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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성당

오스트리아

by 相民 윤봉택 2011. 7. 2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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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7. 08(금)

 

성 슈테판성당

 

성 슈테판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 슈테판에서 유래합니다.

 

비운의 천재 음악가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뤄졌던 유서 깊은 성당.

 

8일 오전,

비엔나의 관광1번지 마리아테레지아 광장과 궁전을 살피고 나서

미카엘광장의 문화유적을 보고

곧 바로, 성 슈테판성당을 찾았습니다.

 

성슈테판성당은 1147년 처음 건축 시에는 단조로운 바실리카양식으로 지어졌고,

1258년 화재로 인하여 많이 손상된 것을, 1263년에 복원됩니다.

 

1359년, 당시 유럽지역에 유행했던 고딕양식으로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4세가 지금의 고딕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여

137m의 슈테판탑이 만들어지게 되지만, 사실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1469년 프리드리히3세가 교황에게 요청하여 비엔나가 주교도시로 격상이 되면서

슈테판성당은 대성당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1647년 요한폭크와 토비아스폭크 형제에 의하여,

당시 빈에서 유행하던 바로크양식에 따라 성당 내부의 모습은 일대 변혁을 맞습니다.

 

그러나 어디서건, 흥망성쇄는 있는 법,

슈테판 또한 1683년 투르크 침공 때 크게 파괴되었고,

 - 이 때 비엔나에 터키인들에 의해 커피가 등장했다지요

1809년 나폴레옹 침공, 2차세계대전 때 피습된 것을

1945~1952년 까지 복구가 이어집니다.    

 

 

  슈테판성당에는 두개의 탑이 있습니다.

  슈테플이라 불리는 137m의 탑과 이 종이 달려 있는 독수리탑입니다.

   독수리탑은 15세기 중엽에 완성되었고, 이 종은 1683년 오스만 투르크족을 격퇴시키면서

   노획한 180문의  청동을 녹여서 무게 21톤의 종을 1711년에 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쪽 탑에 있었으나,

  1945년 2차대전으로 손상된 것을 복원하여 1957년에 북쪽탑으로 옮겼습니다. 

 슈테판성당의 시간입니다.

 슈테판성당의 상징인 높이 137m의 첨탑입니다.

 1359년 처음 시작하여 1433년 74년만에 준공된 고딕양식의 걸작입니다.

 탑은 팔각형으로 사암을 이용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풍화로 인하여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지금 슈테판성당은 이 때를 딲아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슈테플탑은 343계단을 통하여 73m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슈테플탑이 너무 높아 다 담을 수가 없을 만큼 웅대합니다.

 입구 전면입니다.

 건축에 사용된 석재는 모두가 사암(沙岩)입니다.

 사암의 특성상 조각하기가 매우 쉬운 반면, 풍화에 의해서 오래되면 저처럼 검게 변하게 됩니다.

 이는 사암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가지 광물질이 풍화로 인해 변색되기 때문입니다. 

 측면입니다.

 마차가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닥은 작은 돌을 사각형으로 다듬어 석재로 포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서울 인사동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저처럼 석재 포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당의 정문인 '거인의문'입니다.

 

 대부분 성당은 세개의 문을 갖고 있으나, 슈테판은 하나로만 되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이 문은 1230년 공사가 이뤄질 때, 아주 거대한 뼈가 발견되었고, 당시 시민들은 이 뼈가 노아 홍수 때

 익사한 거인의 뼈라고 생각하여 뼈를 문 위에 걸쳐 놓았었으나, 18세기 경에

  이 뼈 주인공이 맘모스의 넓적다리로 판명되면서, 이 문을 '거인의문'이라고 불려졌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고 지순한, 신을 향한 인간의 염원을 응축하여 건축한

 길이 170m, 폭 39m의 성당 내부입니다.

 불교의 광배와 후광처럼, 성당 내부는 후기고딕양식인 화염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였습니다.

 제단은, 현란한 바로크양식으로서 조각상들은 1647년 요한 야코프포크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성당의 천정입니다.

 색체감 없이, 사암으로 천정까지 타원으로 마감 처리했습니다.

 전면, 좌측면 제단입니다.

 불감처럼 조성되어 있어 접기가 가능합니다.

 성당 중심 우측 기둥입니다.

 조각 하나 하나 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먼 길을 가신 성인들의 표상입니다.

성당 내 설교단은 16세기 체코 출신 안톤 필그림이 조각하였습니다.

또한 프리드리히 3세의 묘와 함께 지하 카타콤베에는 1450년부터 안장된 오스트리아의 역대 왕조의

무덤과 전염병 페스트로 인하여 사망한 당시 2천여 인골들이 있는 데, 이곳은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성당 내부 기둥입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수많은 성인들과 성경에 수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장엄하여 놓았습니다.  

성당 측면에 모셔진 조각상

예수님 십자가 고난을 상징하는 조각상

 

 

 

슈테판 성당 외벽의 모자이크

 성인 우로는, 사찰 법당 내 부처님의 좌대와 닫집처럼,

 입상 아래에는 8각형으로하면서, 다시 아래로 화문으로 장식하였고,

 두상 우로는 닫집처럼 첨탑을 두어 성인의 숭고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성인상을 빛나게 하는 것은, 상마다 채색하였다는 점입니다. 

 독수리탑에서 바라 본, 비엔나 시가지 풍경

  먼 산 능선 따라 7월의 청포도는 가을의 전설로 익어 가는 데,

 성당 지붕 장식입니다.

 약 25만개의 청색과 금색의 채색기와로 장식된 성당건물

 탑 주변 지붕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을 상징하는 독수리문양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탑에서 내려다 본 광장

 탑에 장식된 수 많은 조각품, 오직 사암으로만 가능한 장식입니다.

탑에서 내려다 본 광장

 오스트리아, 특히 비엔나에 있는 대부분의 건조물들은 200년 이상된 것입니다.

 이 건조물들의 주 재료는 사암입니다.

 이 사암을 사고석으로 가공하여 벽돌 쌓 듯이 쌓아 올렸습니다.

슈테판 성당의 작은 집 하나...........

그 옆에는  비엔나 봉사 단체에서  성슈테판성당의 모형을 제작하여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외벽 또한, 성당 내부와 마찬가지로 조각상이 많이 모셔져 있는 데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많음입니다.

 십자가의 비탄상

 십자가의 비탄상 2

 예수님의 부활

 

 슈테판 성당 외곽입니다.

 오전 시간이라 방문객들이 많지 않았으나, 오후가 되면서 부터는

 길을 걷지 못할 만큼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습니다.

 어느 시간에 다시 인연이 되어......................

 성  슈테판성당에서 묵언 합장하게 될런지요......

시간은 가고, 시간은 다시 떠가는 데 .............................

부질 없는 나그네의 그림자만 성슈테판의 광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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