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륭흥사 대비각

相民 윤봉택 2012. 1. 1. 19:25

 

2010. 09. 26.(일)

 

륭흥사(隆興寺) 대비각(大悲閣)

 

첫째날(09. 25) : 북경 계대사

둘째날(09. 26) : 하북성 중심도시 석가장, 백림선사, 광혜사화탑

                       임제사 징령탑을 순례한 후

                       융흥사를 참배하였습니다.

 

륭흥사는 하북성 석가장 정정현 성 동쪽에 있는 사찰로서 가람 규모가 매우 큼니다.

그리고 대부분 건조물이 건립 당시의 양식으로 되어 있어 참으로 웅대하였습니다.

 

수나라 개황6년(586)에 용장사(龍藏寺)로 창건된 사찰은

송나라에 이르러 그 규모가 거대해졌으며, 이후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가람 중수가 이뤄졌고,

 

청나라 강희45년91706)에 지금의 사명인 륭흥사(隆興寺)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는데,

거대한 청동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저 있어 대불사(大佛寺)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며,

융흥사라는 가람 명칭은 청나라 강희45년(1706) 강희황제가 융흥사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부터입니다.

 

융흥사의 가람 배치는 남북 중심축에 주요 법당을, 중심측좌우로 요사와 정원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사찰 입구에는 석교가 있고, 천왕문, 대각육사전(大覺六師殿)터, 마니전(摩尼殿), 계단(戒壇),

우측에 자씨각(慈氏閣), 좌측에 전륜장각(轉輪藏閣),

좌측에 강희어비정(康熙禦碑亭), 우측에 건륭어비정(乾隆禦碑亭),

관세음보살입상을 모신 대비각(大悲閣), 대비각 우측에 어서루(御書樓),

북쪽에 미타전 등 주요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비각에는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입상이 모셔저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집을 대비각이라한 것입니다.

 

청동조 천수천안관세음보살입상이 모셔진 대비각은

송나라 초기 개보년간(968~976)에 건축되었으며,

보살상의 높이 19.2m. 수미단 높이 2.2m로서 42수관음보살상인 이 보살상은 송나라 양식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 청암사 보광전에 목조 42수관세음보살 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42수관세음보살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을 줄여서 만든 것으로 첱수천안과 같은 의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부처님의 왼쪽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는 분으로서

3계(욕계, 색계, 무색계) 25유(4악취, 수미4주, 욕계6천, 색계 7의 18천, 무색계 4천)의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입니다.

 

가운데 손은 본래의 손이며, 나머지 40수는 신통력으로 나투신 것으로

좌우에 각각 20개의 손이 있어 손 마다 25유 중생을 제도하시기 때문에

40수×25유를 천수천안이라 합니다. 

 

 

 전면에 보이는 것이 대비각입니다.

입구 좌측 전각은 강희어비정(康熙禦碑亭), 우측은 건륭어비정(乾隆禦碑亭),

청동으로 빚은 42수관세음보살 입상입니다.

손마다 3계 25유정을 제도하기 위해 각기 다른 상징을 들고 있습니다.

대비전은 전체 3층으로 된 누각입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들의 현판이 발길을 머물게 합니다.

대비전 좌측 건물입니다.

륭흥사 건물 구조는 대부분 하앙식 구조입니다.

주포 사이에 간포를 둔 다포계열의 구조로서

맨 상층에 있는 대비각 현판입니다.

백호상광은 부처님의 미간에 있는 백호에서 광명 비추시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묘법연연화경 서품에 보면 '이시爾時 불방미간백호상광佛放眉間白毫相光 조동방만팔천세계照東方萬八千世界 미불주변靡不周遍'이라 하여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미간에서 백호대광명을 비춰 동방 만팔천세계를 비추지 아니한 곳이 없으시니 ........

조어장부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별칭으로서 여래 10호 중 한 명칭입니다.

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헤,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불광보조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 누리에 두루 비춘다는 의미로서

낙양 용문석굴에 있는 향산사의 미타전 상층 현판에도 불광보조라 하였습니다.

불안(佛眼) 또는 혜안(慧眼)이리고도 합니다.

부처님의 안목으로 모든 것을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대비각 우측에 있는 어서루입니다.

 

자운광부(慈雲廣부) 구름이 하늘을 덮듯이 관음보살의 신통력이 널리 온 세계를 덮음을 의미함

 

내부는 상하 통층으로 되어 있어

청동으로 빚은 관세음보살 입상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송나라 양식으로 높이 19.2m에 달합니다.

 관음보살의 입은 천의는 U형으로 이뤄지면서 치마(裳衣) 자락이 발등까지 덮였고

 온갖 영락으로 장엄을 하였습니다.

두 발은 가지런하게 정면을 향하면서, 발 아래로는 앙련으로 보좌를 꾸며 입상을 세웠습니다.

수미단 우측 옆으로는 상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습니다.

 관음보살의 입상을 장엄하고 있는 높이 2.2m의 수미단입니다.

 맨 아래 하대는 복련으로, 다음으로 중대에는 각 면마다 벽사 4마리를

다음에는 당초문으로 장엄하면서, 간주를 놓아 안상에는 보살과 신장상을 조성하여 놓았고

각 귀마다에는 금강역사를, 상대에는 앙련으로 마감하면서 온 갖 보화를 넣었습니다.

바닥에는 중국 법당이 그러하듯 전석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조까지 법당 내부는 널판으로 만든 마루가 아니라, 박석을 깔아 출입하도록 하였습니다.

국내에는 청양 장곡사 상대웅전이 지금도 전석이 보이고 있고, 봉정사 극락전에도 보면 일부 흔적이 .....

수미단 중대의 안상 간주가 참으로 화려합니다.

 수미단 상대를 장엄하고 있는 보화문입니다.

 

 중국에는 도교적인 모습을 불상에도 많이 도입하고 있는 데,  이마에 눈이 그렇습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유불선 삼교를 모두 포용합니다.

 머리에는 보관 대신, 띠로 마감을 하였고, 목에는 삼도가 뚜렸하며, 어깨에는 법의가 통견으로 처리하면서

가슴에는 목걸이를, 그리고 두 손 모아 합장하면서 천의를 날리고 있습니다.

 하부로 이어지는 치마(상의)에는 영락으로 장엄을 하였고,

 좌우로 각각 20수를 더하면서

 손 마다 다른 기구를 들어 뭇 중생들의 고뇌를 자운(慈雲)으로 털어내시는 듯..........

 머리 후면에는 두광 없이 마지막 손을 모아 부처님을 받들어 있고,

 두 손 모은 합장에는 중생들의 번뇌가 소진되는 듯

 

다포양식이면서 모두 하앙식으로 마감하였고,

전면의 문양만큼은 우리나라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있음을 

관음보살의 좌측 20수 입니다.

청동조 관음보살의 후면입니다.

두상의 머리 마감이 이채롭습니다.

그리고 입상을 고정하기 위하여 후면에 별도의 건조물을 두었습니다.

이 또한 중생입니다.

입상을 고정하기 위해 중간 마다 철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내려서는 길

중층에서 하층으로 연결된 통로입니다.

중층에서 바라본 전면, 좌우에 비각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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