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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3코스

섬 바람, 섬 풍경

by 相民 윤봉택 2022. 8. 19.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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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18.

 

제주올레 13코스

 

2022년 1월 6일 부터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에

격로 제주올레 27코스 29개 노선에 대하여 연재를 합니다.

 

그 연재 중 열일곱 번째 13코스 내용을 이곳에 링크합니다. 

 

제주의소리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제주올레 13코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 매거진 < 기사본문 - 제주의소리 (jejusori.net)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제주올레 13코스 - 제주의소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www.jejusori.net

 

서귀포신문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제주올레 13코스 < 기획·특집 < 기사본문 - 서귀포신문 (seogwipo.co.kr)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제주올레 13코스 - 서귀포신문

제주올레는 삶의 쉼팡 이다. 무거운 둑지를 억누르던 삶의 고담함도 제주올레 팡돌에 내려 놓으면 무게감이 사라진다.굳이 쉼표가 없어도, 느낌표가 없어도, 쉼과 느낌에 걸림이 없는 그 올레가

www.seogwipo.co.kr

 

기사 135110.pdf (seogwip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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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코스135110.pdf
4.10MB

 

918일 토요일

오늘은 제주올레 13코스를 두 번째 순례하였습니다.

 

오전 918

전 탐라대학교총장 허정옥 박사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13시 14분, 낙천리사무소 인증샷

16시 04분 저지리마을회관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순례에서는 지난 526일 순례 때

다 살피지 못했던 부분을 살폈는데, 아직도 많이 미흡합니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다립니다.

 

제주올레 13코스는

용수리 포구 절부암에서부터, 저지리 사무소 까지, 15.9km. 40리가 넘는 올레입니다.

 

13코스는

해변마을 용수리에서 부터 용수리, 중산간 지역 저지리 까지 이어지는 올레입니다.

 

용수리. 두모리. 조수리. 낙천리. 청수리. 저지리

 

마을 지명 관련하여서는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

남제주군 고유지명(1995.1996)

북제주군 지명총람(2006)

해당 마을 향토지

해당 읍·면지를 참고하여 현장을 담았으며

지번이 잘못 표기된 곳은 수정하였고,

순례 도중에 마을 분(토박이)을 뵈면

추가 조사를 담았습니다.

 

 

용수리/지삿개·와포瓦浦/우두포牛頭浦·쉐머릿개/우포友浦·벗개/군영개·군영포軍令浦/지사포地沙浦/법기동法基洞

 

1. 매조제기/용수리방사탑 제1

2. 지새개/용수포구

3. 主事金道謙妻賢媛高庚生紀念碑(주사김도겸처현원고경생기념비)

4. 절부암(節婦岩)

5. 엉덕동산

 

6. 관광정(觀光亭)

주구동산(용수리 4379-3)

7. 보제기왓(용수리 4436)

8. 매골동산(용수리 2924)

9. 멍젱이(용수리 2829)

10. 효열탐라고씨의 정문(孝烈耽羅高氏之閭)旌門

 

11. 순례자의 교회

12. 벵딧물과 기와집

13. 벼두섬

14. 돌도리(용수리 2455)

17. 왕지케(용수리 2382)

 

15. 용당못( 용수리 2100)

 

16. 케왓(용당리/용수리 575)

 

18. 벵두물 저수지/용수저수지

19. 먼고돌담(수리 599)

20. 연못(용수리 696-1)

 

두모리/두믜/두못개/두모포頭毛浦/부포촌釜浦村/두모촌

21. 특전사숲길(두모리 1063)

22. 쪼른숲길(두모리 1001)

 

조수리/용선달리/죠흔물/조호수리造乎水里/조수造水

23. 고목나무 숲길(조수리 2193)

24. 고사리숲길(조수리 1673)

25. 조수리 하동 숲길(조수리 2358)

 

낙천리樂泉里/섯세미·섯새미/섯새미모을·서사미촌西思未村/섯세미모을·서천미리西泉味里

26. 아홉굿마을 낙천리

27. 오빼미물(낙천리 2097)

28. 새물수덕(낙천리 2103)

29. 저갈물/저거흘(낙천리 1745)

30. 쇠시랑통(낙천리 1819)

인증샷(마을회관)

31. 소록낭머들(낙천리 1921)

32. 낙천의자(낙천리 1913)

33. 도채비당(낙천리 1880)

34. 소록낭머들 오일하르방당(낙천리 낙천리 1878)

35. 낙천리 잣질(낙천리 1835)

 

36. 안몰방애터(낙천리 1803)

37. 농개논(낙천리 1637)

38. 묵은불미터(낙천리 1770)

조수리

39. 용선달리 설촌지(조수리 151)

40. 구멍목이(낙천리 13)

41. 용선달리 하르방당(조수리 149)

42. 폭낭(조수리 149)

43. 송아오름(조수리 134)

 

저지리楮旨里/용선달리/닥모르/저지촌

44. 뒷동산 아리랑길(저지리 1276-1)

45. 마오름(저지리 산 56)

46. 일체동산(저지리 1276-4)

47. 현장이동산(저지리 1425-1)

 

48. 저지오름 닥멀본향(허릿당)(저지리 1892-3)

49. 닥모르오름/저지악

50. 저지오름 칠성단(저지리 산 51)

허리왓(저지리 1878-2)

14-차게동산(저지리 1840)

14-대왓목(저지리 1868)

14-장왓동산(저지리 1830)

14-막은가름(저지리 1834)

14-솔동산(저지리 1820-1)

14-거림질(저지리 1821)

 

51.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저지리 마을회관

 

용수포구/지삿개·와포瓦浦/우두포牛頭浦·쉐머릿개/우포友浦·벗개/군영개·군영포軍令浦/지사포地沙浦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포구를 새롭게 확장되다보니, 기존 포구는 안창이 되었지만, 선박 출입은 할 수가 없어, 이제는 못이 되어 버렸다.

엉덕동산에 팽나무 두 그루가 관광정이 되고,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 버린 절부암이 대섬 물결로 당산의 아픔을 어루 만지고 있다. 

 

제주올레 13코스 출발점

용수포구 절부암 앞에 있다.

 

오전 9시 18분, 전 탐라대학교총장 허정옥 박사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허정옥 박사는 중학교 후배이자, 서귀포미래를 생각하는시민모임(서미모) 공동 대표로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살물

용수리포구 옆에 있는 용천수이며 용수리 4240-6번지 내에 있다. '모살'은 모래의 제주어이다.

절부암 아래 고경생이가 처음 발견한 물로 전해온다. 고경생은 주사 김도겸의 아내이다.  사재를 내 놓아 샘물을 정비하자, 용수리 와포동 주민과 부녀회에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主事 金道謙 妻 賢媛 高庚生 紀念碑(주사김도겸처현원고경생기념비)를 1930년(소화 5년 경오) 9월 용천수 옆에 세웠다.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당시 모습으로 보존되지 않아 당시 용천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고경생 기념비 전면

 

고경생기념비 후면

 

매조재기/새원탑 / 용수리 방사탑

 포구 북쪽에 있는 방사탑이다. 용수포구 입구에는 좌우에 각각 1기씩 2기가 세워 있다.

탑은 바닷가 암반 위에 원뿔형으로 세워졌다.   현무암 자연석을 대충 다듬질하여 쌓음 돌로 이용하였다. 축조 방법은 허튼층쌓기를 하고 있으며 속은 잡석 채움을 하였다.  탑을 세우게된 사연은,  주민들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사고를 많이 당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신들이 포구쪽으로 자주 밀려오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 방사탑을 세우게 되었다.

탑 위에 매의 모습 닮은 자연석을 세워 놓아 '매조재기'라고도 부른다.

 

절부암

절부암(節婦岩) 절부암은 용수리 4241-5번지에 있다.

슬픈 탐라 여인의 한을 안고 있는 절부암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1852(壬子)년 춥디추운 겨울 어느 날 이 마을 가난한 청년 강사철(康士喆)이라는 총각과 고씨 성을 가진 19세 처녀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 겨울 동짓달 13일 동네 어른 좌영은·홍연득 두 분을 따라 청죽을 베러 대섬(차귀도)으로 테우를 타고 나갔다. 섬에서 청죽을 베어 테우에 싣고 포구로 돌아오다가 거센 풍랑에 세 사람 모두 실종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고씨 부인은 식음을 전폐한 체 해안가를 따라다니며 남편을 찾아 헤맸다.   다음 날 동네 어른 좌영은 시신은 바다에 떠올랐고, 15일에는 머리가 없는 시신이 떠올랐으나 홍연득의 시신으로 확인되었다.   남편의 시신을 찾지 못한 고씨 부인은 끝내 그날 밤 목 매어 죽었다. 고씨부인 3일장을 치르던 마지막 날 남편 강사철 시신이 부인이 목매었던 언덕 해안가에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남편과 부인의 시신을 당산 동쪽 능선 매부 이경보의 밭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절부암 제단

해마다 이들 부부를 기리는 제사를 이곳에서  3월 15일 지낸다.

 

또한 절부암에 자라는 여러 수목 가운데 범섬과 여기에서만 자생 확인된 환경부 보호종인 ‘박달목서’가 있으며, 도내에는 범섬과 이곳에만 자생하고 있다.

 

절부암

 監蕫 金膺河 書 洞首 李八根 刻

이 마애명은, 김응하가 글을 쓰고, 직접 감독(監蕫)하였으며, 동수(洞首/마을 우두머리)인 이팔근이가 새겼다.

節婦岩

同治丁卯年記字平

절부암이라는 세 글자는  동치 정묘년(1867)에 기록한 것인데,

判官 愼哉祐 撰 판관 신재우가 지은 것이다.

 

'同治丁卯年記字平三'이란 글자가 남아 있다.

同治丁卯는 고종4년(1867)이다.  맞은편  바위에는 ‘判官 愼哉祐 撰’이 새겨져 있다.

 

절부암 석주

'엉덕동산'에서 절부암으로 내려서는 계단 난간 석주를 좌우에 두었는데, 절부암 석주를 초입 좌측에 두었다.

 

난간석주

절부암 우측 난간석주

 

관광정

절부암 바로 위 엉덕동산에 관광정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관광정(觀光亭)

절부암 바로 위 도로 변, 용수리 4241-5번지에 있다.

1960년(단기 4293년) 10월에 용수리민들이 세웠는데, 재미있는 것은 비석 후면에 신미갑회(辛未甲會) 즉 1871 신미년에 태어난 김일호(金日昊) 등 8인 이름이 각인되고, 당시 신미생 나이가 90이 되었기에 마을에서 기념으로 관광정 비석을 세운게 아닌가 한다.

관광정 표석 후면

 

용수마을 올레

한경면 용수2길 10-3번지 올레

 

산듸

밭벼가 가을보다 먼저 익어 갑니다. 밭벼를 제주에서는 '산듸'라고 합니다.

용수리, 용당리는 탐라섬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논농사 지역입니다.

 

쉼팡

마을마다 '쉼팡'이 있다. 쉼팡은 쉼판을 말한다. 잠시 쉴 수 있도록 판(板)을 마련한 쉼터이다. 

돌로 만들면, '팡돌/판석石이라 부르며, 용도에 따라, 물허벅 놓는 곳은 '물팡'이라고 한다.

용수마을회관에 주차를 하고, 출발지 용수포구로 내려서는 길가, 한경면 용수4길 36번지 귀야지(모서리) 에 있다.

쉼팡

용수포구 방향 남쪽 귀야지, 한경면 용수4길 36번지에 있는 이 쉼팡은, 비교적 길게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다. 

 

↑ 용수리 농가

한경면 용수2길 10-3번지에 있는 너븐올레

 

 

주구동산

용수리 4379-3번지 일대 동산을 말한다.

 

 

보재기왓

용수리 4436번지 일원, 당산봉과 당산알봉이다.

 

매골埋骨동산

용수리 2924번지 일대이다. 묻혀있던 사람의 뼈가 많이 발굴되어 불려진 지명으로 4.3때 학살터였다. 

 

멍젱이

역방향

매골동산 맞은편 용수리 2829번지 일원으로 '바가물' 남쪽에 있다.

 

고씨열려비와 순례자의 교회

 

효열 탐라고씨의 정문(孝烈耽羅高氏之閭)旌門

이 비는 용수리 2328-3번지에 있다. 1942(소화17)년 4월에 세워진 이 정문은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정려비 정면에 석조로 정문을 세웠다. 열녀고씨는 고은복(高恩福)의 따님으로 진명서(秦明瑞)와 혼인하였다. 시부모 봉양은 물론 남편이 병을 얻어 위독하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살렸다. 부인은 1834년(도광 갑오)에 태어나시고 1914년(대정 3년 갑인) 5월에 돌아 가셨다.

 

 

열려비 정려문

 

열려비 전면

 

열려비 후면

 

열려비 측면

 

열려비 측면

 

전면 오른쪽 석주에는 1942(소화17)년 4월에 정려문 세웠다는 명문銘文이 있다.

 

순례자의 교회

한경면 일주서로 3960-24번지 올레에 있다.

 

 

좁은문

 

 교회는 2011. 7. 21일 설립되어 올레를 순례하는 모든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순례자의 교회

 

교회 예배실

 

교회 후면

 

돌도리

1990년대 까지만 하여도 이 주변은 모두 쌀을 생산하는 논이었다. 용수리 2455번지 주변이다.

 

 

돌도리

역방향

왕지캐

주변에 '왕지물'이 있어 불려지는 지명으로 용수리 2382번지 일원이다.

 

용수저수지 관리사무소는 혹시 아니었을까???

 

용수저수지

금년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나렸고, 지난 몇일 새이 600mm 이상 비가 나렸는데도, 저수지 주변에는 아직도 녹조가 있다.

 

 

녹조가 무섭다. 600mm 폭우에도 살아 있다니,

 

저지대 두루미

지난 폭우로 침수된 저지대 농경지에 두루미 가족 나들이

 

3km 지점

10시 42분에 지나다.

 

숫구메기

용수리 560번지 일대, 지난날 이 지역은 곶자왈 지대여서, 숯을 구워 생산했던 곳이라 불려진 지명으로 숯 가마가 있었다.(용당마을 지경에 속한다) 

 

용당리/산밧승물/용소/용못/주근동/쥐근디머들/주전동

 

곶자왈 화전밧

용수리 518-1번지 일원으로 용당리에 속한다.

 

선세비물 입구 삼거리

 

선새비/선세비물

용수리 696-3번지 지선 동쪽, 삼거리에 있다. 한라산이 크게 비추는 신비한 물이라고 전한다. 용당마을에 속한다.

 

5km 지점

11시 14분에 지나다.

 

↑일곱소낭밧/톨시웅

오래 전 이 지역에 매우 큰 소나무 일곱 그루가 있어 불려진 지명이다.

톨시웅은 '톨'은 숲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예전에 숲이 우거졌을 때 불려진 지명이다.

한경면 두모리 1005-1번지 일원으로 제주올레 13코스에서 두모리 지경 올레는 약 1km정도로서, 쪼른숲길이 포함된다. 멀리 보이는게 13코스 종점 '저지오름'이다.

 

두모리/두믜/두못개/두모포頭毛浦/부포촌釜浦村/두모촌

 

 

두모리 쪼른숲질

'쪼른'은 짧은, '질'은 길의 제주어로서, 짧은 길이라는 의미이다.

 

 

탐라의 설문대 여인이 일어서면 쪼른 숲질도 넓어 온다.

 

졸갱이

'으름'을 제주에서는 '졸갱이'라고 부른다. 한국산 바나나가 아닌가. 목통(木通), 통초(通草), 임하부인(林下婦人)이라고 부른다. 특히 이뇨 작용에 좋다. 연한 잎은 먹을 수 있다. 산에 들어갔을 때 가장 반가운게 이 졸갱이이다. 하나를 따면 그날은 횡재가 따로 없다. 맛이 일품이다. 씨를 하나 하나 뽀라먹으면서 넘기는 식감은 맛을 봐야만 그 맛을 느낄 수가 있다.

 

 

둥근잎 유흥초

자생종이 아닌 귀화식물이지만, 전국에 분포될 만큼 널리 분포되어 이 계절 돌담 올레를 설레이게 한다.

비슷한 유흥초가 있지만, 그 보다 더 앙증스럽다.

 

 

부께

땅꽈리를 제주어서는 '부께'라고 한다. 등처럼 보여 등롱초(燈籠草)라 부르는 이 부께는 약용으로도 쓰인다.

어렸을 때, 밭 마다 돋아나는 '부께'는 "개불(개삼동)/까마중"과 더불어 소중한 간식거리였었다. 까마중은 많이 볼 수 있지만, 이렇게 '부케'는 요즘 쉽게 볼 수가 없다.

 

고목숲길

고목숲길, 고사리숲길,  하동숲길 까지 약 1.8km 구간은 한경면 조수리 지경이다.

 

조수리/용선달리/죠흔물/조호수리造乎水里/조수造水

 

고목숲길 지나

 조수리 2146-5번지, '산노루'  초입이다.

 

 

고사리숲길 초입

조수리 2112-1번지 일원이다.

 

 

고사리숲길

 

7km 지점 고사리숲질

11시 52분에 지나다.

 

 

주변에는 이렇게 고사리과 양치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서 있는 나무

고사리 숲질 지킴이

 

탈곡기

발동기에 벨트를 연결하여 보리 벼 등을 타작하였던 탈곡기, 벼는 그렇지 않지만, 가끔 보리를 탈곡할 때, 보리뭇에 묶여 작은 돌멩이가 함께 들어가면 탈곡기는 파손되고 그날은 모든 일정을 쉬게 되는, 그런 때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모든게 그리운 시절이다.

 

낙천리 아홉굿마을

낙천리樂泉里/섯세미·섯새미/섯새미모을·서사미촌西思未村/섯세미모을·서천미리西泉味里

 

낙천리 마을 초입

 

오빼미

지금 낙천리를 상징하는 '아홉굿물'이 있는 곳이다.

낙천리 2097번지 일대이다. '오빼미'의 뜻은 분명하지 않다. 

 

 

오빼미물/아홉굿물

'굿'은 물 웅덩이, 물통을 상징하는 제주어이다.

 

아홉굿물

아홉굿물 유래

1670년대 풀무(대장간)를 시작하면서 뎅이(틀) 재료로 쓰이는 찰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여섯개의 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고인물을 낙천리와 함께 주변 마을 저지, 청수, 조수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되었다. 이후 1910년 경 4개 마을 주민들이 주변 토지를 기부 받아 두개의 못을 인공으로 조성하여 식수로 사용하였다.

1970년대 어승생 상수원에서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1995년 북제주군의 지원을 받아 저수지로 조성하여 농업용수로 사용하였다.

2003년  풀무를 마을 상징 유산으로 하면서 이곳 '아홉굿물' 컨텐츠하여 2012년 고증을 거쳐 복원을 하였다.

 

새물수덕

낙천리 2103번지 주변이다. 새물은 낙천리 2137번지에 있는 연못이다. '수덕'은 큰 돌이 엉기성기 쌓이고 잡초가 우거진 곳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새물' 지경에 있는 숲이 우거진 곳이라 불려지는 지명이다.

 

저갈못/저갈물/저거흘巨汔

낙천리 1745번지에 있으며, 저갈못을 중심으로 마을이 이뤄져 있다.

 

저거흘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 부터 있었던 자연못이다. 때문에 주변에 서식하는 많은 동물이 이 못을 식수원으로 하였는데 특히 산톳(멧돼지)이 많이 출몰하여 저거흘이라 불려졌다. 마을에서는 주로 우마용, 빨래용으로 사용하였으며, 북쪽에 '새물'을 식수로 사용했었으나, 지금은 매립되었다. 

 

 

구시통

   저갈물은 주로 우마나 동물들의 먹는 물로 이용되었고, 주민들이 빨래로 이용되었으나, 주민들은 물레서 직접 빨래하는게 아니라, 이렇게 돌로 구시(구유)를 만들어 최대한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배려를 하였던 문화 흔적으로 삶의 지혜를 느길 수 있는 문화유산이 아닐 수가 없다. 

 저갈못에는 모두 두개의 구시통이 있는데, 동쪽과 서쪽에 각각 1개씩 놓여 있다. 동쪽에는 1인용 구시통, 서쪽 출수구에는 3인용 구시통이 놓여져 있다. 구시통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여저 있어 빨래 후 물은 이 구멍을 통하여 빠지도록 하였다. 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까지는 이 구시통이 이용되었으나, 수도가 보급되고 난 다음에는 2010년 까지 감을 빻아 감들일때  이곳에 와서 빻고 염색하고 했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마을 연못에 이러한 구시통이 있는 경우에는 대정읍 무릉2리 인향동 구남물과 한경면 낙천리 저거물이 유일하다. 

 

저거물 구시통

저거물 서쪽 출수구에 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빨래를 할 수 있도록 판이 세개이다.

 

저거물 구시통

1인용 빨래통이다. 저거물 동쪽 끝에 있다. 3인용 보다 빨래판 면적이 넓게 만들어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하여도 감을 빻아 갈옷 염색을 하기도 했었다.

 

저거물 쉼팡

다른 곳과는 달리 전형적으로 돌을 다듬어 판을 깔아 쉼팡을 만들어 있고, 또 다시 팽나무 아래에도 큰 팡돌(판석板石)을 놓아 사람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저거물 동북, 한경면 낙천3길 3-3번지 주변에 있다. 팽나무가 서쪽에 있고, 쉼팡은 동쪽에 있어 오후에 이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더 없는 쉼터가 되었으리라. 이 쉼팡 지나 동쪽으로 가면 '쇠시랑통' 동네가 있는데, 과거에는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

 

 

저거물 쉼팡과 올랫담

쉼팡 좌측에는 올래 입구가 단단하도록 올래 어귀담을 잘 다듬어 층 쌓기를 하였다. 

쉼판 건너 동쪽 집에도 사람이 거주하지 않아 풀이 덤벙하지만, 지난날 올랫담 흔적은 오고생이 남아 있어 그날을 기억하게 한다. 올래 어귀담은 큰 왕석으로 쌓아 무너지지 않도록 하였다. 

 

문인자 삼춘, 85세(1937년) 정축생,

나보다 스물이나 위이신데, 얼굴이 참 고우시다.  왜 이렇게 젊으시냐고 말씀드리니 젊기는 뭐가 젊으시냐면서 븽새기 웃으셨다. 마실 가시려고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저거물 구시통에 대하여 소상하게 말씀 주셨다. 이 어른 집안 또한 4.3 피해가 있었다. 더 여쭤보고 싶었으나, 그 날 기억이 생생하신지 눈시울이 붉어지셔서 더 이상 여쭙지를 못했다. 오래도록 지금 모습으로 무병장수하시길 합장 드린다. '도채비당'에 대하여 여쭈니 어렸을 때 기억만 아스라하실 뿐이다. 

 

낙천리 마을회관

낙천리 인증샷

마을회관 바로 위에 있다.

 

중간 인증샷

 잣질로 이어지는데, 의자마을 전망대에 올라 보면 세상이 보인다.

 

낙천리 중간 인증샷

13시 14분에 도착하였다.

 

역시 지금은 가을인가 보다.

땀이 미릇 말을 하고, 보롬이 먼저 검불려 주신다.

 

잣질 전망대

 

소록낭머들

중간 인증샷 위에 있는 나즈막한 동산 중간지점 돌 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소록나무가 많아 불려진지명으로, '머들'은 큰 돌무더기(바위)를 말하는 제주어이다. 낙천리 1921번지 일대이다.

 

쇠시랑통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천리 1819번지 일대이다. 부촌 동네로 꼽는다.

 

도체비당/낙천본향

본래는 소록낭머들에 있었다. 지금은 멸실되었으며, 앞에 보이는 숲지대로서 낙천리 1880번지 일대에 있었다. 4.3사건 당시에는 모두 벌목을 하였었는데, 지금은 다시 원형을 찾아가고 있다.

진성기<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본풀이에는 낙천본향 한집은 삼천백매 초깃발로, 도르기사장으로, 매와지 축일 본향(조수리 신당)으로, 가닥 갈라오던 낙천 소록낭머들, 오일 영감한집, 돗 잡아도 전물제, 쇠 잡아도 전물제라, ..... 제일은 오일(日)

 

 

저지악

전망대에서 

 

잣질

전망대에서

 

잣질

제주올레 13코스가 개장되면서 2011. 11월 886m를 복원하였다.

'잣'은 '성城'을 말하는 우리 말이다. 따라서 '잣질'은 길 좌우에 돌로 담을 쌓아 담장을 만들어 우마가 마음대로 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게 하는 길을 말하는 제주어이다. 또는 지적 경계선 좌우로 돌을 모아 쌓다보면 출입구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두고도 '잣질'이라고도 한다.

 

낙천리 잣질

 

낙천리 잣질 잣도

잣질의 경계에 좌우로 담을 쌓아 출입하는 목을 '잣도'라고 한다. 잣도에는 '살채기'를 만들어 우마가 마음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한다. 이 때 '살채기'가 있으면 '살채기도'라고 부른다.

 

낙천리 잣질

 

웃구름물 가는 올래

 

웃구름물

낙천리 3번지 주변 일대를 가르키는 지명이다.

 

물골

저지리 1226번지 일원이다. 건물 좌측 지역

수동(水洞)이라 부르며, 용선달리에 처읍 거주한 전주이씨 설촌지이다.

 

맹마구리왓

맹꽁이가 많아서 불려진 지명으로 낙천리 7번지 주변 일대이다.

 

용선달리龍先達里

용선달리는 조수리 151번지 일대를 말하며, 한경면 중산간 4개 마을(조수, 낙천, 저지, 청수리)의 설촌지로 알려져 있다. 1610년대 전주이씨 이몽빈 일가가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설촌이 되었고, 이후 여러 성시가 거주하면서 4개마을로 형성되었다. 

처음 설촌 당시에는 거주민이 많지가 않아 '구멍목이' 용천수를 사용하였으나, 거주민이 많아지면서 식수원을 더 조성하게 되었다. 이때 좌수 김시권이가 기부한 돈으로 '구멍목이' 좌우 토지를 매입하여 남북으로 여섯개의 물통을 더 파서 못을 만들어 4개는 식수, 두개소는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다. 

 

 

용선달리龍先達里 구멍목이 1~4

용선달리는 한경면 중산간 4개 마을(조수, 낙천, 저지, 청수리)의 설촌지로 알려져 있다. 1610년대 전주이씨 이몽빈 일가가 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설촌이 되었고, 이후 여러 성시가 거주하면서 4개마을로 형성되었다. 

처음 설촌 당시에는 거주민이 많지가 않아 '구멍목이' 용천수를 사용하였으나, 거주민이 많아지면서 식수원을 더 조성하게 되었다. 이때 좌수 김시권이가 기부한 돈으로 '구멍목이' 좌우 토지를 매입하여 남북으로 여섯개의 물통을 더 파서 못을 만들어 4개는 식수, 두개소는 우마 급수용으로 사용하였다.

 

용선달리 구멍목이 5

용선달리 주민들이 식수원인 '구멍목이'는 본래 하나의 용천수였으나, 1918년 김시권에 의하여 추가로 못 여섯개를 만들어, 4개는 식수, 두개는 우마용 급수원으로 사용되었다. 이 못은 1918년도에 새로 조성된 못이다. 

용선달리 구멍목이 6

 

좌수 김공시권기념비 座首 金公時權紀念碑

捐出義錢 買土浚泉 좌수 김시권이 사재를 내 놓아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샘을 만드니

惠及兩里 永以相傳 조수리와 저지리 두 마을이 입은 은혜가 크다. 이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하여

大正七年二月 造水 楮旨 1918년(대정 7년) 2월에 조수리 저지리민들이 세운다.

김시권에 의하여 식수원을 더 조성(6개소)하게 되었고, 조수리 저지리 주민들이 사용하였다.

 

大正七年二月 造水 楮旨 1918년(대정 7년) 2월에 조수리 저지리민들이 세운다.

 

용선달리 본향당(하르방당)

조수리에는 할망당(매와지)·하르방당(용선다리)이 있는데, 용선달리본향당은 조수리 149번지에 있다.   이 당은 2008년 제주신당조사에서는 저지리 용선도리 일뤠하르방당으로 조사되었다. 이 본향당은 고산리 차귀 허릿궁에서 갈라진, 신창리 “검은머들 법사용궁또”에서 다시 갈라온 당이다.   이 당은 고씨 선생이 설립한 것으로서, 당산은 송아오름이며, 제일은 매달 1일과 15일이다. 13코스 용선달리 지나 140m 지점 팽나무가 신목이다.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용선다리 본향은, 차귀 허릿궁에서 간, 신창 검은머들 법사 용궁또 가지로, 가지 갈라온 하르방당, 만민 단골에 상을 받아, 난는 날 생산, 죽는 날물구 초지허던, 어진 한집님, 이 당 설위헌 고시 선싱이, 잘 못 제일을 허여부난,초 호를 보름으로 대위헙네다. 제일은 매달 1일 15일이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다. 

 

저지리楮旨里/용선달리/닥모르/저지촌

 

저지악으로 가는 뒷동산 올래 아리랑길

 

뒷동산 가는 올래

 

화전밭 밧담

능선을 개간하여 밭을 반들 때 달담을 쌓는 전형적인 방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자원이다.

밭 경사면에는 밭에서 채취한 돌을 일정한 너비로 겹겹이 쌓는데, 위의 밭 지면까지는 겹으로 쌓다가, 평지에 닿으면 한줄로 쌓아 마감을 한다.

 

화전밭 밧담

밭 경사면에는 밭에서 채취한 돌을 일정한 너비로 겹겹이 계단 두개를 놓았다.

위의 밭 지면까지는 겹으로 쌓다가, 평지에 닿아서는 한줄로 쌓아 마감을 하였다.

호박은 늙어 이슬을 먹어야만 제 맛이 돋아난다. 

 

호박, 대박

 

뒷동산

 

뒷동산 아랫마을

 

일쳇동산

뒷동산에서 일쳇동산까지는 한 능선으로 되어 있다. '일쳇'은 한 줄기라는 제주어이다.

 

현장이동산

저지리 1425-1번지 일원이다. 왼쪽에 저지악이 있다.

 

저지악으로 가는 올레

뒤에 보이는 오름이 저지악이다.

 

닥모르오름/저지오름/저지악/새오름

예로 부터 닥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불려진 지명이다. 

저지오름에도 일제(왜)가 남긴 미완성 동굴진지가 있다.

일본은 제주도 전역을 기지화하려고 하였는데, 비행장 4개소 건설, 동굴진지 448개소를 구축하였다.

지역별로 보면, 제주시 75개소 278개, 서귀포시 45개소 170개 등 전체 120개소 448개의 둥굴진지를 구축한 것이다.

아래. 도면 참조하세요

 

일본이 제주도내에 구축한 진지동굴 및 기지(자료 그림)

 

저지리 닥멀본향(허릿당)/허릿궁 할망

저지오름 주차장 좌측에서, 150m 동쪽 밭 경계선에 있다.

 

저지리 닥멀본향(허릿당)

이 당은 저지리 1894번지에 있다. 저지(닥멀)오름 오르기 전 화장실 주차장 동쪽 직선거리 100m 지점에 있다. 신목은 구럼비나무이다.   이곳 당신(堂神)은 서귀포시 호근마을 정좌수의 일곱 자녀 중 말젯ᄄᆞᆯ로써 ‘일뢰한집’이다. 뱀신으로 웃토산 계열이며, 제일은 3일 7일이다. (1차 순례 자료사진 인용)

 

허릿당 신목은 구럼비나무이다.

 

허릿당 제단

제단은 밭 경계 돌담에 의지하여 단을 쌓아 만들었다.

 

허릿당 당집

진성기<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에는 허릿궁할망, 대정 호근모루, 정좌수의 부인이, 쑤무사흘, 쑤무일뤠, 혼덜 요섯번 상을 받고, 난는 날은 생산 차지, 죽눈 날은 물구초지, 혼덜 요섯번, 일은 요답 상단골, 마흔 요답 중단골, 아흔 단골 노단골, 받아오던 일뤠본향 한집, 아방국은 용선다리, 초호를 보름 상을 받는 한집, 가지 갈라 족은 할망 짐(김)씨 할망, 안 요드레 밧 요드레, 상을 받던, 종애물(저지리 수동) 거리, 요드레 본향 한집.  제일은 자손에 생기 맞는 날

    

13km 지점

15시 05분에 지나다.

 

저지리 칠성제단

저지오름 남남서향. 오름정상 올레에서 60m 거리에 있다.(1차 순례 자료 사진)

 

 

저지오름 칠성단

칠성신앙은 도교의 전형적인 성관신앙星官이다. 북두칠성 각 별마다 관직을 주어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게 하고 그에 의지하여 제의를 행하는게 칠성신앙이다. 저지오름 칠성단은 5평 정도의 작은 규모이다. 196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 후반 까지 저지리 학림사(한경면 저지2길 2-6) 주지 스님이 매년 정월 보름과 칠석 등 4회 정도 이곳에서 칠성제를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자연으로 형성된 궤를 활용하였다. 제단은 자연석을 깔아 놓아 마련하였고, 칠성 신위를 모셨다.

 

산방산, 단산, 송악산, 모슬봉, 가마오름, 새신오름, 녹남봉

저지오름 정상 전망대에서

 

가마오름, 새신오름, 녹남봉

 

저지오름 굼부리(분화구)

 

수월봉, 당산봉, 차귀도 

  저지악 전망대에서

 

허리왓

저지오름 허리 부분에 있는 밭이라 불려진 지명으로 저지리 1878-2번지 일원이며, 저지리마을화관 남서쪽이다.

 

저지리는

제주올레 14코스

제주올레 14-1코스가 열려 있다.

 

저지리 예술정보화마을센터 

제주올레 13코스 종점

제주올레 14코스

제주올레 14-1코스 출발점

 

16시 05분에 도착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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