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카노푸스

노인성

相民 윤봉택 2014. 3. 27. 10:46

2014. 03. 27

 

노인성老人星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욕심은

아픔 없이 오래도록 살아가는,,

무병장수이겠지요.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진시황의 오매불망 불로초不老草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노인성에 대해 엿보기로 하겠습니다.

 

왜냐하면요.

북극성이 저승의 길라잡이라면

남극노인성은 이승의 길라잡이 이기 때문입니다. 

 ※  아래 자료들은 웹과 사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따라서 무단 사용 시에는 관련법에 저촉됩니다.

 

노인성 유래,

예부터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극노인南極老人 또는 노인성老人星, 수성壽星, 노수성老壽星, 남성南星, 남극선옹 등으로 불리며,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어졌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남쪽으로 수평선 근처에서 매우 드물게 볼 수 있다.

 

- 壽星-- 民間傳說之神亦作壽星南極老人星本為星名後世小說戲曲為神仙之名

初言其主國運之長短後尊為主人間壽夭之神凡德見者皆壽千歲秦漢時已有壽星祠和老人廟

自東漢起祭祀壽星與敬老活動相結合歷代皆列入國家祭典至明初始罷

近代所奉之壽神形象多為左手持杖右手捧桃銀髮長須頭高額隆大耳短躯面目慈祥的老者

수성은 민간전설에 내려오는 신성이다. 남극노인성이라고도 불린다. 본래부터 별의 이름이었다.

후세에 소설이나 희곡에 주로 나오는 신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나라의 운명의 장단을 가늠하는

신선으로 알려졌고, 후에는 인간의 수명을 좌우하는 신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를 본 사람의 수명은 천살까지 이른다고 널리 퍼졌다.

진한시기에 이미 수성사나 노인 묘라는 사당으로 모셔져 제사지내게 되었다.

동한에 이르러서는 축사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활동과도 결합하게 되었다.

역대 모든 국가에서 그를 기리는 제전을 치르게 되는데 명나라 초까지 계속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그 형상은 수명을 관장하는 수신 형상을 띄게 되는데 왼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복숭아 봉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상된다. 은발의 긴수염과 두고가 높고 큰귀에 짧은 체구 안면에는

자상한 웃음을 띄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老人星이라 하는 수성(壽星)은 민간신앙에서 장수를 기원해 숭배하는 환상의 신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리하는 신이다. 제일 처음에 수성은 28성수에서 동방의 각(), () 성수 신을 말하다가

그후 서궁남극노인성(西宮南極老人星)을 가리켰다.

()나라 개원 년(開元年間)에 와서 또 노인성(老人星)과 각항7(角亢七宿)을 하나로 합쳐

전문으로 수성단(壽星壇)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남극노인성 숭배는 수성신보다 앞섰는데 전문으로 이 신을 국운(國運)의 흥망성세와 국수(國壽)의 길고

짧음을 관리하는 신으로 정했다.

 

한나라()때에는 또 황제를 위해 수명을 연장하는 점을 치는 성수신직위를 증가했으며

후 노인성을 제사지내는 것은 노인을 존경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길상스러운 신으로 되었다.

()나라 때에 수성신형상이 널리 전파되었다. 수성신(壽星神)은 이마가 높고 머리가 길고

귀가 크고 키가 작으며 구분 지팡이를 잡고 머리를 약간 숙이고 서있다.

번대머리에 하얀 수염을 갖춘 선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민간에 제일 많이 알려진 세속신(世俗神)의 하나이다.

 

이 신은 진한(秦漢)이래 모두 사당을 세워 제를 지내다가 명()나라에 초엽에 와서

 민간에서는 사당 제를 없애고 가가호호에서 수신으로 봉양하게 되여 축원의 상징으로 되었다.

 

그의 신상(神像)은 아주 재미나며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키가 크지 않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한손에 용두(龍頭)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에 선도를 받쳐 들고 있으며 부드러운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짓고

힌 수염이 허리까지 드리운다. 제일 눈에 띄우는 것은 크의 큰 머리인데 각별히 큰 이마가 더욱 뚜렷하게 안겨온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는 그 무슨 <()>인 것이 아니라 자애로운 웃어른으로 길상(吉祥)의 상징이다.

수신의 많은 화상 중에서 그는 한손으로 구불구불한 긴 지팽이를 짚고 다른 손에 선도를 받쳐 들고 있다.

또 어떤 때에 그는 선록(仙鹿)을 타고 있는데 복신()과 녹(), ()신 형상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남극선옹(南極仙翁)은 마음씨 고운 노신선(老神仙)이다.

백낭자(白娘娘)가 독한 술을 마시고 원형을 나타내자 허선(許仙)이 두려워 죽었다.

백낭자는 허선을 구하려고 곤륜산(昆侖山)에 들어가 영지선초(靈芝仙草)를 훔치다가

(), () 두 동자와 격투를 벌렸는데 실패했다.

남극선옹은 백낭자의 처우에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가련하게 생각해 영지를 그에게 주어 허선을 구하게 했다.

남극선옹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북송(北宋) 인종가우(仁宗嘉佑)8년에 내력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도사(道士)모양의 한 노인이 경성(京城)에 나타났다. 그는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어떤 때에는 걸음을 멈춰 점을 치기도 했다. 노인은 키가 크지 않았으며 머리가 전체 신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는 연세가 많은 노인처럼 보였지만 다리와 허리가 특별히 해 사람들에게 보통사람이 아니다는 인상을 주었다.

 

노인은 술을 즐겼는데 술집만 보면 곧바로 들어가 통쾌하게 술을 마시군 했다.

그러나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평소와 다름없이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에게 크게 주의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러나 얼마 후 이 노인은 곧 사람들의 화제의 주인공으로 되었다.

일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꺼리낌 없이 그에게 접근하였고 그의 생김새가 기이하다고 하여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의 화상까지 그렸지만 그는 조금도 성을 내지 않고 태연자약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에 대한 소문이 더욱 크게 퍼져 황제의 호위병들도 얻어 듣게 되었다.

 

호위병 등은 항간에서 도는 소문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인종황제 역시 각별히 흥미를 가지고 영을 내려

노인을 궁전에 불러드렸다. 노인은 궁전에 들어와 황제를 뵙고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대범했다.

인종황제는 호위병을 시켜 한 석의 술을 가져다 노인더러 마음대로 마시게 했다.

그러자 노인은 어린아이처럼 기뻐서 어쩔 바를 모르며 술을 마셨는데 그 술을 마시는 모양도 가물에 단비를 만난듯했다.

인종황제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노인의 행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7되나 술을 마신 뒤 유유자적하게 어전(御前)에서 내려와 눈깜작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었다.

전한데 의하면 다음날 당직을 서던 관리가 황망히 궁전에 들어가 황제에서

노인이 어전에 온후 행방을 감추었고 보고했다. 인종황제는 그 노인이 수성의 화신이여서

그렇게 술을 잘 마실것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탄복했다고 한다.

 

壽星老人圖의 유래는, 수노인(壽老人)이라 불리는 노인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남극성남극노인성, 수성 등이라고 한다.

송나라 철종 때에 도성에 머리가 문어처럼 크기만 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노인이 술을 아주 좋아 했으며 술만 취하면, ‘내가 수성인데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노인성 그림이 문어머리 모양을 한 그림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자료 인용 : http://www.baike.com/wiki/%E5%AF%BF%E6%98%9F

 

그러면,

노인성은 어느 곳에서 바라볼 수가 있을까

사실 노인성은 남극성이기 때문에 적도 남쪽에서야 마음만 먹으면 볼 수가 있겠지요.

헌데 적도 북쪽에서는 사다리 타고 보아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여

중국에서는 남악 형산에서 보아야한다고 하여

일전에 남악 형산에 다녀왔는데요.

물론 노인성을 보러 간 것은 아니었고요.

형산 자체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이는 중국에서도 남쪽 지역으로 가야만 볼 수가 있다는 거겠지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과 서귀포의 서귀진 에서

볼 수가 있다 하여

예 부터 제주를 방문한 선비를 비롯한 양반들은

이 노인성을 보기 위해 학수고대하였으나

잠깐 남쪽 수평선으로 보이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한라산 백록담에 올라가 본 사람은 다 아시겠지만

엔간해서는 백록담에서 물마루 끝자락 수평선을 바라본 다는 것은 ....

그동안 백록담에 올라

남극성을 보신 어른은 토정 이지함 선생이 유일하다 할 만큼이라지요.

 

하여

영주12경 중 하나인 서진노성西鎭老星의 본향인

서귀진西歸鎭에서

앞바다에 떠 있는 문섬 좌우 끝자락으로 

두 눈 크게 부릅뜨고 정성을 모아 바라보게 되면

물마루 끝으로

문득 별 하나가 다가오는데

그게 바로 남극노인성입니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제주인 들이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노인성의 정기를 받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여

여러 박물관에 소장된 노인성의 작품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소장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았을 때, 한번 찾아 보면서

무병장수를 생각하며 감상하심도 좋을 듯 싶습니다.

 

특히 노인성 그림의 특징은 장두단구 長頭短軀입니다.

머리가 상하로 길고 따라서 신체는 작게 표현됩니다.

사찰의 칠성탱화에는 반드시 이러한 그림이 있는데

이렇게 모양을 한 이가 노인성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삼척시립박물관 소장

 

 

 

 

 간송미술관(김명국) 소장

 

간송미술관(윤덕희) 소장

 

 간송미술관(장승업) 소장

 

에밀레미술관 소장

 

 남송시대 청동수성도경(靑銅壽星圖鏡)

 

 중국(청) 영보 作

 

 중국(청) 굴렴 作

 

 중국(청) 나빙 作

 

중국(청) 사복 作

 

 중국

 

 중국

 

 중국 竹禪

 

 

 중국 沈振麟

 

 중국 李霞

 

 

 중국 褚健秋

 

 중국(청) 수성 1825년

 

중국 마고수성도(麻姑壽星圖) 

 

 중국 수성도 1128년

 

 중국 수성도 

 

중국 장쓔성 리양 남산대나무공원

 

 한국자수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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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성을 위해 제의 의식과 우리나라에서의 노인성에 대한 살핌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노인성 그림은,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 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가 귀신 잡 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노인성 예찬 시

 

天地로 帳慕삼고 日月로 燭燈삼아

北海를 휘여다가 酒樽에 다혀두고

南極에 老人星對야  늙을 뉘를 모롤이라

(海東歌謠)

 

노인성 관찰은,

노인성은 보는 시기가 정해져 있었다. 한국의 도가(道家)에서는 별을 보는 풍습이 수천년 동안 전해져 온다.

그 중의 하나가 노인성(老人星)을 보는 풍습이다. 일명 남극성(南極星)이라고 불리는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민간에서는 ‘노인성을 3번 보면 백수를 누린다’는 말이 전해져 올 정도이다.

도교에서는 춘분 저녁과 추분 새벽에 남쪽에서 그 출현을 기다려 제사를 지냈다.

이 별이 보이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임금의 수명이 연장되지만, 보이지 않으면 전란이 일어난다고 예측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 무렵인 12월 하순과 1월 사이에 주로 이 별을 보러 다녔다.

춘분과 추분은 농사일로 바쁘고, 일이 한가할 무렵인 12월 말에 노인성을 보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겨울에는 구름과 안개가 없어서 별을 잘 볼 수 있다.

새해 첫날에 동해안에 일출을 보러가는 것이 요즘 풍습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동지 무렵에 남쪽으로 내려가서 노인성을 보는 풍습이 있었다.

 

서양에서는 老人星을 카노푸스Canopus라고 부른다.

용골좌(龍骨座:Argo)의 첫 별이며 광도가 가장 높은 카노푸스(Canopus) 별에 해당한다.

등급 -0.7등으로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이다. 거리는 약 180광년이고,

위치는 적경(赤經) 6h23m,, 적위(赤緯) -52°40', 분광형은 F0의 초거성(超巨星)이다

 

노인성의 위치는

天文類抄』의 28숙 남방 7수의 정수조(條)에는

한 개로 이뤄진 노인이라는 별이 남극 가운데 있는데,

봄 가을에 나타나며 수명이 무궁하다.

또한 노인성은 백성의 운을 주관하는 별로써 일명 남극이라고도 한다.

항상 추분 아침에 병방(丙方 / 午方에서 15°)에서 볼 수 있으며,

춘분 저녁에 정방(丁方 / 午方에서 15°)으로 사라지며, 추분이 되면 남쪽 교외에서 볼 수가 있다.

 

노인성이 밝고 크면 임금이 오래 살고 천하가 태평하나, 노인성이 보이지 않으면

임금에게 우환이 생기고 병란이 일어나며 그해에는 흉년이 든다.

객성이 들어오면 병란이 일어나고 노인에게 질병이 많이 생기고 일설에 따르면 병란이 일어난다고도 한다.

 “ ‘二十八宿 南方七宿 井宿 步天歌(條) ; 有箇老人南極中 春秋出入壽無窮.’

‘老人,民星 ; 一曰 南極 常以秋分之旦 見于丙 春分之夕沒于丁 秋分候之南郊

明大則人主有壽 天下安寧  不見則人主憂兵起 歲荒

客星入爲民疫 一曰兵起 老者憂 流星犯之老人多疾 一曰兵起.’”

 

중국측 기록에 나타나는 노인성의 최초관측 기록은

晉書의 太元 2년(377년) 7월 17일 기묘(양력 9.6) 老人星見이 최초이다. 당시 도읍지 建康(지금의 南京)이었다.

 

-신라 경순왕8년(934) 음력9월(율리우스력 10.11-11.9)에 龍骨座의 主星인Canopus가

慶州에서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원조는 1841년(헌종 7년) 3월에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1843년 6월에 이임하였다.

당시 대정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를 찾아 학문을 교환하였고,

탐라록, 탐라지초본, 탐라관보록, 탐라계록 등을 남겼으며, 탐라록은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이원조 목사의 “남극 노인성에 대한 글 :

1842년 11월 23일. 남극노인성은 남(丙, 28분 방향)쪽에서 떠서 남남서(丁 32분 방향)쪽으로 진다고 한다.

지면에서 겨우 삼간(삼간)정도 나타났다가 정남 쪽으로 숨어 버리는 시간이 잠깐인데,

한라산 남쪽에서가 아니면 볼 수가 없으며, 크기는 마치 샛별과 같고 담색 빛의 광채가 난다.

 

들은 바에 의하면 여름철 하지 저녁 무렵에 남방 3촌 3분, 고도 21°의 각을 유지하여 남쪽으로 바라보면,

많은 별들 가운데 찬란하게 빛나는 노인성을 볼 수가 있다 하였다.

마치 별들의 모습이 벌, 말, 거북이들의 뒤얽힌 모양과 같다고 한다.

 

내가 지난 가을(1841. 9. 22) 서귀진(서귀포에 있는 방호소)에서

머물 때 밤에 일어나 잠깐 노인성을 보았는데, 그러나 어두운 구름에 가려 조금 밖에 보지를 못하였다.

그 아래로는 별이 보이나 선명하지 않았고 그 거리도 대지에서 멀지 않아, 고도를 비교하여 보면

하지의 일몰 분위기와 다르고, 또한 아직 그러하지가 않아 뭐라 얘기할 수가 없다.

 

세종 때에 역관 윤사웅(尹士雄)을 제주에 파견하여 한라산에 올라가 노인성의 출몰 위치를 측량하게 하였으나,

구름 때문에 노인성을 보지 못하였고, 그러한 뜻을 후일에 당하여 방문하였다고 한다.

- 二十三日 … 南極說文 南極老人星 出丙入丁 距地纔三竿而暫出 延隱以丙丁 纔隔一位也 拏山之南無處不見

大如曙星而色淡有光 芒聞交州夏至 晷出表南三寸三分極 高二十一度 南望老人星下衆星燦然有

所謂蜜蜂馬腹三角龜杵之類 余於前秋 宿西歸鎭夜起暫見 而雲陰不能睇視 其下有星不可詳

然槪其距地面不遠 極高比交州 憋異夏晷日影 亦未準不可臆說也

世宗朝 遣曆官尹士雄等 測極度於漢拏山頂 想載於雲觀 志後當放問也“

 

老人星祭는,

고려시대에서도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조에 와서는 오례 중 吉禮로서 조정에서 제례를 지냈으며, 小祀에 속한다.

고려 시대 태조 17년(934)으로 기록되어 있다.

 - 갑신일에 충주목 부사 최 광균이 아뢰기를, “지난달 28일에 죽장사에서 노인성에 제사를 지냈더니

그 날 저녁에 수성이 나타났다가 술잔을 세 번 올린 뒤에야 없어졌습니다.” 하니,

임금이 크게 기뻐하였으며 백관은 축하를 올렸다.

甲申忠州牧副使崔光鈞秦前月二十八日祭老人星于竹杖寺其夕壽星見之至三獻乃沒王大喜百官稱賀

[고려사 권제19, 6장 뒤쪽, 세가 19 의종 24.4]

 

조선시대에는

노인성(老人星)을 제사하는 데 소를 사용하는 것이 굽지 않고 희생(犧牲)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1411년 부터는 구워서 올렸다.

 

제사 지내는 시기는 춘분 · 추분 두 차례 하였는데,

이는 노인성 제사 지내는 것이 대개 가을에 나타나고 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제단의 규격은 송(宋)나라 정화(政和) 때의 《오례신의(五禮新儀)》를 취하여,

높이 3척(尺), 동서(東西) 길이 1장(丈) 3척(尺), 남북(南北) 길이 1장(丈) 2척(尺), 사방(四方)으로 섬돌[陛] 하나씩 내고

그 담[壝]은 25보(步)로 하였다.

 

또는 추분의 아침에 노인성을 남교에서 제사지내는데,

각·항 두 별의 자리를 그 앞에 아울러 설치하고, 예료(禮料)는 노인성에는 변(籩)과 두(豆)를 각각 8개씩 쓰고,

각·항 두 별에는 변과 두를 각각 2개씩 쓰고, 생(牲)은 송아지 1마리를 쓰고,

축판(祝版)에는 ‘삼가 남극노인성존군(南極老人星尊君)

각이성(角二星)·항사성(亢四星)에게 제를 지낸다고 했다. 그러나 1429년부터는 노인성군 한 신위만 모시고 제를 지냈다.

 

제례를 지내는 준비와 그 방법〈세종 8년(1426) 5월 19일〉

오례의(五禮儀)의 예식의주(禮式儀注)에,

“제사 전 3일에 행사(行事)해야 할 집사관(執事官)은 모두 2일 동안 산재(散齋)하고 정침(正寢)에서 자며,

제사지낼 곳에서 1일 동안 치재(致齋)한다. 무릇 산재할 때는 치사(治事)는 전과 같이 하되,

 다만 술을 마음대로 마시지 말고, 파·부추·마늘을 먹지 말며, 조상(弔喪)과 문병(問病)을 하지 말며,

음악을 듣지 말며, 형벌을 행하지 말며, 형살 문서(刑殺文書)에 판결 서명(署名)하지 말고,

더러운 일에 참예하지 말며, 치재는 오직 제사지내는 일만을 행한다.

 

【무릇 제사에 참예할 사람은 모두 2일 전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제사 1일 전에 충호위(忠扈衛)는 여러 사관(祀官)의 자리를 설치하고,

또 찬만(饌幔)을 설치하되 모두 동문(東門) 밖에 땅의 형편에 따라 적당히 한다.

 

전사관(典祀官)은 소속 관원을 거느리고 단(壇)의 안팎을 소제하고,

집례(執禮)는 헌관의 자리를 단 아래 동남쪽에 설치하되 서향하게 하고, 집사(執事)의 자리는 그 뒤로 조금 남쪽으로 설치하되,

서향하게 하고 북쪽을 윗자리로 한다. 집례(執禮)의 자리는 단 위에 설치하고,

알자(謁者)와 찬자(贊者)의 자리는 단 아래에 설치하되, 모두 동쪽으로 가까이 서향하게 한다.

 

헌관의 음복(飮福)하는 자리는 단 위의 남계(南階) 서쪽에 설치하되 북향하게 한다.

섶[柴]을 요단(燎壇)에 쌓아 놓고【신단(神壇)의 남쪽 병방(丙方)이다.】

 망료(望燎)하는 자리는 요단의 북쪽에 설치한다. 헌관은 북쪽에 있게 하되, 남향하게 하고,

집례(執禮)·대축(大祝)·찬자(贊者)는 동쪽에 있게 하되, 서향하여 북쪽을 윗자리로 한다.

【대축과 찬자는 조금 물려서 한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평상복(平常服) 차림으로 주방(廚房)에 나아가 세척(洗滌)한 것을 보고,

찬구(饌具)를 살피고, 생(牲)이 살쪘는가를 보고 재소(齋所)로 돌아온다.

 

포시(晡時) 후에 전사관(典祀官)이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생(牲)을 벤다.【가죽째 삶아 익힌다.】

제삿날 행사하기 전에 전사관은 소속 관원을 거느리고

노인성좌(老人星座)를 단 위의 북방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왕골자리를 깐다.

축판(祝版)을 신위의 오른쪽에 놓고,【점(坫)이 있다.】

 

폐비(幣篚)는 준소(尊所)에 진설하고, 향로(香爐)와 향합(香合)과 촉(燭)을 신위 앞에 설치하고,

제기(祭器)와 찬수를 담을 찬구(饌具)를 설치하되, 변(籩) 8개는 왼쪽에 있게 하여 세 줄로 하고, 오른쪽을 윗자리로 한다.

【첫 줄은 소금이 앞에 있고, 어수(魚鱐)가 그 다음이며, 둘째 줄은 건조(乾棗)가 앞에 있고,

과황(果黃)과 진자(榛子)가 그 다음이고, 세째 줄은 능인(菱人)이 앞에 있고, 검인(芡仁)과 녹포(鹿脯)가 그 다음에 있다.】

두(豆) 8개는 오른쪽에 있게 하여 세 줄로 하고, 왼쪽을 윗 자리가 되게 한다.

【첫 줄은 부추김치가 앞에 있고, 젓이 그 다음이며, 둘째 줄은 무우김치가 앞에 있고, 사슴젓과 미나리김치가 그 다음이며,

세째 줄은 토끼젓이 앞에 있고, 죽순김치와 물고기젓이 그 다음에 있다.】

보(簠)와 궤(簋)가 각각 2개씩 변(籩)·두(豆) 사이에 있게 하되, 보는 왼쪽에 있게 하고, 궤는 오른쪽에 있게 한다.

【보(簠)는 벼와 메조를 채우는데, 메조는 벼의 앞에 있고,

 

 궤(簋)는 메기장과 차기장을 채우는데, 차기장이 메기장의 앞에 있다.】 조(俎) 1개는 보·궤의 앞에 있게 하고,

【돼지를 채운다. 송(宋)의 《석전의(釋奠儀)》에 ‘무릇 앞에 있다.’고 말한 것은 모두 남쪽에 있는 것을 말한다.】

작(爵) 3개는 조(俎) 앞에 있게 한다.【각각 점(坫)이 있다.】 상준(象尊) 2개를 놓는데,

【하나는 현주(玄酒)를 채우되, 상준(上尊)에 채우고, 하나는 청주(淸酒)를 채운다.

무릇 신(神)에게 제사하는 물건이 그 당시에 없는 것은 현시(現時)의 물건으로 대신한다.】

 

단 위의 동남 모퉁이에 북향하여 서쪽을 윗자리로 하고, 세(洗)는 단 아래 동남쪽에 북향하여 설치하며,

【관세(盥洗)는 동쪽에 있고, 작세(爵洗)는 서쪽에 있다.】 뇌(罍)는 세(洗) 동쪽에 있게 하되, 구기[勺]를 얹어 두고,

비(篚)는 세(洗)의 서남쪽에 늘어놓는다.【수건과 작을 담아 놓는다.】

 

여러 집사의 관세(盥洗)는 또한 동남쪽에 모두 북향하여 설치한다. 준(尊)과 뇌(罍)와 비(篚)와 멱(羃)을 잡는 사람의 자리는

 준·뇌·비·멱의 뒤에 설치한다. 제삿날 축시(丑時) 전 5각(刻)에【축시 전 5각은 곧 삼경(三更) 삼점(三點)이니,

행사는 축시 1각(刻)을 쓴다.】

 

전사관(典祀官)이 소속 관원을 거느리고 들어와서 찬구(饌具)에 제수(祭需)를 담고 나면, 물러가서 자리에 나아가

제복(祭服)을 입고 올라와 신위판(神位版)을 좌전(座前)에 설치한다. 3각(刻)에 행사할 집사관은 각기 제복을 입는다.

 집례는 알자와 찬자를 거느리고 먼저 단 남쪽의 배위(拜位)에 나아가, 겹줄로 북향하여

서쪽을 윗자리로 하여 사배하고 나서 자리로 나아간다.

 

1각 전에 알자가 전사관(典祀官)·대축(大祝)·재랑(齋郞)을 인도하여 들어와서 단 남쪽의 배위에 나아가 겹줄로 북향하여

서쪽을 위로 하여 서면, 집례가 ‘사배하라.’ 말하고, 찬자가 전갈(傳喝)하면,【무릇 집례가 말을 하면 찬자가 모두 전갈한다.】

 전사관 이하 모두 사배한다. 알자가 인도하여 관세위(盥洗位)에 나아가 손을 씻고 수건에 닦고 나면,

각기 자기 자리로 나아간다. 재랑이 작세위(爵洗位)로 나아가 작을 씻고 닦고 나서 비(篚)에다 담아서 받들고

준소에 나아가 점(坫) 위에 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 서향하여 서고, 집례가 ‘사배하라.’고 말하면,

 

헌관은 사배한다. 알자가 헌관의 헌관은 왼쪽에 나아가 유사(有司)에게 아뢰어 삼가 갖추어 행사하기를 청한다.

 집례가 ‘폐백 드리는 예(禮)를 행하라.’ 말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홀을 꽂고 손을 씻고 수건에 닦기를 찬한다.【손을 씻고 닦는 것은 찬하지 아니한다.】 홀을 잡기를 찬하고,

인도하여 단으로 나아가 남계(南階)로 올라【여러 집사(執事)들은 오르고 내리는 것을 모두 동계로 한다.】

신위 앞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꿇어앉아서 홀 꽂기를 찬한다. 집사자 한 사람은 향합을 받들고,

집사자 한 사람은 향로를 받든다. 알자가 세 번 향을 피우기를 찬하면, 집사자가 향로를 신위 앞에 올리고,

대축이 폐백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이 집폐(執幣) 헌폐(獻幣)하는데, 폐백을 대축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향합을 받들고, 폐백을 주는 것은 모두 헌관의 오른쪽에서 하고, 향로를 드리고,

폐백을 드리는 것은 모두 헌관의 왼쪽에서 한다. 작을 주고 작을 드리는 것도 이에 준한다.】

알자가 〈헌관에게〉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찬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집례가 ‘초헌례(初獻禮)를 행하라.’고 말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계로 올라 준소에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게 한다.

 

집준자가 멱(羃)을 들고 술을 따르면, 집사자가 작으로 술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꿇어앉아 홀을 꽂기를 찬한다. 집사자가 작은 헌관에게 주고,

헌관은 집작(執爵) 헌작(獻爵)하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꿇어앉기를 찬하고,

대축은 신위의 오른쪽에 나아가 동향하여 축문(祝文)을 읽는다. 이를 마치면,

알자가 〈헌관에게〉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찬하고,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집례가 ‘아헌례(亞獻禮)를 행하라.’고 말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올라가 준소로 나아가서

서향하여 서게 하고, 집준자가 멱(羃)을 들고 술을 따르면, 집사자가 작으로 술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꿇어앉아서 홀을 꽂기를 찬하고, 집사자가 작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집작 헌작하는데,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드리게 한다.

 

〈헌관에게〉 홀을 잡고 구부렸다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찬하고,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있다가 집례가 ‘종헌례(終獻禮)를 행하라.’고 말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예(禮)를 행하기를

아헌례의 의식과 같게 하고,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례가 ‘음복(飮福)하고 제육(祭肉)을 받으라.’고 말하면,

집사자가 준소에 나아가 작으로 복주(福酒)를 따르고, 또 집사자가 조(俎)를 가지고 나아가

신위 앞에 있는 조육(胙肉)을 덜어 낸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계로 올라가 음복위(飮福位)에 나아가

북향하여 서게 하고, 꿇어앉아 홀을 꽂기를 찬하고, 집사자가 헌관의 오른쪽에 나아가 서향하여

작을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작을 받아 마신다. 작을 다 비우면 집사자는 빈 작을 받아 다시 점(坫) 위에 놓는다.

 

 집사자가 서향하여 조(俎)를 헌관에게 주면, 헌관은 조를 받아서 집사자에게 준다. 집사자는 조를 받아서

남계로 내려와 문으로 나간다. 알자가 홀을 잡고 부복하였다 일어나기를 찬하고,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간다. 집례가 ‘재배(再拜)하라.’고 말하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재배한다.

 

집례가 ‘변(籩)·두(豆)를 걷어치우라.’고 말하면, 대축이 나아가 변·두를 걷어치운다.【

걷어치운다 함은 변·두 각각 1개를 있던 자리에서 조금 옮기는 것이다.】 집례가 ‘사배(四拜)하라.’고 말하면,

 헌관은 사배한다. 집례가 ‘망료(望燎)하라.’고 말하면, 알자는 헌관을 인도하여 망료하는 자리에 나아가서

 남향하여 서게 하고, 집례는 찬자(贊者)를 거느리고 망료하는 자리로 나아가 서향하여 서게 하면,

대축이 축판과 폐백을 가지고 요단(燎壇)위에 나아가 태울 나무에 놓는다. 집례가 ‘태우라.’고 말하면,

태울 나무의 반을 태운다. 알자가 헌관의 왼쪽에 나아가 예가 끝났다고 아뢰면,

 

알자는 헌관을 인도하여 나가고,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알자가 전사관과 집사자를 인도하여

 단 남쪽의 배위로 나아가 서게 하고, 집례가 ‘사배하라.’고 하면, 전사관과 여러 집사는 모두 사배한다.

이를 마치면, 알자가 인도하여 나가고, 집례가 찬자와 알자를 거느리고 단 남쪽의 배위로 나아가서 사배하고 나간다.

전사관은 소속 관원을 거느리고 신위판(神位版)을 간수하고, 예찬(禮饌)을 거둬치우고 내려가서 곧 물러간다.”하였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제를 지내는 곳은 어딜까요

 

바로 서귀포랍니다.

서귀포에서가 유일하게 지내오고 있답니다.

 

서귀포에서는

매년 3월 말이면

서귀진이 있는 주변에서

봄 맞이 축제를 하며

노인성제를 지냅니다.

 

2013년도 부터

노인성제를 지내고 있으며

2014년 3월 28일

올해로 두번 째를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날에 서귀포엔 호우가 나리고 있었는데,

제를 지내는

저녁 7시 부터 8시 까지는

비가 뚝 하였다지요

 

제례준비는 서귀포문화사업회가 하였구요

축문 휘호는 서예가 고상률 선생

집례

찬자 윤봉택

초헌관 이석창

아헌관 유네스코 지역 담당 회장

종헌관 지역 청년회장으로 하였습니다.

 

 

 

 

 

 

 

0-20130305-老人星(윤봉택-정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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