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9.
오늘은 문경 땅
우리나라 선종의 선맥이 흐르는 봉암사 가는 길......
오늘은 문경 봉암사가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날을 제외한 가운데
유일하게 산문을 개방하는 날입니다.
바로 2007년이, 1947년 문경 봉암사결사가 있은지 60주년에 되는
뜻 깊은 해이기 때문에
조계종에서는 오늘을 기념하여 종립선원인 문경 봉암사 산문을
기념법회에 즈음하여 일시적으로 개방하였습니다.
1973년 동안거 다가오던
어느 날,
도반들과 더불어 문득 찾았던 그곳
오늘은 나그네가 되어 찾았습니다.
문경 봉암사는
경상북도 문경군 가은읍 원북리 해발 998m의 희양산 산자락에 있으며, 김천 직지사 말사입니다.
서기 879년(신라 헌강왕 5년)에 _지증국사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입니다.
.그후 봉암사는 935년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습니다.
조선조 세종대왕 때 험허당 기화 스님이 절을 중수한 뒤 머물면서 원각경소 를 저술하였고.
1674년 다시 소실된 절을 신화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703년 다시 중건하였으나 이후 크게 쇠퇴하였습니다.
구한말 1907년 의병전쟁 때에 다시 전화를 입어 극락전과 백련암만 남고 전소되었으나,
1915년 윤세욱 스님이 요사와 영각, 창고 3동을 신축하였고,
1927년에는 지증대사의 비각과 익랑을 세웠고, 1955년에는 금색전을 지었습니다.
근래에 들어 당시 조실을 지낸 전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과
주지 동춘스님 후임 원행, 법연스님등의 원력으로 절을 크게 중창하여
수행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했습니다.
봉암사에는 지증대사 적조탑, 지증대사적조탑비, 정진대사 원오탑,정진대사 원오탑비, 봉암사 삼층석탑, 마애불상, 극락전 등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하나 하나 후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982년부터 조계종 종립선원으로 지정된 봉암사 선원은
조선조 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사찰의 소임을 볼때는
이 봉암사에 3천여 대중이 머물러 동방장과 서방장으로 나누어 정진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태고 보우국사'를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에서 정진하여 "동방의 출가 승도는 절을 참배하고 도를 물을 때 반드시 이곳 봉암사를 찾았다" 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유서 깊은 선사 봉암사에 근대 선원이 다시금 부흥된 것은
1947년 봉암사결사가 있고서였습니다.
봉암사결사는 다음에 소개토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봉암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유일하게 국민들에게 산문 출입이 금지된 사찰로서 유명합니다.
이는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고,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면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에 대해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1984년 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하면서 부터입니다.
26555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희양산 정상입니다.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입니다.
봉암사 입구
사하촌
봉암사 입구 지나서면
문득 나려서는 희양의 군상들
산이 깊으니
계곡 또한 아늑함이여
서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동으로 흘러 30리 길
희양산 봉암사 산문인
일주문
다포양식의 맞배지붕입니다.
좌우에 주련 없음 또한 특이합니다.
일주의 새이로
날리는 댓잎 바람
무엇을 이름하여
일주(一柱)라고 하시는가
일주문을 나서면
봉황이 바람을 흘려
추풍을 다시 세우는 것을,
가는 길
가시는 길
하여 다시 돌아 오는 길
그대 회심(回心)하지 못하면
다시 회로(回路)하지 못하리니
그대
석문(石門)을 반개하여 뉘를 맞으시려 하시는가
일주문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봉암사 석문의 나무아미타불 마애명
그 길 따라 희양산문으로
피안의 길은 이어지는데
드리운 참나무는 언제나 무언인 걸,
침류교枕流橋
흐르는 물을 베개하여
정진하라는
봉암사의 물소리, 바람소리
침류교 지나면
솟아 오르는
남훈루의 누각
팔작지붕의 다포양식입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
우리가 처음부터 그러했었는데
뉘부터 어긋나 그러했는지
시방, 無明이 行하고 識하니
산빛 푸르고, 달 그림자 머흐러짐이여.
대웅보전의 벽사만
그 뜻을 알았는지
무언 중.
부처님의 가르침만 따르면
된다고 합니다.
간단하답니다.
계율을 지키기만해도 된다고 합니다.
남훈루
대웅보전의 우측에 있는 극락전
다음에 자세하게 소개키로 하겠습니다.
열선당입니다.
대웅보전 뜨락
정료대의 인연을 빌어
소나무는
소나무로만 기대이는데,
눈먼 거북이도 이쯤에서는
눈을 뜨는 데,
육십 년이 지나는데도
소식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만 따라 가셔도
반길 접은 것인데,,,,,,
무엇이 급하시여
길 밖의 길을 찾아 나서려 하시는지
비 개인 능선마다
차오르는 는개
대웅보전 뜨락 서쪽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공간,
성적당입니다.
성적당 맞은 편 승방입니다.
비 개인
남훈루
비각과 조사전
그리고 건너서면
봉암사 태고선원입니다.
조사전
금색전
조사전에서 대웅보전
봉암사 태고선원의 측문인
묘유문
정문은 진공입니다.
眞空妙有에서 보았습니다.
태고선원의 정문인
진공문
입차문내 入此門內
그대 이곳을 오시려 함인가
막존지해 莫存知解
하면 부처님 법대로만 하시게나
모두가 이처럼
진공眞空이 되시고, 묘유妙有가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봉암사의 태고선원
이곳에서 운수납자님들께서
불철주야 정진이 이뤄집니다.
수행하시는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공간입니다.
훌륭한 수행처소입니다.
어서 성불하시어, 미혹의 뭇 중생들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금색전 후면 현판은 대웅전입니다.
귓기둥과 전면 기둥 주초가
두자 정도 높이로 한 것이 이채롭습니다.
금색전 전면입니다.
금색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입니다.
남훈루 자락이 열리는 능선
오전 행사에는 법우法雨가 나려
사바의 티끌을 모다 씻어 주시더니
스님 정말 송구합니다.
고맙습니다.
성불하십시오.
금색전과 삼층석탑
탑돌이하시는 두 분 보살님
남훈루 서쪽의 요사.
댓돌에 얹어있는 신발,
주초에 서성이는 미혹,
범종각
떠나 가심도, 돌아 오심도
없었는 데,
가시는 길은, 모두가 왜 그러이 뛰며 분주하셨는지.
오시던 마음으로
다시 돌아 가시면 되는 것을
이 밤과 저 밤 사이 지나면 뭐가 어긋나시는지
모두가 부처님 법대로 하자고 맹세하셨는 데.....
성적당.
성적당을 둘러 봉암의 북소리로 울어 볼까나
범종루
아으. 돌금에 새긴 쇠잔함이여
스님들의 공간, 요사입니다.
헌데 그대가
중생은 어디에 서 있건
그 티를 못버립니다.
그냥 놓으면 되는데
그게 참 힘이 드는가 봅니다.
그게 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돌아 오는 길
다시 돌아 오는 길
청산첩첩 미타굴
'문화유산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암결사 60주년 기념식 (0) | 2024.07.20 |
---|---|
공주규약 (2) | 2024.07.20 |
화순 동복호 적벽 (0) | 2024.07.20 |
경주 배리 석불 입상 (0) | 2024.07.19 |
위봉사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