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종묘제례

相民 윤봉택 2024. 7. 19. 12:34

2007. 05. 06.

 

종묘제례입니다.

종묘제례에 참석하려고 새벽부터 설쳤습니다.

 

오래 전, 저에게 카메라가 없던 시절

일행들과 서울 등지로 여행 가서 종묘를 찾아 가던 날,

그 제례를 보면서 눈으로만 담고 왔던 스잔한 기억을 안고

 

오늘 다시 종묘제례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제주도에는 비가 하루 넘게 왔는데

서울은 종묘제례 때문인지 쾌청이었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종묘에서 제례를 지내게 된 동기는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멸망한 후, 이씨조선이 건국이 되었고

태조 이성계는 종묘를 모시기 위해 1394년 정전을 지었으며

세종은 1421년  그 옆에 영녕전을 지어 제례를 올리면서 부터입니다.

 

1592년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불어 탔으나, 1608년 재건되고 그 후 보수 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정전은 국가지정문화재 국보227호이고,

영녕전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821호이며,

 

종묘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125호이고,

종묘제례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 이며,

종묘제례악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입니다.

 

종묘제례는 600년 넘게 지속되어 온 제례로서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유네스코가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종묘에 대한 건축물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넣기로 하고

오늘은 제례에 대하여만 다루겠습니다.

 

종묘제례는 크게 어가행렬과 제례봉행입니다.

제례를 지내기 위해 임금이 궁궐을 나서는 어가 행렬 후

제례가 이어집니다.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봉행합니다.

 

오전 9시 30분 부터 11시 30분 까지 영녕전에서 제례를 지내고 난 후,

오전 11시 30분 부터 12시 30분 까지 어가 행렬이 이어지고,

오후 1시 부터 3시 까지는 정전에서 제례를 지냅니다. 

 

제례는 크게 세가지로 나눕니다.

첫 째, 영신迎神입니다. 신을 맞이하는 절차로서

        취위, 진청행사, 신관례가 있습니다.,

 

두번 째, 오신娛神입니다. 신을 맞이한 후, 신을 즐겁게 하는 절차로서

       천조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가 있습니다.

 

세번 째, 송신送神입니다. 신을 다시 본래 머물렀던 곳으로 보내드리는 절차로서

       음복례, 철변두, 송신례, 망료례가 있습니다.

 

 

모든 제례의 공통 사항은,

다 신을 맞이하고, 기쁘게 한 후, 보내드리는 것으로,

집안에서 제를 지내던, 사찰에서 재를 지내던, 무당이 굿을 하던 다 똑 같습니다.

 

종묘는 글자 그대로 왕실의 선조를 모신 사당입니다.

 

우리가 흔히 종묘사직이라고 함께 말을합니다만,

종묘와 사직은 엄연하게 구분되며, 그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이러한 제례는 일제 강점기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1969년부터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종묘제례보존회가 결성되면서

종묘제례와 사직대제가 전승 보존되고 있으며

 

사직대제는 1988년 부터 같은 종약원에 의해 개천절에 사직단에서 재현 봉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날에 가서 참관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직단에 대한 제례는 국가기관에서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물론 종약원에서 기관의 지원을 받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직에 대한 제례는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직에는 국사신國社神과 국직신國稷神을 모십니다.

   국사신의 사社는 국토를 총괄하는 신이며, 신을 모신 곳을 사단이라 하고, 직단의 오른 편에

   국직신의 직稷은 오곡백과를 관장하는 신이며 신을 모신 곳을 직단이라 하고 사단의 왼쪽에 단을 설치합니다.

   

이러한 사직단에 대한 제례는 삼국 이전 부터 행하여 왔습니다.

사찰에서는

영실 존자암에서 국성재國聖齋를 지내는데

 

그것은 사직에 대한 제례가 국태민안과 우순풍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고찰에 가면

천왕문을 전후하여 국사신(국사대신)을 모신 국사당局司堂이 있는데

이는 사찰을 지키는 가람신을 의미합니다.

 

 

 

20709

 

 

 

 

외삼문 입구입니다.

참으로 많은 시민들이 참관하러 오셨습니다.

 

 

외삼문 지나 정전과 영녕전으로 이어진 신도神道

신이 이 길을 따라오게 되고,

또한 임금이 이 길을 지나 영녕전과 정전으로 들게 됩니다.

 

전국에서 오신 분들이 신도를 지켜 섰습니다.

 

 

 

오늘 이 종묘제례를 지냄으로써

복 받으실 분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마땅히 이 분이십니다.

 

시간 날 때 마다 종묘공원에 오셔서

어르신들의 머리를 깍아 드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사진 담으려는 욕심 때문에 이 분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분에게 소중한 것은 날씨와 어르신이셨습니다.

 

그 어느 단체들처럼 화려한 입간판이나 현수막이 없어도

그저 묵묵하게 어르신들의 머리를 보살펴 주고 계십니다.

 

복 마니 받으십시오

 

 

 

영녕전의 삼문입니다.

이 곳의 신도는 단촐합니다. 

 

영녕전에서 제례는 오전 9시 30분 부터 11시 30분까지 2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영녕전에서의 제례 모습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입니다. 

   

 

제례 때 제관들이 머리에 쓰는 양관梁冠입니다.

뒤에는 천하태평이라 쓰여저 있습니다.

 

관모에 줄 4개가 보이는데, 이는 당하관인 경우가 그렇고,

당상관은 줄이 7개(칠량七梁)가 됩니다.

 

 

 

제관이 쓴 양관을 보면

오른쪽 제관은 줄이 7개 당상관 임을 알 수가 있고

왼쪽 제관은 줄이 4개로서 당하관 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상과 당하의 각대(허리띠)와 신발, 그리고 예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자세히 보시면,

 

 

제관들이 시립해 있고

 

 

차례로 제관들이 제를 지내기에 앞서,

정해진 자리로 나가고 있는데,

이를 취위就位라 합니다.

 

 

이 분이 주상전하입니다.

 

어숙실(재궁)에서 목욕재계하신 후,

영녕전에서 제를 지내기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뒤에 분은 살짝 피해 주시면 아주 좋습니다.

 

 

어숙실의 신도를 따라 영녕전으로 납시고 계신 상감마마

신발(예화)이 신하의 것과는 마니 다릅니다.

 

 

 영녕전 삼문을 향해 납시는 상감마마

 

 

영녕전 우북측에서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상감마마

 

 

참 인자하신 주상입니다.

 

 

주상만 홀로 남겨 두신 채

모두가 제를 지내기 위해

제단 아래에서 관세를 한 후, 제 자리로 나가고 있습니다.

 

 

 

 

영녕전은 별묘입니다.

 

세종 때에 5묘제의 관습에 따라 정전에서 나와야 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것인데,

16실이 있으며,

 

태조 이성계의 선조 4실(목조, 익조, 도조, 환조)을 중앙에

 

서협실에는 정종, 문종, 단종, 덕종, 예종, 인종을

 

동협실에는 명종, 원종, 경종, 진종, 장조의황제, 영왕 등

 

왕의 신주 16위, 왕비 신주 18위 등 총 34위를 감실에 모셨습니다. 

 

 

홀기에 따라 제를 봉행하기 위해

영녕전 회랑 제상에 시립한 제관들

 

 

감실에서도 제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 연주

 

제례악 중 보태평 11곡과 정대업 11곡은 1446년 세종대왕이 직접 지으신 것입니다.

 

서양 음악에서

제례악이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한다면,

종묘제례악은 이 보다 200여년이 앞선 것입니다. 

 

 

각 실별로 제관이 정돈할 수 있도록 푯말을 두었습니다.

 

 

팔일무八佾舞입니다.

 

이는 전후 좌우로 늘어선 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덟줄 씩 8명이 늘어서 64명이 되는데

 

조선시대에는 여섯줄 씩 6명이 늘어서 36명이 육일무를 추었는데,  

대한제국 선포 이후, 팔일무로 변형되었습니다.

 

가락에 따라 각각 드는 기구가 다릅니다.

 

 

보태평 가락에 맞춰

왼손에는 약을 들고, 오른손에는 정적을 들어,

부드럽게 문인적인 춤사위를 하고 있습니다.

 

 

 

 

 

아래 놓여진 것은, 목검과 목창입니다.

 

이것을 들고서는 정대업 가락에 맞춰 강하고 힘차게 무인적인 춤사위를 합니다.

 

이번에 정대업 가락은 담지 못했습니다.

동서로 마음대로 왔다 갔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복례 중, 등가작옹안지악

 

우러러 제기에 가득 담으니,

목기와 죽기에 넘치도다.

음식은 향기로우니,

조상께서 오신 것이 완연하도다.

나의 예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상을 물린다고 경건하게 아뢰네.

 

 

 

영녕전에서의 팔일무

 

 

종묘제례에는

편종,편경,방향 등 타악기와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현악기로 화음을 이루고,

이 외에 장고, 태평소, 절고 등이 함께 어우러저 중후한 화음을 연출합니다.

 

이것은

정전 어칸 기준 월대 좌현에 설치된 돌로 만들어진 편경입니다.

 

참 돌에서도 이렇게 좋은 소리가 울리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두드리면 소리가 울려 나오는데 ... 

 

 

정전 월대의 우현에 설치된

편종입니다. 

 

 

정전 마당에 놓여진 제실 표시로서

제관들이 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정전의 남신문입니다.

 

어가 행렬을 호위하고 온,

어가 호위부대인 현무대玄武隊가 신문을 귿게 지켜서서

 

잡인은 물론 참배객까지 통제하고 있습니다.

 

참배객은 동삼문을 통해서 출입하도록 하고 있어

모두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전의 남신문을 호위하고 있는 어가호위부대

현무대와 호위대장

 

 

정전의 제례

 

정전은 국보 제227호로서,  건평이 1,270㎡입니다.

 

 

국궁 배

 

 

주상께서 드디어 월대로 납시어

감실을 우러르시니 

 

  

 

동상이몽

 

 

동상이몽 ; 둘 

 

 

 

정전에는 19실이 있는데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문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으로

 

왕위 19위, 왕비 30위 등 총 49위를 모셨습니다.

 

 

 

 

아헌례`종헌례의 헌가작정대업지악

 

하늘이 우리 열성을 사랑하시어,

세세토록 성스러운 무공을 밝히셨도다.

비길 바 없는 공적을 드러내고자,

이에 노래하고 춤을 추어 올립니다.

 

 

공신당에 배향된

참 선비님들

 

 

 

공신당 전면

 

 

정전 회랑에서 시를 기다리는 제관들

 

 

 

 

제례 전 시를 기다리시는

주상전하

 

 

또, 이뭣고 ???

 

주상전하와 함께

잠시

시공을 뛰어 넘었습니다.

 

 

어가행렬을 기다리는

종로3가 표정

 

 

어가 행렬 중 하나

 

 

 

 

주상을 호위하는 현무대입니다.

 

 

서울여상 고적대도 어가행렬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가 행렬도 막을 내리고,

 

이어서 정전에서

제례가 시작되는

안내 방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종묘제례를 담고, 김포공항으로 가서는

 

오후에

제주섬으로 떠나는  제주항공에 기대어 내려오면서

 

비에 젖어 나리는

제주섬의 풍경을 지상 500m 고도에서 담아 보았습니다.

 

.............

 

그렇게

 

집에 오니

 

두살 난(?),

우리 장손자

성찬이가

할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손자가

벌써, 곤쏠(제주어로는 이)가 돋아나고

지레(키)도 이만큼 컷습니다.

 

손자를 보니

여간 지꺼지능게(기쁜게) 아닙니다.

 

우리 아버님과 어머님이 살아 계셨다면,

땅을 밟게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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