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3. 09.
국보 제14호 거조암 영산전입니다.
지난 3월 8일, 봉정사 극락전을 지나
청령포를 건너
다음 날 9일에는 거조암 영산전을 찾았습니다.
거조암은 영천 은해사 산내에 딸린 암자입니다.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도사가 창건하셨고,
그 뒤 혜림법사(慧林法師)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셨다고 전합니다.
거조암은 당초 거조사(居祖寺)라하여 은해사 창건보다 먼저입니다.
원래 거조암은 1190년(명종 20)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할 정도로 큰 사찰이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도 거조사로 나타나지만
상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1970년 보수공사 때 중수 상량문이 발견되어 건립시기가 밝혀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375년(우왕 1)에 건립되어
1754년(영조 30) 보수하였으며,
1786년(정조 10)에 중수하면서 기와를 새롭게 바꾸고,
1898년에 중수 상량하였습니다.
거조사에서 거조암으로 절 이름을 바꾼 시기는 1912년 무렵으로 전하는데
사세가 기울면서 은해사 사내 말사로 통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 1970년 해체복원공사를 실시하고 1978년 지붕의 기와공사를 하였습니다.
1970년, 영산전 해체 보수시에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영산전은 고려(高麗) 우왕(禑王) 원년(元年)(1375)에 건립되었고
위와 같이 여러 차례 중수(重修)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산전은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시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백아라한을 모신 경우에는 대부분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 합니다만,
이곳 거조암은 영산전이라 하였습니다.
오백 아라한은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수행하시는 상수중(常隨衆)인 10대 제자, 16아라한, 오백아라한, 1200 아라한 가운데
오백아라한을 말합니다.
영산전은 소박하고 간결하여 마치 경판고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형식은 배흘림기둥, 주심포, 전면 7칸 측면 3칸, 2고주 5량가, 연등천장, 맞배지붕으로
좌우 퇴칸과 측면에 살창을 두어 통기가 잘 되도록 하였습니다.
거조암 입구에 있는 영산루입니다.
영산전 현판입니다.
1970년 해체 보수 때에 상량문이 발견되면서
1375년(우왕 1)에 건립되어 1754년(영조 30) 보수하였으며,
1786년(정조 10)에 중수하면서 기와를 새롭게 바꾸고, 1898년에 중수 상량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영산전의 좌측면에서 바라 본 처마선입니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조금씩만 다듬어
허튼층으로 쌓고
제일 우에는 외벌대의 장대석을 돌려 마감하였지만
장대석이 많이 빠져 있고.
배면은 배수구만 설치하였습니다.
측면에는 내부와 통기가 잘 되도록 하였고
건물은 강당식으로 판고와 같이 단촐한 느낌을 줍니다.
건물 전면 어칸에는 이중 문을 달아 외부는 정자살문으로 처리를 하였고,
내부는 두 짝의 판문을 두어 측문 없이 이곳을 통해서만 내부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칸 오른쪽 협칸과 퇴칸입니다.
양 협칸은 벽체로 마감하였고, 양퇴칸에는 살창을 두어 환기가 잘 되도록 하였습니다.
처마는, 홑처마로서 봉정사 극락전의 겹처마와 대조를 이룹니다.
전면 좌측의 협칸 벽체입니다.
창방에는 시주연질을 기록하여 두셨는지
협칸에 이어 퇴칸에도 같은 시주질이 보입니다.
챌백 성상을 지나 온
기둥 마다에는 오랜 세월의 주름이 겹치고
후면입니다.
배수가 잘되도록 자연석 기단부 마감을 하였습니다.
후면 어칸에 살창을 두어 전후로 통기가 잘 되도록 하였음을 봅니다.
후면의 기둥과 벽체
그리고 처마선입니다.
평면을 구성하고 있는 기둥은 배흘림을 하였고, 기둥을 받치고 있는 덤벙주초는 자연석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기둥머리는 화통가지로 4갈래로하여 도리 방향으로 창방이 걸쳐지고,
보 방향으로 제공이 결구되었으며
굽받침 없는 주두 밑에서
포작의 구성요소인 중첩된 제공이 빠져나와 그 위의 제공을 받치고 있습니다.
전면 우측에서 산신각 방향의 배면 구조입니다.
주심포 두공 구성입니다.
전면의 우측면입니다.
좌우측면에 살창을 두었습니다.
배면의 주심포 구조입니다.
화통가지로 내민
헛첨차 위로는 초가 형태로 길게 빠져나온 제공이 도리방향의 행공첨차와 십자로 짜여졌고,
수장폭 만큼 줄어든 퇴량보 머리 위에 외목도리가 결구되어 있습니다.
제공의 내단은 퇴량 아래에서 양봉으로 마감하면서
당초문 형태의 조각장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배면 우측 주심포 구성입니다.
어칸 출입문입니다.
문의 구조는 이중으로 되어 있습니다.
밖의 문은 정자살 문이고
정자살 문을 열면
바로 두 짝의 판문이 나타납니다.
판문에는
조선조 오백년 동안 억불숭유의 흔적이
먹빛으로 남아 번져 옴을 느낌니다.
대부분 그 당시 저한 유들이 남긴 것입니다.
판문을 열고 들어서면
석가삼존불이 나타납니다.
어칸 정면에 불단을 세워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협시보살로는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세웠습니다.
여기에다 아난-가섭존자를 두면 4협시가 됩니다.
후불탱화에는
가운데 석가세존을, 위 좌우에는 아난과 가섭존자를,
좌우 4협시보살은 문수-관음보살과, 보현-대세지보살을 두었습니다.
석가삼존은 당초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 약왕보살과 약상보살을 두었으나,
후대로 오면서 문수-보현보살로 변천됩니다.
측면에서 바라 본 상단인 불단입니다.
2단으로 단촐하면서도 단마다
각종 조각상을 세겨 장엄을 하였습니다.
전후좌우에 526분의 아라한님을 모셔서
무량중생으로 하여금
복전을 쌓도록 하여 세세생생 불연을 맺어 주고 계십니다.
아라한을 향한 지극하심이
상단 후면에 모셔진 석조 아라한입니다.
바닥에는 전석을 깔아 놓았으며
그 우로 불자들이 참배할 수 있도록
다시 편의를 두었습니다.
2고주 5량가의 내부 가구입니다.
고주머리에는 뜬창방이 결구되고, 대들보는 이 고주 위에 걸쳐 졌으며
그 아래로는 평주에서 처럼 비슷한 포작을 이루어 중도리를 받치고 있습니다.
대들보 중앙에는 키가 큰 제형의 대공을 세우고,
그 우에 포대공을 짜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그 양측에 내반(內反)된 솟을합장을 두었습니다.
대공
천장은 주심포의 일반적인 양식에 따라
연등천장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고주 머리 구조입니다.
고주 머리구조입니다.
외주의 내부가구입니다.
영산전 !!
영축산에서
법화삼매를 놓으시며
오백아라한을 이곳에 보내시어
무량중생들로 하여금 이 생이 다하도록
불공덕을 겹겹이 쌓도록 하고 계시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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