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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7코스

섬 바람, 섬 풍경

by 相民 윤봉택 2022. 5. 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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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8. 28.

제주올레 7코스

 

2022년 1월 6일 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에

격로 제주올레 26코스 28개 노선에 대하여 연재를 합니다.

 

그 연재 중 8번째 6코스 내용을 이곳에 링크합니다. 

 

제주의소리  섬에서 섬을 잇는 제주올레 7코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 매거진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서귀포신문 섬에서 섬을 잇는 제주올레 7코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지난 2021828일 마지막 토요일에는

제주올레 7코스를 걸었습니다.

 

오전 0906

서귀포올레 여행자센터, 제주올레 7코스 출발점에 도착하여

오늘 함께 하시는, 손미숙. 김소현. 허정옥(언니) 5명이 함께 출발하여

 

1340분, 강정동 썩은섬 해안 인증샷

1654분, 종점, 월평동 아웨낭목에 도착하였습니다.

 

올레를 순례하면 살피는 문화 흔적 자료는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 남제주군 고유지명(1996), 북제주군지명 총람(2006)을 근간으로,

그리고 관련 지역 향토지와 읍면지, 마을 소개 자료를 인용하여 살피며

마을 주민 원로를 만나 의견을 구하고 있습니다.

 

제주올레 7코스는 제주올레센터에서

월평마을 아웨낭목 까지 17.6km, 45리 올레이다.

 

서귀포시 서귀동. 서홍동. 남성동. 호근동서호동. 법환동. 강정동. 월평동 등

여덟 마을에 이르는 올레이며, 올레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코스 중 하나이다.

 

7코스 함께 살피는 유산은 아래와 같다.

 

1. 제주올레여행자센터

2. 서문로터리

3. 작지왓

4. 연외천

5. 칠십리시공원

 

6. 답논물(서홍동 578-3)

7. 알걸매

8. 구답물(663-2)

9. 큰밧(서홍동 644-12)

10. 비석(김춘택)(서홍동 745-1)

 

11. 질매턱(서홍동 827)

12. 삼매봉

13. 남성정

14. 남성대
15.

 

16. 동너븐덕(서홍동 795-1)

17. 선녀탕

18. 신선바위

19. 자리덕/기차바위.(서홍동 797)

우두암/무근덕

20. 할미개(서홍동 793)

고초간덕(서홍동 790)

 

21. 외돌개/장군석

22. 쇠머리코지

23. 도라간덕(호근동 362)

24. 물우정(호근동 375)

25. 언벵이안내(호근동 378)

 

26. 가릿여/형제섬(호근동 1607-2)

27. 돔베낭골(호근동 1619)

28. 서귀여고

고장남밧(호근동 485)

29. 속골

30. 연동연대

 

31.

32. 주거물깍

33. 주거물 요드렛당(법환동 100)

34. 신통개 (법환동 120-1)

35. 일냉이

 

36. 일냉이당(법환동 151)

37. 공물깍(법환동 158)

38. 망다리(법환동 301)

39. 소장앞(법환동 297)

주서물(법환동 290-1)

40. 막숙

 

41. 법환포구

42. 동가름물

43. 섯가름물

44. 써을(법환동 163-7)

45. 앞본향당(법환동 168)

 

46. 뱀주리(법환동 1444)

47. 오다리(법환동 1517)

48. 앞바르(법환동 1520)

49. 흰돌밑(법환동 1527)

50. 도리술(법황동 1534)

 

51. 두머니물

 

속동개코지(강정동 722)

53. 너븐물

54. 새포수전소

55. 써근섬

 

56. 논캐왓(강정동 763-1)

57. 논구석(강정동 2550)

58. 수누리코지(강정동 2590)

냇깍동쪽에 있는 코지의 이름이다. ‘봉등이소동쪽에 있는 코지()’을 말한다.

59. 지서여

60. 악근내/아끈내

악근천을 소가내천(小加內川), 소가래천(小加來川). 악근천(嶽近川), 악근내로 불려왔다. 강정에서 큰내를 지나 동쪽으로 약 200m쯤 더 나가면 큰내만큼 물은 많지 않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사계절 연중 흘러내리는 하천이 있는데 이것이 악근천이다. 내의 크기가 큰내에 비하여 작지만 큰내에 버금간다 하여 아끈내라 불렸다. ‘아끈은 버금가는 또는 다음의 제주어이다.

 

61. 봉등이소 강정동 2611번지 해안으로, 아끈내 깍에 있다.

62. 멧뿌리

63. 큰내/강정천

강정천은 대가내천(大加內川), 대가래천(大加來川), 강정천(江汀川), 큰 내(大川) 등으로 불려왔다.

64. 냇깍

강정동 26924번지 지역이다. 강정천 하류, 흘러온 냇물이 바다로 떨어지는 지점 일대를 냇깍이라고 한다. ‘은 끝의 의미를 갖는 제주어이다.

65. 너븐덕

66. 올림은어통살

포제단

67. 제베낭소

68. 왕돌메기소

69. 소도릿도(강정동 2672-3)

70. 강정교

 

71. 진소

72. 상청밧(강정동 2835-3)

73. 솔대왓

54. 솔대

75. 몰질

 

76. 보재기도루

강정동 4678번지와 4679번지 사이에 있다. 크루즈터미널

77. 마희천연대

78. 개구럼비코지

개구럼비코지

모살덕너븐덕사이에 있는 코지의 이름으로, 기지 내 잠수함 기지 서쪽 끝이다.

79. 큰구럼비

구엄비는 강정동 2731번지부터 4670번지까지의 논이 있는 곳을 말하며, 지금은 구럼비라고 부르고 있다. 기지 진입로 위병초소 남쪽 지역의 좌우 구역이다.

구럼비를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개구럼비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는데, ‘큰구럼비는 강정동 2731번지 중심에 조근구럼비는 강정동 4670번지에 있으며, 개구럼비는 큰구럼비의 동남쪽 해안가에 있다.

큰구럼비’,개구럼비는 강정천 냇길이소에서 보를 설치하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다가 논농사를 지었다. ‘조금 구럼비큰강정물을 이용하였다.

80. 조근구럼비

강정동 4670번지 지역으로 크루즈터미널 동쪽 지역이다.

 

81. 중덕

서문의안통진소깍사이에 있는 갯가 이름이다. 강정동 2748-1번지 앞쪽으로, 기지 내 연병장 위치가 중심된다.

82. 물터진개/금삭포

큰여서문의안통사이에 있는 이름이다. 강정동 2750번지 앞쪽으로, 해군기지 연병장 서쪽 축구장으로 고지도에는 금삭포(金索浦)로 표시되었다.

구럼비동산

위치: 솔대왓에서 중덕구럼비로 통하는 농로 따라 동남쪽으로 가면 상청밧이 나오는데, ‘상청밧동동남쪽의 동산을 가리킨다. 강정동 2797번지로써, 기지 내 진입로 위병초소 위치이다.

83. 솔박여(크루즈 사무실)

84. 세별당(강정동 4683-1)

85. 세벨동산(강정동 4695)

 

86. 해오름질

87. 세벨 물레방앗간 강정동 4965번지에 있다.

88. 강정 환해장성/개경담

89. 등명대

90. 강정포구

 

91. 왕부리덕

92. 모살원

93. 세벨코지

강정마을 앞바다에 있는 코지의 이름이다. 그 서쪽에 있는 드러물코지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 강정동 4968-1번지 앞이다.

94. 정의논깍

드러물코지새별코지사이에 흘러드는 냇가 하류이며, 강정동 4969번지 지역이다.

95. 드러물깍(강정동 5019-1)

 

96. 강정 큰바량 환해장성(강정동 5012)

99. 안강정(강정동 5091)

101. 안강정개/자오락개(강정동 5077)

102. 빈녀코지 불턱(강정동 5627)

103. 빈녀코지 소금밧(강정동5623)

104. 빈녀코지(강정동 5114)

105. 수리덕(강정동 5620)

 

106. 동물작지(강정동 5615)

107. 동물개(강정동 5614)

108.

109. 문들개(월평동 665-6)

110. 큰기정(월평동 671~712)

 

111. 볼레낭도랭이(월평동 534)
112. 쇠코(월평동 534)

113. 저승문구녕(월평동 686)

114. 성창굴왓

115. 행기소(월평동 540-1)

 

116. 진꾼내 일뤳당

진꾼내 요드렛당

117. 본향 성창골당(월평동 527)

118. 짐꾼내(월평동 780)

119. 통물

120. 아웨낭목

7코스 종점

 

제주올레여행자센터

본래 이 건물은 1981년~2008년까지 병원 시설로서 인간의 육신의 병을 다스렸었으나

제주올레에서 이 건물을 매입하여 2016년 3월 부터 7월까지 사람을 치유하는 센터로 리모델링하면서

2016. 7. 20. 제주올레여행자센터로 문을 열었다.

오전 09 06서귀포올레 여행자센터, 제주올레 7코스 출발점에서 출발

오늘 함께 하시는, 손미숙. 김소현. 허정옥.(언니) 5명이 함께 갑니다

서귀포 시내권역을 모두 살필 수 있는 삼매봉

본래 이곳 정상에는 삼매봉수가 있어, 왜적의 침입을 살피었었다. 동쪽으로는  5코스에 있는 예촌망 호촌봉수와 서쪽으로는 하원마을 구산봉수와 교신을 했다.

이 삼매봉은 예 부터 무병장수의 별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남성대南星臺가 있었는데 1969년도에 소암선생의 휘호로 복원 되었고, 1968년도에는 총공사비 1백만원을 투자하여 서귀읍에서 산남지역에서는 최초로 남성정南星亭을 세웠는데, 산남지역의 누정문학樓亭文學을 꽃피운 곳이다. 문화의 꽃은 문학이다. 

서문로터리(3호광장) / 작지왓

1960년대 동산 주변은 모두가 밭이었다. 작지(자갈의 제주어)가 많아 작지왓이라 하였다. '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서귀동 / 서귓개/서귀포(西歸浦)>서귀ᄆᆞ을/서귀리(西歸里)>풍덕리(豊德里)>서귀리(西歸里)>송산동(松山洞),정방동(正房洞), 중앙동(中央洞), 천지동(天地洞)

서귀교

천지연폭포 바로 위이다. 2000년대 초 까지만 하여도 이 하천을 건너는 세월교가 있었다. 

서귀포칠십리시공원 /남성마을/삼매봉

잔디광장 넘어로 삼매봉이다.

여기서부터는 남성마을이다. 삼매봉 동쪽 지형에 설촌된 자연부락으로서 법정동은 서홍동, 행정동은 천지동에 속한다.

 

남성마을; 남극노인성의 마을로서 장수마을이다.

주어동/주엇벵듸/쥇벵듸/주어동(走魚洞)/1963년부터 남성리(南星里)/1966년부터 서홍2리/서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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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봉/사명/삼매양봉수/삼매망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삼매양봉수는 정의현 서쪽 80리 있으며, 대정현에 있는 거옥악봉수와 교신"을 하였다고 하였으며, 또한 "삼매봉은 정의현 서쪽 30리에 있으며, 오름 가운데는 많은 논들이 있는데 대지(大池)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대지는 지금의 하논을 가리킨다.

탐라지(1653)에는 ?삼매봉은 정의현 서쪽 75리에... " 또한 제주대정정의읍지에도 "삼매봉은 정의현 서쪽 75리에 있다"고 되어 있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매봉이 정의현 서쪽 30리에 있다고 한 기록은, 표기상의 잘못된 것이다.

이곳에 삼매양봉수가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탐라순력도(1702)의 서귀조점(西歸操點)에는 삼매양봉수 위치가 삼매봉 정상에 있었음을 살펴 볼 수가 있을 뿐, 그 자리에는 지금의 남성정이 세워져 있어 봉수대의 흔적은 남성정남쪽에 약간의 기단부가 남아 있다.

제주삼읍봉수연대급장졸총록(濟州三邑烽燧烟臺及將卒摠錄)에 보면 "서귀진에 소속된 삼매양봉수는 동쪽으로는 호촌(狐村)봉수와 서쪽으로는 대정현 귀산(龜山)봉수와 연락하였고, 별장 6명과 직군 12명이 근무했었다(西歸鎭所掌...三每陽烽燧 東應狐村 西應大靜龜山 別將六人 直軍十二名)"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서귀진에 소속된 봉수와 연대는 자배(위미리), 호촌(하예리), 삼매양봉수와 금로포(남원리), 우미(위미리), 보목(보목동), 연동(서호동)연대등이다.

1899(광무 3)에 작성된 정의군고지(旌義郡古誌)에는 ?정의군 관내 10(남산, 독자, 달산, 토산, 수산, 성산, 지미, 자배, 호촌, 삼매양) 봉수대와 11(말등포, 천미, 소마로, 벌포, 협자, 오조포, 종달, 금로포, 우미, 보목, 연동)연대 모두가 없어졌다?고 되어 있다.

주변 : 삼매봉은 서귀포시민들의 소중한 쉼터가 되고 있다. 삼매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다만 차도가 비좁기 때문에 교행하기가 조금 불편할 뿐, 정상에는 생활 체육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서, 시민들의 충분한 휴식 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전경이 매우 수려하여 이 고장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도 즐거움을 더해 주고 있다.

아울러 주변에는 외돌개와 구프린스호텔 해변가 등 볼거리가 많으며, 봉우리 자락에는 서귀포시에서 운영하는 종합문예진흥사업소와 기당미술관 등이 있다.

탐라순력도(1702년)<서귀조점>

그림 좌측 위에 삼매양 봉수가 그려 있다. 

구경천동산

현재 진고개식당에서 천지연 하천변 까지이다.  천지연이 옆에 있고 구경하기 좋게 높은 동산이 있어 구경천동산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평지로 공원 조성되어 있다.

답논물

서홍동 578-3번지이다.  물통같이 생긴 논에서 나는 물이라 해서 답논물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알걸매

서홍동 597번지 주변이다.  남성마을 진입로 변의 논 있는 곳을 말한다. ‘은 아래의 제주어이다.

걸매의 걸은 거渠이며 도랑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매/메'는 물이 내려오다가 막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도로 위는 웃걸매, 도로 아래는 알걸매, 도랑의 발원지인 하논 입구를 '걸매목'이라 부르며 올레7-1코스에서 살필 수 있다. 북서쪽에서는 천지연폭포가 보인다.

천지연폭포

서귀포칠십리시공원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늘 무지개와 함께 나들이 오신다.

구답물

서홍동 663-2번지 주변이다. 게이트볼장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논농사를 지었던 논으로서, 그 논가에서 나오는 물이라 하여 구답물(舊沓)’이라 부른다. 이 주변의 논들은 이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으며, 현재는 작은 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 물은 서귀포 천지연 내에 있는 무대 뒤 절벽으로 흘러 내린다.

덕판배

탐라 원형 배의 모습이 덕판배였는데, 2012년 탐라문화제 축제때 컨텐츠 발굴로 만들어진 산물이 덕판배였다. 

공무원 전화 통화로 이룩한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 7대자연경관 인증식을 기념하며 26억을 투자했던 탐라대전의 산물 덕판배는 2억5천만원의 가설건축비가 투자되었고, 이 덕판배는 결국 서귀포로 이설되어 현재까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덕판배

앞으로 가설 건축물 덕판배를 철거하여 이곳에 알찬 예술문화공간 탄생을 기대하여 본다.

큰밧

서홍동 644번지이다.  주어동/남성마을에서 제일 큰 밭이라서 큰밧이라고 부른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현재는 분할되어 이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담밧 /김춘택

프린스호텔 바로 서쪽으로 서홍동 746-1번지 주변이다.  43사건 때 성을 쌓느라고 돌을 다 가져가 버려서 담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곳에만 유일하게 담이 쳐져 있어서 담밧이라 부른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현재 묘소 비명은 1706년 제주에 유배 왔던 <별사미인곡>의 저자 북헌 김춘택의 동생 김복택 이가 짓고 쓴 고만첨의 묘비명이 있다.

 

김복택 비문(전면)

SGI연구원 입구 우측에 있다.(고증 김익수 문화재위원)

 

질매턱

큰 삼매봉과 작은 삼매봉 사이의 공간을 가리키며 서홍동 624번지 주변이다.  소의 등에 짐을 실을 수 있게 걸치는 것을 질매라고 하는데 큰 삼매봉과 작은 삼매봉 사이의 지형이 마치 짐을 싣는 질매같이 생겼다고 하여 질매턱이라 한다.

 

삼매봉 해안

'질매턱'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삼매봉 해안 가운데 '동너븐덕. 선녀탕' 해안이다.

올레를 순례하시는 가족 여러분요

걸으시다가 잠시 쉬실 때는 발바닥과 발가락을 주물러 보셔요.

하면 참 좋아요. (삼매봉 남성정 옆 안내판 자료 인용)

남성정

1968년 산남(한라산 남쪽)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세워진 누정이다. 누정은 누정문학을 꽃피우는 산실이다. 이 남성정 위호는 서예대사이신 소암 현중화 선생께서 휘호하신거다. 1968년 그 어려웠던 시절에 당시 이 고장 선비들은 남극노인성의 정기를 받아 오래도록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이곳에다가 남극노인성을 바라볼 수 있는 남성정 정자를 서귀읍에서 세웠는데, 당시 공사비는 1백만원이었으며, 1960년 건축된 공공 건축물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남극노인성은 서귀포시 해안에서만 바라볼 수가 있는 별이다.

이 별은 겨울철 별자리로서, 9월 20일 춘분 부터3월 20일 춘분까지만 보이는 별이다. 이 별을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하며, 토정비결 저자 토정 이지함은 이 별을 보기 위하여 백록담에 세번이나 올랐었다.

서귀포에서는 붐가을 두 차례 노인성제를 지낸다.

남성정

현판 남성정은 소암 현중화 선생의 휘호이며 1968년도에 쓰여진 현판이다.

남성대/노인성

 1969년도에 복원되었다. ‘노인성은 남극노인성으로 노인성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서귀진과 남성대이다. 남성대는 삼매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 동쪽 능선이며 표석이 세워져 있다.

남성대가 세워진 것은  노인성(老人星)’이 이곳에서가 자장 선명하게 잘 보이기 때문이며,  서귀포가 아름답고 살기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노인성의 정기가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충암의 풍토록(風土錄)에 의하면 "한라산에 올라 남극의 노인성을 굽어보면 크기가 샛별같고 일명 호남(弧南)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의 남극 축에 있어 하늘 위에 나오지 아니한다. 만약 하늘에 나타나면 그것을 본 사람은 인덕이 있고 수명장수한다?고 하였으며, "오직 한라산과 남악(南嶽-중국 호남성에 있으며, 衡山이라고도 함)에 올라서야만 노인성을 볼 수가 있다?고 하면서 제주인들의 장수를 부러워하였다.

아울러 청음의 남사록(南槎錄)에 의하면 "내가 이 지방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남극(南極)노인성은 오직 봄, 가을이 나눠질 때에 노인성의 절반 정도만 바라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보다 앞서 심연원 (14911558)과 이토정 (15171578)등 두 사람이 보았다고 하나, 지금 노인성을 바라볼 수가 없어서 참으로 애석하다"고 하면서 다음의 한 수를 남겼다.

 

노인성

 

남쪽 하늘 다한 곳에 신령스런 별 있으니

호남이란 이름은 옛날대로 부르네

새벽에 바라볼 땐 깨어진 달인 듯 의심되고

저녁에 볼 때는 밝은 등불 안긴 듯 하네

나라에서 별을 보면 상서로움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그 별을 보면 장수를 축복하네

오직 중원의 형산과 한라를 떠나서는

일찍이 노인성을 본 일이 없다하네.

 

1841년 제주목사를 지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는 서귀진에 머물면서 새벽에 노인성을 기다리며 숙서귀진효견노인성(宿西歸鎭曉見老人星)”이란 시를 남겼으며, 남극설(南極說)과 답류은노서(答柳殷老書)에서 세종때에 윤사옹(尹士雄)이란 역관을 파견하여 한라산에 올라 노인성의 고도를 관측케 했다고밝히고 있어, 나라에서도 노인성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음을 엿 볼 수가 있다.

주변 : 지금도 서귀포 삼매봉 위에는 팔각정자와 남성대(南星臺)’가 세워져 있어 우리 고장 사람들이 노인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삼매봉 입구 마을 이름 또한 남성리(南星里)이다.

남성대

후면에는 현화진 선생의 시가 새겨 있다.

삼매봉 해안으로 내려서는 올레 계단

선녀탕/할미개

항우지/존작지/항우지해안 열두동굴/제기통/선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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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지

 주어동 서쪽 바닷가이며 지금의 SGI 연수원 남쪽 해변을 가리킨다. 서홍동 750-2번지 남쪽이다.

지형이 풍수지리상으로 황우도강형이라 하여 황우지로 부르며, ‘안황우지밖황우지로 구분된다.

지난 날 이 곳에 소, , 염소 등을 방목하여 사육하기도 했었으며, 주변에는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195호 서귀포층 패류화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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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작지

안황우지밖황우지사이를 말하며 서홍동 763번지 앞 해안이다.  작은 자갈들이 많이 있어서 존작지라 부른다. ‘은 작다의, ‘작지는 자갈의 제주어이다.  바로 옆에 황우지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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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동굴

2차 세계대전시 일본인들이 잠수함, 함포 등 군사 방어 기지로 사용하려고 파 놓은 굴이다. ‘황우지옆에 있어서 황우지굴이라 부른다. 12개의 굴이 있어 12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이 형성되어 있어 천연적인 요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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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통(멜든통)

서홍동 766번지 앞 바다이다.  ‘망앞제기떡 같이 둥글게 생겨서 제기통이라 부른다 고 하며, 멸치가 많이 몰려 왔다가 이 통 안에 들어와서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여 잡히기 때문에 멜든통이라 부른다. ‘은 멸치의 제주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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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탕

2000년대 이후에 불려진 지명이다. 산책로가 조성되고 탐방객들이 많아지면서 선녀탕이라 부르고 있다.

동너븐덕

자리덕의 동쪽에 있는 넓은 바위라고 해서 동너븐덕이라 부른다. ‘너븐넓다, ‘은 암반의 제주어이다. 주로 겨울철에 자리를 잡는 장소이다.  삼매봉과 외돌개가 가까이 있으며 지금도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서너븐덕'은 외돌개 서쪽 넓은 지대를말한다. 

 

서홍동 / 홍로(烘爐洪爐)>서홍로ᄆᆞ을/()>서홍리(西烘里)>서홍동(西烘洞)

동너븐덕과 범섬

무근덕

 서홍동 797번지 남쪽에 있다.  ‘이 고구마처럼 수면 위로 나타나 있다. ‘무근은 오래된의 제주어이다. 오래된 이라 하여 무근덕이라 부른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다. 바로 위쪽 부분에 서귀포칠십리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행정에서 표기안 '우두암'은 이곳이 아니라, 외돌개 서쪽 해안으로 잘못 표시되었다.

자리덕

최근에는 기차바위라고 부르는데, 사실 제주에는 기차가 없기 때문에 이는 최근에 불려진 이름일 뿐, 서홍동 797번지 동쪽에 있다 ‘은 커다란 암반의 제주어이다. 자리가 많이 잡히는 이라 자리덕이라 부른다. 겨울철에 촌로들이 이 곳에 와서 덕그물을 이용해 아래에 모여있는 자리를 거려 올린다.  ‘삼매봉아래 지역으로 주변에 넓은 공한지가 있고 또한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항우지해안선과 동너븐덕

자리덕/무근덕/쇠머리코지(우두암)/범섬

무근덕

쇠머리코지(우두암)는 맨 서쪽 해안 외돌개 서쪽 해안 언덕을 가리킨다.

고초간덕

 서홍동 790번지 앞 바위이다.  곧장 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고초간덕이라 부른다.

 서홍동과 호근마을 사이의 경계 부분에 있으며 외돌개가 가까이 있다.

 

호근동 / 호근뇌(好斤磊好近磊)/호근머들호근머흘>/호근리(好近)/호근ᄆᆞ을>호근리(好近里)>호근동(好近洞)

고초간덕/외돌개/우두암(쇠머리코지)

무근덕/범섬/외돌개/쇠머리코지(우두암)

고초간덕/외돌개/쇠머리코지(우두암)

할미개

서홍동 793번지 남쪽에 있다.  지형이 쌈지처럼 휘어져 있는데, ‘할미는 만처럼 휘어져 들어간 작은 곳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무근덕서쪽에 있으며 주변 해안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외돌개/장군석/쇠머리코지(우두암)

서홍동 791번지 앞 바위이다.  돌이 홀로 외롭게 서 있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하나, 고려말 원나라 목자들의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장군이 외돌개를 장수처럼 변장시키고 범섬으로 도망간 목자들을 섬멸시켰다고 하여 장군석(將軍石)이라고도 한다. 외돌개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을 하러 온다. 전망대가 있고, 뒤로는 삼매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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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머리코지(우두암牛頭岩)

호근동 336 번지 남쪽 해안이다. 이곳 지형이 쇠 머리처럼 생겼다하여 쇠머리코지라고 부른다. ‘코지는 곶의 제주어이다. 서귀동 ᄌᆞᆷ녀들이 이곳까지 작업을 하며, 법환마을 ᄌᆞᆷ녀들은 돌아간덕에서부터 서쪽으로 작업을 한다. 이는 서홍과 호근, 서호마을에 ᄌᆞᆷ녀가 없기 때문인데 물 때 따라 작업한다.  ‘신선바위외돌개를 감상하는 장소이다. 여름철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장관을 이룬다

우두암(쇠머리코지)/외돌개/무근덕/자리덕/동너븐덕/문섬

서너븐덕

외돌개 서쪽 우두암(쇠머리코지) 위에 있는 넓은 곳을 말한다.

돌아간덕

호근동 362번지의 해변에서 남쪽으로 벋어 내린 코지이다.

높은 기정으로 되 있다. ‘기정은 높은 절벽의 제주어이다. 곧바로 가지 못하고 지형상 돌아가야 갈 수가 있기 때문에 도라간덕이라 부른다. 이 주변 소라들이 크게 자라지 않아 ᄌᆞᆷ녀들에게는 별로 인기 없는 작업장이나, 소라가 많았다. 주변 해상에 가 많다. 주변 해안 경관이 수려하나 해산물은 별로 없지만 기정 아래에는 동굴이 있고 심해에는 특산 조개가 서식한다.

물우정

 호근동 375번지 해변 일대이다. 바다 밑에 동굴이 있어 갑자기 해일이 일어나는 해안이라 물우정이라 부른다.

언벵이안네

 호근동 378번지에 있으며 안에 굴이 있다.  ‘언벵이에 대한 유래는 명확치가 않다. ‘안네는 안쪽을 가리키며, 안쪽에 한일합방기에 파 놓은 굴이 있다. 위에는 논이 있는데, 이 논은 여우물에서 물을 끌어다가 논농사를 지었으며, 지금은 미나리를 재배하고 있다. 전복, 구젱기(소라)가 많이 생산되었다. 주변 경관이 매우 좋았으나, 지금은 서귀포에서 가장 심하게 개발된 해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언벵이안네/여

언벵이남쪽에 있는 라하여 언벵이여라 부른다. ‘가 매우 넓다. 남쪽으로는 지겁이며, ‘지겁은 벼랑의 제주어이다.  소라등이 많이 잡힌다.

물우정/언벵이안네/돔베낭골 해안선

가릿여/형제섬

호근동 1607-2번지 앞 해상에 있다이름 : ‘가 두 개로 갈라졌다는 뜻에서 가릿여라 부른다. 소라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자리를 거리기도 했다. 남성마을에서는 형제섬이라고도 한다. 해안 경관이 수려하며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가릿여/범섬

착한 시민은 이렇게 사유지를 통과하도록, 자연을 공유하며 함께 즐기시도록 개방하여 주시는데

다른 시민은 사유지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수려한 자연 경관을 독차지하고 있다.

같은 하늘에는 이렇게 별 다름이 많다. 

사유지 개방, 감사합니다.

지나는 순례객, 관광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 주시니, 오래 사실 것 같다.

무슨 사연이 이렇게 높은지, 그럴거면 홀로 독야청청으로 지내면 좋은데

감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뭐가 많다는게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궁금한게 하나도 없다

탐라섬에서 가장 높은, 이렇게 담장을 높이하여 골을 만들어 놓았다.

이 시대의 슬픈 자들의 어리석음은 아닐까 몰라,

그러면서도 도로로 차를 타고 다니시겠지

5KM 지점

11시 08분 지나가다.

돔베낭골

호근동 1619 번지의 해안이다. '돔베'는 도마, '낭'은 나무의 제주어이다. 지난날 돔베처럼 넓은 잎의 나무가 많아 돔베낭골이라 부른다.  ‘은 이곳에 논농사를 짓기 위하여 물을 대어왔던 물골을 가리킨다. ‘물골은 수로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동쪽 사잇길로 내려가면 된다. 주변 경관이 좋으며 생수가 있어 피서하기 좋은 곳이다.

돔베낭골 가는 올레

아마 이 올레 표석은 1998년 쯤에 세워진듯 하다. 그 대 사업 관련 부서에서 정확한 지명을 물어왔던 적이 있었기에

고장남밧

호근동 485번지 주변이다.

 '고장'은 꽃, '남/낭'은 나무, '밧/팟/왓'은 밭의 제주어이다. 꽃나무가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바로 이 주변에 꽃보다 더 아름다운 서귀여고가 있음이, 어찌 우연이었겠나. 

7km 지점

서귀여고 서쪽 '속골'가는 올레. 11시 53분에 지나가다.

속골

호근동 1628번지의 서쪽 도랑이다. 속골이라는 유래가 분명치 않다. 호근과 서호마을의 경계를 이룬다. 수량이 매우 풍부하다. 동쪽 언덕에 위생처리장이 있으며 서쪽 능선에는 연동연대가 있다. 서쪽의 완만한 경사진 해안이 진머흘이다.

 

서호동/ 호근뇌(好斤磊好近磊)/호근머들>서호근리(西好近里)서호근ᄆᆞ을>서호리(西好里)>서호동(西好洞)

속골깍

'깍'은 하구의 제주어이다. 앞에 보이는 섬이 '범섬/호도/범도'이다.

속골깍코지

 호근동 1625-4번지 해안에 있다.  ‘속골깍에 있는 코지라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속골동쪽으로 쭉 나온 코지이다'코지'는 곶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진머흘

서호동 90번지 앞 해변이다.  ‘은 길다, ‘머흘은 바다에 있는 큰 돌 무더기, ‘머들은 육지에 있는 커다란 돌 무더기를 가르키는 제주어이다. 이곳 해변에 큰 돌 무더기가 동서로 길게 형성되 있기 때문에 진머흘이라 부른다.  ‘속골에서 ‘’주거물깍까지 머흘이 형성되 있다. 뒤쪽 언덕을 연디왓이라 부르며, 봉우리에 연동연대가 있다. 이곳까지가 서호마을 바다이나 ᄌᆞᆷ녀가 없었기 때문에 옛부터 법환마을 ᄌᆞᆷ녀들이 작업을 하였다.

주거駐車물/주어물(깍)

용문사 동쪽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이며 법환동 99번지로서, 법환동과 서호동 경계이다.  마을 입구인 수ᄆᆞ루(거지 수레모루)車旨에서 남동쪽에 있는 작은 개울이다. 제주에 부임한 목사가 초도 순시 때 수ᄆᆞ루에서 마차를 멈추게 하여 이곳의 물을 떠다 먹었다 하여 주거물(주거駐車)이라 부른다고 한다.

위로 용문사가 있고 하류에는 이 물을 이용해 논농사를 지었으며 지금은 논농사는 짓지 않고 몇 필지에서만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을 뿐이다. 동쪽 언덕에 연동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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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환동

법환포(法還浦)/법환잇개, 법한포(法汗浦)/법한잇개>/법한촌(法汗村)법한이ᄆᆞ을>법환리(法還里)>법환동(法還洞)

여드렛당

 법환동 110-2번지에 있다.  여드렛날(8. 18. 28일) 다니는 이라 하여 여드렛당이라 부른다. 단골은 호근, 서호, 법환마을 사람들이며, 뱀을 보고 넋이 나거나, 놀랬을 때는 이곳에 가서 치성 드리면 쾌유되었다 한다. 지금 법환 사람들은 다니지 않고 이곳의 신위를 앞본향당으로 옮겼으나, 호근과 서호 사람들은 지금도 다니고 있다.  당 아래로는 머흘이 많으며, 서쪽에는 신통개가 있다.

여드랫당

수봉로 올레

 신통개/미통개

법환동 122번지 해변이다. ‘미’는 해삼을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는 포구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예전에는 유별나게 해삼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지형이 만으로 형성되어 있다. 서쪽 건너 언덕에 일냉이당이 있었다.

일냉이/일랭이/일냉이당

법환동 151번지에 있다. 일렛날(7. 17. 27일)마다 다니던 당이라서 일냉이당이라 부른다. ‘일냉이머럭에 당이 있다. ‘머럭은 꼭대기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지금은 앞본향당으로 옮겨져 있어 인적이 끊겼다.

쉬남물깍

주민들이 바다에서 바다 일을 마치고 올라 올 때나, 서귀포지역에 일을 보러 갈 때 동산 지대인 이 곳에서 쉬어가면서 물을 마셨다고 하여 쉬남물이라 부른다고 하며, 또한 이 물이 차갑고 시원해서 마치 사람으로 말해서 마을의 신장역활을 하듯 소중한 물이라고 하여 신남물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신통개/미통개

신통개/주거물깍/연동연대/망팟/속골깍/돔베낭골깍/문섬/섶섬

일냉이/일랭이

공물깍/망다리

일랭이

법환동 151번지 남쪽 해안 지대이다.  ‘일냉이당이 있어서 일냉이이라 부른다. 서쪽에 공물깍이 있다.

공물깍

법환동 158번지 해변이다. 공물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갯바위 낚시가 잘된다. ‘은 마지막 부분을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서쪽에 망다리가 있다평소에는 솟지 않다가도 천둥과 벼락이 치면 비로소 솟아나는 물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의해서 물이 날 때도 있고 아니 날 때도 있어 글자 그대로 공물이라 부른다. 옛날에는 여름에 비가 자주 와서 공물이 터졌다 하여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였으며, 물이 차고 맑아서 식수로도 사용했지만 주로 세탁 등 목욕을 즐겨했다. ‘공물처럼 나는 물을 구명이라 부른다.

망다리 알여

'망다리' 아래에 있는 여라서 불려진 지명이다. '알'은 아래, '여'는 너설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망다리

법환동 301번지 일대이다.  해안선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감시하기 위해 군사들이 망대를 세웠던 곳이라 하여 망다리라 부르기도 하고, 그 옛날 선인들이 이 동산에서 달을 바라보며 즐기던 곳이라 해서 망달이라 부르기도 있다. 이 마을 출신 개헌 국회의원을 지낸 강경옥씨 선조께서 심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지금은 법환포구 확장 사업으로 방파제가 만들어지고 주변이 일부는 매립되었다.

망다리와 범섬

법환포구/법환포(法還浦)/법환잇개, 법한포(法汗浦)/법한잇개>

법환포구 코지/생이콧

주서물깍동쪽으로 축조된 남북의 길다란 방파제 남쪽 끝 지점이다.  ‘생이콧이라는 유래는 분명치가 않다. ‘생이는 새 또는 상여, ‘은 코로서 오똑 솟아난 것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바다새들이 자주 날아와 앉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서쪽 써을지역으로 톳이 많이 생산되었다.

막숙물

막숙물; 포구 북쪽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이다. 

법환포구

사장앞

 법환동 297번지 서남쪽이다.  ‘소장이라는 유래가 정확치가 않다. ‘머럭에 해송이 자라고 있다. 옛날 선인들이 활쏘기를 하던 사장(射場)가 아닌가 한다. 법환포구 동쪽 언덕이다.

주서물/동가름물/서가름물

동가름물;  법환동 277번지 앞 해안 일대이다. 동쪽 동네에서 나는 물이라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가름은 동네의 제주어이다. 서가름물옆 동쪽에 있으며, 1988년 빨래터로 새롭게 조성되었다.

서가름물;  법환동 212번지 앞 해안 일대이다.  서쪽 동네로 이어진 길가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가름은 동네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포구 옆 자연 용천수이며, 마을 주민의 식수로 활용했으며, 주로 서쪽동네 사람들이 사용했다. 막숙서쪽으로 포구이다.

오막통/써을

오막통;  법환동 276번지 남쪽 해변이다.  ‘오막은 가운데가 움푹 패인 것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이 지역에 움푹 패인 통의 모양이 있어서 오막통이라 부른다. 톳이 많이 생산되었다. 서남쪽으로 써을이 있다.

써을;  법환동 163-7번지 남쪽 해변이다. 써을이라는 유래가 분명치 않다. 법환바당에서 가장 많이 톳이 생산되며, 소라 양식장을 했던 곳이다. 크고 작은 가 매우 많다. 썰물 시에는 주변 해역이 넓게 드러난다.

막숙

법환포구로서 법환동 286번지 일대이다.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일어 선 다음에도 그들은 천성이 난폭하고, 호전적이어서 제주도를 점거하고 난동을 부렸는데 이를 목호의난이라 한다. 명나라가 제주에서 기르는 말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자 조정에서는 말을 가지러 제주목에 관리를 파견하였으나 원나라의 목자들은 원세조께서 기르신 말을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관리들을 죽이고 난을 일으키자, 공민왕 23 (1374)에 임금은 최영에게 군사를 주어 토벌케 하니, 최영장군은 군사 25,605명을 병선 314척에 태우고 명월포로 상륙하여 그들을 격퇴하는데 목호의 잔당들이 법환마을 앞 바다에 있는 범섬으로 도망을 갔다. 이에 최영은 법환 포구에 막을 치고서 군사를 독려하며 목호의 잔당을 섬멸했는 데서 막숙이라 유래한다. 법환마을의 포구이다.

막숙/법환포구/동.서가름물/생이콧

2003. 4. 12. 문광부 지정 법환좀녜마을

좀녜마을 테우

탐라국 해안에는 두  유형의 포구가 있다. 하나는 '배개', 또 하나는 '터웃개'이다.

'배개'는 일반 덕판배 등 어선이 출입 가능한 포구를 말하며, 

'터웃개'는 일반 배 출입이 불가능한 여(너설)가 많은 지역에 뗏목선(테우) 정도 겨우 출입 가능한 포구이다. 

테우/좀녜상, 법환포구/삼매봉 / 항우지해안/문섬/섶섬 해안선

써을

써을; 법환동 163-7번지 남쪽 해변이다. 써을이라는 유래가 분명치 않다. 법환바당에서 가장 많이 톳이 생산되며, 소라 양식장을 했던 곳이다. 크고 작은 가 매우 많다. 썰물 시에는 주변 해역이 넓게 드러난다.

동개
 ‘써을 서쪽에 있다. 지난 날 이 곳에 임시로 배나 테위를 메어 두었던 장소이다. ‘는 만처럼 형성된 곳으로 포구나 만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서남쪽에 써을큰여가 있다.

최영장군 승전비

당시 최영장군은 이로 인하여 조선을 건국하게 하는 역사 환경이 만들어진다. 

당앞/도로솔

당앞;  ‘앞본향당아래 해변에 있다.  ‘앞본향당앞에 있다 하여 당앞이라 부른다.

 

도로솔 ;  ‘당앞으로 나 있는 코지이다.  ‘도로솔이라는 유래는 명확치가 않다. ‘당앞으로 나 있는 코지부분을 도로솔이라 부른다. ‘로서 숲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아래쪽으로 강청축여베메는여가 있다.

앞본향당/삼본향당

 법환동 168번지 남쪽 해안가에 있다.  ‘앞본향당은 법환마을의 본향신을 모신 곳이다. 마을에 어떤 사람이 죽으려하면 먼저 이 곳 본향당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정월에는 7, 17, 27일날 중 하루를 택일하여 당에 가지 못하면 3, 13, 23일날 중 하루를 택일하여 1년에 세 번 당에 갔다. 지금도 타향 객지에 가서 살다 돌아오면 당에 가서 치성을 드린다. ‘일렛당여드렛당을 모셔왔기 때문에 삼본향이라 한다. 아래 쪽에 있는 해안을 당앞이다

일뤠, 여드뤳당 제단

본향당 제단

본향신당

배연줄이

법환동 144-41511번지 일대로 범섬 방향으로 길게 뻗은 이다. 고려말 목호의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고려 군사들이 범섬으로 도망간 목호잔당을 격퇴키 위해 이 곳에서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었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개막에는 본향당이 있으며, 남쪽 해상에 물깍먼여가 있다.

배연주리물

법환 ᄌᆞᆷ녀탈의장 앞으로 법환동 1511번지 해변에 있다. 배연주리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불려진 지명이다. 썰물 때에만 드러난다.

오다리/오도리 (吳達)

법환동 1517번지 남쪽 해변이다.  ‘오다리에 대한 유래가 명확치 않다. ‘은 갈매기, 오리, ‘도리는 다리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지역이 매우 넓다. 또한 목호의 난 당시 뭍에서 최영장군이 이끄는 군사에게 밀려 범섬으로 도망친 목호두목과 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 주둔지로서 법환 막숙을 비롯 오다리일대가 군사 요충지대였다. 그때 오달이란 장군이 큰태왓 일명 군사왓이라고도 하는데 이 곳에서 사병들을 조련 시켰는데 지금도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 당시 군사 훈련을 맡았던 장군의 이름을 따서 불려진 이름이라고 한다. 남쪽에 오다리먼여가 있다.

범섬의 유인도 이야기

서기 1776년 제주시에 살던 신광석씨가 법환동에 입주해 와서 살았는데, 그의 아들 신대수씨가 범섬을 답사한 후 범섬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처음으로 정의현청으로 가서 범섬을 답사한 후 범섬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처음으로 정의현청으로 가서 범섬에 상륙하여 살도록 윤허를 해 주자 1804년에 비로소 신대수씨의 뜻에 따라 범섬에 상륙하여 살도록 윤허를 해 주자 1804년에 비로소 신대수씨는 범섬에 상륙하여 손자 두인이가 날 때까지 광할한 땅을 개척해 나가는 한편 식량의 자급자족을 위하여 보리를 갈고 육지와 내왕하면서 우도에서 1820년경에 고구마씨를 처음으로 구입하여 심는 등 이 고장에 처음으로 고구마 씨를 전파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범섬에도 사람이 살 수 있고 각종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하자 1918년도에 현병훈씨의 증조부인 현응수란 분이 범섬으로 이주하여 왔다.
그 분은 두인씨와 더불어 보리도 갈고 고구마도 심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술을 빚어 두었다가 섬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하였고 태우(나무로 엮어서 만든 배)를 만들어 법환리에 왕래하면서 물물교환을 하며 살았는데 두인씨가 1894년에 아들 효안이를 낳았다. 이렇게 살아가던 중, 섬에서 낳은 두인씨의 아들 효안이가 24세 되던 해에 풍랑을 만나 죽게 되자 두인씨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범섬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후예 신임길씨가 법환동에 계속 살다가 1995년에 타계하였으며 아들 신청신씨가 후대를 잇고 있다.
이외에도 범섬에 사람이 살았던 내력은 좀더 있는데, 1945년에 법환동 마능씨가 범섬에 이주해서 마성모를 낳았으며 1953년도에 섬을 나와 본동에서 거주하다 60년대 중반에 안덕면 동광리로 이주하여 살고 있으며, 1954년에 문창효씨와 문남진씨의 조부가 범섬에 가서 살다가 그 이듬해인 1955년에 섬을 나왔다고 전해진다.
또한 오평숙이란 분은 효안씨와 범섬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해서 '섬오리방'이란 별명이 붙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고, 현병훈 집안을 지금도 섬집이라 부르는 까닭은 증조부님께서 범섬에서 살았었다고 하여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법환향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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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섬에는 대정질, 정의질 두개의 통로가 있다.

범섬은 그 모습이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하여 범섬이라 불려졌다고 하며, 지난 날 이 곳에 사람이 살 때에도 범의 형세이기 때문에 고양이는 기르지 못했었다고 전한다.

범섬은 서귀포시 법환동 산 1-1,2와 산 2, 3번지로서 지목 임야, 대지, 면적 84,298이며, 사유지가 많다. 1995. .8. 26. 제주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46호로 범섬 상록활엽수림 및 흑비둘기 번식지가 지정되었다. ‘범섬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한문 표기를 달리하여 왔다. 남사록(南槎錄1601년간)에는 범도 (凡島), 탐라지 (耽羅誌1653년간)이후부터의 각종 문헌에는 호도(虎島)로 기록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은 범의 음자 표기이며, ()는 훈자 표기이다

범섬은 타원형으로서 해발 87미터나 된다. 북쪽을 제외한 전지역이 수직면을 이루고 있어 마치 병풍을 친 듯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또한 범섬에는 크고 작은 굴들이 많다. 섬 동쪽에 보이는 두 개의 굴은 콧구멍이라고 하는데, 호랑이의 코 부분에 해당되며, 남쪽에 있는 큰 굴은 큰항문이도서쪽에 있는 작은 굴은 족은항문이도라고 전한다.

 특히 섬에는 볼래낭이 많아 볼래가 익을 때가 되면 인근마을 주민들이 섬으로 놀러가 볼래를 따서 먹으며 놀았고, 섬에 있는 산토끼들을 잡아다가 사육하기도 했다. 섬 남쪽에는 해풍 영향으로 인해 나무가 없으며, 북쪽에는 돈나무, 구실잣밤나무, 해송 등이 울창하게 상록수림을 이루고 있다. 섬 정상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흔적과 애기물이 있고 억새가 무성하다.

또한 범섬은 탐라가 몽고 지배 100년 역사의 종지부를 찍은 역사의 격전장이기도 하다. 목호(牧胡)의 반란자들인 석질리 (石迭里)등이 최영 장군에 의해 마지막으로 섬멸 (1374)된 곳이 범섬이며, 법환마을에는 이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지명이 지금 법환포구인 막숙이다.

 

전설 : 전설 속에 범섬의 탄생은, 오랜 옛날 사냥꾼이 실수로부터 시작된다. 사냥 나갔던 사냥꾼이 잘못하여 옥황상제의 배를 건드리니, 상제가 크게 노하여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제주의 섬들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범섬물질갈 때에는 풍선을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동력선을 이용한다.

1945년 여름 정오 무렵 날씨가 화창하였을 때, ‘범섬동남쪽에서 흑룡이 승천하였다고 한다. 시커먼 구름 사이로 용의 머리와 몸통 부분이 보였으며 꿈틀거리면서 계속 하늘 높이 올라갔는데, 당시 강정마을에서는 논에서 일하던 아낙네가, 법환마을에서는 집에서 일하던 아낙네가 보았다고 한다.

계절 구분 없이 낚시가 잘 되어 조사들이 즐겨 찾으며, 서귀포항에서 유람선들이 운항하는 정기항로이다. ‘범섬으로 갈 때는 서귀포항에서도 유어선을 이용해 갈 수가 있으나, 법환포구에서 범섬까지 1.5Km밖에 안되기 때문에 포구에서 유어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대정질;  법환동 산 1-2번지 북쪽에 있다.  ‘범섬위로 올라가는 길은 정의질대정질이 있는데, 대정현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이라 하여 대정질이라 부른다. ‘은 길의 제주어이다. 지금 범섬위로는 대정질로만 다닌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가 있으며 바위를 뚫어 쇠말뚝을 밖아 놓았다. 흑비둘기 서식 관계로 인하여 2월부터 710일까지 섬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으며, 출입 시에는 서귀포시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범섬 북서쪽이다. 동쪽으로 콧구멍이 있다. 북서쪽 추도까지 전복이 많이 생산되었다.

 

쇠저리는자리; 법환동 산 1-2번지 북쪽이며 대정질입구 위에 있다. 지난 날 범섬은 법환마을의 목장 역할을 하였었다. 소나 말을 범섬에 싣고 갈 때에는 송아지인 경우에는 발을 묶어 풍선에 싣고 운반하였으나, 큰 소나 말인 경우에는 풍선에 쇠줄을 묶어 배를 띄우면서 소를 바다에 밀면 소가 배를 따라 헤엄을 쳤다. 이렇게 하여 대정질도에 닿으면 소를 섬 정상으로 올리기 위해 산태 위에 검불을 깔고 소를 단단하게 묶어 줄을 걸고서 끌어당기며 올렸다. 섬의 소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로 이처럼 묶어서 위에서 밑으로 내렸는데, 이렇게 소를 묶고 풀었던 곳을 쇠저는자리라 부른다. ‘저는은 묶다, 만들다, 작업하다의 제주어이다. ‘대정질바로 올라서면 문화재 안내판이 세워진 곳이 있는데 이 곳이 쇠저는자리이다.

주변 : 매우 가파른 곳이다. 한 사람이 겨우 올라갈 수가 있다.

 

애기물;  법환동 산 1-1번지에 있다.  ‘범섬상단 남남쪽 큰항문이도위의 지선 부분으로 북쪽 30m 지점에서 나는 물을 애기물이라 부르며, 수량이 많지 않아 적게 솟아나기 때문에 애기물이라 한다. ‘범섬에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식수로 사용할 수가 있을 만큼 수질이 깨끗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어들거나 마르지 않는다. 물을 이용하려고 작은 보를 쌓아 물을 저장하고 있다. 미꾸라지가 서식하고 있다.

흰돌밑

 법환동 1527번지 해변이다. 다른 지역보다 돌이 하얗게 보여 흰돌밑이라 부른다 흰돌아래란 의미이다. ‘코지이다.

아래쪽에 바닥여가 있다.

법환동 환해장성 유적

2000년 까지는 있었으나, 해안 산책로가 개설되고 주변에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도릿줄/도리술/도릿술안통

 법환동 1534번지와 1540번지 해변이다.  ‘도릿줄이라는 유래는 명확치가 않다. ‘도리는 다리, 술은 숲,의 제주어이다. 또한 법환마을은 해안가에 위치하여 반농반어이면서도 보재기와 ᄌᆞᆷ녀들이 많으며 바다를 의지하고 신봉해왔다. 그래서 용왕굿을 비롯 용왕기도, 헌신기도, 여드래당 등에 치성을 드리면서 살아왔는데 몸정성을 잘하고 도리슬에 가서 자기 어려운 사정을 실토하고 용왕님께 직접 빌었던 곳이다. 집안에 괴로운 일이나 화가 생기면 도리술에 가서 기원하고 오면 무사하다고 한다.

도릿줄안통;  ‘도릿줄안에 있다.  ‘도릿줄안쪽에 있는 통이라 하여 도릿줄안통이라 부른다.

도릿술/두머니물/썩은섬/강정해군기지 방파제

두머니물/두머니물깍

법환과 강정마을의 경계선이며, 법환동 1541번지이다.  ‘는 머리를 의미한다. 이 곳에서 법환과 강정마을의 경계선을 이룬다. 예로부터 아기 엄마들이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이 곳에 와서 두머니물을 먹고 목욕하면 젖이 잘 나온다고 하였다. 용출량이 많아 주변 농경지에 농업용수로도 사용하며 밀물 시에는 바다에 잠긴다. 또한 이 곳은 강정과 법환마을의 경계선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싸움이 발생할 수가 있었으므로 일단 두머니물에 가면 멈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지난 날 주변 지역에서 논농사가 이뤄졌으나, 지금은 하우스 단지와 주거 상업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서쪽에 속동개코지가 있다. 

 

강정동/더ᄂᆡ더ᄅᆡ/가내(加內)가래(加來)>강정ᄆᆞ을/강정리(江汀江亭里)>강정리(江汀里)>강정동(江汀洞)

넉거리안/조근속동개 코지 / 조근속동개

‘놀’(큰파도)이 이 ‘코지’로 치면 ‘속돌’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속동개코지’라고도 불렀다. ‘속돌’은 화산이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돌을 이용하여 녹슨 ‘바농’을 보비민 ‘바농’이 예리해진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돌’을 주어다가 사용했다. 서쪽에 '큰속동개코지'가 있다.

넉거리안

두머니물조근속동개사이에 있는 안쪽을 말하며, 강정동 713번지 해변이다. 밀물 시에는 포구처럼 보이기 때문에 넉거리안이라 부른다.

큰속동개코지 가는 올레

주변에 황근과 삼동나무가 많다.

상두낭술코지/큰속동개코지

상두낭술코지; 강정동 737번지 해변이다.  ‘써근섬입구인 너븐물동쪽에 나 있는 코지를 말한다. ‘코지는 곶의 제주어이다. 삼동낭이 많았기 때문에 상두낭술이라고 한다. ‘상동낭은 상동나무, ‘은 숲의 제주어이다.  이 일대에서는 악근천 소왕물을 이끌어다 논농사를 지었다.

 

큰속동개코지;  상두낭술코지동쪽 코지를 말하며, 강정동 723번지 해변 지역이다. ’(큰파도)이 이 코지로 치면 속돌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속동개코지라고도 불렀다. ‘속돌은 화산이 굳어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돌을 이용하여 녹슨 바농을 보비민 바농이 예리해진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돌을 주어다가 사용했다.

큰속동개코지/썩은섬

너븐물 가는 올레

배왓 해안

굴왓동산에서 써근섬으로 가는 길 동쪽의 낮은 지대로 657번지 일대를 말한다.  배와 비슷한 지형을 하고 있어서 불려진 이름이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과거에는 이 일대에서 논농사를 지었다.

큰속동개코지

배왓 해안과 썩은섬

큰속동개코지/배왓 해안 / 범섬

좀녜콩/해녀콩

굽은돌/썩은섬

너븐물앞에 있는 외딴섬으로 강정동 산 1번지이다.  법환마을과 강정마을을 잇는 노선을 따라 법환 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600m정도 가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바다로 가다보면 섬인 듯 코지인 듯한 섬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섬이 써근섬이다. 섬 입구에는 선사시대 유적이 있어 이미 오래전 부터 이 섬에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수가 있다. 

써근섬이라 부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섬의 토질이 죽은 흙이라서, 또는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또한 죽은 큰고기가 이 섬에 밀려와서등이 그 것이다. 써근섬은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간조 때마다 뭍에서 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데, 바로 그것이 이 섬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래서 60년대까지만 하여도 간조를 이용하여 초등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이용되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낚시가 잘 되어 조사들이 즐겨 찾는다.

동서장방형에 남북으로 약간의 경사가 이뤄져 비스듬히 누워있는 듯한 이 섬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서쪽에 비해 동쪽에 기암괴석들이 많다. 특히 섬 입구에는 조이통물에서 흘러나와 섬 입구로 흐르는 수량이 매우 풍부한 개울이 있는데, ‘너븐물이라 한다. 서북쪽에는 변수연대가 있으며, 바로 남동쪽에는 범섬이 있다.

지난 날 이 너븐물을 중심으로 하여 새수촌(塞水村)’이란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최근까지 인가가 남아 있었으나, 43사건 때 모두 소개되었다.

또 이 곳에는 새수촌과 함께 새수포(塞水浦)’가 있었고, 방호소(防護所)와 수전소(水戰所) (‘탐라지’ 1653)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유에서인지 인근에는 군사와 관련된 지명(군자왓)들이 나타난다. 1750년쯤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해동지도(海東地圖제주삼현도(濟州三縣圖에도 이 섬을 서근도(鋤近島라고 표기했다. ‘서근(鋤近)’써근의 음차 표기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보다 앞서 제작된 탐라고지도(1709)에는 부도(腐島)라고 하여 써근섬이라 하였다.

또는 이 새수포변수포(邊水浦)’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광수포(廣水浦)’라고도 하는데 너븐물이라는 의미다.

1960년대 써근섬일대 이 곳 해안은 용흥마을에서 관리하였으나, 지금은 강정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고 있다. 마을에 ᄌᆞᆷ녀가 없어지고, 바다보다는 목축업에서 더 많은 수익이 있었기 때문인 듯 하며, '89년까지만 하여도 이 곳에는 논농사가 이뤄졌으나 지금은 논농사는 전혀 없으며, 하우스를 이용한 채소원예작물들이 재배되고 있다.  범섬이 훤하게 보이며 새포방호소와 수전소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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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븐돌

썩은섬남쪽 바다에 외따로 나앉은 바윗돌 이름이다.  어지간한 썰물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두 개의 바윗돌인데, 그 중 하나의 돌이 남쪽으로 굽어 있는 듯이 보여 구븐돌이라고 한다.

썩은섬

강정동 산1번지이다.

썩은섬은 24시간 기준으로 하루에 두번 건너갈 수 있다. 건너갈 수 있는 시기는 아래와 같다.

날짜는 음력 기준이다. 

너븐물

너븐물/새포(塞浦)/변수포(邊水浦)/광수포(廣水浦)

강정동 754번지 해안이다.  써근섬앞에 있는 바닷가 이름이다. 그 일대의 바다밭을 두고 너븐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너븐물을 새포(塞浦), 변수포(邊水浦)라 불렀으며, 광수포(廣水浦)라 부르기도 했다. 탐라지에는 수전소(水戰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너븐물이라는 갯가와 그 앞 연삼이여까지의 바다밭은 본디 용흥마을 바다밭이었는데, 강정마을 바다밭이 되어버린 사연이 전한다. 옛날 너븐물앞에 죽은 고래가 떠밀려왔다. 썩는 냄새가 고약하여 서로 치우기를 거부하자, 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썩어 나자빠진 고래를 치운 마을에서 이 바다밭을 차지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강정마을 사람들이 고래의 시체를 치워서 이 바다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썩은섬/부도/서건도

변수포 환해장성

우측 해변가에는 2010년 까지만 하여도 환해장성이 있었는데, 모두 훼손되어 지금은 그 유적만 남아 있다. 

새포수전소/새포방호소 유적

새포수전소; 너븐물깍 서쪽으로 강정동 751번지 지역이다.

새포방호소;  너븐물깍 동쪽으로 강정동 753번지 해변이다.  새포수전소(塞浦水戰所)써근섬입구에 있었다.

서귀포시 관내에 수전소는 정의현 관할이었던 서귀포 수전소와 대정현 관할이었던 새포수전소 등 두 군데이다.

1530년 이조 중종 25년에 증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관방(關防)편에는 정의현에 오조포수전소와 서귀포수전소가 있고, 대정현에는 모슬포수전소, 새포수전소, 범질포서수전소가 있으며, 새포와 서귀포에는 방호소가 함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1653년에 만들어진 탐라지에는 서귀포수전소에는 병선 1척과 선장 1명 격군 105명이 근무하였다하였으나, 새포수전소는 폐지되었다 하였다.

이렇듯 도내 방어를 목적으로는 수전소와 방호소만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환해장성을 쌓아 해변으로 침입하는 외적을 방비하였고, 높은 언덕과 코지 또는 오름 위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연대와 봉수를 세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봉화를 피워 날리면서, 이 땅을 침범하려는 적들을 막아 내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방호소나 수전소의 자취가 도내에 남아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어 옛 모습을 찾아 낼 수가 없고, 단지 문헌으로만 되세길 수밖에 없음이 자못 안타깝다. 훗날 이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어 복원이 된다면 모두에게 더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새포수전소가 있었던 써근섬입구는 침입하는 적들을 감시하고 막아내기에는 천연적인 요새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우선 하루에 두 번씩 뭍으로 바닷길이 열리는 써근섬이 있고, 서쪽으로 변수(ᄀᆞᆺ물)연대가 있어 해안 방어의 보조 역할을 하였다. 더욱이 이 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물이 풍부하여 논농사가 시작이 되었고,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일찍부터 새수촌(새수촌)이란 마을이 형성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비닐하우스 농사가 발달되어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너븐물이라 불리는 이 곳은 서귀포에서 월평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따고 10분정도 가다보면 법환마을이 나타나고, 마을을 지나 3분정도 가게되면 써근섬입구라는 정류소 표지판이 나온다. 이 곳에서 걸어서 7분이면 써근섬입구에 다다르게 되는데, 바로 이 곳이 지난 날 새포수전소(塞浦水戰所)가 있던 자리이다. 수전소는 방호소(防護所)와 같이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방호소가 육지로 침입하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면, 수전소는 해상을 통해 침입하려는 적들을 막아내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할 수가 있으나, 기록에는 수전소와 방호소가 한 장소에 있었다고 되어 있기도 하여, 수전소와 방호소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것 같다. 특히 이 곳 주변에는 강정천(큰내)과 악근내가 사시사철 흐르고 있어 방문자들의 여정을 달래주기에 넉넉하고, 범섬을 이용한 낚시는 법환포구에서 또 물때를 이용한 써근섬에서의 낚시도 그 매력을 더해주기에 많은 분들이 즐겨 찾고 있다.

너븐물 불턱

너븐물원너븐물사이에 있는 불턱의 이름이다.

그 일대 바다밭에 일하러 간 ᄌᆞᆷ녀들이 이용하는 자연 상태 그대로 이용하던 불턱’이다.

논캐왓 해안

논캐왓 제주올레7코스 중간 지점 인증샷

13시 40분 지나다

논캐왓/논케왓 해안

강정동 763-1번지와 763-2번지 일대이다.

알곳물굴왓동산동서쪽의 중간 지역을 말한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논캐왓 물

논캐왓 해안선에서 솟아나는 자연수이다.

논캐왓/너븐물 불턱/너븐물/새수포/속동개코지/범섬

너븐물/광수포/변수포/새포수전소/새포방호소/썩은섬 입구

써근섬/변수포/속동개코지 범섬

논구석/강정해군기지 방파제 

강정동 2543번지 해안으로 수누리코지너븐물원사이의 갯가 이름이다. ‘수누리코지동쪽에 있으며, 이 지역의 논 가장자리를 가리킨다. 갯가 뭍쪽으로는 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구석진 곳이 있기도 하여 그 일대 바다밭을 두고 논구석이라고 한다.

수누리코지/봉등이소/악근천 하구/지서여/강정천 하구

수누리코지

악근천 ‘냇깍동쪽에 있는 코지의 이름이다. ‘봉등이소동쪽에 있는 코지()’을 말한다.

강정천 하구/악근천 하구/봉등이소

악근천/아끈내

악근천을 소가내천(小加內川), 소가래천(小加來川). 악근천(嶽近川), 악근내로 불려왔다. 강정에서 큰내를 지나 동쪽으로 약 200m쯤 더 나가면 큰내만큼 물은 많지 않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사계절 연중 흘러내리는 하천이 있는데 이것이 악근천이다. 내의 크기가 큰내에 비하여 작지만 큰내에 버금간다 하여 아끈내라 불려졌다

악근천 하구/봉등이소/지서여/논구석

지서여;  강정천 하류 바다 속에 좌우에 우뚝 선 두 개의 이름이다.

의 모양이 마치 기와를 겹겹이 얹혀 쌓은 듯이 보여서 지서여라 했다. ‘지애는 기와의 제주어이다.

강정동 포제단/멧뿌리

하천변 우측 소나무 밭에 있다.

강정천 하류 우측변 남쪽에 있는 모래밭을 멧뿌리라고 부른다.  소나무 수림과 잔디밭이 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몇 년 전까지도 초등학생들이 단체소풍을 자주 갔었던 장소이며, 마을에서 별포제를 지내는 기단이 남아 있다.

제베낭소 주상절리대

  강정천 하류에 있는 소의 이름이다.

옛날 그 주변에 제베(구슬잣밤)나무 수림이 무성하였으므로 제베낭소라 불렀다.

왕돌메기소

강정교 다리의 바로 밑에 위치한 소이다.

이 소의 가운데에 크고 둥그렇게 생긴 돌이 있어서 왕돌매기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왕돌매기소왕돌로 막힌 소라는 뜻으로 보인다.

강정천

강정천은 대가내천(大加內川), 대가래천(大加來川), 강정천(江汀川), 큰내(大川)등으로 불려왔다.

1984. 7. 15일과 811, 2차에 걸쳐 당시 강정 4-H 청소년회에서 강정천을 답사한 기록에 의해 조사된 결과, 하천 총 길이는 15,889m, 7, 다리 6, 폭포 13, 지류 10개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원류는 영실 동쪽 '선작지왓' 아래에서 발원한다.

왕대왓

강정해군기지 입구 로터리 주변으로, 지난 날 큰 대나무들이 많이 자랐던 밭이라서 왕대왓이라고 하며 이 곳에서 나는 왕대를 진상하였다고 한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강정해군기지 건설로 사라진 해안선 지명 (20여 개가 넘는다)

강정포구/톤돈지 불턱/돗부리암/솔박여/조근구럼비/너른걸/서문이안통/물터진개/중덕/소금밧/할망물/큰구럼비/선반녀/톤녀/진소깍/선널/모살덕/개구럼비/개구럼비당/개구럼비코지/너븐덕

2009년도 다음자료 사진 인용

2011년도 강정해군지기 건설 

가래방호소는 이원진의 탐라지(1653), 대정현 방호소에 보면, 강정마을에 육상에 군사를 주둔시켜 방어하였던 방호소는 가래방호소와 새포방호소(塞浦防護所)였다. 이 가운데 가래방호소(加來防護所) 1510년에 동해방호소(현재 회수)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중덕 해안가 물터진개 주변에서 주거 흔적이 발견되었었다.

2011년도 다음자료 사진 인용

2013년도 강정해군기지 건설

2013년도 다음자료 사진 인용

 강정해군기지 완공 형태 기지 내 사라진 제일강정 구럼비

큰구럼비/조근구럼비/구답/개구럼비

 

구럼비/구엄비

구엄비는 강정동 2731번지부터 4670번지까지의 논이 있는 곳을 말하며, 지금은 구럼비라고 부르고 있다. 구럼비를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개구럼비’, '구답'으로 지역을 구분하고 있는데, ‘큰구럼비는 강정동 2731번지에 조근구럼비는 강정동 4670번지에 있으며, 개구럼비는 강정동 서쪽 해안가에 있다.

현재의 구럼비라는 지명은 구엄->구엄부->구럼비로 변형되어 불려진 것이다. ‘구럼비는 그 옛날 해안가를 중심으로 초가로 된 아홉 채의 작은 암자들이 있어서 구럼비/구암비라 불리기도 하였다고 하고, ‘구럼비낭이 많이 있어 구럼비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구럼비구답개구럼비로 나눠졌으며, ‘구럼비에는 1987년까지만 하여도 벼(나록)농사가 이뤄졌고, ‘개구럼비일부는 큰강정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시설하우스 재배로 인해 논농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곳에 관수는 강정천 식수원인 냇길이소로부터 수로(물골)을 내어 물을 대었었다.

 

조근구럼비;  강정동 4670번지 일대이다. 이 곳에 있는 논에서는 큰강정물에서 정의논깍으로 흐르는 물을, ‘할애비소에서 둑을 쌓아 물을 막고서 그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지었다. ‘큰구럼비조근구럼비가 있다. ‘조근은 작은의 제주어이다.

2021년도 구글 자료, 

구럼비 해안선 가운데, 유일하게 형태가 조금 남아 있는 곳이 우측 연못이다.

좌측 부터  진소깍/선널/모살덕

 

진소깍

사진에서 가장 왼쪽이다. ‘구럼비남쪽 해안으로 강정동 2718번지 해변이다.  진소로 들어가는 남쪽 부분을 진소깍이라고 한다. ‘진소는 해안의 암반 형태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그 가운데 깊은 소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진소라고 한다. ‘은 길다의 제주어이다.

진소깍바닥은 온통 모래가 깔려 있어 ᄌᆞᆷ녀나 어부들이 그 곳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은 거의 없으나 ᄌᆞᆷ녀들이 물질을 배울 때 교습 장소였다.

 

선널

사진에서 중간 지점이다.  모살덕남서쪽에 있는 갯가 이름이다.  그 모습이 깎아지른 듯이 곧게 선 벼랑을 이루고 있어 선널이라고 한다.

 

모살덕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 남쪽 끝머리이다. 선널동쪽에 있는 이름이다.  일대 바다 속은 거의 모래가 깔려 있다. 그래서 모살덕이라 부른다. ‘모살은 모래의 제주어이다. 이 곳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죽은 이의 유언에 따라 수장했다고 하며, 근래에 비석을 세웠다.

 

연병장 H 표시된 곳이 중덕으로 추정된다.

축구장이 물터진개로 추정된다.

2021년 구글자료 인용

마희천연대

망밧에 있으며, 강정동 5452번지 남쪽 모서리로서, 건물이 이다.

마희(亇希)연대 또는 마희천(亇希川)연대라고도 표기하였다. ‘큰강정물정의논깍까지 흐르는 개울을 마흘천(馬吃川)’이라고 하는데, 마희천(亇希川)연대라는 표기가 마흘천(馬吃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마희천연대는 서귀포시 강정동 5452번지경 남서쪽 모서리에 있다.

마을 서쪽 끝나는 곳에서 월평마을로 가는 버스노선을 따라 300m 가다보면 길 남쪽으로 수령 200여 년이 넘어선 커다란 팽나무가 지키고 있는 서당(西堂)이 나타난다.

이 서당 지경을 서당밧이라 부르는데, ‘서당밧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마희연대가 있었던 망밧이 보인다. 지금에는 연대가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으나 연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밭 모서리에는 시방도 낮은 방사탑처럼 약간의 돌무더기가 있고, 돌무더기 아래에 있는 무덤가에도 큰돌무더기들이 몇 개 놓여져 있음으로 보아 이 곳이 연대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지금도 이 마을사람들은 이 지역을 망팟이라 부른다.

제주삼읍봉수연대급장졸총록(濟州三邑烽燧烟臺及將卒摠錄)에 보면 마희천연대는 동쪽으로는 변수연대와 교신을 하고 서쪽으로는 대포연대와 교신을 하였으며, 별장(別將) 6명과 직군(直軍) 12명이 근무를 하였다.(···亇希川煙臺 東應邊水 西應大浦 別將六人 直軍十二名··)라고 기록되어 있다. 1800년 이전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대정·정의읍지에는 마희천연대를 마희연대라고 표기하고 있으며, ()자는 누락되어 있다.마희연대는 대정현 동쪽 40리 지점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변수연대와 교신을 하고, 서쪽으로는 대포연대와 교신을 하였다.(亇希煙臺 在縣東四五十里 東應邊水淵洞 西應大浦)고 하였으나, 1899년 전국읍지의 상송령에 따라 전라도 대정군에서 작성 보고한 대정군고지(大靜郡古誌. .필사본 규장각 소장) 봉수연대부에는 (봉수-귀산, 호산, 저별, 모슬봉, 당산), (연대-변수, 당포, 산방, 무수, 우두)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에는 마희연대가 그 기능이 없었음을 알 수가 있다.

마희연대의 서쪽에는 대포연대, 동쪽으로는 변수연대가 위치해 있어서 이 두 연대 사이의 연락을 취했다. ‘서당남남서쪽에 있다

세별당

갯당(바당당)이 있는 곳이며, 강정동 4683-1번지이다.

ᄆᆞᆯ질따라 가다보면 세별동산 아래 언덕인 길가 옆에 나무들과 넝쿨로 뒤덮여 있다. 강정바다 포구에 위치해 있는 아주 작은 규모로, 어부들과 ᄌᆞᆷ녀들이 주로 다니므로 어부당이라고도 부른다. 본향당의 처신을 모신 곳으로 일반주민들은 백중날(714), 어부나 잠수들은 매달 초하루나 보름날에 간다. 팽나무가 신목이며, 어부와 잠수가 단골로 이곳에서 바다에 나가서 무사히 많은 해산물을 잡을 수 있도록 빈다. 도로 확장하면서 주변 남쪽으로 이설되었다.

강정포구

강정동 4965번지 앞에 있는 포구를 말한다. 강정포구는 세별포’, ‘영주포등으로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영주포라는 명칭은 마을에서 해난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포구 명칭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하여 당시 윤영환이란 사람이 지역주민들과 의논하여 영주포라고 부른 데서부터 연유한다. 1970년 이전까지 마을에서는 부락제인 별포제가 거행되었는데, 당시에 제 모실 때의 홀기에 보면 영주포제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영주포라고 계속 불려지다가 별포제가 없어진 후부터 영주포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1970년대부터는 강정포라는 명칭으로 계속 쓰이고 있다.

세벨동산

강정동 4695번지 주변이다.  세별논케와 갯당(세별당)’이 있는 동산을 말한다.

강정포구 불턱

강정동 4966번지 해안이다 새벨코지가까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코지 주위 바다밭에서 일할 때 이용하는 불턱이라서 새벨불턱이라고 한다.

 ‘불턱에 따른 뚜렷한 시설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현대식 탈의시설을 갖췄다. ‘ᄌᆞᆷ녀들이 간만의 차가 가장 약한 한물 날에서부터 세물 날 사이에만 작업하는 새벨코지바다밭에 일하러 왔을 때 이용한다. 그 만큼 새벨코지바다밭은 조류가 드센 바다밭인 셈이다.

정의논깍/세벨코지

정의논깍; 강정동 5002번지에 있다. 정의현 사람들이 경작하던 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곳에는 말통이 있었는데, 옛날 8소장에 놓아기르던 말들이 여기까지 물을 먹으러 내려오기도 했는데, 바로 그 때 말이 한 군데로 모아지는 기회가 되어 그 때 낙인이 안된 말들을 바로 이 말통에 가둬놓고, 낙인을 찍기도 했다. 정의논깍으로 바로 바다로 이어진다.

정의농깍은 ‘드러물코지새별코지사이에 흘러드는 냇가 하류이며, 강정동 4969번지 지역이다.

이름 : 이 내는 함백이골’, ‘큰강정물’, ‘꿩망동산등 세 군데에서 용출하는 물이 모아져서 새별코지ᄃᆞᆫ물깍사이로 빠져나가는데, 정의논깍이라고 한다. 정의논깍이라고 하는 것은 지난 날 정의현 사람들이 와서 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정의논깍이라 하였다. ‘정의논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물이 끝닿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지명이다.

 

새벨코지/세별코지/새벨ᄆᆞ루는  강정마을 앞 바다에 있는 코지의 이름이다. 그 서쪽에 있는 드러물코지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 강정동 4968-1번지 앞이다.

바다밭 중 바다로 쑥 내민 암반 줄기를 코지라고 한다. 또한 새벨코지를 마을의 도허문(都許文) 등의 자료에는 세별코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코지의 이름은 새벨이라 하는데, ‘큰대여새벨코지사이의 조류 현상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간만의 차가 심한 썰물 동안에는 발을 적시지 않고도 걸어갈 수 있고, 밀물 때는 자그마한 배들도 드나들 정도로 물이 차 그 길을 막아 버린다. 따라서 두 곳 사이가 비어 버리는 현상이 일어나는 코지라서 새벨이라 하지 않았나 싶다. 제주도 여기 저기에 새비여또는 세벨여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이 곳들 또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곳인 경우가 많아서다.

'새벨코지는 서귀포시 관내 갯가 중 가장 바깥으로 쑥 내민 코지이기 때문에 조류가 그 만큼 셀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족자원이 풍부하여, 여러 가지 특이한 어법이 전승되어 온 바당이기도 하다. 해당되는 바다밭마다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로 하나 여기에서는 거름용 바다풀인 고지기에 한해서만 살핀다. 강정마을에서 거름으로 이용하는 바다풀은 두 가지가 있었다. 주로 너른머흘에서 채취하는 장몸새벨코지일대에서 채취하는 고지기. ‘장몸이 음력 정월과 이월 사이에 채취한다면, ‘고지기는 음력 7,8월에 채취한다. ‘ᄌᆞᆷ녀들이 자맥질하며 캐어다가 통시에 담아 썩힌다. 그래서 동짓달과 섣달에 통시에서 거름을 내어다 보리밭에 기비로 삼았다.

드러물코지/드러물 불턱

드러물 소금밧위에 있는 불턱이다.  불턱ᄌᆞᆷ녀들이 자맥질해서 작업하다가 언 몸을 따뜻이 하려고 마련해 간 땔감으로 불을 지펴 쬐는 곳임과 동시에 일상복에서 ᄌᆞᆷ녀복으로, 또는 ᄌᆞᆷ녀복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곳이다.  불턱에 따른 뚜렷한 시설물은 없다. ‘ᄌᆞᆷ녀들은 네물 날에서부터 여섯물 사이에 이 곳 바다에서 작업하는 수가 많다.

안강정 해안선

15KM 지점/좇인여

16시 09분 지나다

좇인여/안강정원/배들인개/돈갱이덕/뒷머흘/불턱/빈녀코지 

ᄌᆞᆽ인여는  안강정원 바깥쪽에 있다.  썰물에는 그 봉우리가 작게 나타나 보이는 이다. ‘ᄌᆞᆽ다 잦다의 제주어이다.주변 갯가에는 단물이 여기 저기에서 많이 솟고, 그 물은 이곳으로 흘러들기에 우미는 물론 미역과 전복도 많은 바다밭이다. 물질은 주로 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라 함은 주위보다 높게 위치한 곳으로 밀물 시에는 보이지 않다가 썰물 시 보이는 암반들을 말하며 이 곳에 해조류와 어패류가 많이 서식한다.

배들인개/돈갱이덕/뒷머흘 

돈갱이덕은  강정동 5080-2번지 해안이다. 빈녀코지소금밧 안강정개 사이에 있는 갯가 이름이다. 돈갱이의 의미는 알 수 없으며, 주위 갯가 중에서 조금 높아 이라고 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안강정개/자오락개는  ‘빈녀코지 서쪽 바닷가에 있으며, 강정동 5077-2번지 해변이다.  43사건 때 폐동되어 버린 안강정 외딴 동네에서부터 가까운 바닷가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곳 사람들만이 주로 이용해온 였기에 안강정개라고 한다. ‘는 포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테우 서너 척이 겨우 붙일 정도의 자그마한 포구이다.

안강정 해안/돈갱이덕/배들인개(안강정개)/안강정원/좇인여 

역방향

안강정원은  ‘ᄌᆞᆽ인여안쪽에 있는 이다.  안강정이라는 동네 가까운 데 있는 이어서 안강정원이라고 한다. ‘안강정원에서 볼 때 ᄌᆞᆽ인여는 천연적으로 바람막이 구실을 해주는 곳에 있는 샘이다. ‘이라는 해안 구축물은 연안에서 주로 멜(멸치)을 어획할 목적으로 직경 1척 내외의 큰돌을 적당히 쌓아 올려 구축한 것으로, 만조 시 고기들(멸치, 따치 등)안으로 들어와 있다가,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얕아지면 구축물에 차단되어 축대 안에 들어온 고기를 포획하는 것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갯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30년대 윤씨가 으뜸이 되어 계를 조직하여 을 만들었다. 강정에는 너븐물원, 모살원, 세별코지원, 돈물각원, 두러물원, 안강정원등 6군데가 있다. 그 중 안강정원은 강정마을에 있는 들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이었으나, 근래 보수를 하지 않았기에 흔적이 미미하다.

뒷머흘/빈네코지

뒷머흘은 ‘빈녀코지동쪽 흠치안쪽에 있는 머흘팟이름이다.  ‘빈녀코지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데, 그 중심에서 볼 때 이 머흘팟은 뒤쪽이 되기에 뒷머흘이라고 했다. ‘머흘은 제법 큰 돌멩이의 제주어이고, 그것들이 수북하게 쌓인 곳을 두고 머흘팟이라고 한다. 해삼과 전복이 많이 깃들어 사는 바다밭이다.

빈녀코지 소금밧/코지불턱

소금밧은 강정동 5623번지 앞쪽 해변이다. 빈녀코지에 있었던 소금밭이라는 의미이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지금도 그 곳에는 시멘트로 소금밭 울타리를 삼았던 흔적과, 그 안에 모래를 깔고 바닷물을 길어다 담아 ᄀᆞᆫ물을 뽑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코지불턱; 강정동 5627번지 해변이다.  ‘빈녀코지소금밧위에 있는 불턱이라서 코지불턱이라고 한다. ‘불턱ᄌᆞᆷ녀들이 자맥질해서 작업하다가 언 몸을 따뜻이 하기 위하여 마련해 간 땔감으로 불을 지펴 쬐는 곳임과 동시에 일상복에서 ᄌᆞᆷ녀복으로, 또는 ᄌᆞᆷ녀복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는 곳이다.  ‘불턱에 따른 뚜렷한 시설물은 없다. ‘ᄌᆞᆷ녀들이 간만의 차가 심한 웨살동안에 작업하는 빈녀코지일대의 바다밭에 일하러 왔을 때 이용한다.

빈네코지/빈녀코지

강정마을 바다밭 중 맨 서쪽에 있는 코지의 이름으로, 강정동 5114번지 앞쪽이다.

 ‘코지는 물 속에서도 길게 뻗어 있다. 그 모양이 마치 여자머리에 꽂는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빈녀코지라고 한다. ‘빈녀’. ‘비녜비녀코지는 돌출된 것을 뜻하는 제주어이다.  지난 날 빈녀코지일대가 전부 논이었으나 지금은 밭으로 변했다. 현재 일부가 지명을 '선녀코지'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된 표기이다.

수리덕

강정동 5620번지 해안이다.  ‘동물작지빈녀코지사이에 있는 이름이다. ‘수리의 의미는 알 수 없다.  수리덕가까운 바다 속에는 모래가 깔려 있다. 그래서 ᄌᆞᆷ녀들이 이 곳에서 주로 해삼을 채취하는데, 다른 곳에서 잡히는 해삼에 비하여 작다.

동물작지

강정동 5615번지 해안이다. 동물개수리덕사이에 있는 갯가 이름이다. ‘동물개가까운 갯가에 크고 작은 자갈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곳이어서 동물작지라고 한다.  강정마을에서는 떠밀려드는 바다풀을 풍초라고 하고, 예로부터 풍초채취 구역을 마을 동네에 맞게 셋으로 나눴다. ‘동물개에서부터 빈녀코지동물작지’, ‘빈녀코지에서부터 드러물코지까지를 안강정’, 그리고 드러물코지에서부터 세벨코지까지를 코지라고 이름하여 나누고는 1년 동안 그 채취권을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 마을 운영비로 삼아왔다. ‘동물작지는 서마파람이 불면 바다로부터 여러 가지 바다풀들이 집중적으로 떠밀려드는 곳이다.

동물개/월평포구

이첨장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냇가에 있는 포구의 이름이며, 강정동 5614번지 앞이다.

냇가의 이름을 두고 동물’, 그리고 거기에 있는 포구를 동물개라고 한다. ‘동물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웃 월평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포구로, 이 곳을 기점으로 하여 월평마을과 강정마을 사이에 경계를 삼는다.

동물개/월평포구

월평동/동ᄒᆡᆺ개/동해포(東海浦)>큰벵듸ᄆᆞ을/대평리(大坪里)>ᄃᆞᆯ벵듸ᄆᆞ을/월평리(月坪里)>월평동(月坪洞)

동물포구

동물포구/동물개/월평포구 입구

 

문들개

동해물포구 바로 서쪽에 있으며, 월평동 662번지 해안이다.  동물개알목사이의 조그마한 만을 말하는데, ‘문들개란 이름의 유래는 정확치가 않다. 해안에는 어른 주먹 크기로부터 머리 크기만한 자갈이 깔려 있다. 뒤는 기정이며 해안 경비초소가 있다. 이 앞은 ᄌᆞᆷ녀들이 물질하는 곳이다.

공사중이라서 7코스 주에서 꼭 봐야하는 '월평 큰기정'해안을 살피지 못하였다.

아쉬움이 크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따로 찾아 게재하겠습니다.

 

동물개 주변

2022. 4. 17. 2차 순례 월평에서 강정까지 해안도로 개설이 한창이다. 멀지 않아 "동물개" 포구 위로 걸다란 다리 하나가 놓여지고 이곳 자연 환경은 그렇게 또 무너지겠다. 문명이 무엇이기에

 

"동물개" 입구 해안도로 공사 중 2022. 4. 17.

 

동물개 월평 방향

 

문들개 해안선

 

문들개에서 동물개 해안선

 

볼레낭도랭이, 쇠코, 저승문 해안선

 

쇠코 해안선

 

쇠코

 

볼레낭도렝이 

 

쇠코, 산방산, 송악산

 

행기소 일뤳당

 

성창골 월평 본향당

도순마을 정동모들에서 가지 갈라온 신위는  옥황상제 말젯똘애기

 

성창골 월평 본향당

 

성창골 행기소 가는 올레

 

행기소 물막이보

 

행기소

 

 

 

 

월평 큰기정 해안

볼레낭도렝이/쇠코/붕애덕/새끼덕/빗개덕/족바디/성창굴/샛목/웃목/저승문/탄통/짐꾼내

바로 위에 그림에 있는 해안선입니다.

참 아름다운 절경이 많은 곳입니다.

공사 중 우회하였습니다.

행기소

마을에서 동물개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200m정도 내려가면 조그마한 하천을 만난다. 이 하천의 서쪽 약 50m 지점에 있는 샘이 행기소이다. 월평동 757번지에 있다. 물이 맑고 깨끗하여 당에 가거나 정성을 드릴 때 정화수로 이용되었다. ‘행기소라는 이름은 생기소(生氣沼)’가 변하여서 된 것이다. 물이 차갑고 시원하여 자리회를 할 때 떠다 먹었으며 여름철에는 동네 사람들의 목욕장소로도 이용되었다. 지금은 무그레미지역의 하우스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하여 모터와 파이프를 대량으로 설치해 두고 있어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소낭밧/아웨낭목

제주올레 7코스 종점

제주올레 8코스 출발점이다.

 

소낭밧

아웨낭목의 소나무 밭을 말하며, 월평동 513번지 일대에 있다.

월평마을은 풍수지리상 짐꾼내위쪽의 아웨낭목이 허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마을은 달의 형체를 함으로서 사방이 벵듸로 둘러싸여 있으나 짐꾼내쪽은 벵듸가 이어지지 못하고 떨어져 있으며, 그것 때문에 마을의 정기가 바다로 흘러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월평에서는 큰 부자가 나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쪽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은 아웨나무 밀식지로서 어느 정도 마을 앞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소나무를 더 심어 정기가 빠지는 것을 막고자 하였다. 이 문제에 착안하여 1930년 제일교포들이 아웨낭목을 매입하고 여기에 소나무를 심기로 했다. 실제로 김달생씨를 비롯한 24명의 재일교포들은 공동으로 이 땅을 매입하여 마을에 기증하였으며, 마을에서는 여기에 소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낭은 소나무, ‘은 밭의 제주어이다.

 

아웨낭목

마을의 비석이 있는 소나무 밭으로, 월평동 513-1번지 일대이다.

소나무를 심기 전에는 아웨낭(아웨나무)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아웨낭목이라고 하며, ‘은 나무의 제주어이다.

지금은 아웨나무 대신 소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주변에 체육공원 시설과 정류소가 세워져 있다.

16시 54분에 도착하였습니다.

도착하니, 강정초등학교 동창인 월평 토박이 김병용. 정봉조 두 칭구가 반갑게 맞이하여 줍니다.

칭구 왈

"이 벹난디 삭삭 덥지도 아녀그네. 잘도 거렴쪄. 양지보라 다 타분거 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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