 

돌아오는

 

권금성 남으로 벋어 나리는

산빛 줄기의 설맥들

 

 

 

두 연인처럼

 

소나무의 크기가

 

문득

낮아지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1992년 어느 독지가가

설악의 대산신에게 제를 올리려

제단을 마렸했나 봅니다.

 

 

부도전입니다.

 

스님들께서도

 

적멸에 드시면

이러한 모습으로 회향을 합니다.

 

 

시대에 따라

 

사세에 따라

 

가풍에 따라

 

 

그 모습들이 다릅니다.

 

 

님들의 부도는

 

적멸 후에

 

어떤 모습으로

 

참 나를 비춰 섰을까요

 

 

 

돌아서면

 

문득

모두가 적멸이 되는 것을

 

무엇을 망서려

앞만 보며 여 까지 왔는지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

 

 

 

 

신흥사(펌)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이 절의 효시는 652년(진덕여왕 6)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향성사(香城寺)이다.

 

698년 화재로 소실되자 701년 의상(義湘)이 능인암(能仁庵) 자리에 향성사를 중건하고 선정사(禪定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1642년 화재로 다시 소실되자 1644년 혜원(惠元)·운서(雲瑞)·연옥(連玉)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므로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신흥사라고 했다.

 

1647년에는 대웅전을, 1661년에는 해장전(海藏殿)을, 1715년에는 설선당(說禪堂)을, 1737년에는 명부전을, 1801년에는 용선전(龍船殿)을, 1813년에는 불이문(不二門)을 세웠다.

 

1858년에는 벽하(碧河)가 구월산 패엽사의 16나한을 옮겨 해장전에 봉안한 뒤 응진전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6·25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국가의 지원과 신도들의 시주로 복구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시왕전·불이문·설선당 등이 있다. 이밖에 향성사지3층석탑(보물 제443호), 〈은중경언해 恩重經諺解〉, 20여 기의 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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