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섬의 돌담

가파도

相民 윤봉택 2009. 2. 4. 19:51

2008. 12. 27.


가파도입니다.


가파도는

개도․ 개파도․ 가파도․ 가을파지도․ 더우섬 등 다양하게 불려져 왔으나,

1914년 행정구역이 하모리에서 가파리로 법정 분리 되면서

가파도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저가 가파도에 처음 닿기는 1982년입니다.

그 이후 시간이 허락할 때 마다 가끔씩 섬으로 갑니다.

 

지난 해 12월 27일에는 반연과 같이 다녀 오고

다시 지난 2월 2일에는 가파리 마을회 김동옥 리장님을 만나

고인돌에 관하여 여쭤보고,

향후 서귀포시에서 가파도 고인돌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려고 다녀왔습니다.


가파도와 모슬포와는 5.5km떨어저 있는

면적 874,328㎡, 해발 20.5m, 섬둘레 4.2km 

내 마음의 작은 섬,

 

2007년 말 기준, 136세대, 306명(남 154, 여 152)이

오손도손 혼 올레 이루며

다정 다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가 이 섬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제주섬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곳에는 고인돌이 많이 산재해 있어

동양의 이스터섬이라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주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의 50% 이상되는  100여기 이상이

가파도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곳에 가서

고인돌을 축조했던 당 시대인들을 생각하면

경외감이 해풍으로 와 닿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파도에 사람이 입도하기 시작한 문헌 기록은

영조 26년(1750) 당시 제주목사로 재임하면서 ‘탐라별곡’을 지은

정언유 목사가 나라에 진상할 검은소(흑우) 육우를 위해 50여 두를

가파도에 방목하면서 부터입니다.


헌종 8년(1842)목사 이원조는 영국상선들이 자주 섬에 상륙하여

흑우를 약탈해가자, 고부이씨, 경주-김해김씨, 진주강씨, 나주라씨 등 40여 가구를

가파도에 입도시켜 경작하게 하면서 부터, 지금의 촌락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86년,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가파도에서 고구마가 재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가파도 고구마(감저)’라고 하면

그 맛이 넘 달고 깊어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또한 가파도에서 생산되는

1kg 넘는 전복, 소라, 성게 등 좀녀의 손결 닿는 곳 마다 혼망사리가 조물어지고

세물 부터 열 두물 까지 이뤄지는 갯낚시에서는

계절마다 낚아 올리는 그리움들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파도에는 상동-하동마을할망당과 마을 포제를 지내는 포제단, 패총 등

다양한 유적이 많습니다. 


  

 가파도입니다.

 고인돌이 많아 저는

 동양의 이스터섬이라 부릅니다.

 가파도와 마라도를 잇는

 상동포구 선착장에 닿으면

 가파도 관광 안내도가 보입니다.

 먼저 상동포구에 나려서 동쪽

 시계 방향으로 해안길을 따라 걸어 가시면 좋습니다.

 그러나 고인돌은

 하동 즉 아랫마을에

 주로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가파도에 가면

 돌담이 매우 특이함에 놀라움을....

 

 이 돌담들은 저가 1982년 경 처음 이 섬에 닿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섬 해변을 중심으로 길게 닿아 있습니다.

 바닷가와 지경을 달리하는 곳에 닿았다하여

 주로 '개경담'이라고 부릅니다만, 바닷가에 닿아졌다하여 '환해장성'이라고도 합니다.

  맨 아랫 쪽에는 접담(두줄)으로 닿다가

  150여cm 쯤에서는 외도리(한줄)로 닿아 마무리를 합니다.

  돌담들은

  바람에 의해서 무너지기 보다는

  우마나 사람에 의해 무너지는 예가 더 많습니다.

  모가 진 사고석이 아니라, 둥글 둥글한 해변돌(바당돌),

  이처럼,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닿기란 매우 힘이 들며,

  기술을 요합니다.

  그러나 가파도민들은, 오래 전부터 척박한 섬을 개간하여 오면서

  돌담을 닿아 오셨기에

  그 숱한 태풍에도 비켜서지 않고

  지금까지 가파도의 섬을 보호하고 있나 봅니다.

   - 가파도 해안선 4.2km

 

  가파도의 '개경담'은 이렇게 한줄로만 닿은 것이 아니라,

  두 줄 또는 석 줄로 하여 잣담을 2중 3중으로 겹겹하여 놓았습니다.

  이는 가파도 해발이 20.5m 밖에 되지 않기에

  바람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며 막아 내고

  또한 우마를 안심하고 방목하기 위해서입니다. 

  섬 북동지역에 닿아 있는

 '잣담'  안쪽과 바깥 쪽에 2중으로 잣담을 닿았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바당돌(해변돌)을

  하나 하나 주어다가 다듬음 없이

  정교하리 만치 잘 닿았습니다.

  때문에 탐라인들은 가까이로는 고창읍성부터

  멀리로는 한양 도성까지 잣담(성담)을 닿으러 출력을 하였었습니다.

  잣담(성담) 건너에는

  가파도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데....

  부부의 묘인 듯 '산담'을 가지런하게 두르면서

  가운 데 경계석 신문(神門)에 표석을 설치한 게 특이합니다.

 '뒤시여'에서 바라 본

 '개엄주리코지' 입니다.

  멀리 바다 건너 섬, 산방산과 송악산이 보이고....

  아랫마을 하동 가파포구라 불리우는 '황개'.

 '막여'가 있는 '볼락작코지'에서 바라 본

 '황개' 전경입니다.

   볼락작코지 지나,  '부끈덕' 닿기 전에서 바라 본

   황개 건너의 최남단의 섬, 마라도.

  '고망물'

   과거, 가파도 주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 되어 주었던

   용천수입니다.

   이 큰 바윗돌 아래, 돌 고망(구멍)에서 물이 솟아나 붙여진 이름입니다.

 

  1653년 네델란드의 하멜이 스페르붸르호를 타고

  제주해협을 건너던 중 태풍을 만나 난파당하던 모습을 스케치한 것으로서

  1668년 하멜표류기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하멜은 귀국하여 가파도를 겔파트섬이라는 지명으로

  서양에 처음 한국의 섬을 소개하였습니다.

  

  몰(말)방애입니다.

  축력을 이용하여 방아를 하였던 곳으로서

  '황개' 주변에 있는 데,

   한켠 몰방애 우에는 듬돌이 놓여 있습니다. 

   '남부르코지' 건너에 있는

    '까메기동산'입니다.

    이 바위 우에 올라 서면 큰 바람이 분다하여,

    누구도 이 동산에는 근접을 하지 않을만큼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곳입니다.

  '두리여'에서 바라 본 '큰이끈여'의 해안선

  차오르는 간조의 아픔이

  절절이 부서지고 있는 데.......

 

   하동마을 서쪽구역에 있는

   가파도 고인돌입니다.

  보이는 바위들이

  모두 고인돌의 상석입니다.

   한 없이 이어지는

   고인돌

   누구의 상석 앞에 갯쑥부쟁이를

   한송이 놓아야 할지......... 

 가파도의 선구자이신

 김성숙 애국지사의 동상과 가파초등학교 전경.

 

  하동에서 상동마을로 이어지는

  가파도의 '한질'

 상동포구에서 바라 본

 '개엄주리코지'

  제주섬과 가파도를 잇는

  도항선

  매일, 모슬포항에서 하루 세번 왕복 운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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