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성·카노푸스

조선의 성군 정조 임금과 남극노인성

相民 윤봉택 2016. 5. 15. 10:10

2016. 05. 15.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을 사랑한 정조


조선의 성군 정조 임금과 남극노인성

 

조선왕조 오백년 임금 가운데 최고의 효성을 다한

조선 국왕 정조(1752-1800)

학문을 사랑했던 것 보다

더 크게 만백성을 아우르며 소통을 하셨던

서민 국왕 이산(李祘)

 

그 정조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듯 어버이를 사랑하면서

백성들에게 삶의 길을 열어주는 별

영성(靈星)과 수성(壽星/노인성 老人星)의 별을

노래하였고,

 

이 두 별에 대한 제사를 지내도록

고금의 자료들을 모아서

1797(정조 21) 616

직접 엮은 책이 성단향의星壇享儀》입니다.


그러나 정조 임금은 이 책을 편찬하고 나서

3년 후인 1800년 6월 28일 영문 없이 갑작스럽게 서거를 하였습니다.

만약 정조대왕께서 붕어하지 않으셨다면

분명, 지금까지 노인성제는 국가제사로

전승되어 오고  있을 것입니다.

홍제전서 권62에 수록되어 있는

성단향의星壇享儀 전문입니다.


() 나라의 제도를 보면,

주공(周公)이 천하의 중심지에 성주(成周 주 나라의 도읍지)를 건설하고 나서

남교(南郊)에서 상제(上帝)에게 제사를 올리며, 후직(后稷)과 일월(日月), 농성(農星)을 배향하고

선왕(先王)들까지도 다 배향하였으니, 이는 남교에서 상제에게 제사를 올릴 적에는

농성도 종사(從祀)한다는 사실을 알리자는 의도에서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에는

태사(太社)에서 기년제(祈年祭)를 올릴 적에만 농성에도 제사를 올린 것을 보면,

농성의 제단은 사직단 곁에 있음이 마땅할 듯하다.

그러나 주역(周易)이괘(離卦)의 말과 같이 일월(日月)과 성신(星辰)은 하늘에 딸린 것이고

백곡(百穀)과 초목(草木)은 땅에 딸린 것이니,

하늘에 근본을 둔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을 둔 것은 아래와 친한 법이다.

 

그러므로 예기(禮記)교특생(郊特牲), “땅에서 재물을 취하고 하늘에서 법을 취하니,

이러므로 하늘을 높이고 땅을 친애한다.”라고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의 소(), “사람이 사계절의 조만(早晩)을 아는 방법은,

다 일월과 성신에 의존하여 그것으로 농사 경작의 기후를 삼으니,

이것이 하늘에서 법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높여 제사를 올리니, 제천(祭天)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재물은 땅에서 나기 때문에 땅을 친히 하여 제사를 올리니,

제사(祭社)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고 보면 성신의 제사를 태사와 함께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하다.

 

그리고 수성(壽星)에 제사를 올리는 것은

복을 빌자는 것이므로, 남교에서 올리는 것이 옳다.

오직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보면, 개원(開元 () 나라 현종(玄宗)의 연호) 24년에

어떤 사람이 봉사(封事)를 올려 8월 사일(社日)에 태사에서 수성에 제사 올릴 것을 청하니,

현종(玄宗)이 조서를 내리기를, “수성을 태사에 배향하는 것은 의리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렇다면 영성(靈星)과 수성 모두 태사에 배향할 수 없음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던 것이다.


또 영성의 제사를 한서(漢書)교사지(郊祀志)에는 범범하게 세시(歲時)로 제사를 올린다.”라고만 하였고,

당서(唐書)예악지(禮樂志)에는 사시(四時)로 영성에 제사를 올린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였는데,

통전(通典)》ㆍ《통고(通考)》ㆍ《개원례(開元禮)및 역대의 사지(史志)를 상고한 바,

주 나라 이래 입추(立秋) 후 진일(辰日), 또는 중추(仲秋)의 보름날에 제사를 올렸으니,

곧 당 나라 역시 입추 후 진일에 제사를 올렸다는 말은 사시로 올렸다는 예악지의 설과는 같지 않다.

 

수성의 경우는 주 나라 이래 추분(秋分)에 제사를 올렸으니,

이는 노인성(老人星)이 추분에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만약 두 별을 태사에서 함께 제사를 올린다면,

태사에는 춘향(春享)과 추향(秋享)의 두 제사가 있어서 상순의 무일(戊日)에 올리는 데다

기곡제(祈穀祭)를 정월 상순의 신일(辛日)에 올리고, 또 납향(臘享)이 있다.

영성과 수성의 제사를 어느 날로 정하여 올리겠는가.

비록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축식(祝式)을 가지고 말하더라도

영성과 수성이 후토(后土)와 구룡(句龍)보다는 지위가 높고,

또 역대의 제도를 상고해 보아도 영성과 수성은 다 같이 남교

또는 도성 동남쪽에서 제사를 올렸으며,

 

우리나라의 제도에도 영성단과 수성단은 역시 남교에 있어서,

성신(星辰)에 대해서도 풍사(風師)와 우사(雨師)와 함께 제사를 올렸으니,

이는 해와 달은 하늘에 딸리어 위를 친하며, 사물은 유별로 취합하고 군별로 나뉜다.”라는

주역계사(繫辭)의 뜻에도 근사하다.

 

그렇다면 국조오례의에 실린 남교에서 제사하다.[祀于郊]”라는 말은

예전에 예법을 제정하던 본뜻과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이를테면 제향의 의식에 음악을 쓰는 것 역시 분명한 증거가 있다.

이에 성단향의를 만들어 후인들에게 보여 주노라.

 

성위(星位)

의상지(儀象志)

천전성(天田星)은 두 개의 별로서 각수(角宿)의 북쪽에 있는데, 그 몸체는 5등이고 색깔은 검으며, 북극성에서 86도 떨어져 있다. 농상(農祥)으로도 일컫는다. 국어(國語), “농상이 입춘일 새벽 오방(午方)에 나타나면 흙이 곧 금이 가며 부풀어 오른다.”라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 나라의 제도에는 음력 8월에 도성 동남쪽에서 영성(靈星)에 제사를 올렸고, () 나라는 지방 고을에까지 영성사(靈星祠)를 두었으며, () 나라와 송() 나라는 다 같이 입추 후 진일(辰日)에 영성에 제사를 올렸으니, 이는 백성을 위하여 풍년을 기원하여 공을 갚은 것이다.


의상지

노인성(老人星)은 한 개의 별로서 호시성(弧矢星) 남쪽에 있는데,

그 몸체는 1등이고 그 색깔은 희며, 남극성에서 38도 떨어져 있다.

남극수성(南極壽星)으로도 일컫는다.

진서(晉書)천문지(天文志), “늘상 추분날 아침에 병방(丙方)에 나타났다가

춘분날 저녁에 정방(丁方)으로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북극성이 나타나는 곳에서 32도 이하의 지역이라는 것이다.

() 나라 제도에는 음력 8월에 남교(南郊)에서 노인성에 제사를 올렸고,

() 나라와 송() 나라는 남교에 수성단(壽星壇)을 설치하고 추분날에 제사를 올렸으며,

더러는 천추절(千秋節)에도 올렸으니, 이는 신민(臣民)이 군상(君上)을 위하여 만수무강을 축원한 것이다.

 

단제(壇制)

오례의(五禮儀)

영성단(靈星壇)은 남교(南郊)에 있다.

사방이 2() 1()이고 높이가 5()이며,

사면으로 폐()를 내고 하나의 유()25()로 하였다.

신좌(神座)는 북쪽에다 남향으로 두었다.

수성단(壽星壇)의 제도도 똑같다.

- () 나라의 제도에는 영성과 수성을 모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올렸고,

() 나라 때부터 비로소 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올렸는데,

두 단은 각기 주척(周尺)으로 8() 4()이다.

() 나라의 제도는 영성단은 동서가 13척에 남북이 12척이고,

수성단은 사방이 18척이며, 본조(本朝)의 단제(壇制)는 높이와 너비를 송 나라의 제도를 따라 넓히거나 줄였다.
요단(燎壇)은 정단(正壇) 밖 병방(丙方) 지점에 있는데,

너비가 5척이고 높이가 7척이다. 정단은 사방으로 30()씩 한계를 그어

땔나무를 하거나 소를 먹이는 일, 또는 경작 행위 및 행인의 출입을 금지하였다.


신보(新補)

홰나무와 버드나무를 심어서 경계를 표시한다.

()은 곧 사방의 지름으로, 단의 사방이 21척씩이고 유의 사방이 150척임을 말한다.

- 10척이 1장이고 6척이 1보이다.

- 단은 폐()의 높이 12, 유지(壝址)의 높이 2, ()의 높이 3척으로, 전체 높이 5척으로 하며,

사면 대문의 너비는 8척씩이고 양옆에 높이 10척의 주석(柱石)을 세워 돌로 만든 들보를 걸쳐 놓는다.

준뢰(尊罍) 및 음복위(飮福位)와 집례위(執禮位)는 마땅히 단의 밑 유의 위에 있어야 하고

작세위(爵洗位), 관세위(盥洗位) 및 헌관위(獻官位), 악무위(樂舞位)는 유의 밑에 있어야 한다.
요단(燎壇)은 마땅히 유의 남쪽 병방(丙方) 지점에 있어야 하는데,

국조오례의에는 단과 유를 혼동하여 말하였으므로, 지금 주자(朱子)의 사단설(社壇說)에 의거하여

그 제도와 위치를 상세히 밝혀 놓는다.


농성(農星)과 수성(壽星)은 모두 천신(天神)이니,

남교에 제단을 설치하고 장작을 태워 연기를 올려서 태양에 보답하는 것이다.

일주서(逸周書)작락편(作雒篇),

주공(周公)이 천하의 중심지에 큰 도읍 성주(成周)를 건설하고 나서

남교에 조(사교(四郊)에 설치하는 제단)를 설치하고

일월(日月)과 농성(農星)을 모두 함께 배향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천신의 제사를 반드시 남교에서 올린 것은 벌써 오래된 의리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노인성(老人星)은 남극의 곁에 있기 때문에 남교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하나,

그렇다면 천전성(天田星)은 적도의 북쪽에 있는데도

또한 어찌하여 남교에서 제사를 올린다는 말인가.

이는 당연히 신기(神祇)의 음양으로써 남북을 나눈 것이지,

성신(星辰)의 위차로써 남북을 삼은 것은 아니다.

국조오례의에서 두 단을 나란히 남교에 설치하도록 한 것도 근거한 데가 있어서이다.


주자의 사단설에,

단과 유의 척도는 당연히 고척(古尺)을 써야지, 금척(今尺)을 써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고,

국조오례의의 단제에도 다 영조척(營造尺)을 썼으므로 의당 주자가 쓴 주척(周尺)을 따라야 한다.

 

단유도(壇壝圖)

 

 

 

제품(祭品)

오례의영성(靈星)과 노인성(老人星)은 작은 사제이므로,

매 위()마다 변() 여덟 개는 좌로 놓되, 세 줄로 벌여 놓아 오른쪽을 상()으로 삼고 -

첫째 줄은 형염(形鹽)을 앞에 놓고 어수(魚鱐)를 그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건조(乾棗)를 앞에 놓고 율황(栗黃)과 진자(榛子)를 그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능인(菱仁)을 앞에 놓고 자인(茨仁)과 녹포(鹿脯)를 그다음에 놓는다.

 

- () 여덟 개는 오른쪽에 놓되,

세 줄로 벌여 놓아 왼쪽을 상으로 삼으며

- 첫째 줄은 구저(韭菹)를 앞에 놓고 담해(醓醢)를 그다음에 놓으며,

둘째 줄은 청저(菁菹)를 앞에 놓고 녹해(鹿醢)와 근저(芹菹)를 그다음에 놓으며,

셋째 줄은 토해(兎醢)를 앞에 놓고 순저(筍菹)와 어해(魚醢)를 그다음에 놓는다.

- ()와 궤() 두 개씩은 변과 두의 사이에 놓되,

보를 왼쪽에 놓고 궤를 오른쪽에 놓는다.

- 보에는 도()와 양()을 담되, 양을 도의 앞에 놓으며,

궤에는 서()와 직()을 담되, 직을 서 앞에 놓는다.

- () 하나를 보궤 앞에 놓고 - 시성(豕腥)을 담음

- () 셋을 조 앞에 놓으며 - 각기 점()이 있음

- 상준(象尊) 둘을 - 하나에는 현주(玄酒)를 담고 하나에는 청주(淸酒)를 담는다.

- 다 같이 작()과 멱()을 올려놓은 채로 단 위의 동남쪽 구석에 놓되,

향은 북으로 하고 오른쪽을 상으로 삼는다.

- 제품을 차려 놓을 때 무릇 앞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남쪽을 이름이다.

 

태상식례(太常式例)

매 위마다 백미(白米) 4() 5(), 직미(稷米) 45, 점속미(粘粟米) 6, 중포(中脯) 5(),

대구(大口) 3(), 율황(栗黃) 15, 대추 15, 호도(胡桃) 15, 건포도(乾葡萄) 15,

오미자(五味子) 15, 죽순(竹筍) 15, 소금 15, 청저(菁菹) 15, 근저(芹菹) 15,

구저(韭菹) 15, 녹해(鹿醢) 1() 8(), 담해(醓醢) 18, 토해(兎醢) 1(),

어해(魚醢) 1(), 청주(淸酒) 2, 백폐(白幣) 1(), 칠촉(七燭) 2(), 생시(牲豕) 1()으로 한다.

 

- 당 나라 제도에는 영성(靈星), 수성(壽星), 사중(司中), 사명(司命)

모두 소사(小祀)로 삼아서 변() 8, () 8, () 1, () 1, () 1씩으로 하였고,

 

송 나라 제도에는 각위마다 변 8과 두 8을 신위 앞에 좌우 세 줄씩 놓고 조 2를 변과 두 밖에 놓으며,

1과 궤 1을 조 사이에 놓고 상준 2를 단 위의 동서 구석에 놓되,

북으로 향하여 서쪽을 상으로 삼았다.

본조의 제향 의식은 당 나라와 송 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썼다.

 

진설도(陳設圖)

 

 

시일(時日)

오례의(五禮儀)입추 후 진일(辰日)에 영성(靈星)에 제사를 올리고

추분날에 노인성(老人星)에 제사를 올린다.

- 농사에서의 수확이 입추가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에 영성에 제사를 올리고,

추분날에 노인성이 병방(丙方)에 나타나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향관(享官)

오례의영성제(靈星祭)와 노인성제의 헌관(獻官)

모두 3품관 - 근시(近侍)의 정3- 전사관(典祀官)은 봉상시(奉常寺)의 관원 - 구임 낭관(久任郞官) - 집례(執禮)6- 내각 직각(內閣直閣) 이하 - 대축(大祝) - 내각 대교(內閣待敎)예문관 봉교(藝文官奉敎) 이하 - 과 축사(祝史)는 재랑(齋郞) - 음관(蔭官) - 찬자(贊者)와 알자(謁者) - 통례원(通禮院)의 관원 - 는 모두 참외(參外)로 한다.


신보(新補)협률랑(協律郞)은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로 한다.

 

재계(齋戒)

오례의

소사(小祀)에는, 산재(散齋) 2일은 정침(正寢)에서 자고 치재(致齋) 1일은 사소(祀所)에서 자는데,

모든 재관(齋官)은 산재에는 예나 다름없이 일은 보되 술을 마음대로 마시지 않고,

양념이 든 음식을 먹지 않고, 문상이나 문병을 가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고,

행형(行刑)을 하지 않고, 살인 문서를 처리하지 않고, 궂은일에 참여하지 않으며,

치재에는 오직 제사에 관한 일만을 거행하는데,

제사 이틀 전에 모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 뒤에 수교(受敎)로 인하여 산재 역시 공해(公廨)에서 하였다.

 

신위를 받들어 옴[奉神位]

신보(新補)

제사를 거행하기 하루 전날 이른 아침에 전사관(典祀官)

태상시(太常寺)의 신실(神室)에 나아가 문을 열고

헌관 이하의 제관들과 네 번 절을 올린 뒤에 신위를 받들고 나와

채여(綵轝)에 받들어 모시면, 한성부(漢城府)의 낭관(郞官)과 당부(當部)의 관원은 길을 치우며

전도(前導)를 하고, 전사관은 헌관의 후배(後陪)와 함께 신위를 받들고

단소(壇所)로 나아가는데, 제사를 치른 뒤 봉환할 때에도 역시 이러한 의식으로 한다.

 

향축을 받아 옴[受香祝]

신보(新補)

제사를 올리기 하루 전날 이른 아침에 헌관 이하 모든 제관이

각기 흑단령(黑團領)을 갖추어 입고 일제히 대궐 밖으로 나아가

- 전사관은 먼저 태상시로 나아감 - 시각이 되면

- 무릇 향축을 받아 내는 것은 다 진시(辰時)로 함

 - 헌관이 향실(香室)로 들어가서 준축(準祝)한다.

그런 뒤에 예방 승지(禮房承旨)가 향축을 받들고 전계(殿階) 위에 나와 꿇어앉아서

헌관에게 전하면 헌관은 꿇어앉아서 받아 모시고

정로(正路)와 정문을 통하여 나온다.

모든 제관들이 지영(祗迎)하고 나서 뒤를 따라 태상시의 신실로 모시고 나아가

신위소(神位所)에 안치하였다가 채여에 받들어 모시고 단소로 간다.

 

축판(祝版) 소나무로 만드는데,

길이는 12, 너비는 8, 두께는 6분이다.

자는 예기척(禮器尺)을 쓰며, 전교서(典校署)에서 미리 준비한다.

 

오례의(五禮儀)

유세차(維歲次) 간지(干支) 모월(某月) 간지 삭() 모일(某日) 간지에 조선국왕 신 성모(姓某) 휘모(諱某)는 감히 영성의 신에게 분명히 고합니다. - 관원을 보내어 제례를 거행할 경우에는 삼가 신 아무 관직의 아무개를 보내어라는 말을 넣음 노인성에도 마찬가지임 - 삼가 생각건대 말없이 자연의 조화를 관리하시어 삼농(三農)이 잘되게 하여 주시고 정갈한 제사에 감통하시어 온갖 복을 많이 내려 주셨기에, 삼가 생폐(牲幣)예제(醴齊)자성(粢盛) 등의 조촐한 제품(祭品)으로 정갈히 차려 올리는 바입니다. 굽어 흠향하소서.


※노인성 축문

유세차 간지 모월 간지 삭 모일 간지에 조선국왕 신 성모(姓某) 휘모(諱某)

감히 남극 노인성의 신에게 분명히 고합니다.

남극에 거처하시며 장수의 조짐을 밝게 보여 주시고

수명의 연장을 도와주시어 이토록 장수를 누리게 되었기에,

삼가 생폐예제자성 등의 조촐한 제품으로 정갈히 차려

올리는 바입니다. 굽어 흠향하소서.

 

 

 

 

희생과 제기를 살펴봄[省牲器]

오례의(五禮儀)

소사(小祀)에는, 제사를 올리기 하루 전날 장생령(掌牲令)이 희생을 몰고 제소(祭所)로 나아가면,

미시(未時) 3()에 전사관(典祀官)이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제단의 안팎을 소제하고,

알자(謁者)가 헌관을 인도하는데, 모두 평상복을 갖추어 입고 희생이 충실한가를 살펴본 다음,

주방으로 나아가 제기와 제구의 세척 상태까지를 살펴보고 나서

각기 재소(齋所)로 돌아가고, 저물녘에 전사관이 재인(宰人)을 거느리고 희생을 잡는다.

 

진설(陳設)

오례의(五禮儀)

제사를 올리기 하루 전날 전사관(典祀官)이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제단의 안팎을 소제하면,

전설사(典設司)는 여러 제관의 석차를 설정하고 또 찬만(饌幔)을 설치하되 모두 동문 밖에다

지형의 편의에 따라 설치하고, 전사관은 제단 위에 신좌를 설치하되

북쪽에다 남향으로 하여 돗자리를 깔며,

집례(執禮)는 헌관의 자리를 제단 아래 동남쪽에다 서향으로 설치하고,

음복위(飮福位)는 제단 위 남폐(南陛) 서쪽에다 북향으로 설치하고,

집사의 자리는 헌관의 뒤 조금 남쪽에다 서향으로 설치하되 북쪽을 윗자리로 하고,

집례의 자리는 제단 위에다 설치하고,

찬자(贊者)와 알자(謁者)의 자리는 모두 제단 아래 동쪽 가까이에다 설치하되 서향에 북쪽을 윗자리로 하고,

협률랑(協律郞)의 자리는 제단 아래에다 서쪽 가까이 동향으로 설치하고,

 

악공(樂工)의 자리는 협률랑의 남쪽에다 설치하되 북향에 동쪽을 윗자리로 하고

- ()을 가장 동쪽에 놓고 그다음에 고(), 차수적(叉手笛), 횡취적(橫吹笛) 순으로 놓음

- 무동(舞童)의 자리는 악고의 서남쪽에다 두 줄로 북향으로 설치하고

-‘협률랑의 자리를 제단 아래에 설치한다에서부터 두 줄로 북향으로 한다까지는 새로 보충한 것임

 

- 여러 제관의 문밖 자리는 동문 밖 길 남쪽에 설치하되,

관등마다 위차를 달리하고 두 줄로 하여 북향에 서쪽을 윗자리로 한다.

또 장작은 요단(燎壇)에다 쌓고 망료위(望燎位)는 요단의 북쪽에다 설치하며,

헌관은 북쪽에서 남향을 하고 집례와 찬자, 대축(大祝)은 동쪽에서 북쪽을 윗자리로 삼아 서향을 한다.

- 찬자와 대축은 조금 뒤로 함 -


제사를 올리는 날은 제사가 거행되기 이전에

전사관이 그의 소속을 거느리고 들어가서 축판을 신위의 오른쪽에다 올려놓고

- 잔대[]가 있음 - 폐백 그릇을 준소(尊所)에다 벌여 놓고,

향로향합과 촛대를 신위 앞에 배설(排設)하며, 다음에 제기를 예식대로 배설하고,

복주 잔과 - 잔대가 있음 - 음복 그릇 한 개씩을 준소에 배설한다.

또 제단 아래 동남쪽에다 북향으로 세위(洗位)를 설치하는데

- 관세위(盥洗位)는 동쪽에, 작세위(爵洗位)는 서쪽에 설치함

-, ()는 작()을 올려서 세위 동쪽에다 놓고 비()는 세위

서남쪽에다 벌여 놓되 수건과 술잔을 담아 놓으며,

여러 집사의 관세위는 동남쪽에다 북향으로 설치하고

집준자(執尊者)집뢰자(執罍者)집비자(執篚者)집멱자(執冪者)의 자리는 준멱의 뒤에 설치한다.

 

제사를 거행하는 의식[行祀儀]

오례의(五禮儀)

제사를 거행하는 날 축시(丑時) 5()

- 축시 전 5각이란 곧 3() 3()이며, 행사는 축시 1각에 함

- 전사관이 들어가 찬구(饌具)를 다 담고 나서는 물러나

각기 제자리로 가서 제 옷으로 갈아입고 올라가 신위판을 신좌에 배설한다.


3각에 모든 제관이 각기 제 옷으로 갈아입는다.

집례가 찬자와 알자를 거느리고 먼저 제단 남쪽의 배위(拜位)에 나아가

두 줄로 북향에 서쪽을 윗자리로 하고 서서 네 번 절을 올린 다음 제자리로 나아간다.

 

전악(典樂)이 박()을 쥐고 악공 - () 1, 차수적(叉手笛) 2,

횡취적(橫吹笛) 2- 과 무동(舞童) - 16- 을 거느리고 들어가 제자리로 나아간다.

- ‘전악에서 제자리로 나아간다까지는 새로 보충한 것인데,

이 아래의 음악을 연주한다’, ‘음악을 그친다등의 구절도 이와 같음

- 알자가 여러 제관을 인도하고 함께 문밖의 자리로 나아간다.


1각에 알자가 전사관대축축사재랑협률랑을 인도하여

제단 남쪽 배위로 들어가서 두 줄로 북향에 서쪽을 윗자리로 삼아 정위치에 선다.
집례가 사배(四拜)’라고 외치고 찬자가 이를 받아 전창(傳唱)하면

- 집례의 말에는 찬자가 다 전창함 - 전사관 이하 모두 사배를 한다.

알자가 모든 집사를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아가서 관세를 마치고 각기 제자리로 나아간다.

- 모든 집사는 오르내릴 적에 동폐(東陛)를 이용함

- 재랑이 작세위로 나아가 술잔을 씻고 닦은 다음,

광주리[]에 담아 받들고 준소로 나아가 잔대[]에다 올려놓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들어가서 제자리로 나아가게 한 다음,

다시 헌관의 왼쪽으로 나아가 유사에게, “삼가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제사를 거행하소서.”라고

아뢰고서는 물러나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집례가 사배라고 외치면 헌관이 사배를 한다.

 

집례가 행전폐례(行奠幣禮)’라고 외치면,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俯伏)을 하고 나서는

()를 들고 일어나 음악을 연주하여 천자무(天字舞)를 추어 올린다.

- 음악은 여섯 박자이고 춤은 여섯 바퀴를 돎

 

-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관세위로 나아가서 북향으로 서서 홀()을 꽂도록 도와주고,

헌관이 손을 씻고 닦고 나면 홀을 잡도록 도와주고,

제단 위로 인도하여 나아가되 남폐로 올라가

신위 앞으로 나아가 북향하고 서서 꿇어앉아 홀을 꽂도록 도와준다.

 

집사자 한 사람은 향합을 받들고 한 사람은 향로를 받들고 나서는 앞으로 나아간다.

알자가 헌관을 도와 향불을 세 번 올리게 한다. 집사자가 향로를 신위 앞에 올린다.

대축이 폐백 광주리를 헌관에게 건네주면 헌관이 폐백을 받아 헌폐(獻幣)를 하는데,

폐백을 대축에게 건네주면 대축이 신위 앞에 받들어 올린다.

- 향로를 받들거나 폐백을 건네주는 자는 헌관의 오른쪽에 서고 향로를 받들어

올리거나 폐백을 받들어 올리는 자는 헌관의 왼쪽에 서는데,

술잔을 건네주거나 받들어 올릴 때에도 이에 준함

 

- 알자가 헌관을 도와 홀을 쥐고 부복을 하고 일어나 상체를 펴게 한 다음,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협률랑이 휘를 눕히고 음악을 그친다.


집례가 행초헌례(行初獻禮)’라고 외치면,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을 한 다음 휘를 들고 일어나

음악을 연주하여 하자무(下字舞)를 추어 올린다.

- 음악은 여섯 박자이고 춤은 여섯 바퀴를 돎

-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폐로 올라가서 준소(尊所)로 나아가 서향으로 선다.

집준자가 멱()을 들어 올려 내려놓고 술을 따르면 집사자가 술잔으로 술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으로 나아가 북향으로 서서는 꿇어앉아서 홀을 꽂도록 도와준다.

 

집사자가 술잔을 헌관에게 건네주면 헌관이 술잔을 잡고 헌작(獻爵)을 하는데,

술잔을 집사자에게 건네주면 집사자가 신위 앞에 받들어 올린다.

헌관을 도와 홀을 쥐고 부복한 다음 일어나 조금 물러서서 북향으로 꿇어앉게 한다.

- 음악을 그침

 

- 대축이 신위의 오른쪽에 나아가 동향으로 꿇어앉아 축문을 읽어 마친다.

- 음악을 연주함

- 알자가 헌관을 도와 부복을 하고 일어나 상체를 펴게 한 다음,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협률랑이 휘를 눕히고 음악을 그친다.


집례가 행아헌례(行亞獻禮)’라고 외치면,

협률랑이 꿇어앉아 부복을 한 다음 휘를 들고 일어나 음악을 연주하여 태자무(太字舞)를 추어 올린다.

- 음악은 여섯 박자이고 춤은 여섯 바퀴를 돎

 

-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올라가서 준소로 나아가 서향으로 선다.

집준자가 멱을 들어 올려 내려놓고 술을 따르면 집사자가 술잔으로 술을 받는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으로 나아가 북향으로 서서는 꿇어앉아 홀을 꽂도록 도와준다.

집사자가 헌관에게 술잔을 건네주면 헌관이 술잔을 잡고 헌작을 하는데,

집사자에게 술잔을 건네주면 집사자가 신위 앞에 받들어 올린다.

알자가 헌관을 도와 부복을 하고 일어나 상체를 펴게 한 다음,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협률랑이 휘를 눕히고 음악을 그친다.


집례가 행종헌례(行終獻禮)’라고 외치면,

협률랑이 꿇어앉아서 부복을 한 다음 휘를 들고 일어나 음악을 연주하여 평자무(平字舞)를 추어 올린다.

- 음악은 여섯 박자이고 춤은 여섯 바퀴를 돎

-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아헌례와 똑같은 의식으로

종헌례를 거행하고 나서 인도하여 내려와서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협률랑이 휘를 눕히고 음악을 그치면 악공과 무동이 물러간다.


집례가 음복수조(飮福受胙)’라고 외치면,

집사자가 준소에 나아가 술잔에다 복주(福酒)를 따르고

또 집사자가 적틀[]을 들고 나아가 신위 앞에서 음복하고 고기를 덜어 낸다.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남폐로 올라가서

음복위에 나아가 북향으로 서서는 꿇어앉아 홀을 꽂도록 도와준다.

집사자가 헌관의 오른쪽으로 나아가 서향을 하고서 술잔을 헌관에게 건네준다.

헌관이 술잔을 받아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면

집사자가 빈 술잔을 받아 잔대[]에다 도로 갖다 놓는다.

 

집사자가 서향을 하고서 적틀을 헌관에게 건네주면

헌관이 적틀을 받아서 다시 집사자에게 건네주고

집사자는 적틀을 받아 가지고 남폐로 내려와 문을 나온다.

알자가 헌관을 도와 홀을 쥐고 부복을 하고 일어나 상체를 펴게 한 다음,

인도하여 내려와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집례가 사배라고 외치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네 번 절한다.
집례가 철변두(徹籩豆)’라고 외치면, 대축이 앞으로 나아가 변두를 철수한다.

- 철수란 변두를 하나씩 본래 놓았던 곳에서 조금 물리는 것임

- 집례가 사배라고 외치면, 헌관이 네 번 절한다.


집례가 망료(望燎)’라고 외치면,

알자가 헌관을 인도하여 망료위(望燎位)로 나아가서 남향으로 선다.

집례가 찬자를 거느리고 망료위로 나아가 서향으로 선다.

대축이 광주리에 축판과 폐백을 담아 가지고 서폐(西陛)로 내려와

요단(燎壇)으로 나아가서 장작더미 위에다 올려놓는다.

집례가 가료(可燎)’라고 외친다. 장작이 절반쯤 타면

알자가 헌관의 왼쪽에 나아가 망료례가 끝났음을 아뢰고

드디어 헌관을 인도하여 나온다. 집례가 찬자를 거느리고 본 자리로 되돌아온다.

알자가 전사관과 모든 집사를 이끌고 함께 제단 남쪽 배위(拜位)로 되돌아와 정위치에 선다.


집례가 사배라고 외치면, 전사관 이하 모두 네 번 절한다.

절이 끝나면 알자가 이끌고 나온다. 집례가 찬자와 알자를 거느리고

제단 남쪽 배위(拜位)로 나아가 네 번 절하고 나온다.

전사관이 그 소속을 거느리고 신위판을 간직하고 예찬(禮饌)을 철수하여 가지고 내려와 물러간다.

 

주례(周禮)에 보면

모든 국가가 소사(小祀)에 종고(鐘鼓)를 연주하도록 되어 있으니,

이것이 소사에 음악이 있었다는 증거요,

 

한 고조(漢高祖)가 봄가을로 영성에 제사를 올릴 적에 남자 무동이 16인이었으니,

이것이 영성의 제사에 음악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오직 당() 나라의 제도에만 영성 및 사중(司中)사명(司命)의 제사에 다 같이 음악을 쓰지 않았으니,

국조오례의에서 영성과 수성의 제사에 음악을 쓰지 않은 것 역시

당 나라의 제도를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한 나라의 제도를 좇아

음악은 속부(俗部) 음악을 쓰고 춤은 동남(童男)으로 2()을 써서 관헌(祼獻)의 절차나 맞출 따름이니,

곧 토고(土鼓)와 빈가(豳歌)로 전부(田夫)와 만물(萬物)을 쉬게 해 준다는 주례의 본뜻이다.

 

영성 악가(靈星樂歌) 춤 한 바퀴에 한 번 부름

()()()()()()의 역할이 잘 수행되며,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의 정책이 잘 조화되어서

아홉 가지의 일이 저마다 순조롭기에 이 순조로움을 노래하도다.

 

수성 악가(壽星樂歌) 춤 한 바퀴에 한 번 부름

변함없는 달과 같으며,

떠오르는 해와 같으며,

영원한 남산과 같아서 기울지도 않고

너지지도 않을 것이며,

무성한 송백(松柏)과 같아서

행여라도 송백처럼

면면히 이어지지 않음이 없으소서.

 

여섯 번 도는 춤사위[六轉舞勢]

좌전(左轉) - 사표(四表)의 주위를 한 바퀴 다 돎

-, 우전(右轉) - 사표의 주위를 한 바퀴 다 돎

-, 앙전(仰轉) - 사표의 주위를 한 바퀴 다 돎

-, 부전(俯轉) - 사표의 주위를 한 바퀴 다 돎

-, 추전(趨轉) - 중앙으로 뛰어나감

-, 정전(定轉) - () 자로 정위치에 벌여 섬

-()이란 얼굴을 돌리고 나서 몸을 돌리는 동작으로,

그 뜻은 시경(詩經)관저(關雎)에 보인 전전(輾轉)’에 근거한 것이요,

()()()()의 사무(四舞)를 육세(六勢)로 하여

24()에 맞춘 것은 음악이 여섯 번 변하여야 천신(天神)이 내리기 때문이다.

 

영성에 제사를 올릴 적에는 무동이 구서(九敍)의 노래를 제창하고

수성에 제사를 올릴 적에는 무동이 천보(天保)의 노래를 제창하되,

모두 관적(管笛)으로 화답하고 고박(鼓拍)으로 조절한다.

- 춤 한 바퀴에 박 한 번, 고 한 번임 -

※ 번역자료 인용: 한국고전종합DB 

 <춤 사위>

 천하무

 

  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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