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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악

탐라섬의 문화재

by 相民 윤봉택 2022. 11. 1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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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06.

 

탐라악(耽羅樂)

도라악(度羅樂)을 아십니까?

 

도라악에 대한 세미나

"도라악은 과연 탐라악인가" 뜨거운 논쟁 - 한라일보 (ihalla.com)

 

"도라악은 과연 탐라악인가" 뜨거운 논쟁

도라악(度羅樂)은 과연 제주와 연관있는 탐라악인가. 제주도와 제주학연구센터가 9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개최한 2018탐라사 국제학술대회는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시종 뜨거운 분위기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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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악(度羅樂)이라 불리면서

지금(2015)부터 1282년 전인 서기 731년,

당시, 제주 음악인 62명이

일본에 전수하여 주었다는, 탐라악.

 

그 시절에는 제주는 도라(度羅)라 하여

탐라는 백제·고려·신라·당나라와 무역교류 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 교류 관계에서도 음악인으로서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던

탐라국의 전통음악이 있었음을

 

속일본기(續日本記)에는

“聖武天皇 天平三年(731년)六月乙亥 定雅樂寮雜樂生員 大唐樂卅九人 百濟惡卄六人 高麗樂八人 新羅樂四人 度羅樂六十二人 諸縣舞八人 筑紫舞二十人 其大唐樂生不言夏蕃 取堪敎習者 百濟高麗新羅等樂生並取當蕃堪學者 但度羅樂 諸縣 筑紫舞生並取樂戶”이라 하여

 

   서기 731년, 당시 탐라(도라)를 비롯하여 일본에게 음악을 전수하여 주려한

일본 아악료의 음악 국제사절단은 모두 139명이었습니다.

당나라 악인(樂人) 39명, 백제 악인 26명, 고려 악인 8명, 신라 악인 4명, 도라(탐라)악인 62명,

 

   전체 139인 가운데 도라(탐라)악 출신자가 62명으로 

아악료(雅樂寮)의 구성원 가운데

탐라 음악인 출신이 45%를 차지할 만큼 탐라국 음악이 대단하였습니다.

 

   그 시절, 일본(제현. 축자) 무인(무용수)은 모두 28명 뿐,

당시, 당나라 악인(樂人)은 夏蕃인을 가리지 않고 맡아서 가르칠 만한 사람으로

백제, 고려 신라 등의 악인은  모두 當蕃인을 맡아서 배울만한 사람으로 선정하였으나

 

   그러나, 도라(탐라)악인은

 일본의 제현무와 축자무 같이

전문적인 연주와 무용이 가능한 악호(樂戶/전문가)에서 선정하였습니다.

  서기 731년 당시, 탐라국 음악 전문가들 62인이

일본에게 탐라음악의 진수를 전하여 줬다는 역사 기록입니다.

 

  이 때 부터 탐라 열풍이 일본에 전해졌기에

일본 음악 선율에는 당시, 제주인 들이 전수하여 준

선율이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감흥으로나마 느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David Waterhouse,「Where Did Toraga Come From」(Musica Asiatica, London, 1991)

  "필자는 일본 음악학자들이 도라악(度羅樂)의 근원에 대해 주장했던 다양한 이론들을 검토해 보았고,

  도라악이 한국 남해안에서 떨어진 제주도에서 유래됐다고 파악하는

  전통적 이론에 찬성할만한 이유가 있음을 입증하였다."(현행복, 번역문 옮김)

 

이와 같이 기록상으로만 보더라도 탐라음악 활동이 1282년이 되었는데도

혹자들은 제주음악의 원형이 뭍에서 전해졌다고 거렁청헌 소리들을 쉽게 합니다.

 

그리고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이 개간한 탐라지에 보면

당시에도  악공들을 전문적으로 교습시켰던 장춘원(藏春院)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악공들은 조정에서 보내온 교서를 받거나

또는 조정에 전문을 보낼 때 일정한 의례에 따라

연주를 하였습니다.

 

耽羅誌 宮室(條) 藏春院 在新果園西卽 妓工習樂之敎 坊樂工以官奴擇㝎 無㝎數 用於迎敎拜箋望闕禮 所闕非細 妓生以官奴有才貌者陛之冝精擇
장춘원은 신과원 서쪽에 있다. 기생이나 악공들이 음악을 배우는 곳이다. 악공은 관의 노비에서 골라 뽑았으나, 정원은 없다. 이들은 교서를 받거나 또는 전문을 올릴 때, 악공들이 연주하였지만, 이에 대한 것은 자세하지 않다. 기생은 관의 노비에서 재주가 있고 용모가 있는 자 가운데에서 뽑았다

 

이러한 자료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일부 명사들은

탐라의 전통음악성을 무시하고 뭍에서 전래되었다고 난리입니다.

일례를 들자면

농악도 그렇고, 민요도 그렇다며 뭐든지 뭍과 연결하려 합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제주음악이나 농악은 19세기를 시점으로 적용해야 맞을 것입니다.

 

한 때, 신라에서는 당시 신라 주변을 위협하고 있는 구한(九韓)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자 하여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워 구한의 위세를 억누르고자 하였는데

담라(탐라국)은 구한의 하나로서 신라를 위협할 만큼 세력이 대단하였으나,

신라의 주변 국가로 추정되는 아홉 개의 국가 : 일본, 중화, 오월(吳越), 탁라(托羅/탐라), 응유(鷹遊/백제), 말갈(靺鞨),

                                                                   단국(丹國/거란), 여적(女狄/여진), 예맥(濊貊)

 

1105년 탐라국 천년 시대가 강제로 고려에 예속되면서

탐라국은 탐라군, 탐라현으로 강등 되다가 1211년 제주(濟州)로 불려진 이래

탐라는 뭍사람들에 있어서는 물 건너(濟)에 있는 섬(州)으로만 기록되었습니다.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가 평정된 후 원나라에 의해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었고,

1374년 최영에 의해 목호가 토벌될 때 까지 탐라는 102년간 원에 예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항몽에 대한 결연한 탐라국인들에 의한 의지는 계속되었습니다. 

때론, 호국삼부경의 하나인 『금광명경 문구』를 팔만대장경과 같은 판형으로

1296년, 애월 광령리에 있는 묘련사에서 목판에 새겨 인출 보급함으로서 항몽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아울러 주민의 단합과 단결을 다지는 조리희(照里戱)를 즐겼습니다.

매년 한가위 때에는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와 춤을 추면서

좌우로 편을 나눠서 줄다리기를 하여 승부를 결정짓게 되는데,

줄다리기 중간에 줄이 끊어져 모두가 땅에 고꾸라지면

이를 본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데, 이를 가르켜 조리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날에는 또한 그네도 뛰고 닭을 포획하는 놀이를 하면서 즐겼습니다.

耽羅誌 風俗(條) 照里戱 每歲八月十五日 男女共聚歌舞 分作左右隊 曳大索兩端以決勝 負索若中絶兩隊化地

則觀者大笑謂之照里戱 是日又作鞦韆及捕鷄之戱(동국세시기에도 기록됨)

 

   최부(1454-1504), (1448. 1월 제주추쇄경차관으로 와서 지은 耽羅詞 35소절)

       27수

   嫌將歲月虛抛擲 흐르는 세월 붙잡을 수 없다지만

   照里鞦韆傳自昔 조리희와 그네 뛰기는 예로부터 전해왔네

   僧刹了無香火時 절에는 향화의 흔적 보이지 않아도

   駢閻簫鼓燃燈夕 문 밖으로는 연등재 올리는 북소리 들리네

 

이렇게 한가위 날에는 온 동네 주민들이 모여 줄이 끊어질 때 까지 줄다리기를 하였고,

춤과 음악을 통해 상부상조의 정신을 지켜 오면서 가장 탐라적인 정신을 이어오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더불어 제주에서 가장 제주적인 음악 원형이 남아 있는 제주 굿의 본풀이인 “서사무가”

 여기에서 파생되어 전래되는 각종 노동·어업요와 걸궁 장단, 제주적인 곡조가 이를 증명하고

세계가 이를 인증하고 있습니다.

 

바로, 2009년 9월 30일, “제주 칠머리당굿”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뭍의 문화와 헝클어지면서 국적 없는 기획과 공연 등으로 인하여

소중한 제주의 무형유산들이 본질이 왜곡되고 제주적인 정체성이 상실되며

더불어 진솔한 제주미학이 사라지고 있음에,

 

한술 더 뜨는 것은, 탐라의 근본을 졸바로 알지 못하는 탐라의 책임자들,

단순하게 시각적으로 보기 좋다하여 이들의 시류에 편승하고 있음이

참으로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진정 지키고 전승해야할  정체성이 무엇인지

진정한 세계화의 탐라자산이 무엇인지

졸바로 알고, 바로 서는

그날을 위하여 .......

 

 

 

1702년(이형상 탐라순력도 귤림풍악)

 

 

  법환마을 좀녜 물질

 

 

 

 

 

 

 

 1296년 애월읍 광령리 묘련사에서 목판으로 판각 인출된

  호국삼부경의 하나인 "금광명경문구" 고려목판본(송광사 소장본)입니다.

 

 

 

 

 

 제주칠머리당굿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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