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06. 09.
송광사(松廣寺)입니다.
전라북도 전주시 인근에 있는,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번지 종남산 산자락 벚꽃 숲 끝에 있는
전형적인 평지형 가람입니다.
때문에 대웅전 기둥이 다른 곳 보다 조금 높은 게 특징입니다.
오늘은 1학기 강의가 다 마무리 되었기에 가벼운 맘으로
아침 일찍 찜방에서 나와 전주로 향하였습니다.
전주의 하늘 달빛 따라
종남산에 있는 송광사를 답사한 후,
산 계곡에 있는 식당에 가서
얼큰한 매기탕으로 점심한 후
고개 넘어 위봉사를 답사하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달음길로 광주로 내려와 날개에 의지하여 섬에 도착한 후, 우리 큰놈과 저녁을 하였습니다.
송광사는 종남산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867년 신라 경문왕(景文王) 7년에
보조 체징선사(804~880)가 세웠습니다.
도의선사께서 당에 가시어 마조도일의 문하인 서당 지장(735~814) 선사에게 선법을 처음 전해 받고
설악산 진전사에서 수행하시면서 제자인 염거화상에게 법을 전하였고,
염거화상은 다시 체징에게 전법하였는데, 송광사는 바로 이 체징선사에 의하여 창건된 선찰입니다.
염거화상에게 법을 전해 받은 체징은 그후 당에 가서 법을 구하였으나, 더 구할 법이 없음을 알고
그대로 귀국하여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을 개산하신 개산조이시기도 합니다.
송광사의 당시 이름은 백련사(白蓮寺)였는데,
규모가 얼마나 컷었는지 일주문 대웅전과의 거리가 3㎞나 떨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 임진왜란 때 황폐해 폐찰이 되었다가 1
622년(광해군 14)부터 승려 응호·운쟁·덕림·득정·홍신 등이 다시 세우기 시작해
14년 만인 1636년(인조 14) 완공되었다는 기록이 전주부 송광사 개창지비(사적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절 이름도 송광사로 바꾸어 불렀는데,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승보사찰 송광사와 한자(漢字)까지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 대웅전에는 소조삼불좌상(塑造三佛坐像/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
모셔저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아미타불좌상은 국가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리는 상으로 유명한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에도 땀을 흘렸다고 합니다.
송광사에는 특이한 문화재가 많은데,
대웅전(보물 1243),
종루(보물 1244),
소조사천왕상(塑造四天王像:보물 1255),
소조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274),
일주문(전북유형문화재 4),
사적비(전북유형문화재 5),
동종(銅鐘:전북유형문화재 138),
나한전(전북유형문화재 172),
금강문(전북유형문화재 173),
벽암당부도(碧巖堂浮屠:전북문화재자료 144) 등이 있습니다.
21888
송광사 산문인
일주문입니다.
이곳 송광사는
평지형 가람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의 삼문을
대웅전과 자오선상에 두어
일주문에서도
대웅전을 바라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종남산 송광사
다른 사찰의 일주문 보다
색다른 특이감이 있습니다.
년대는 조선 중기, 처음에는 대웅전과 3km이상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814년에 절 앞에 있는 조계교로 옮겼고,
1944년에는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습니다.
기둥을 받치는 초석은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인데
송광사 건물 대부분이 덤벙주초석입니다.
일주문 좌측 포입니다.
겹처마, 다포, 맛배지붕양식으로
밖으로는 출목이 3개 나와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평방 뻘목 아래로,
창방 뻘목 끝에는 용머리를 두어
장엄과 함께 화마를 방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일주문 기둥은 민흘림으로 하면서,
전체적인 균형 유지 때문에 외출목에 연화문의 보조 기둥을
두었습니다.
우측의 포입니다.
가운데 공포입니다.
맨 아래에는 용의 머리와 몸통을 좌우로 하여 뒤로는
다시 꼬리를 두면서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금강문입니다.
좌우에는 작은 연못을 두고
연을 놓았습니다.
저 그림자는 뉘시였는지.
일주문 주련 대신에
주련장승을 두어
주련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좌측에 있는 주련장승입니다.
입차문래 入此門來 ; 이 일주문으로 들어 오실 때에는
막존지해 莫存知解 ; 밖에서 터득한 모든 지혜는 일주문 밖에 다 놓아 두고 들어 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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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구는
불교 강원에서 배우는 사교의 처음인 『書狀』에 나옵니다.
대혜선사가 증시랑에게 회신을 보내면서
평전(平田)화상이 법문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평전화상 왈 平田和尙 曰 ; 평전화상이 말씀하사대
신광神光이 불매不昧하야 ; 신령스러운 광채(마음)가 혼매하지 아니하여
만고萬古에 휘유徽猷하니 ; 만고에 길이 벋는 휼륭한 법이니
입차문래 入此門來하면 ; 이 문(불교)에 들어 서면
막존지혜 莫存知解하라 ; 모름지기 지혜(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일주문 지나 우측에 있는
백련다원입니다.
나그네의 고르지 못한 발길 때문에
닿지를 못하고 스쳐 지나 갔습니다.
맨 아래로는 화방벽을 두어 그 우에
온갖 다미를 건조시키는 풍경이 곱습니다.
화방벽 우에 시렁을 만들어
선반처럼 유용함을 보이고
연목에 기대인 치자는 여름빛에 익어만 가는데
초여름 햇살로
선반 우에
밀려드는 아름다움이여
숫기와를 수 놓아 만든
작은 연지의
수련은
시간의 그림자에 무심하신 데
쓸데없는 나그네만
궁시렁 거려 서성이고 있나 봅니다.
금강문입니다.
금강역사가 사천왕보다 먼저 산문을 지켜서 있습니다.
다포, 팔작지붕 양식에 전면 3칸, 측면 2칸입니다.
다른 문과는 달리 현판이 단촐한게 돋보입니다.
앙서로 보아서는 일주문과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주간포, 외삼출목이라 매우 장엄합니다.
얼마 전 보수를 하였나 봅니다.
삿갓천장이라서 내부 구조물이 다 보입니다.
좌측의 금강역사와 백상을 탄 동자입니다.
우측의 금강역사와 사자를 탄 동자입니다.
금강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나타납니다.
궤불대입니다.
금강문과 사천왕문 사이 우측에 있었습니다만,
본래는 대웅전 앞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맞은 편 또 하나는
멀리 떠나가셨나 봅니다.
궤불은 큰 산중법회 때
큰 탱화(궤불)를 좌우 대에 높이 세워
그 앞에 야단을 만들어 법석할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천왕문 현판
사천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국신장을 말합니다.
좌측은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우측은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사천왕 중, 전각 내 좌측에 모셔진 사천왕상입니다.
좌측 비파를 타시는 상은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
우측에 보검을 지닌 상은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상
이 사천왕에 대한 것은 금광명경에 나와 있습니다.
사천왕문 지나 우측에 보면
극락전에 보입니다.
가지런 하게
기단을 평지에 쌓아 전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익공 없이 보머리만 내어
단촐하게 근래에 건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극락전 현판
극락전 내 상단입니다.
가운데는 극락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불,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우측에는 대세지보살님을 모셨습니다.
지장전입니다.
내부에는 10대왕을 모셨습니다.
가는 날에
49재가 있었나 봅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 외1출목 2익공, 맞배지붕으로
그리 멀지 않은 날에 건립한 듯 합니다.
어칸의 좌우 협칸 창방 우에
신장상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극락전과 지장전 사이에 세워놓은 소대燒臺입니다.
재를 지내고 난 다음에
사룰 것은 이곳에서 소각합니다.
스님 두분과 제자님들이 영혼을 천도하고 계시나 봅니다.
대웅전입니다.
화마 입은 것을 1622년에 덕림화상이 중창하였고 후에 개수하였습니다.
전면 5칸, 측면 3칸, 다포양식의 팔작지붕입니다.
기둥은 민흘림이고, 주초는 자연석 그대로 덤벙주초를 사용했습니다.
대웅전이 평지형이라 그런지
창방과 인방 사이 간격을 더 두었습니다.
외삼출목으로 앙서 끝이 조금은 날카롭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로 내려 올수록 점점 날카로워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추녀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할주를 두었습니다.
계단에는 좌우 소매 대신에 좌우에는 수상獸像을 두었습니다.
기단은 면석을 놓았는데 석질이 화강암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에서 채석한듯 하였습니다.
어칸 정면에 놓여진
이것은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주내용을 모르겠습니다.
연화좌로 봐서는 불상을 모신 듯도 한데
알려 주십시오 ??
전면 어칸 앞에 놓여진 계단 좌측 수상입니다.
우측의 수상입니다.
고기 모양인 듯합니다
알려 주십시오 ??
분명 무슨 의미가 있는 듯 한데
대웅전 현판입니다.
현판 글씨는 의창군義昌君(1589~1645)이 쓴 것입니다.
의창군은 선조의 여덟번째 서자였는데 글씨가 참 좋았다고 합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가운데 석가모니불,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입니다.
보물 1243호입니다.
조선조의 최고 기승이시면서 석가모니불의 화현으로 추앙 받으시는
진묵대사께서 1641년에 점안하신 불상입니다.
- 헌데 기록에는 진묵대사(1562~1633)께서는 이보다 앞서 72세에 입적하셨는데
워낙 기이한 기적을 많이 창출하신 까닭에 .....
진흙으로 빚은 것입니다. 동일한 소조삼불좌상이 경주 기림사에도 모셔저 있습니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담기 위해 종무소에서 특별 허락을 받아 촬영했습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입니다.
석가여래좌상은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습니다.
좌상의 규격은 높이 550㎝, 무릎 너비 405㎝, 무릎 높이 72㎝입니다.
우측에 모셔진 아미타불좌상입니다
오른손을 어깨 가까이 들어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에 놓아 엄지와 중지를 잡았습니다.
좌상의 규격은 높이 520㎝, 무릎 너비 356㎝, 무릎 높이 71㎝입니다.
이 마미타부처님은 나라에 무슨 큰 일이 있을 때에는
땀을 흘리신다고 합니다.
1977년 12월 IMF 때에서 땀을 많이 흘리셔서 보도된 적도 있었습니다.
좌측에 모셔진 약사여래좌상입니다.
약사여래좌상은 오른손을 어깨높이 가까이 들고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무릎에 놓아 약합(藥盒)을 들고 있습니다.
좌상의 규격은 높이 520㎝, 무릎 너비 363㎝·무릎 높이 71㎝로서 주불이신 석가세존보다 1자가 낮습니다.
아미타불 옆에 보셔진 전패인데, 원패願牌라고도 합니다.
세자저하 수천추입니다.
주상전하는 수만세인데,
사실은 세자가 더 오래 살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세자저하께서도 천세에 천세를 더하소서
왕비전하 수재년의 전패입니다.
주상전하 수만년 전패입니다.
주상전하 만년만 사시옵소서
세자저하는 천년에 천년을 더하시옵고 .....
대웅전 상단 건너 좌측,
중단에 해당하는 신중단입니다.
어머님 따라 산문에 참배오신
어린 불자님들이
정성껏 소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
저들의 소원이 온전하게 이룰 수 있도록 하여 주오소서.
우물반자 천장에 드리운
용문양과 비천상이 닫집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반자 아래이 각판에 그려 놓은 비천상과 내부 가구입니다.
이 비천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무악을 반주하는 가릉빈가들입니다.
비천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 소리 울려옴에 잠시 젖어 봅니다.
북입니다.
매달아 고정시켜서
궤불을 밖에 걸어 야단법석할 때
스님들이 울렸던 북입니다.
그 울리는 둥둥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대웅전 후면 기둥입니다.
보수할 때 부재를 일부 다듬었나 봅니다.
송광사 대웅전의 건축 양식은 좀 특이합니다.
전면에는 공포를 모두 앙서로 하였는데
후면에는 퇴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앙식 구조에서 볼 수 있는
평식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후면 어칸 전면에 석계를 놓은 것도 이채롭습니다.
평지형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오백아라한을 모신 나한전입니다.
오백아라한은 석가모니부처님을 항상 따라 다니면서 수행하신 상수常隨제자입니다.
상수제자에는
십대제자, 16아라한, 오백아라한, 1200아라한 등이 있었습니다.
나한전입니다.
평지에 막쌓기의 기단 3도리를 쌓고
그 우에 전면 3칸 측면 3칸의 9칸 전각을 지었습니다.
양식은, 팔작지붕, 주심포, 겹처마, 우물천장, 민흘림기둥, 덤벙주초, 외2출목입니다.
1656년에 각성화상이 중수하였고, 1934년 혜광스님이 보수하였습니다.
천진동자불입니다.
포대화상에서 기원합니다.
나한전 귀포와 겹처마선
외2출목입니다.
익공에는 연꽃 새김을 두었습니다.
외2출목
좌측면입니다.
후면 퇴칸입니다.
이 나한전 또한 대웅전과 같이
어칸에만 평식 공포를 두었습니다.
후면 어칸 평방 우에 호신상입니다.
아래에 있는 지장전의 호신상은 여기에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우측면입니다.
전면 좌측 귀포입니다.
측면 퇴칸 창방 위 백상화반입니다.
나한전 전면 퇴칸 창방 위에 있는
백상화반입니다.
나한전 내 상단에 모신
주불 석가세존이십니다.
좌우에는 미륵보살과 제화가라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아래에는 16아라한과
우에는 오백아라한을 모셨습니다.
오백아라한상
어느 한분도 같은 모습이 없습니다.
좌우에는 시중드는 동자상과
아라한을 호위하는 금강역사상이 조성되어
잡귀의 범접을 막고 있습니다.
나한전 건너
적묵당
스님들이 거처하시는 공간입니다.
담장 대신에
암기와를 뉘여 놓았습니다.
세심정입니다.
이곳에 앉아 잠시 마음을 씻고 가라하는데,
그냥 돌아서 떠나 올 수 밖에요.
시간이 무엇인지 ???
돌돌돌
세심정
주변에 가지런하게
무리하지 않은 조경이 풍경을 더하고 있습니다.
평지형에서 느낄 수 있는 운치입니다.
이대로가 참 좋아 보입니다.
대웅전 뒤에 놓여진 뜨락의 쉼터
이 또한 평지형 가람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없는
마음의 공간입니다.
송광사 스님들의 여여하심과 자비심을
이 공간에서 또한 느낍니다.
대웅전 좌측 우에 모셔진
석조 약사여래불입니다.
약사여래불 후면에 있는 삼성각입니다.
전면 3칸, 측면 2칸, 홑처마 팔작지붕 양식으로 극락전과 같은 양식입니다.
전각 내 상단에 모셔진 칠성탱화입니다.
칠성여래의 좌측 어깨 위에
머리가 길쭉한 도인이
바로 남극노인성입니다.
이 노인성이 수명을 관장하기 때문에 반드시 칠성탱화에는
남극노인성대신이 있습니다.
죄측에는 종남산 산왕대신을 모셨고,
우측에는 나반존자이신 독성을 모셨습니다.
이 독성님은 홀로 깨달음을 얻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삼성각입니다.
대웅전 좌측 우에서 바라본 종루입니다.
이 종루는 보물 12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본래는 종과 북을 함께 걸어 놓지 않고 따로 걸어 놓아
종루와 고루로 구분합니다.
아자형 종루로서 국내에는 단 하나입니다.
1466년 정심화상에 의해 처음 지어진 건물로서
임란 때 소실된 것을 1857년에 중건된 17세기 건물입니다.
대웅전 뜨락과
그 뜨락을 지켜 온
곰솔 한그루.
대웅전과 종남산 능선
종루입니다.
평면 5칸 십자형의 아亞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기단부 없이 단도리로만 기초 하여서
누하주는 8각기둥으로 덤벙주초 우에 놓았고
누상주는 원형기둥이며
양식은 외삼출목입니다.
1716년에 제작된 동종으로서
울리지는 않고 잠시 내려 놓았습니다.
유두와 보살상 비천상입니다.
종루의
내부 가구입니다.
종루에 매달린
사물 중 하나인 운판입니다.
날짐승 천도를 위해 울립니다.
목어입니다.
수중생물의 천도를 위해 울립니다.
금강문에서 바라본 일주문 밖 풍경
천왕문의 후면입니다.
이 문을 따라 나서면
금강문을 지나
일주문 밖의 사바세계로 나가게 됩니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다음에는 더 여유롭게
살펴 답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