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보국사

相民 윤봉택 2008. 11. 11. 20:57

2008. 11. 03. 08:00~09:00


보국사(報國寺)입니다.


첫째날 11월 2일에는 아미산 금정의 보현보살 도량을 순례하였고,

두 번 째날 11월 3일, 아침에는 성도 가까이에 있는 보국사를 찾았습니다.


보국사는 매우 특이한 사찰입니다.

유교-불교-도교가 함께하는 사찰입니다.


1615년 명나라 신종 43년에

창건된 이 건물의 명칭은 회종당(會宗堂)이었으며,

원래는 복호사의 왼쪽에 세워졌습니다.


하여, 유교의 공자를 비롯한 제 성인들과

도교의 광성자( 廣成子/상고시대의 신선)

불교의 보현보살을 모셨는 데,


청나라 순왕 시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고,

강희황제 42년 1703년에 회종당을 보국사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건물 동선은 산문, 미륵전, 대웅전, 칠불전, 장경루로 이어지는데

주변의 경관에 맞추어 매우 아름답게 꾸며져 있습니다.


이러한 보국사에는 세가지 진귀한 보물이 있는데

칠불전에 모셔진 자불(瓷佛), 14층 7m의 화엄탑,

그리고 지금은 복호사로 옮겨간 높이 2.3m 무게 25톤의 동종입니다.


 

보국사는 성도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

안내표지판과 안내판에도 한국어로 표기하여서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폭포와 바위는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도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뤄놓아

 크게 무리하지 않아 보였지만,

 역시나 ........

 보국사 진입부 동선입니다.

 

 좌우에는 녹나무로 가꿔 놓았고,

 주변 또한 상록 아열대 초목으로 조성하여

 경관과 조화를 이뤘습니다. 

 

 보국사 산문입니다.

 정면 현판(보국사)은 강희황제 어필입니다.

 

 우리나라 처럼

 일주문을 따로 두지를 않고

 바로 산문의 현판과 좌우에 용신과 가람신을 두었고

 산문을 들어서면

 호법신을 두어 천왕문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산문 건너 나무가 마치 쌍용이 트림하는 듯 하여

  잠시 담아 보았습니다.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닌지 ......

  이곳에서 산길 따라

  60여km만 가면 아미산 정상 금정에 닿을 수가 있습니다.

 

 보국사는 아미산 자락 1부 능선에 있습니다.

 

 아미산이 있는 이곳은 차(茶)로서 매우 유명합니다.

 진(晉)나라 때 부터 차가 유명하였고, 특히 설아(雪芽)는 송나라 때 부터 이름을 날려

 당송 8대가의 한 분인 소동파 또한 이 차를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근대사에 와서는 이곳의 승려 청관스님에 의하여 용동찻잎에 항주공예를 이용,

 미예(眉蘂)라는 차를 개발하기도 할 만큼

 차로서 또한 명약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보국사 산문

 모두 3층으로 장엄을 하였습니다.

 

 첫 건물인  미륵전입니다.

 건조물들은 문화혁명 때 대부분 파괴되어 재건한 것입니다.

 

 이곳 건조물의 특징은 좌우로 길게 하면서

 중층으로 하였습니다.

 

 법당 내부에도 향로를 두었으나 예불 할때 사용을 하며

 마당에 큰 향로를 두어서 참배객들은 이곳에 향을 피워

 공양을 올립니다. 

 

 법당 내부에는 포대화상(미륵채회니소상彌勒彩繪泥塑像)을 두었는데

 중국에서는 미륵불로 통합니다.

 

 두번 째 건물인 대웅보전입니다.

 이곳에 근무하는 여시주께서 향로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보국사의 정전으로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측에 문수보살상, 우측에 지장보살상, 좌우에는 18나한상

 상단 후면 감실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셨습니다.

 

중앙 감실에 모셔진 석가모니불상. 

 

 정전의 회랑입니다.

 세번 째 건물, 칠불보전입니다.

 

 과거칠불을 모셨습니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이렇게 과거 칠불을 모시는  예는 흔하지가 않습니다.

 법당 내 과거 칠불좌상입니다.

 

 법당 내에는

 북송시대의  채양(蔡襄) ·소식 ·미불(米芾)과 더불어 4대 서가의 한 분이었던

 유명한 서예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가 쓴 칠불게(七佛偈)를 목각 4폭으로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네번 째 마지막 건물인 보현전(普現殿)으로서

 보현보살을 모셨습니다.

 

 위 중층 현판은 장경루입니다.

 본전 내에는 원나라의 대표적인 서가 조맹부를 비롯하여

 청 나라때 양주팔괴(揚州八怪)의 우두머리로 손꼽히는 정판교

 근대 화가 장대천(張大千), 서비홍(徐悲鴻) 등의 글씨와 그림이 있습니다.


 

 보현전에 모셔진 보현보살좌상입니다.

 백상을 타고 계시는 데,

 조성한 조각 내용으로 보아서는 볼륨이 너무 강하여

 아마 최근에 새롭게 조성하여 모셔진 듯 합니다.

 

  법당 내에서 신도들은 모두 이처럼 법복을 입고

  예불을 모시는 데, 처사라고 부르며 남녀 구분을 두지 않습니다.

  

『승가일용집』에서는

 거사를 은거 수행하며 그 뜻을 견고히 하는 것이 거(居)이며,

                               모든 의심과 번뇌를 들어 내어 끊는 것이 사(士)라고 하여

                                                                         居士 隱居堅之曰 居, 現蓁絶斷曰 士라 하였습니다.

 처사는 산중에 은거하는 것을 처(處)라 하며

                              마음을 밝혀 도에 이르는 것을 사(士)라고 하여  

                                                                         處士 山中隱居曰 處,  明心達道曰 士라 하였습니다.

 처사와 거사라는 의미를 거의 같은 뜻으로 보고 있으나, 굳이 구분한다면

                        세속과의 경계를 두지 않고 수행하는 이가 거사(居士)요.

                                      산중에서 은거 수행하는 이를 처사(處士)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보현전에서 좌측으로 내려 선 건조물

 

      참으로 단아하게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이른 새벽 누가 있어

      저 뜨락을 먼저 쓸고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 칠불전 내려 서는 좌측 계단

 

     모두가 내려 서면 그만인 것을

     우리는 무얼 기다려 이곳에 서 있었는지

   칠불전 정전에는

   녹나무 가지를 울리는 바람일 뿐

   풍경 소리 끊어진지 칠겁을 넘긴다 하시는데

  가는이는 어디로 오시어

  그 길을 되 가려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문을 지나면

 문득 피안인걸

 우리는 오늘도 마음의 대문 앞에서만

 서성일 뿐...

 

 돌아가

 다시 돌아가

 육모정에 잠이 든

 우리 삶의 이야기로나 전한다면

 

  새벽 이슬 밟고 오신 이

  만날 수가 있으련만

 

  타오르는 향연은

  바람의 길을 따라 

  서역 하늘로 떠나 가시는 데

  예서 다시 무얼 기다리려 하시는가 ....   

  보국사 정전에 놓여진

  고사리

 거미줄 따라 새벽길을 떠나는

 나그네

 

 '''''''''''''

 

진욱 거사님(1호차) 담으신 자료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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