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제주올레 12코스

相民 윤봉택 2022. 8. 16. 10:14

2021. 09. 11.

 

제주올레 12코스

 

2022년 1월 6일 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에

격로 제주올레 27코스 29개 노선에 대하여 연재를 합니다.

 

그 연재 중 열여섯 번째 12코스 내용을 이곳에 링크합니다. 

 

제주의소리  바람처럼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제주올레 12코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 매거진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바람처럼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제주올레 12코스 - 제주의소리

올레는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사물을 통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혼자 걸을 때는 혼자만의 멋으로, 둘이 걸을 때는 둘의 멋으로, 셋이 걸을 때는 셋의 멋스러움으로 순례하다 보면, 돌담

www.jejusori.net

 

서귀포신문  바람처럼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제주올레 12코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바람처럼 너와 나의 경계가 없는 제주올레 12코스 - 서귀포신문

올레는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으고, 사물을 통찰하게 하는 힘이 있다. 혼자 걸을 때는 혼자만의 멋으로, 둘이 걸을 때는 둘의 멋으로, 셋이 걸을 때는 셋의 멋스러움으로 순례하다 보면, 돌담

www.seogwipo.co.kr

 

기사 134910.pdf (seogwip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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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코스134910.pdf
2.72MB

 

2021911일 토요일엔

제주올레 12코스를 순례하였습니다.

 

오전 0915분에

대정읍 무릉리 무릉외갓집 12코스 출발점에 도착하여

대정읍 신도리 신도초등학교 중간 인증샷 1155분에 찍고

종점 한경면 용수리포구에는 1718분에 닿았습니다.

 

제주올레 12코스는

무릉리 무릉외갓집에서부터 용수리 포구 절부암 까지

17.5km. 44리가 넘는 올레입니다.

 

무릉외갓집, 좌기동, 사기동, 무릉리, 신도리, 용수리,

산간지역에서 해변마을 까지입니다.

 

이 지역은 탐라권 서부지역에서

논농사가 이뤄졌던 지역으로 부촌입니다.

 

제주도에서 세 번째로 살기 좋은 제3도원을 지나갑니다.

 

마을 지명 관련하여서는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

남제주군 고유지명(1995.1996)

북제주군 지명총람(2006)

해당 마을 향토지

해당 읍·면지를 참고하여 현장을 담았으며

지번이 잘못 표기된 곳은 수정하였고,

순례 도중에 마을 분(토박이)을 뵈면

추가 조사를 담았습니다.

 

지나는 동네는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신도리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용수리

 

1. 무릉2리 좌기동(무릉외갓집)

2. 좌기동 할망당/왕갱이동산당(무릉리 638/외갓집 뒷밭)

3. 4·3위령비(무릉리 574-1)

4. 왕개동산(무릉리 574-1)

5. 사기수(무릉리 1166-4)

 

6. 앞밧(무릉리 564-4)

7. 굴동산(무릉리 1242)

8. 먼모둥이/원모둥이(무릉리 1078)

무릉2리 평지동

9. 앞캐안(무릉리 986-1)

10 고바치/고전동(高田洞)(무릉리 973-1)

 

11. 향사(무릉2리 평지동 940-11)

12. 섯병듸(신도리 211-2)

13. 천녀의보(무릉리 2566-1)

14. 통논(무릉리 2645)

15. 저수지(생태연못)

 

16. 목장밧(신도리 751-4)

신도리/된개·둔포(屯浦)/돈대/둔포리

17. 녹남봉/장목악/농남악/도원악/농난봉

18. 농포제단(녹남봉)

19. 보롬이오름(무릉리 3526)

20. 신도초등학교(인증샷)

 

21. 고동왓동네(신도리 1381)

22. 제남선생기념비(신도리 1727-6)

23. 된개

24. 앞동산(신도리 1608)

25. 왕소왓(신도리 1635-1)

 

26. 정남밧(신도리 1590)

27. 군물(신도리 1588)

28. 거욱대(신도리 2310-2)

29. 신도리 고인돌(신도리 2458)

30. 빌레물(신도12453)

 

31. 도구리알(신도리 3127)

32. 하멜난파희생자위형비( 신도리 3125-4)

33. 멜케원(대정읍 노을해안로 704)

34. 모살물동네(멜케원 북쪽 마을. 신도리 3111)

35. 신도포구(신도2)

 

36. 논깍(신도리 3030)

37. 개맛동네(포구 동네)

38. 논깍/농깍/논깍동/답미동(畓尾洞)

39. 멜케(신도리 2922)

40. 방애왓동네/방앗동네(신도리 2967번지 일원)

 

41. 건지논(신도리 2909)

42. 앞내창(신도리 2909)서귀포시·제주시 경계 도랑)

43. 고세미내(고산리에서 부르는 지명)

44. 고새미(고산리 3128-7)

45. 묵은테개(앞내창 깍에 있다. 신도리 2937)

 

46. 고새미내깍(고산리에서 부르는 지명)

한장동/광전廣田/너븐드르/너븐밧동네

고산리/자귓벵듸/

47. 앞밧(고산리 3824-1)

48. 진밧(고산리 3790)

49. 수월봉 영산비(고산리 3761)

50. 성제돌(팔각정 북족 해중에 바위 두 개/고산리 3696-1)

 

51. 뒷성코지/성제돌코지

52. 수월봉/녹고물오름/놉구메오름/고구산/고근산/고산

53. 너븐개(수월봉 북쪽 해안가)

54. 녹고정(고산리 3675-1)

55. 엉알

 

56. 샛엉(한지머리코지와 성제돌코지 사이로 새로 만든 진입로 사이)

57. 일제동굴진지

58. 엉알물(용운천/고산리 3653-1)

59. 녹고물(고산리 3651)

60. 차귀도/죽도/자귀섬(본섬/고산리 산 69))

 

61. 지시리섬(독수리바위/고산리 산 35)

62. 병풍바위(범바위)(고산리 산 133)

63. 쌍둥이바위)( 고산리 산 129)

64. 와도(고산리 산 34)

65. 차귀방호소

 

66. 자구내(고산리 3997)

67. 웃머리(포구 남쪽 어촌계 창고 옆/고산리 3615-11)

68. 너른작지(포구 남서쪽 해안가/고산리 3612-1)

69. 등대알(등명대 아래 해안)

70. 등명대

 

71. 자구내포구/사귀포/고산포구/돔베성창/자귓개/차귀도포구

72. 차귀포구 선왕당(고산리 3616-16)

73. 용찬이고냥(포구 북쪽 해안/고산리 산 7)

74. 차귀당

75. 당산봉/당산/당오름/당산악/차귀산/차귀악/차귀오름

 

76. 당산봉수/당산망/차귀봉수

용수리/지삿개·와포瓦浦/우두포牛頭浦·쉐머릿개/우포友浦·벗개/군영개·군영포軍令浦/지사포地沙浦/법기동法基洞

77. 당산 알오름(굼부리에 있는오름)

78. 칼도리 (포구 북쪽 해안가/용찬이고냥과 썩은바위 사이)

79. 생이기정(용수리 산48)

80. 두렁바위/너븐빌레(당오름 서쪽 해안가) 저승고망과 안옹수 사이) 용수리 산 60

 

81. 옹수알/안옹수(해안가)/용수리 4625

82. 도랑(용수리 4722

83. 사니코지(용수리 4554)

84. 제단(용수리 4549)

85. 하상물(용수리 4548)

 

86. 잉기돌

87. 용수마을 방사탑2/매조재기

88. 붉으내(용수리 4275-1)

89. 김대건 신부 난파곶

90. 절부암

제주올레 12코스 종점

 

↑ 무릉외갓집

 무릉2리 좌기동 제주올레 12코스 출발점,  / 대정읍 무릉리 638번지

 

제주올레 12코스 출발점 간새

무릉외갓집 '무뚱'에 있다.

 

↑ 무릉외갓집

 버스 시간표입니다.(2021. 09. 11 기준)

 

제주올레 12코스는, 무릉리 무릉외갓집에서부터 용수리 포구 절부암 까지, 17.5km. 44리가 넘는 올레입니다.

 

오전 09시 15분에 출발핸요

 

왕개동산 / 4.3 희생자 위령비

 

무릉도원 아시죠

 

4.3위령비

탐라섬 마을마다 올레 닿는 곳 마다, 4.3 아픔 없는 마을이 없습니다.

탐라섬에 있어 4.3은 상처입니다.

 

왕개동산

왕(王)씨 성을 지닌 테우리(목동)가 살았던 동산이라 불려진 지명이다. 탐라섬이 한때 원나라 지배를 받을 때 탐라총관부가 설치되었고, 당시에 원나라에서는 탐라의 자연 환경을 이용하여 말을 방목하였는데, 이 말을 돌보는 자를 몰테우리(목동)라고 한다. 무릉2리 640번지 좌기동 일원이다.

 

사기수蛇起

무릉2리 좌기동을 말한다. 마을 지형이 마치 뱀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겁에 질린 개구리를 발견하고, 그 개구리를 먹으려고 머리를 치켜든 형세라 불려진 지명이다. 

 

좌기동 농가

대정읍 암반수마농로 535번지에 있는 돌집이다.

 

제주민가 용마루 망와(치미)

기와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 긴요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와 형태로 보아서는 당시 제주에서 생산된 기와인 듯 하다. 망와 모양새가 사한 것을 물리치는 귀면 형상을 하고 있다. 곱게 올린 적새 우에 문양을 새긴 망와로 마감하니 참 좋다. 집이 많이 멸실되어 있지만, 귀한 유산이 아닌가. 

 

우진각 지붕

아름답다, 우진각 내림마루에 기대인 작은 하늘이여,

돌로 쌓은 축대 우, 오지기와로 마감한 지붕 물매가 너무 곱다.

지금은 양식 스패니쉬기와, 절충식 오지기와 생산으로 지난날 오지기와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올레를 걸으며, 지난 날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을 드러냈던 기와 집을 볼 수가 있어 행복하다.    

 

귀마루 수막새와 곱새기와

앙징스럽다. 북동향으로 흐르는 귀마루에 걸린 바람이 웃고 있는 듯 하다.

무릉2리 좌기동이면 웃드르가 아닌가. 이곳에 이런 기와집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기쁨이 아닐 수가 없다.

투박한 시멘트 마감이긴 하여도, 단촐하지만 여섯 방위를 충만하게 돋우는 곱새기와의 맵시에서는, 그 사람 올 때 까지 기다림이 남아 있어 더욱 곱고도 곱다.

 

좌기동 농가

우진각 지붕 모습이다. 마당 넓은 집, 처음 지을 당시 모습을 오고생이 간직하고 있다. 건축선으로 보면, 1960년대 후반에 지어진 집으로 추정된다. 지붕 마감은 산자를 엮어, 좌기동에서 생산되는 황토재료를 알매흙으로 다져 보토한 우로, 오지기와를 덮어 암마루장으로 위를 덮고, 다시 오지기와를 숫마루장으로 하여 용마루 선을 마감하고, 좌우에는 무늬 넣은 망새기와로 매미독닥하니,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대정읍 암반수마농로 529-2(무릉2리 좌기동 노인회관 맞은 편)

 

앞밧/앞밭

마을 앞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앞밧이라 불렀다. '밧'은 밭의 제주어이다.  좌측으로는 일과리, 오른쪽으로 가면 한지동, 신도리로 이어지는 12코스 올레이다.

 

가을 갈이 양배추 심기

우리 남자 삼춘은 묘판을 옮기시고, 우리 여청 삼춘 서이는 부지런히 묘종을 심고 있다.

비 온 다음이라 땅이 많이 질었는데(질퍽 거리는데), 하여도 어쩌랴, 절기를 놓치면 아니되기에    

 

먼모둥이/먼모동이

지난날 이 지역에서 떨어진 서남쪽 일대가 고려시대에 원나라가 말을 기르기 위해 조성한 "모동장"이 있었는데, 모동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무릉2리 1078번지 주변이다.

 

무릉2리  평지동 가는 올레

1950년대 까지만 하여도 이 지역은 농지보다는 임야지가 많았다. 후에 농지가 정리되면서 대부분 농지가 장방형으로 정비가 되었다

 

앞캐안

무릉2리 평지동 마을 '앞캐' 안쪽에 있다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무릉2리 986-1 번지 주변이다.

멀리 보이는게 녹남봉이다. 

평지동은 처음 주변 자형보다 높은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고바치'(고전동)이라 부르다 후에 평지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무릉2리 평지동 향사

우진각 형태의 전면 5칸, 측면 3칸의 15칸집이다. 어칸, 협칸, 퇴간 간격이 같은 게 특징이다. 방형 초석 우로 민흘림 자배나무 기둥을 사용하면서, 단촐한 익공양식으로 재건하였다. 판벽은 화방벽으로, 기둥 사이에 용지판 없이 마감하였다.   

 

이 건물은 본래 대정현청 객사(대정읍 인성리 1677번지. 50평)였으나, 1932년 건물이 매각되자, 무릉리에서 매입하여 25평은 무릉1리 2894-11번지에 세웠고, 나머지 25평은 무릉2리 좌기동 568-12번지에 이설하여 향사로 사용하다가. 1948년 4.3사건이 발생하자, 마을이 소개되면서 건물도 같이, 현재 무릉초등학교로 다시 이설하여 교실로 사용하였다.

이후, 4.3사건이 점차 진정되자, 1950. 2. 1. 주민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을 하게 되었고, 1957. 1. 29일 마을 공회당 장소였던, 현재의 위치로(무릉2리 940-11)다시 이설하였는데, 1996년 건물의 잦은 이설로 노후가 되자, 남제주군 지원과 마을 자부담 2천255만원을 투자하여 현재 모습으로 개축하여 경노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기둥(자배나무), 추녀(조록이나무)는 당시 원재료이며, 일부 도리와 연목은 황송으로 보수되었다.

 

 

무릉2리 평지동에서 태어 나시고 지금까지 마을을 지켜오신 이시찬 병술생 76세 삼춘이시다.

마을 지명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섯병듸/섯벵디

평지동 마을에서 서쪽에 있는 넓은 벌판(벵듸)이라 불려진 지명이다.

이 지역은 과거 모동장의 일부였다. 앞에 보이는 오름이 녹남봉이다.

 

목장밧/목장밭

모동장이 개간되어 밭으로 정비가 되었기에 '목장밭'이라고 부른다. 신도리 257번지 주변 일대 전체이다.

 

천녀의보/천양이보

모동장이 농지로 개간되면서 조성된 농사용 수리 보이다. 둑을 쌓아 2,400여평의 보를 만들었는데, 당시 "천양이"라는 사람이 보를 쌓았다고 하여 '천양이'를 '천녀의'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농로 주변에는 가족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올레에서 남동쪽 150m 지점에 연못처럼 보인다.

 

천녀의보/천양의보

 

통논

주변보다 낮아 마치 통처럼 보여 불려진 지명이다. '천녀의보' 물을 끌어다 논농사를  지금도 짓고 있는데, 무릉리 2645번지 일대로 나무 숲이 있는 곳 주변이며, 쌀 생산량이 많았다. 

 

신도1리 자연생태연못 가는 올레

 

신도 저수지

주변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 조성된 인공 못으로,  '녹색 쌈지숲'이 만들어 있다.

신도리/된개·둔포(屯浦)/돈대/둔포리

 

녹남봉/장목악樟木岳/농남악/도원악/농남봉農南峰

녹나무가 많아 녹남봉이라고 하였다오름 높이 100m, 오르기에 부담이 없다. 2021년도 여름에 정상 전망대를 새로 세웠다. 마라도까지 전망이 매우 좋다. 정상에는 굼부리(분화구)가 남아 있는데, 가마솥과 비슷하여 '가매창'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농업과 어업의 풍년 풍어를 위한 농포제단이 있었는데, 1970년 새마을사업과 함께 사라진 대표적인 마을 유산이었다.

 

목장밧. 통논. 무릉2리. 한라산 

 

살체기도

도로 좌측 위이다. 살문이 있었던 입구라 불려진 지명이다. '살체기'는 살문처럼 듬성 듬성 좌우에 돌담을 쌓거나 하여 바람이 불어도 지장이 없는 살문을 만들어 우마의 출입을 방지하였던 문을 말하며, '도'는 입구를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신도1리 806-1번지 주변이다.

 

녹남봉 오르는 올레

 

산방산. 단산. 모슬봉.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 가시오름, 돈두악, 보롬이오름

녹남봉 정상 전망대에서

 

녹남봉 정상 전망대에서 동영상

 

왜놈이 구축한 진지동굴

 

가매창

녹남봉 정상 굼부리

 

이번 순례에서는 농포제단의 위치를 확인 못하였다. 담 순례 때 찾을 계획이다.

 

신도초등학교 건물 / 산경도예

중간 인증샷

 

11시 55분 인증하였슴당

 

제남김선생 일영기념비(濟南金先生日榮紀念碑)

제남濟南 김일영金日榮은 신도리 훈장이었으며 84세에 돌아가셨다.

이 비는 제남선생의 문하생들이 1938 濟南先生 都訓長 金公日榮 記念碑를 세웠으나, 비문 상단에 음각된 태극마크가 배일사상을 고취시킨다는 명분으로 철거되었다가, 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세워졌다.

 

제남濟南은 신도마을에서는 덕행과 학문이 깊은 선비였다. 선생의 문하에서 배출된 강규찬은 오사카에서 항일운동을 하였고 분단시대에는 북한 최고인민회 제1기 대의원을 지냈는데 신도리 출신이었다신도리 1727-6번지에 있다.

 

비석 후면

 

된개 / 신도1리

신도리 처음 마을 이름이다. 70 이상 되시는 분은 마음 지명을 무어라 부르십니까라고 여쭈면, '된개/둔포(屯)'라고 하신다.

바로 신도초등학교 남쪽 2차선 건너 마을을 가르킨다. 

 

앞동산

신도1리 / 된개에서 보면, 마을 앞에 나즈막한 동산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김수주 임오생 80세 어르신이시다. 신도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지켜 오셨다. 참으로 정정하셨다. 트랙터를 직접 운전하며 밭 갈이를 하고 계셨는데, 주변에 지명을 여쭈니 소상하게 가르켜 주셨다.

 

왕소왓

'소'는 접담을 다을 때, 내부에 채우는 굵은 자갈/작지(돌맹이)로서, '왕자갈'을 가르키는 제주어이다. 주변에 굵은 자갈이 많아 불려진 지명으로 ,신도1리 1635-1번지 주변이다.

 

앞동산

역방향

 

정남밧/정남밭

'부사리(무릉리 3993번지 일대)'에서 소를 방목할 당시 우마가 출입하였던 곳에 '정낭''이 있었던 밭이라서 불려진 지명이다.

 

군물/군수(軍水)

과거 이 지역에 주둔하였던 병사가 식수로 사용했다 하여 불려진 지명으로, 신도1리 1588번지에 있다.

 

거욱대

마을에서 보면 이 지역이 허하다고 하여 '거욱대'를 세웠기에 불려진 지명으로, 신도1리 2310-2번지 주변이다.

 

갈쟁기/간잘기

개똥참외

 

신도1리 고인돌

초기 철기~원삼국시대에 축조된 지석묘로서, 신도리에서는 유일하며, 신도2리에 해안가 도로선 북쪽 60m 지점 공한지에 있다. 위치는 신도리 2455-7번지 경계 지선 북쪽이다. 

이 고인돌은 2010년대에는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정비되어 있다. 상석 형태는 장방형으로 상석은 170cm이다.

 

신도2리 바당 올레

 

9km 지점 신도2리 바당 올레

12시 56분 지나다.

 

도구리알/도고리알

'도고리'는 함지박을 의미하는, '알'은 아래의 제주어이다. 암반 위에 큰 함지박처럼 못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큰 도구리 1개, 작은 도구리 3개 등 모두 네개가 있다.

 

도구리알 해변

 

하멜 일행 조난희생자위령비

양주를 처음마신 우리나라 사람은 ???

1653. 8. 16일 네델란드 하멜 일행 64명이 승선한 동인도회사 무역상선 스페르웨르호가 일본 나가사끼로 가던 중 서귀포시 해안에서 태풍을 만나 배가 좌초되면서, 28명이 희생되었다.

 

<하멜표류기>에 따르면, 해안으로 상륙한 이들은 8월 19일 대정현과 제주목에서 출동한 군사에 의해 체포되어 대정현청으로 끌려 갔으며, 이때 이들은 스페인산 포도주 한통을 건저내어 은술잔과 함께 당시 대정현감 권극중에게 주었고, 권극중은 은잔에 포도주를 맛본 다음에 술잔과 함께 되돌려 주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양주를 마신 사람은 당시 대정현감 권극중이 확실하다하겠다.

 

포제단

 

멜케원

만조 시에 만으로 몰려드는 멸치를 포획하기 위해 인공으로 돌담을 쌓아 원을 만들어 멸치 잡이를 하였던 원이다. '멜'은 멸치의 제주어이다.

 

멜케원

 

신도2리 좀녜 불턱

 

모살물동네/개맛동네

신도2리 포구 해안가 마을

 

신도2리포구/멜케

 

논깍/농깍/논깍동/답미동(畓尾洞)

논의 끄트머리를 '논깍'이라고 한다. '깍'은 마지막 부분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제3도원이라고 할 때, 과거에 이 지역에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이 지역에 논이 많았었다.

그런데 신도리에서는 제1강정 다음으로는 제2도원, 제3번내라고 한다. 

 

어촌계식당

바로 신도2리포구에 있다. 12코스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닿아 바다 풍경을 살피며, 점심하는 그 맛이 일품 아닐 수가 없다.

 

수월봉 가는 올레

 

방애동네/방앗동네

신도2리 윗동네로서, 녹남봉에서 녹나무를 베어다가 남방아를 만들어 이용하였기에 불려진 지명이다. '방애/방앗'은 방아의 제주어이다. 멀리 보이는 게 녹남봉이다.

 

멜케

마을을 포함하여 고산리 경계까지 멜케라고 부른다.

 

멜케

멀리 수월봉과 우측으로 당산봉이 보인다.

 

건지논

논밭을 갈면서 우마에게 물을 먹였던 웅덩이를 가르키는 지명이다.

 

앞내창(신도2리)

고세미내(고산리 한장동)

 

서귀포시 대정읍 고산리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한장동과 경계를 이루는 도랑이다.

신도리에서는 앞내창, 한장동에서는 고세미내라고 부른다.

 

고새미

고새미라는 샘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한장동/광전廣田/너븐드르/너븐밧동네/ 고산리/자귓벵듸

 

앞밧

한장동 마을 앞에 있는 밭이라서 불려지는 지명이다. 앞에 보이는 오름이 수월봉이다.

 

수월봉/녹고물오름/놉구메오름/고구산/고근산/고산

 

고산리 한장동 농가

돌집으로 지어진 농가와 밖거리를 겸한 창고이다. 한경면 한장중길 22-10

 

진밧

수월봉 입구 좌우로 조성된 밭이 길게 정리된 밭이 많아서 불려진 지명이다. '진'은 '긴'의 제주어이다.

 

수월봉 가는 올레

 

수월봉 능선에서 동쪽 

한장동. 고산2리, 녹남봉, 가파도 해안선

 

수월봉 올레

 

산방산, 녹남봉, 모슬봉, 송악산

 

수월봉 영산비

수월봉은 바다에서 승천하는 용의 형국(龍頭形局)이라고 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수월봉은 제주도에 머리에 해당한다고 해서 고근산 고산, 한자두(汗子頭)라고 하였다.

1698년(숙종 24년) 남지훈 제주 목사는 수월봉에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하여 대정현감에게 각종 개발 행위를 금지하도록 하였다.

 

건륭 22년(1757년/영조 33년)에는 이와 같은 행위를 못 하게 수월봉에 사금비 四禁碑(경작, 승마, 묘소, 방화)를 세웠으나(고산리 3755번지), 한일 강제 합방 이후 왜놈들이 이를 뽑아버려 유실되었다가, 1996년 한 농부가 배수로를 만들다가 영산비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현재 이 비는 고산1리 사무소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수월봉에는 2000년 12월 31일 새로 조성한 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3월 수월봉에서 영산제를 지내고 있다.

 

영산비 후면

 

영산비 좌측면

 

영산비 우측면

有靈高近山禁耕 신령스러움이 있으니 고근산에서는 개간을 금한다

乾隆二十二年丁丑五月 日 敦浦面 건륭 22년 정축(1757) 5월 돈포면

(己卯/1699)戊寅(1698)年 이 표비는 지나간 (기묘년)무인년에

南使主 定標處 남지훈 제주목사가 표를 세우도록 정하였다.

 

수월정 水月亭

수월봉은 1만8천년 전에 화산 활동을 했던 오름이다.

본래 이 곳에는 1967년 사유지에 콘크리트 슬라브 구조로 육각정(수월정)이 건립 되었으나, 2013년 토지주의 요청에 따라 사유지를 매입한 다음, 2016년 중층 구조의 현재 한식기와 팔각정으로 증개축하였다.

 

1967년 당시 북제주군에는 이곳 고산리에 육각정(수월정 水月亭)을 세워 해넘이를 관람하는 명소로,

1968년에는 서귀읍에서 삼매봉 정상에 무병장수의 별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남성정(남성정南星亭)을 세워, 제주지역의 누정문학樓亭文學을 싹 틔우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 두 정자는 1960년대 제주의 누정문학을 상징하는 유일한 건조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처음 이곳을 찾은 것은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총격으로 사망하던 해 여름이었다. 그때는 진입로가 별로였고, 빗길로 변하여 길이 아닌 작은 도랑처럼 길이 울퉁불퉁하여 오토바이조차도 졸바로 다닐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조건이었는데, 지금은 상전벽해가 되었다.

 

1967년 콘크리트 슬라브 형태로 건축된 수월봉 6각정(자료 사진 인용)

    2016년도에 철거되어 현재는 위와 같이 한식기와 중층 팔각정으로 증축되어 있다.

 

차귀도/대섬 

차귀도에 대한 설명은 호종단과 빼 놓을 수 없다.

자구내포구에서 허리 굽으면 닿을 듯한 섬, 차귀도는 문헌에 대섬/竹島으로 소개된다.  1601년 당시 제주에서 발생한 역모사건(길운절사건)을 안무하기위해 어사로 다녀간 청음 김상헌의 <남사록>에는  차귀도를 죽도竹島로 표시하였다. 그러나 차귀遮歸라는 지명은 세종실록지리지에 현재 당산봉을 차귀산遮歸山, 차귀악遮歸岳이라 하였고, 이 차귀악에 있는 봉수를 차귀산봉수遮歸山烽燧라고한 것으로 보아, 이미 차귀라는 명칭은 16세기 부터 사용되었으나, 대섬/죽도를 차귀도라고 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왜놈이 1/50,000 지형도에  차귀도라고 표기한 것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전설;  고려 예종(1110년)때 송나라에서는 장차 탐라국에서 송나라를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여겨, 이러한 기운이 서려 있는 지장샘, 용머리 등 열세 군데의 혈을 끊어놓게 하기 위해 호종단이라는 술사를 제주에 보내었다. 호종단은 탐라에 서려 있는 지맥과 수맥을 끊고, 자구내에서 배를 타고 송나라로 돌아가는데,  배가 대섬에 이르자, 갑자기 한라산신이 날쎈 매가 되어 날아와 배의 돛대에 앉으니, 광풍이 불어 배가 침몰되면서 호종단 일행 모두 익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때 부터 호종단이 송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고 하여 차귀遮歸도라 불려진 지명이다.

 

와도臥島/눈섬

<한라장촉>, <제주삼읍전도>에는 무산협(巫山峽)이라 하였고, <제주삼읍전도>에는 산무협巫峽이라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왜놈은 1/50,000지형도에 와도라고 하였다.

 

뒷성코지/성제돌코지

'성제돌'에 있는 곶이라 불려지는 코지 지명이다.

 

성제돌

수월봉 팔각정 맞은 편 해안가에 있는 바위 두개를 말하며, 만조시에는 물에 잠긴다. '성제'는 형제의 제주어이다.

 

대섬 차귀도는

본섬을 대섬/차귀도라 부르고, 남쪽에 큰 암벽을 지시리섬이라고 하는데 '지시리'는 독수리의 제주어이다. 좌측에 바위 두개는 쌍둥이 바위이다.

 

와도, 당산봉, 자구내포구, 용수리 해안가

 

차귀도, 와도, 당산봉, 용수리 해안선

수월봉에서

 

수월봉 해안선

 

녹고대 정자

수월봉은 77m의 작은 오름이지만, 해안선에서 부터 오름 우 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이룬다. 하여 이를 '엉'이라 하고, '엉' 아래에 있는 해안은 '엉알'이라 부르는데, 지질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엉알

'엉'은 절벽/벼랑, '알'은 아래를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수직으로 이뤄진 절벽 해안선을 가르키는 지명이다.

 

 

샛엉/새떵

본래 이곳은 수월봉 능선 하나로 되어 있었으나, 가운데 낮은 곳을 뚫어 출입에 편리한 진입로를 개설하면서 불려진 지명으로, 좌우측 오름을 연결하는 그 사이에 있는 '엉'이라는 의미이다.  

 

엉알

수월봉 남쪽, 성제돌코지 해안선

 

13km 지점

15시 27분에 지나다.

 

수월봉 북쪽 녹고물 한지머리 해안선

 

수월봉이 화산 분출하면서 겹겹이 쌓인 화산재 지층

 

한지머리코지/한자두고산汗子頭高山/한자두일명고산汗子頭一名高山

수월봉 북쪽, 노꼬물오름 서쪽 해안선이다. 탐라지도(1709)에는 한자두고산汗子頭高山이라 하였고, 18세기 중반 <제주삼읍도총지도>에는 한자두일명고산汗子頭一名高山이라 하여, 한자두汗子頭 또는 고산高山/놉구메이라고 하였다. 

 

1945년 5월이면, 일본 패망 3개월 전이다. 왜놈들은 제주도내 380여개 주요 오름마다 120개가 넘는 갱도 진지를 만들어 자살특공대 보트를 만들어 해안을 방어하였다. 

 

수월봉 일제 갱도진지

왜놈들은 제주도 오름 또는 해안가 곳곳에 이러한 갱도 진지를 120여개나 구축하였다. 

 

자살 특공대 보트

당시 이러한 보트는 이렇게 오름 해안가에 구축된 갱도진지를 활용하여 숨겨 두었다가 사용하였다. 1945년 5월이면, 일본 패망 3개월 전이다. 왜놈들은 제주도내 380여개 주요 오름마다 120개가 넘는 갱도 진지를 만들어 자살특공대 보트를 만들어 해안을 방어하였다.(안내판자료 사진 인용)

 

용운천

넓은개 북쪽 해안 '엉(절벽)' 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용운천

녹고메오름은 바다에서 승천하는 용의 형국(龍頭形局)이라하여 용운천이라 이름하였다.

 

엉알물

용운천 바로 북쪽 엉알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다. 

 

녹고물에서 역방향, 수월봉 엉알 해안선 

 

녹고물

옛날에 '수월이'와 '녹고'라는 오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님이 깊은 병환이 들자, 오누이는 수월봉에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 왔다가, 누이 '수월이'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자, 동생 '녹고'는 17일 동안 구슬피 울었으며, 이 때 흘린 눈물이 지금은 녹고물이 되어 흘러 내리고 있다고 한다.

 

고산리 해경선(해역 경계선)

법정동으로는 고산리 단일이지만, 행정구역을 고산1-2리로 분리하였기에, 해안선 또한 분리가 된다. 

 

웃머리

차귀포구 남쪽이라, 포구에서 보면 위에 있기에 불려지는 지명이다.

 

왼쪽 기준 

1=지시리섬(독수리섬). 고산리 산 35.

2= 쌍둥이 바위. 고산리 산 129.

3= 장군바위

4=대섬/차귀도

차귀포구에서

 

와도/눈섬

차귀포구에서

 

등대알

남 방파제 끝머리가 등대 아래에 해당하여, 이 해역을 '등대알'이라고 부른다.

 

호종단 전설

 

너른작지

포구 남서쪽 방파제 지나 해변에 큰 작지(자가)가 많아 불려진 지명이다.

 

준치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 크기 정도의 오징어를 말하는 중치가 준치다.

이 계절 제주해안가에는 이렇게 준치를 섬바람으로만 말린다.

 

바람으로 일어서는 눈섬

 

당산봉/당산/당오름/당산악/차귀산遮歸山/차귀악遮歸岳/차귀오름

높지 않은 오름이다. 탐라국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많다. 이를 오름이라고 부른다. 혹자들은 370~380여개라고 하나, 사실 오름이라는 기준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하여 필자가 보기에는 400여 개가 넘는다.

이 당산봉 굼부리에 또 다른 봉우리가 하나 더 있는데, 알 모습과 같다 하여 '알봉'이라고 부른다.  당산봉이라고 한 것은 오름 동쪽에 '차귀당'이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당산봉은 45만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돋아오른 오름이다. 높이 148m, 둘레 4.6km에 이르는, 높이는 낮으나 넓다. 법정구역으로는 해안가는 고산리, 오름 중심부는 한경면 용수리에 해당한다. 

 

고산옛등대/등명대/등대

포구마다 등명대라는 등대가 다 있었지만, 포구 확장 공사로 새로운 등대가 설치되면서, 옛 등대는 흔적 없이 사라진 포구가 많다. 이는 수산행정을 하는 관련 기관의 책임자의 역사 의식 상실이 불러온 우치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전 포구에 과거의 흔적을 찾아 모든 등명대를 당시 모습으로 복구하여야 한다.

포구는 단순한 어선의 정박지가 아니라, 탐라국의 바다 삶을 지켜온 원형이기 때문이다.  

 

자구내포구/사귀포/고산포구/돔베성창/자귓개/차귀도포구

 

당산봉 해안선

 

 

자구내포구 돈짓당/선왕당

포구 북쪽 해안 아래에 있다.

 

용찬이고냥/용찬이고망

'고냥. 고망'은 구멍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포구 북방파제 시점에 있는 천연 절벽 틈새로서, 자연으로 형성된 절벽 구멍이다.  이 굴은 1930년대 고산리에 거주하던 수산인 좌용찬이가 어민들이 수확한 생선과 전복을 이곳에 저장하였다가 일본으로 수출하는 수산물 저장소로 활용되었다. 좌용찬은 마을 발전에도 많은 후원을 한 자선사업가였다. 용찬이가 주로 사용했던 굴이라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자구내포구 북쪽 해안선

   앞에 보이는 해안은 용수리 해역이 된다.

 

자구내 포구 입구

 

자구내포구

 

생이기정

'생이'는 날아 다니는 새를, '기정'은 절벽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날던 새가 날아와 쉬어가는 절벽이라는 의미이다.

 

고산리선사유적지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 해안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신석기시대 초기의 생활 유적이다. 1991~998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후기 구석기 전통의 세석핵·첨두기·석추·원형 소기·홈날 석기·양면 석기 등과 같이원시 무문양의 식물성 섬유질이 혼입된 고토기가 확인되었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석기 초기 문화로 이행되는 전환기의 문화 양상을 보여 준다. 후기 구석기의 세석인(細石刃) 문화가 지속되면서 초기 신석기의 산물인 양면 박리 석촉과 원시형 고토기가 출현하는 복합적인 문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렇듯 고산리 유적은 발달된 수렵 중심의 생업 체제를 유지한 집단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또한 고산리 유적은 후기 구석기 최말기 세석인 문화의 전통 속에서, 각종 박편 양면 가공 석기 조성을 보이면서 저화도의 원시형 고토기인 식물성 섬유질 토기(고산리식 토기)를 사용한 한국 초기 신석기 문화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인용)

 

당산봉은 45만년 전에 화산 활동으로 돋아오른 오름이다. 높이 148m, 둘레 4.6km에 이르는, 높이는 낮으나 넓은 오름이다. 법정구역으로는 해안가는 고산리, 오름 중심부는 한경면 용수리에 해당한다. 

 

차귀봉수 유적 가는 올레

 

15km 지점

당산봉 중허리 올레, 16시 15분에 오르당

 

 

차귀봉수 유적

지금은 해안경비용 레이더 기지가 설치되어 있다.

제주 방어는 조선조 초기 세종대에 와서 구색을 갖추고, 중종조에 와서 구체화 되는데, 3성, 9진, 25봉수, 38연대 구조로 이뤄진다.

 

3성은 제주목성, 정의현성, 대정현성을 말한다.

9진은 제주도 전역을 9진 관할로 분류하여, 해안 왜적(일본) 방어에 집중하게 되는데, 화북, 조천, 별방, 수산, 서귀, 모슬, 차귀, 명월, 애월등 9진이 있었다.

여기에 해안봉수의 중추가 되는 오름마다 25개소 봉수를, 해안선 요지마다 38개소의 연대를 세워 왜적 침입에 대비하였는데, 차귀봉수는 대정현 차귀진 관할이었으며, 북서로는 판포봉수, 동으로는 모슬봉수와 교신했다. 

 

25봉수

제주읍성 관할(화북, 조천, 별방, 애월, 명월진)에는 사라, 도두, 수산, 원당봉수(화북진), 서우봉수(조천진),  입산봉수, 왕가봉수(별방진),  고내봉수(애월진), 어도봉수, 느지리봉수(명월진)

대정현성 관할(차귀, 모슬진)에는 송악/저별봉수, 호산/월라봉수(현 직할),  당산/차귀봉수(차귀진), 모슬봉수, 구산봉수(모슬진).

정의현성 관할(서귀진, 수산진)에는 토산, 달산, 남산봉수(현직할), 삼매양, 호촌/예촌봉수(서귀진), 수산, 성산봉, 독자봉, 자배, 지미봉수(수산진) 

 

38연대

제주목성 관할에는 수근,조부,별도,함덕,왜포,조천,입두,좌가,무주,남두,애월,귀덕,우지,죽도,마두,배령,대포,두모연대

대정현 관할에는 당포,산방,별로천,대포,마희천,변수,서림,우두,무수연대

정의현 관할에는 벌포, 소마로,천미,말등포, 연동,보목,우미,금로포,협자, 오소포, 종달연대. 

         

당산봉 알봉

분화구가 넓은 지역에는 이렇게 '알'처럼 오름이 있는데, 이를 '알오름' 또는 '알봉'이라고 한다.

 

↑ 생이기정 가는 올레

 

차귀도(대섬)와 와도(눈섬)

  생이기정 위에서 바라 본

 

지시리섬(독수리), 병풍바위, 쌍둥이바위, 장군바위, 대섬, 와도

 

당산봉 알봉

 

자구내포구/차귀도/와도

 

차귀도(대섬)/와도(눈섬)

생이기정에서 

 

지시리섬(독수리바위). 병풍바위. 장군바위. 쌍둥이바위

 

대섬과 눈섬

 

대섬과 눈섬

 

생이기정. 용수리 해안선

 

용수리 두렁바위코지, 두렁바위, 옹수알, 사니코지, 기우제단, 하상물, 용수리방사탑2호, 용수포구 해안선

 

와도, 차귀도

 

옹수알, 사니코지, 기우제단, 하상물, 용수리방사탑2호, 용수포구 해안선

 

옹수알 해안

 

용수 골새

 

두렁바위,  옹수알, 와도, 차귀도

용수리 옹수알 해안에서

 

용수리 두렁바위코지, 두렁바위, 옹수알 해안선

 

내 사랑, 쑥부쟁이

 

화상물

용수리 4548번지 해안이다. 본래 용수리에는 사람 거주가 어려운 지역이었으나, 화상물이 솟아나 살수가 있었다는 '화상물'은 썰물 때만 볼 수가 있다. 코지 위에 천제단이 있다.

 

천제단

하상물 위 코지에 있다. 마을에서 제를 지내는 곳에, 무지한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천제단이다. 이 제단에는 집안에 혼례가 있으면, 미리 이 제단에 와서 먼저 예를 올렸으며,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천제를 지냈었다.

 

잉기돌, 방사탑2호, 앞동네원 해안선

 

하상물에서 생이기정 해안선과 차귀도, 와도

 

용수리 방사탑 2호

마을의 지형상 허약한 곳에 방사탑을 세워 허한 것을 보완하면서,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게 방사탑이다. 용수마을에는 포구를 중심으로 좌우 해안가에 각각 방사탑이 있으며, 이 방사탑은 용수리방사탑 제2호이다. 본래 각각 2개씩 세웠으나, 지금은 각각 1기씩만 전해온다. 탑 위에 매 주둥이 닮은 돌을 올려 놓았다고 하여, '매조재기'라고도 한다. '조재기'는 뽀쪽하게 새운 것을 나타내는 제주어이다.

 

방사탑 맞은 편 포구 북쪽에, 같은 모형의 방사탑 1기가 세워져 있다. 

 

용수포구

용수리/지삿개·와포瓦浦/우두포牛頭浦·쉐머릿개/우포友浦·벗개/군영개·군영포軍令浦/지사포地沙浦/법기동法基洞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

김대건 신부는 18458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품을 받은 다음 조선 제물포로 가기 위해 그해 831일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교우 11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 배는 무동력 범선으로 당시 제물포를 향했으나 풍랑으로 28일간 표류 끝에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여 배를 수리한 다음 다시 제물포를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교회사에서는 배 수리 뒤 다시 출발한 라파엘호가 1012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현재 익산시 망성현 화산리/금강)에 닻을 내린다. 그래서 제주 용수리는 표착지로, 신부 일행이 조선에 입국한 첫 장소는 나바위를 조선 본토 중 첫 착지처(着地處)로 기록하고 있다.

 

 

김승지 용수리 전 리장님. 용수리 지명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주셨다.

 

용수포구

 

절부암

제주올레 12코스 종점 / 제주올레 13코스 출발점

 

17시 18분에 도착핸요.

 

막내손자 윤승찬은 올해로 여섯살, 2016년 병신생으로 나와 동갑이다.

그래서 손자 셋 가운데서도 더 사랑스럽다,

할아버지가 걷는다고 하니, 대정읍 구억리에 사는 며눌애기와 같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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