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제주올레 6코스

相民 윤봉택 2024. 4. 19. 17:06

2021. 08. 31.

 

제주올레 6코스

 

2022년 1월 6일 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에

격로 제주올레 26코스 28개 노선에 대하여 연재를 합니다.

 

그 연재 중 8번째 6코스 내용을 이곳에 링크합니다. 

 

제주의소리  진 육자배기 가락으로 걷는 길…바당밧 너울지는 제주올레 6코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 매거진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진 육자배기 가락으로 걷는 길…바당밧 너울지는 제주올레 6코스 - 제주의소리

‘쇠소깍’ ᄃᆞ리에서 제주올레 6코스를 순례하자니, 육자배기 가락 없이는 내 오늘 해 지것다.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헤 ~~~‘쇠

www.jejusori.net

서귀포신문 진 육자배기 가락으로 걷는 제주올레 6코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진 육자배기 가락으로 걷는 제주올레 6코스 - 서귀포신문

‘쇠소깍’ ᄃᆞ리에서 제주올레 6코스를 순례하자니, 육자배기 가락 없이는 내 오늘 해 지것다.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구나. 녹수야 흐르건만, 청산이야 변할소냐.” 헤 ~~~‘쇠

www.seogwipo.co.kr

기사 133110.pdf (seogwip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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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코스133110.pdf
2.11MB

 

한진 KAL호텔네트워크, 공공도로 37년 무단점용..사유화 갑질 (daum.net)

 

한진 KAL호텔네트워크, 공공도로 37년 무단점용..사유화 갑질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 서귀포칼호텔이 37년째 무단으로 사용해 온 공공도로를 도민 품으로 돌려줄 수 없다면서 지지부진한 소송을 이어가고 있어 시민을 상대로 갑질을 한다는 지

v.daum.net

 

서귀포칼호텔, 공공도로 무단점용에 공유수면 불법매립 (daum.net)

 

서귀포칼호텔, 공공도로 무단점용에 공유수면 불법매립

서귀포칼호텔 전경 [출처=칼호텔 홈페이지] [제주=좌승훈기자] 서귀포시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공동대표 허정옥·윤봉택)과 서귀포시민연대상임대표 강영민)는 7일 공유수면을 불법 매립

v.daum.net

 

제주올레6코스는

2007년 10월 21일 개장되었는데, 처음에는 제주올레 2코스였다.

"서귀포칠십리"를 상징하는 의미로 해안선을 따라 올레를 열었다.

 

처음  코스는 '쇠소깍에서 서귀포 돔베낭길(쇠소깍-돈나무 군락지-제지기오름-보목 구두미 포구-검은여 해안-서귀포 칼호텔-파라다이스 호텔-소정방-정방폭포-이중섭화백 거주지, 이중섭미술관-천지연 생수궤길-남성리마을-외돌개-돔베낭길)'이었으나, 이제는 6코스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종착은 제주올레여행자센터이다.

 

이렇게 개장된 6코스가 2009년 겨울

한진그룹 이명희의 한마디( 이명희 "저것들 뭐야, 당장 막아" 호통에 제주 올레길도 차단).에 올레6코스 가운데 서귀포칼호텔을 경우하는 올레가 막혔다.

당시 칼호텔은 국유도로를 1985년 호텔 개장 이후 계속 불법점용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올바르게 돌려 놓기 위하여 시민사회가 나섰습니다.

 

36년 서귀포칼호텔 사유화 종지부 ‘자진 철거후 개방’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칼호텔 도로 불법점유와 무허가 매립, 도지사가 나서라" < 정치·경제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이명희 갑질로 막힌 제주 올레길, 시민에게 돌려달라" (news1.kr)

 

"이명희 갑질로 막힌 제주 올레길, 시민에게 돌려달라"

사실 앞에 겸손한 민영 종합 뉴스통신사 뉴스1

www.news1.kr

 

우여곡절 제주올레6코스

 

2021831일 마지막 화요일에는, 제주올레 6코스를 걸었습니다.

 

지난 42910코스를 시작으로

오늘 6코스를 완주하면

26개 코스 425km

3-B 코스 14.6km

15-B 코스 13km

전체 28개 노선 452km, 1차 순례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꼬닥 꼬닥 가랑비 오는 날 간세다리 걷듯 걸으며

제주목에서

성안·동목안·서목안,

대정현·정의현 올레마다 배어 스며 피어나는

구석구석 탐라 문화를 느끼고자 했습니다.

 

제주올레를 열어 주신 서명숙 선생님

제주올레를 지켜주시는 현장 봉사자님

깊은 마음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걷는 게 건강이다.”

 

앞으로도 계속 걸어질 때까지

매주 1, 한 코스씩 꼬닥 꼬닥 걸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풀리면

제주올레와 함께하는

세계 곳곳의 우정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오전 0824

쇠소깍 따라 제주올레 6코스 출발점에 도착하여

떠오른 해를 등에 지고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6코스 종점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제주올레 6코스는 효돈천 쇠소깍 상류

쇠소깍다리 휴게정자에서

제주올레센터 까지 11km, 28리 올레이다.

 

올레를 순례하면 살피는 문화 흔적 자료는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 남제주군 고유지명(1996), 북제주군지명 총람(2006)을 근간으로,

그리고 관련 지역 향토지와 읍면지, 마을 소개 자료를 인용하여 살피며

마을 주민 원로를 만나 의견을 구하고 있습니다.

 

서귀포시 하효동, 보목동, 토평동, 동홍동, 서귀동

해안선을 따라 서귀포의 해안과 서진노성의 서귀진

역사유적이 담겨 있는 올레이며

함께 살피는 유산은 아래와 같다.

 

1. 효돈천

2. 일뤳당

3. 권씨 조상당

4. 항통

5. 용짓당

 

6. 하효본향 큰당

7. 해신당

8. 쇠소깍

9. 소금막

10. 하효포구

 

11. 성제돌

12. 빈지바위

13. 강수기바위

14. 총각돌

15. 백모래통

 

16. 윗수물

17. 테우리통

18. 알수물

19. 게우지코지

20. 생이돌

     동바위

 

21. 좀녜불턱

22. 명지미/맹지미(중계소 앞)

    맹지미개

23. 소금밧/소금코지(하효동 1448)

24. 배네듯개/배는듯개

25. 큰업통

 

26. ᄀᆞᆯ매

27. 재지기오름

28. 설엉

29. 볼레낭개 환해장성

30. 새보미

 

31. 배개

32. 볼래낭개/보목포구

33. 등명대

34. 앞개

35. 정수내물/보목천

 

36. 엉캐물

37. 진동산

38. 연듸기

39. 연듸기 요드뤳당

40. 보목연대

41. 큰개물

42. 큰개

43. 섬도코지(보목로64번길 54)

44. 구두미 관청할망당

45. 구두미개

 

46. 섶섬/설피섬

47. 누알

48. 성알

49. 보목 누알당

50. 수련원

 

51. 쌈싸니코지

52. 소천지

53. 도리통

54. 방석덕(문필로 28/하수처리장 남쪽)

55. 백록정

 

56. 돗도리샘깍(보복동 1443-1/보목/토평 경계점

57. 흰동산(토평동 435)

58. 새미알(흰동산 내)

59. 토평동 환해장성

60. 토평 거믄여 요드뤳당(흰동산 내)

 

61. 안개/조근도리통

62. 셋도리통

63. 큰도리통

64. 거믄여

65. 칼호텔 올렛길

 

66. 소정방

67. 인증샷(소라의성)

68. 정방폭포

69. 애릿내

70. 정모시

 

71. 서불과지 기념관

72. 소남머리

73. 몰방앗간 터

74. 소암기념관

75. 서귀초등학교

 

76. 자구리공원

77. 서귀진지

78. 솔동산

79. 이중섭거리

80. 서귀본향당

 

81. 관광극장

82. 연듸동산

83. 서귀포 상설시장

84. 뒷병디

85. 제주올레센터

올레6코스 종점

 

수정 사항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요

 

제주올레 6코스 출발점

서귀포시 하효동 961-4번지에 있으며, 바로 동쪽 효돈천에는 '쇠소깍다리'가 있다.

 

오전 08시 24분 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올레 6코스는 평화올레입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2002. 11. 8. 유네스코에서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효돈천 포함), 시립해양공원 등 83,000ha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는 12월 16일 서명함으로써 발효가 되었는데, 국내에서는 설악산, 백두산에 이어 세번째 이고, 세계 95개국 가운데 425번째로 지정되었습니다.

헌데 문제는 지정되고 난 다음 관리부서였습니다. 당시 국내 정서는 그렇게 환경에 대하여 민감한 시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서귀포시청 관련 부서에 통보를 하였더니, 생물권보전지역이 뭐하는 것이냐며 이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고, 시큰둥 역반응을 보였다가,  2010년대가 넘어서야 행정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자기 일처럼요

 

효돈천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함께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며 생물권보전지역입니다.

 

효돈천 하천

과거에는 녹나무가 참 많이 자생하였던 곳입니다.

알쉐돈알쉐둔/하우둔(下牛屯)하효돈(下孝敦)>하효리(下孝里)>하효동(下孝洞)

 

조선조 초기 제주도에는 우마 육성을 위해 10개 목장으로 구분 관리하였습니다.

따라서 효돈천 지역은 9소장 관할로 소를 방목하였던 곳으로 우둔牛屯이라 하였습니다. 염소를 전문으로 방목하는 곳은 고둔羔屯(지금의 염돈/신시가지 서쪽), 다랑쉬오름 주변과 가파도는 흑우둔黑牛屯이라 하여 검은 소를, 마둔馬屯은 말을 주로 방목하는 목장지대를 말하는데, 대부분 중산간에서 해변까지는 주로 목장지대였고, 이 때 현재 효돈지역은  소를 방목하는  우둔牛屯이어서, 이를 쇠둔이라 부르다가 19세기에 와서 현재 효돈으로 마을 명칭을 변경하게 됩니다. 

 

쇠소/용연/쇠소깍

'쇠소'의 '쇠'는 우둔, '소'는 못, 깍은 하구를 의미합니다.

쇠소깍은 '쇠소'의 하구를 말한다. 

 

쇠소/용연

 

하효 본향당/큰당

쇠소깍위쪽, '대병밧' 건 건너 동쪽에 있으며 993번지 앞쪽으로 효례천 하류 지역이다

예로부터 하효마을 주민들이 음력 68일과 118일에 당에 찾아가 재를 지냈던 곳으로서 비가 안 오면 이 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큰당이 있기 때문에 큰당이라 부르고 있다. 바다와 하천 경계지역으로 현재 쇠소깍이 위치하고 있다.

 

해신당/용왕당

하효마을 좀녜들이 단골이다. 2000년대 까지만 하여도 쇠소깍 주변에 4군데 정도 당이 있었으나, 이제는 본향당, 용왕당 두개소만 남아 있다. 

 

항통

 ‘쇠소깍위쪽 있으며, 하효동 993번지 앞 효돈천 쇠소 내에 있다.

 ‘물통이 항아리 모양으로 매우 깊어서 항통이라 부른다. 깊은 물통에 방애귀를 꽂으면 지꾸섬(지귀섬)’ 뒤쪽으로 나왔다고 한다

 

쇠소/용연/용소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하여도 이곳에 소형 어선을 매어두기도 했던 작은 '개/포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쇠소깍

 

쇠소깍 하류

동쪽은 남원읍 하례리, 서쪽은 하효동으로  경계 하천이다.

남쪽에 보이는 게 '지귀섬'이다.

 

하효 검모래 해변

다른 백사장은 조개 패류로 형성된 백사장인데, 이곳은 화산 분출물 현무암류가 부셔저 만들어진 사장이다. 

 

효돈천 쇠소깍 해안선

 

하효 검모래 해변과 하효포구

 

하효 소금막

하효항 일대이며 하효동 1028번지 주변이다.  소금을 구웠던 곳으로 소금막이라 불려지고 있다. ‘은 막사를 의미한다.

 하효 어촌계 사무실이 있고  나갔을 때 들이는 곳으로 많이 알려지고 있다

 

소금막

역방향

 

하효포구/소금막

 

성제돌

소금막서남쪽 포구로 100m 지점이다. 돌이 두 개가 형제처럼 서 있어서 성제돌이라 부른다. ‘성제는 형제의 제주어이다.

 

 

 

 

빈지바위

'웃수물'과 소금막 사이에 있는 해안 절벽이다. '빈지'는 부엌과 상방(마루) 사이에 세워진 두 기둥 사이를 가로 지르는 널판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웃수물

강시기바위 북쪽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라 불려진 지명이다.

 

강수기바위/강시기바위

웃수물과 알수물 사이에 있는 암벽이다.

파도가 크게 질때 물보라가 일어나, 강수기(降水起)바위라고 부른다.

 

테우리통

 

알수물

강시기바위 아래 남쪽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이다. 

 

게우지코지와 생이돌

 

게우지 코지와 생이돌

 

게우지코지

'게웃'은 전복 내장을 말하는제주어이다. 전복 내장과 비슷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생이돌

 

생이돌

'생이'는 새를 가리키는 제주어이다. 새가 자주 날아와 앉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동바위

좀녜불턱 동쪽에 있는 바위

하효마을 좀녜불턱

게우지코지 서쪽 하효동 1452-1번지 해안가이다.

 

명지미/맹지미

하효동 1445-1번지 해안선이다. 높새바람(북동풍)이 강하게 불때는 동쪽에 있는 게우지코지, 서생이, 상식이여에 물길이 머물고, 하늬바람(북서풍)이 불 때는 서쪽에 있는 소금코지가 바람막이가 되기에 다른 곳에 비하여 바람이 불어도 잔잔하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명지미/맹지미

 

소금코지/소금밧

하효동 1448번지 해안선으로 과거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였던 곳이라 불려진 지명이다.이다. 

보목동에서는 이 지역을 "쫀물코지"라고 부른다.

 

배내듯개/배는듯개

썰물 때 포구에 배를 정박하지 못하면, 이곳에 배를 정박하였던 곳이다.

보목동에서는 이 지역을 "개머리"라고 부른다.

 

큰업통

 

큰업통

큰 물통이 있어서 불려진 지명으로, 좀녜들이 물질 배울 때 주로 이곳에 와서 배웠으며, 해산물이 풍부하였다.

 

골매

하효동, 보목동의 경계지점을 말한다.

 

골매 해안가

 

제지기오름

볼레낭개볼레남개/보애목포(甫涯木浦)보목포(甫木浦)>볼레낭개ᄆᆞ을/보남촌(甫南村)보목촌(甫木村)보목리(木里)>보목동(甫木洞)

 

감저전분공장 터

보목동 260번지 지역으로, 보목동과 하효 경계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하는 세경물(世境水)’이 있었다. 과거 전분공장인 보목산업사가 있었던 자리이다.

 

3km 지점

제지기오름 입구,  09시 35분 지나다.

 

 

제지기오름 입구

 

제지기오름 8부 능선에서 한라산은 구름이다.

 

제지기오름 정상

재재기오름/제제기오름/제지기오름/재지기오름/절오름

위치 : 보목동 동쪽에 있는 보목동 275-12번지를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는 오름으로 표고 94.8m이다.

이름 : ‘절오름이란 이름은 오름 남쪽 중턱에 있는 작은 굴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제재기오름 생긴 것이다. 그러나 절오름재재기오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사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진성기(제주민속박물관장)씨의 남국의 지명유래(1975)”에 의하면 "산 남쪽에 굴이 있어 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 하여 절오름이라 불리우던 것이 후에 한자 표기에 의해서 사악(寺岳)이라"불려졌으며, 또한 "이 절에는 절지기(절을 지키는 사람)가 있었다 하여 처음에는 절지기오름이라 불리던 것이 차차 와전되어 제지기오름이라 일컬어진다"고 하였다.

오성찬(소설가)씨가 펴낸 제주의 마을(11)” '보목리'(도서출판 반석, 1991)에는 "1800년께 제작된 옛 지도에는 저좌지(貯左只)’, 1840년의 지도에는 저즉지(貯卽只)’, 그 이전 1709년의 지도에는 저즉악(貯卽岳)’으로 되어 있다. 모두 앞에 ()’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오름 모양이 낟가리() 비슷한데서 연유한 듯하다"라고 하고 있다.

 

오창명씨의 제주도 오름과 마을 이름에 의하면,

이 오름은 탐라지도제주삼읍전도, 정의군지도 등에 저즉악(貯卽岳)/저즈기오름제지기오름’, 제주삼읍도총지도저좌지(貯左只)’, 제주군읍지(제주지도)정의읍지(정의지도) 등에 저적악(儲積岳)/저저기오롬’, 증보탐라지사악(寺岳), 절오름등으로 표기하였다. 오늘 날 지도에는 제지기오름으로 표기하였다. 현지인들은 주로 제지기오름제제기오름이라고 한다.

오름정상은, 예전에는 농경지였던 곳인데 지금은 억새와 고사리로 우거져 있다. ‘골총(폐총)’도 하나 있다. 북사면은 비교적 완만한 등성이가 두 가닥으로 뻗어 내려 그 가랑이진 곳이 각각 서북동쪽으로 나지막이 숲이 우거져 있다. 일제시대 초기에는 보목리 마을의 문서들을 이 오름 정상에 파묻었다고 한다. 해방 뒤 그 문서함을 찾기 위해 오름 정상 근처를 뒤졌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지귀도/지꾸섬

제지기오름에서

 

설피섬/섶섬

제지기오름 정상에서

 

문섬, 범섬, 서귀포항, 삼매봉, 정방폭포,

제지기오름 정상에서

 

보목포구/배개/배드린개/배개머리

제지기오름 정상에서

 

배개/보목포구

보목동 동남쪽 선착장 일대로, 보목동 557번지 부근이다.

 이 동네 앞 해변에 포구가 있는데 고깃배의 선착장으로 입지적인 조건이 좋아서 선박들이 정박하고 배를 매는 포구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여자애들은 열서너살부터 배개에서 물질하는 연습을 하여 ᄌᆞᆷ녀가 되기도 하였다. 네 차례에 걸쳐 포구의 근간인 동캐코지를 따라 동쪽 방파제, 그 맞은편 조작여쪽으로는 서쪽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배개안캐’, ‘중캐’, ‘밖캐로 되어 있는데, ‘안캐중캐사이에는 도대불(등대)’ 흔적도 남아 있다. 해방 후부터 어촌계 주관으로 배개에서 바다에서의 안녕과 해산물의 풍등을 기원하는 용왕굿을 하고 있다. ‘영등달(음력2)’조노궤당’, ‘매인심방을 모셔다가 굿을 하는데, 물자는 어부 또는 ᄌᆞᆷ녀들이 내놓는다. ‘는 포구의 제주어이다.

 

연듸개, 문섬, 범섬

제지기오름 정상에서

 

보목동 우잣담

서귀포시 보목포로 72번지 내

 

세경물/설엉/설낭

재재기오름남쪽 바닷가를 지칭하는데 보목동 261번지 서쪽 배개사이이다.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은 바닷가 암반지대를 일컫는 성창 혹은 바위나 돌무더기가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지대를 일컫는 설덕을 의미한다.

 

새보미

포구 동 방파제 해역 지명이다.

서남쪽에 '선돌'이라는 큰 여가 있는데, 썰물 때만 보인다.

 

보목동 환해장성

서귀포시 보목포로65번길 2번지 

 

한기팔 시인 시비

보목 포구에 세워져 있다.

 

강부자 77세 을유생 좀녜 삼춘이시다.

보목마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결혼하셨다. 보목포구 정자에서 여러 좀녜분들과 만났다.

1965년 나이 20대에 설피섬에 가서 설피(지들꺼)를 하고 물에 둥둥 띄워 안고 헤엄처서 섬도코지를 지나 다니셨다는 산증인이시다. 오래도록 무병장수하시길 기원드린다.  

 

정자에서 만난 보목리 좀녜 삼춘들

 

배개/보목포구

배개 안캐’, ‘중캐’, ‘밖캐로 되어 있는데, ‘안캐 중캐 사이에는 도대불(등대)’ 흔적도 남아 있다. 

 

보목포구의 안캐

안쪽에 있다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보목포구 도대불

 

보목포구와 자리

자리 다듬는 삼춘

 

앞개

마을 앞에 있는 '개'라 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포구 서쪽 지역이다.

 

앞개

역방향

 

진동산

정술내 서쪽 동산으로 연듸기 가는 올레에 있다.  동산이 길게 늘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정술내

 

엉캐물

 

볼레낭

보목동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볼레낭이 '정술내' 옆, 이곳에 있다. 칠십리로504번길 18-9(보목동 446)이다.

보목동은 일찍부터 볼레낭볼레남’(보리수나무)이 많은 ’[()]라는 데서 볼레낭개또는 볼레남개라 불러왔다. 한자 표기 보애목포(甫涯木浦)는 우리말 볼레낭개볼레남개의 한자 차용 표기이다

 

엉캐물/엄캐물/엉커물

정수천하류 해안 포구로, 보목동 572번지 부근으로 보목 오수펌프장에 인접한 남쪽 바닷가이다.

정수천하류는 험한 바위들이 솟아있는 해안으로서, 예전에는 단물이 솟았다고 했으나 지금은 매립되었다. ‘은 작은 바위그늘을, ‘는 포구浦口의 뜻을 나타내는 제주어인데, 처음에는 엄한캐라고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엉캐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정술내/정수천

보목동 중심을 흐르는 내로 보목동 1121-3번지에서 보목동 571번지까지이다.

정수(井水)정호(井戶)’우물물이란 뜻이다. 우물이 있는 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이 내는 지경에 따라 각각 달리 부르고 있다. 남쪽 바닷가에서 북쪽 혜관정사 서녘 중통사이를 정술내(정수내)’, ‘중통에서 북쪽 조노궤ᄃᆞ리사이를 당구리당’, ‘조노궤다리에서 북쪽 ᄆᆞ쉬물까지를 ᄆᆞ쉬물내’, 그 북쪽 토평신효동과 경계를 짓는 곳을 거린내라고 한다. 마을 중심부를 가로질러 남북으로 흐르는 정술내솔오름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면서 동홍동과 토평동의 경계를 이룬다. 보목동 북쪽에서 상효천과 합류, ‘둔부소에서 바다에 이른다. 옛날에는 샘이 솟아 식수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샘이 솟지 않는다.

 

둔부소/둠부소/둔비소

보목동 정수천 하류 원광사 부근으로 보목동 568번지 부근이다.

정수천 하류로 옛날에 이 곳에 바다 물오리들이 모여서 놀았다 하여  둔부소(屯鳧沼)’라 부르기도 하고 또는 거름용 바다풀인 둠북이 많이 밀려드는 소()라는 뜻의 둠부소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진동산에서 엉캐물

 

연듸기/연대기/연데기

보목동 해안가 엉캐물동산 부근으로 보목동 578번지 부근이다.

이 곳은 삼포왜란 떄 이 동산에서 돌로 연대를 높이 쌓아 올리고 섶섬에 배치한 동군좌지방군과 상호간 봉화와 연기를 피워 신호함으로써 이상 유무를 알렸다는 장소라고 전한다.

 

연듸기 유적

 

큰개

 

큰개/큰개머리

보목동 남쪽 해안 포구로 보목동 588번지 부근이다.

이 곳의 서쪽에 작은 포구가 있는데 이 곳의 포구 보다 크다는 뜻에서 큰개라 부르고 있으며, 포구로 뻗어 나온 육지를 머리라 부르는데, ‘큰개머리라는 말이 합해져서 큰개머리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는 낚싯배 테우’, 작은 배들을 메어 두었었다.

 

연듸기

 

조근개 가는 올레

 

ᄌᆞ근개 해안 바위

 보목동 남쪽 해안으로 보목동 600-3번지 해안이다.

바로 동쪽에 있는 큰개에 비하여 작은 포구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 또한 이 곳에 있는 물을 ᄌᆞ근갯물이라 하는데, 옛날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 이 곳에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지금은 오수 펌프장으로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제주올레에서는 잠시 휴식과 함께 

 

한기팔 시

보목리 사람들

 

동애기

보목동 남쪽해안으로 보목동 609번지 양어장 부근이다.

이 곳은 섬도코지동쪽에 위치하여 섶섬섬도코지사이가 마치 아귀의 입과 같이 동쪽은 넓고 서쪽은 협소하다 하여 동아귀라 부르던 것이 와전되어 동애기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다.

 

섶섬/설피섬/신도(新島)/삼도(森島)

보목동 해안에서 약450떨어진 앞 바다에 위치한 면적 0.142평방킬로미터의 무인도로 보목동 산 1번지이다.

바다 한 가운데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으로 둘러싸여 짙푸른 난대림으로 덮인 섶섬은 서귀포의 해안 풍치를 돋구어주는 섬으로 과거에는 화살을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었는데, 녹나무, 아왜나무, 호자나무, 북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동굴볼래나무등 10여종의 상록수를 포함하여 450종의 난대 식물이 자라는 곳이다. 또한 이 섬은 파초일엽 자생지’(천연기념물 제 18)로 이 파초일엽은 일명 넓고사리라고도 부르는 식물로서 아열대성 상록수양치류에 속하는데, 섶섬은 이 넓고사리의 북한계선이어서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서 밖에 볼 수 없다고 한다.

 

섬목

 섶섬과 섬도코지사이의 좁은 뱃길의 목이다.

섬 앞에 있는 바다밭이어서 섬앞의라고도 한다. ‘은 길목, 또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옛날 먹는 ᄆᆞᆷᄆᆞᆯ망은 이 곳에서만 서식했는데, 이 곳 섬목망을 최고로 쳤다. 이용식(1924년생)옹은 테우를 타고 섬목에서 해녀가 모살ᄌᆞ물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석회질 성분이 모자라 밭에는 모래를 뿌렸는데, 그 모래를 이 섬목에서 채취했다는 것이다. 배가 없는 집안에서는 섶섬에서 설피(땔감)을 하여 섬목으로 물에 띄워서 헤엄쳐 운반했다는 이야기도 구전(강부자 좀녜 산촌)된다. ‘ᄆᆞᆷ은 모자반을, ‘ᄌᆞ물다는 채취하다를, ‘모살은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섬도코지/섶섬코지

보목동 남쪽 해안으로 보목동 13771번지 남쪽 부근이다.

섬도는 섬의 입구를 나타낸다. ‘는 입구라는 제주어이다. 마을에서 섶섬 방향으로 길게 뻗은 코지()’가 있는데 섶섬과 육지와의 최단거리는 대략 100m로서 이 곳을 이용하면 어떠한 조류에도 구애됨이 없이 수영을 하여 섶섬까지 갈 수 있다 하여 섶섬코지또는 섬도코지라 부르고 있다.

 

구두미/구두미개

 ‘섬도코지서쪽 포구로 보목동 1351 번지 부근이다.

거북이 머리를 닮았다 하여 구두ᄆᆞ(龜豆山)’라고 부르던 것이 구두미가 되었다.

 

구두미개

 

구두미개에서 해안선 동영상

 

누알 가는 올레

 

누알 올레

 

누알 올레

 

누알/늬알

보목동 서남쪽 상한궤언덕 동쪽 낮은 해안으로서 보목동 1381번지 일대이다.

 ‘상한궤윗동산에 수루막이라는 방호소가 있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망을 보던 그 아래의 낮은 해변을 누알이라 부른다. 수루막밑이라는 데서 누알늬알(樓下)이라 한다는데,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망루' 아래라는 의미로 불려진 지명이 아닌가 한다.

 

성알

보목동 서남쪽 상한궤남쪽 1422번지 근처이다.

수루막동서 해안을 따라 돌로 성을 쌓아서 왜적들의 해안 침입을 방지하던 성의 흔적이 있는데, 그 아래 쪽을 성알이라 부른다.

 

보목동 소천지

 

쌈싸니코지/생이덕

 보목동 서남쪽 해안으로 보목동 1404-2번지 주변이다.

 바다 가운데 쪽으로 길게 뻗은 암반들이 물 위에 돌출하여 있는 곳으로, ‘삼포왜란때 왜선들이 침범하여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하여 쌈싸니라 부르며, ‘코지는 곶의 방언이다.

 

방석덕

보목동 서쪽 해안에 있는 언덕으로 보목동 14252번지 일대이다.

옛날 삼포왜란 때 쌈싸니 코지싸움에서 이 곳에 배치된 방군(防軍)들이 그 곳 언덕과 돌, 바위틈 등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 덕택에 생존자가 많아서 방석덕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갯가쪽에 넓적한 바윗돌이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방석을 닮은 듯 하다 하여 방석덕이라 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쌈싸니코지에서 문섬, 서귀포항

 

문섬/믠섬

서귀동 산 4번지이다. 섬 높이는 85.7m이며, 8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섬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민둥섬이었기 때문에 믠섬이라 부른다. 훈자표기는 독도(禿島)이다. (禿)은 민둥이라는 뜻이다. 음자표기는 문도(文島)이나 일본인들이 섬에 모기가 많다하여 모기문자를 써서 문도(蚊島)라 하였다. 1601년 남사록, 1653년 탐라지, 1679년 남천록, 1702년 남환박물, 1841년 탐라지초본 등에는 모두 문섬을 훈자표기로 독도(禿島)라 하였으며, 1700년대 발간한 제주삼현도, 1709년 탐라지도 등에는 음자표기로 문도(文島)라 하였고, 1920년 제주지도에 문도(蚊島)라 하였다. 연탄이 보급되기 전 까지만 하여도 땔감이 모자랄 때는 문섬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화목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나무에 염분이 많아 불이 잘 붙지 않았으므로 불을 지필 때에는 다른 나무와 섞어서 사용했었다.

 

문섬에 처음 찾아간 관리는 지영록의 저자인 제주목사 이익태이다. 탐라십경의 선자이기도 한 그는 1696917일 임기를 마치고 상경하려고 조천포구로 갔다가 후임자가 늦어진다는 소식에 문섬을 보려고 일부러 피리부는 노비와 관기(기생)을 데리고 서귀소로 와 기다렸다가 19일 아침 일찍 장선(粧船)을 타고 문섬으로 갔다. “섬에 도착해보니 섬은 하나의 거대한 돌봉우리었다. 온통 하얀데 마치 눈과 같고 섬 위에 붉은 나무 등 향기나는 풀들이 사시사철 봄처럼 자라고 있다. 암석 형상이 용이 누운 듯 혹은 짐승의 발자국처럼 하여 서로 무늬를 이루었고 섬 중간 지점에는 바위들이 넓기가 수 칸 짜리 방만큼 하며, 혹 작은 것은 벌집과도 같은데 바위들이 마치 벽에 분칠한 것 같았다.

벼랑에 올라앉으니 마치 온돌방 같은데 앞바다는 바다와 하늘이 한 색을 이루어 마치 조각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가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감상문을 적었다.

문섬 수중에는 난류가 흐르고 있어 사시사철 아열대 어종이 서식하며 각종 희귀 산호들이 자라고 있어 국내 최고의 수중 생태계의 보고이다. 동북쪽에는 의탈섬이 있다.

지난날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믠둥섬이었으나 섬에 상록 난대림이 울창하여 1995. 8. 26. 새끼섬(의탈섬)과 같이 제주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4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서귀포항의 관문을 지키는 섬이다.

 

ᄉᆞ래/ᄉᆞ레/ᄉᆞ레개/ᄉᆞ레포

서귀포시 하수종말처리장 옆이며, 보목동 1429번지 주변이다.

사래(死來)’ 또는 사래개(死來 浦口)’라고 부르는데 삼포왜란쌈싸니 코지에서 왜적들과 싸우면서 전사한 많은 시체와 둠북이 조류에 의해 이 포구에 떠밀려 왔다는 데서 ᄉᆞ래라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인근의 묘비에는 사이포(似伊浦沙伊浦)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이 곳에는 파도에 의해 많은 바다 부유물들이 밀려온다.

 

개왓

보목과 토평 경계가 인접한 서쪽 해변으로 ,보목동 1433번지 일대이다.

삼포왜란쌈싸니 코지싸움에 지원병을 싣고 온 배들이 도착하여 정박했던 포구라는 의미에서 개왓이라 부른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귀영여

해상에 바닷물 위로 솟은 암석이 있는데 이 부근 해역을 귀영여라고 부른다. 이 곳은 토평바다와 보목바다를 구분하는 바다라는 뜻에서 원래는 구역(區域)이던 것이 와전되어 구영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돗고리샘깍

돗고리샘이 바다에 닿는 곳으로서 보목동 서쪽 끝, 토평동과 경계점인 개왓동쪽 보목동 1443-1번지 지점이다.

은 끝의 제주어이다.  ‘돗고리샘깍남쪽 바다에는 토평동과 경계를 짓는 귀영여가 있다.

 

개왓

보목과 토평 경계가 인접한 서쪽 해변으로 ,보목동 1433번지 일대이다.

삼포왜란  쌈싸니 코지 싸움에 지원병을 싣고 온 배들이 도착하여 정박했던 포구라는 의미에서 개왓이라 부른다. ‘은 밭의 제주어이다.

 

토평마을 해안

 

토평동 환해장성 유적

 

토평동 해안

돗드르/토평(土坪)토평(吐坪), 웃쉐둔/상효(上孝)>토평리(吐坪里), 상효리(上孝里)>영천동(靈泉洞)

돗드르톳드르/토평(土坪)>토평리(吐坪里)>토평리(吐坪洞)

 

ᄃᆞᆺ드르라는 이름은 당시 이 지역이 한라산에서부터 울창한 원시림이 연결되어 산짐승들이 아주 많았으며 그 중에서도 산돼지가 떼를 지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ᄃᆞᆺ드르라고 불렀다. 1920년대 오일화씨의 고조모 산소를 이장할 때 잔질게동산(토평공업단지)’에서 동상효마을 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몰면서 내려올 때, 토평 지경으로 멧돼지가 넘어오자 이묘하러 가던 토평마을의 상딧꾼들이 먼저 포획해서 추렴하였다고 하며 이후로는 멧돼지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ᄃᆞᆺ은 돼지, 멧돼지, ‘드르는 벌판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군두물/군도물

 거문여 위쪽이며 토평동 435번지 부근이다.

 ‘군도물(軍到水)’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삼포왜란(1510년. 중종 5년)  쌈싸니 코지에서 싸울 때 방군의 지원군을 실은 배가 도착한 곳이라고 해서 유래되고 있다.

 

7km 지점

12시 46분 지나가다

 

토평동 환해장성

 

흰동산

 

흰동산

거문여동쪽에 있는 동산이며 토평동 435번지이다.

 ‘거문여에서 동쪽을 보면 거문여보다 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큰도리통

거문여횟집 앞에 있다.

3개의 통이 있는데 바다와 인접하여 있고, ‘테우를 정박하는 곳이다. ‘도리는 다리의 제주어이다. 서쪽은 낚시터가 있고, 북쪽 으로는 칼 호텔이 있다.

 

작은도리통/안게

거문여 횟집 바로 앞에 있다.

 게의 집게발 모양을 하고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도리는 다리의 제주어이다. 태풍 불 때 테우를 뭍으로 올려 정박을 하였다.

 

섶섬/쌈싸니코지/흰동산

 

거믄여

바닷가 현무암 전체가 검게 보여서 불려진 지명이다. '여'는 너설의 제주어이다.

 

검은여

 

검은여 기정

 

거믄여물

검은여해안 올레

1985년부터 서귀포칼호텔이 무단 점유하였던 도로를 원상복구 요구하면서, 점사용 목적이 소멸된 구거(물골)을 복원하여 시민들의 족욕 시설로 만들도록 주문 하였네요

서귀포미래를생각하는시민모임, 허정옥. 윤봉택. 오한숙희. 박연술. 김소현. 권유연. 서명숙

 

거믄여 기정

 

거믄여와 섶섬

 

자구리소남머리/정방폭포/소정방

 

정방폭포/큰무죽시/무죽시

동홍동 240270번지와 동홍동 310번지대로 정방폭포 일대이다.

정방폭포를 큰 무죽시’, 소정방을 ᄀᆞ는무죽시라 부르면서 그 일대가 무죽시로 통했다. ‘무죽시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허니문 하우스에서 소정방가는 공유수면 올레

 

↑소정방 해안

↑소정방 해안

소정방폭포/고는무죽시/무죽시

동홍동 240270번지와 동홍동 310번지대로 정방폭포 일대이다.

정방폭포를 큰 무죽시’, 소정방을 ᄀᆞ는무죽시라 부르면서 그 일대가 무죽시로 통했다. ‘무죽시의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소라의 성 해안

바로 이 해안에 1990년대 까지 큰 소라 모형의 콘크리트 건조물이 세워져 있어 '소라의성'이라고 불린다.

 

소라의 성,  김중업 작품이라고 ???

건축가 김중업은 1988년도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 있다.

소라의 성은 1969년 준공된 지상 2층 건물이다.

안내판에는 이 소라의 성 건물을, "설계자는 미상이나 학계 등의 다수 의견은 김중업씨 작품으로 보고 있다."라고하여 마치 김중업이가 설계한 것으로 내용을 이끌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렇게 두리뭉실할게 아니라, 첫째로는 어느 학계 인사가 그러한 고견을 내고 있는지 분명하게 대표 의견을 주는 분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 나는 건축 문외한이라 모르지만, 김중업 님의 설계작품 목록에는 1965년도 제주대학본관 건축물 설계는 기록되어 있지만, 이 소라의 성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들었다.

나도 설계하시는 분께 필요하여 이 건물에 대해 자문 받아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분명 아니라고 하셨다. 

나 또한 이 건물이 김중업 작품이면 좋겠지만, 모방 작품이면 어떤가. 현재 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억지로 김중업 작품이라고 아전인수할 필요가 있을까.

 

 

소정방 소라의 성

중간 인증샷

 

13시 30분 도착 인증샷

 

남영호 조난자위령탑

슬픈 서귀포의 자화상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해양사고였으나, 당시 시대에 있어서는 사고 자체가 축소되기에 급급하였다. 지금이라도 새롭게 밝혀져야한다.

 

동홍동 / 홍로/烘爐洪爐>동홍로ᄆᆞ을/동홍로리東烘爐里>동홍리東烘里>동홍동東烘洞

 

왈종 미술관

 

서복전시관

 

영주10경 경승지 표석

 

정방폭포 위

정모시에서 발원한 물줄기이다.

 

아릿내/애릿내

동홍천 중하류로서 동홍동 1703번지 아래부터 1440-1번지 경계까지를 말한다.

동홍천의 하류이기 때문에 아랫내’, ‘애릿내등으로 불려진다고 하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정무소내/정모시내

동홍천 하류 끝 부분으로서 동홍동 2174-17번지의 도로 밑을 흐르는 하천이며 이 물이 정방폭포까지 이어진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정방폭포를 정모연(正毛淵)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정방폭포 위의 수원지를 정모시라고 부르고 있다. ‘정모시는 정방폭포 위에 있는 수원지를 말한다.

 

서귀동/서귓개/서귀포(西歸浦)>서귀ᄆᆞ을/서귀리(西歸里)>풍덕리(豊德里)>서귀리(西歸里)>송산동(松山洞),정방동(正房洞), 중앙동(中央洞), 천지동(天地洞)

 

물레방아 터

정방폭포의 수원지인 '정모시'에서 물을 이끌어 '서귀진성'에 급수를 하였고, 당시 주변에서는 이 물을 이용하여 감저전분가공공장, 물방아, 논농사를 지었었는데,

여기는 물을 이용하여 방아를 하였던 물방아터이다. 소암전시관 동쪽이다.

 

 

소암 기념관

소암 현중화(1907~1997)

 

자구리 해안 가는 올레

 

자구리 올레

간편하게 점심/국수 하기에 좋은 식당 <서귀포 고기국수>

 

서귀진성 가는 올레

 

서귀진

서귀동 713717번지 주변이다.

지난 날 이 고장을 위협하였던 것은 바람과 돌이라는 자연 재해보다도 외부로부터의 침입이었다. 서귀포의 경우. 산남 그것도 정의, 대정현의 경계점에 위치해 있었기에 방어에 어려움이 따랐고 상대적으로 외침의 수난은 더 가중되었다. 이러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세워진 것이 서귀진성이다.

 

서귀진(西歸鎭)의 모습은 탐라순력도의 서귀조점(西歸操點)에서 살펴볼 수가 있다.

이 그림은 1702(숙종 28)에 만들어졌다. 그림을 살펴보면 서귀진(西歸鎭)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 타원형으로 축성이 되어 있고 동·서쪽에 성문이 있으며, 성내에는 병기고, 객사, 창고 등 여덟 채의 건물이 있으나, 병기고만 지붕이 기와로 덮여 있을 뿐 나머지 일곱 채는 모두 새로 덮여 있다.

성문 밖 서북쪽에는 활 쏘는 연습장인 사장(射場)있고, 서귀성이 당시에는 새로운 지역이었던 듯 성 북쪽 구서귀(舊西歸)지역에는 잣성이 둘러져 있어 말들을 사육하고 있으며, 또한 서귀포에는 수전소(水戰所)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서귀성이 언제 홍로에 세워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제주 도안무사(都安撫使) 한승순(韓承舜)이 의정부에 보고한 내용(세종실록 1439, 세종 21)에 의하면, "이미 서귀소(西歸所)에는 마보병(步兵) 124명이 근무하고 있으나, 성곽(城郭)은 없다"고 되어있다.

탐라지(1653년간) 정의 성곽 · 방호소편에는 "서귀성은 돌로 쌓아 있으며 주위가 8255, 높이 12, 성장(城將) 1명 있다. 서귀방호소는 서귀포에 있으며 동성(東城)에는 객사, 별창, 군기고, 사정이 있다. 정방연의 물을 끌어다가 동성안에 작은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남는 물은 서성(西城)밖으로 흘려 보냈는데, 영차(營差)와 여사(旅師) 1인씩 근무하였다."

 

제주목사 이원조(184143)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에는 "서귀성은 본래 홍로천 위에 있었으나, 1590(선조 23) 목사 이 옥(李 沃)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졌으며, 성은 정의현 서쪽 70리에 있고, 성 둘레는 825, 높이 12척이며, 서쪽과 남쪽에 성문이 있고 성안에는 객사, 별창, 군기고, 사장이 있다. 조방장(助防將) 1, 지총(雉摠) 1, 방군(防軍)70명과 사후선(伺候船) 1척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서귀진 아래에 있는 포구를 수전포(水戰浦)라 부르며, 항구가 매우 넓어 절벽을 의지하면 수백 척의 선박을 감춰 둘 수가 있는 곳이다. 서귀진 주변에는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다만 어려운 몇 가구만 살고 있다. 때문에 서귀진주변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진() 아래 사용하지 않는 목장을 이 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8섬지기 분량에 한하여서는 영구히 세금을 감면하여 떠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다. 성 밖에는 다분히 논이 있었다. 성의 동쪽에서부터 정방연의 상류까지 수로를 파서 물을 이끌어와 논을 만들고, 식수로 사용하다 남는 물은 성 남쪽 밭으로 보내어 모두 옥토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정의군고지(旌義郡古誌 1899년 광무 3)에는 서귀성을 서귀보(西歸堡)라하며 "석성(石城)으로서 주위가 825, 높이 12,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고, 성안에는 우물이 있으며", 당시의 정의지도에는 서귀진 위쪽을 풍덕리(豊德里), 서귀포를 수전포, 서귀진에는 동문과 서문이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서귀성 위치는 솔동산이라 불리는 곳 동쪽 지역인 서귀동 717번지이다. 일합방 초기까지만 하여도 이 곳에서 주민들을 다스렸으며, 환상(환곡)을 나눠주기도 하였다. 커다란 기와집 3채가 있었으며 죄인을 가둬두는 곳도 별도 있었고, 건물 입구에는 문이 있었으며, 이 문이 있었던 곳을 성문거리라고 했다. 1906(광무 10) 서귀진이 일본에 의해 폐지가 되면서 서귀순사분파소(파출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 서귀성터로 추측되는 서귀동 717번지(제일교회) 일대에는 당시 성벽이나 또는 건물에 사용했음직한 돌 몇 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서귀성터로 추정되는 717번지경내 동산에 서서 보면, 서귀포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어, 서귀성이 정의현과 대정현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물터 유적

 

수로

정모시에서 물을 당겨온 수로(자료 사진)

 

수로 내부

 

수로 내부

 

물 저장통/우물터

 

당시 사용되었던 목재

 

서진노성西鎭老星

영주12경의 하나인 서진노성은 서귀진에서 새벽에 일어나 무병장수의 별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료는 1904년 서귀진에 있는 노인성단을 수리한다는 자료이다.

 

<원문>

訓令

現接本郡居前主事邊鵬老請願書

則內開本郡西歸鎭星壇漢拏山之南麓이요 老人星之所臨이라

當初設壇寔出祭星之義而現令修築年久風雨侵頽하옵고

鷄犬汚穢하야 遂使至靈之地不潔眞甚하오니

右星壇別加修築하고 其上營建閣宇하야

以寓華封祝

聖之忱고져허오나 不敢擅便하야 玆以請願하오니

特使本人委任하옵고 准此訓飭하시와 本人自擔幹役하고

修築星壇而俾伸爲祝之忱케하심을 伏望等因准査한즉

今此邊鵬老自擔建閣欲伸祝

함이 究其忱誠殊甚可嘉이기로 依願許施하고 玆庸訓令하니

到卽其築壇建閣之節使之恪動擧行하야 盡誠爲 祝케함이

爲宣事

光武八年 一月十四日

內藏院卿 李容翊

旌義郡守 蔡洙康 座下

 

훈령

현재 정의군에 살고 있는 전 주사 변붕노가 보내온 청원서.

그 내용을 살펴보니, 정의군 서귀진에 있는 노인성단은 한라산 남쪽 기슭으로서, 무병장수의 별 남극노인성의 정기가 비추는 곳이라.

처음에 노인성단을 설치한 것은, 참으로 신령스런 노인성에 대하여 춘추로 노인성제를 지내기 위해서였으나, 지금은 성단을 수축한지가 오래되어 비바람에 무너져 훼손이 되었으며, 주변은 닭이나 개들의 분비물로 더렵혀져 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신령스런 성단이 참으로 불결하게 되었으니,

이제 노인성단을 별도로 수리하고 그 위에 성단을 보호하는 노인성각(老人星閣)을 지어 화봉(華封)의 삼축(三祝)을 드리며, 임금님의 무병장수와 국운 융성을 위하고자 하오나, 감히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서, 이에 청원을 드리오니.

 

특사를 저에게 위임하여 주시옵고, 이 일을 승인하여 주시어, 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노인성단을 수축하여, 무병장수의 축원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청원서 내용을 살펴보니.

지금 정의군에 살고 있는 전 주사 변붕노가 스스로 노인성단을 수리하고, 그 위에 노인성각(星閣)을 지어, 임금의 무병장수를 축원하겠다고 하는, 그 지극한 정성과 그 마음이 매우 가상 하기에, 청원하는 내용 그대로 허락하며, 이에 훈령으로서, 그대를 서귀진 노인성단을 수축하는 자로 삼고자 하니,

훈령을 받는 즉시 노인성단의 수축과 성각(星閣)을 짓는 시기를 정해 거행하도록 하고, 노인성제를 통해 성심을 다해 축수(祝壽)를 하여 모두를 이롭게 할지라.

광무 8(1904)114

내장원경 이용익

정의군수 채수강 좌하

 

솔동산

서귀동 580-4번지(서귀포수협 솔동산지점)에서 서귀동 717-7(서귀진성지)까지이다.

솔동산의 유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각기 다른 이유에서 불려지고 있다.

 

첫째. 일합방 시기에는 현재 해성유치원자리에 보통학교 (4년제)가 있었고 구 농산물검사소자리에 경찰 주재소가 있었다. 당시 주변(서귀포 담배인삼공사 및 구 감귤협동조합 자리)은 모두 벌판이었는데, 왜군을 막기 위해 우리 군사들의 훈련을 하는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 그 사장(射場) 내 가장 높은 동산(서귀동 585-6번지 부근)솔대를 길게 세워 놓고 활을 쏘기 위하여 솔대가 세워졌다는데서 솔대동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와전되어 쏠솔동산이라 부르다가 솔동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둘째. 옛날 이 언덕에 소나무가 많이 있어서 소나무 동산이라고 부르다가 솔동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셋째. 옛날 이 언덕에는 소나무도 있고 고목도 많이 있어서 솔동산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일제시대 때 구 농산물검사소자리가 경찰 주재소로 이 부근이 일본사람들의 생활 근거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무들도 다 베어 없어지고, 마을행사를 거행하는 중심이 되었던 거북돌을 없애는 등 비석들도 모두 치웠는데 그 중 일부는 현재 비석거리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솔동산 입구

 

이중섭 거리 입구

 

퐁낭 빨래터 유적

현재 이중섭 기념관 주차장 팽나무 아래이다.

 

이중섭 거주지 가는 올레

 

서귀포관광극장

서귀포에 처음 극장 설립된 것은 1950년대 서귀동 589-3번지 내 현재 샛기정공원에 설립된 '서귀극장'이 처음이었고, 이 때는 '서귀면' 시절이었다. 1960년대 초 고영우 화백 선친께서 서귀극장을 임대하여 극장 영업을 하였으나, 1963년 3월 서귀동 519번지에 서귀포관광극장이 개관되면서 페업을 하게 되었다. 이후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전국을 순회하며 애국가를 홍보하던 중,   1964년 2월 9일에 서귀포관광극장에서 시민을 상대로 직접 애국가를 지휘하며 홍보를 하기도 하였다. 이후 컬러 TV 보급과 각종 방송 매체 체널 증가로 1999년 폐업을 하게 되었고, 현재는 대중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듸동산

1930년대 까지 망을 보았던 터가 있었다.

 

이중섭거리

이중섭거리에 대하여는 꿈꾸는 섬 (daum.net)  앞의 꿈꾸는섬을 클릭 하시면 상세하게 확인 가능합니다.

 

이중섭거리 노천 전시

 

서귀포매일시장 올레

 

동문로터리 방향

 

3호광장/서문로터리 방향

 

동문로터리 방향

 

상설시장 입구

 

쌍둥이식당 방향

 

1호광장/중앙로터리 방향

 

중앙파출소 터

 

천지동사무소 방향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방향

 

제주올레 여행자 센터

 

제주올레 6코스 종점

제주올레 7코스 출발점

제주올레 7-1코스 종점

 

15시 25분 도착핸요

 

1차 제주올레 전코스 완주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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