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륭흥사 강희비

相民 윤봉택 2012. 1. 8. 22:12

2010. 09. 26.

 

륭흥사(隆興寺) 강희어비정(康熙禦碑亭),

   

첫째날(09. 25) : 북경 계대사

둘째날(09. 26) : 하북성 중심도시 석가장, 백림선사, 광혜사화탑

                       임제사 징령탑을 순례한 후

                       융흥사를 참배하였습니다.

 

륭흥사는 하북성 석가장 정정현 성 동쪽에 있는 사찰로서 가람 규모가 매우 큼니다.

그리고 대부분 건조물이 건립 당시의 양식으로 되어 있어 참으로 웅대하였습니다.

 

수나라 개황6년(586)에 용장사(龍藏寺)로 창건된 사찰은

송나라에 이르러 그 규모가 거대해졌으며, 이후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가람 중수가 이뤄졌고,

 

청나라 강희45년(1706)에 지금의 사명인 륭흥사(隆興寺. )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는데,

거대한 청동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저 있어 대불사(大佛寺)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며,

융흥사라는 가람 명칭은 청나라 강희45년(1706) 강희황제가 융흥사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부터입니다.

 

융흥사의 가람 배치는 남북 중심축에 주요 법당을, 중심측좌우로 요사와 정원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사찰 입구에는 석교가 있고, 천왕문, 대각육사전(大覺六師殿)터, 마니전(摩尼殿), 계단(戒壇),

우측에 자씨각(慈氏閣), 좌측에 전륜장각(轉輪藏閣),

좌측에 강희어비정(康熙禦碑亭), 우측에 건륭어비정(乾隆禦碑亭),

관세음보살입상을 모신 대비각(大悲閣), 대비각 우측에 어서루(御書樓),

북쪽에 미타전 등 주요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강희비는 1713년(강희 52)에 세워졌습니다.

대비각 전면 좌측과 우측에 각각 비각이 있는 데

강희비는 좌측에 세워져 있습니다.

 

강희제(康熙帝 1654~1722) 청나라 제4대황제입니다.,

순치황제의 3남으로서 자금성에서 태어난 첫 청나라 황제입니다.

8세 때 즉위하여 61년 동안 재위한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기간 황제를 지낸 인물입니다.

 

천고일제(千古一帝, 천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황제) 또는 연호를 따서 강희대제(康熙大帝)로 칭송받으며

아직도 많은 중국인에게 크게 존경받는 인물로서

우리가 사용하는 옥편으로 알려진 ‘강희자전’을 편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4명의 황후와 64명의 비첩을 거느리면서

아들 35명 딸 20명을 생산한 황제이기도 합니다.

 

강희제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하여

아들인 옹정제(雍正帝), 손자인 건륭제(乾隆帝)까지 태평성대가 지속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대비각 좌측에 세워진 건물이 강희비를 보호하는 강희어비정입니다.

강희제가 용흥사를 방문하여 쓴 글이라고 합니다.

이수와 귀부 비신이 참으로 웅대함을 느꼈습니다.

비석은 이수부귀螭首趺龜라 하여

비신을 덮는 것을 이수라 하고

비신 받치는 것은 거북 모양이기 때문에 귀부라 합니다.

이수 측면에는 교룡이, 그리고 비신 측면 또한 용 한마리가 여의주를 향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귀부입니다.

하대석과 부대석 그리고 부대를 통석으로 조성하면서,

귀부에는 고기, 자라, 게, 지네 등의 4종 신물을 세겨 놓았습니다.  

비좌에는 특별한 무늬 없이 마감을 하였으나,

하대와 부대에는 물결 무늬를 놓았습니다. 

 비정 내부와 외부를 소통할 수 있도록 사방을 개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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