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보도자료

금광명경문구(미디어 제주)

相民 윤봉택 2006. 5. 5. 09:27
제주도서 판각된 '금강명경문구' 사실 확인
윤봉택씨, 25일 '금광명경문구’ 제주 유일본 공개

 

문상식 기자 assang0872@mediajeju.com

 

고려시대 제주도에서 최초로 판각된 목판본 '금광명경문구'가 사실로 확인됐다.

   
▲ 장판 본사진
1296년(고려 충렬왕22년) 제주도 묘련사(妙蓮社)에서 판각된'금광명경문구'는  현재까지 제주에서 주조된 목판본 중 가장 시대가 앞선 것일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고려조 제주도에서 발간된 유일본 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윤봉택씨(서귀포시청 문화재담당)가 그동안 일반자료로만 전해오던 것을 순천 송광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된 '순천송광사장고려판천순판불전'의 내용을 통해 고려시대 제주에서 ‘금광명경문구’ 목판본을 간행한 기록을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25일 공개했다.

'금광명경문구'가 제주도 묘련사에서 간행되었다는 근거는 '금광명경문구'의 하권 말미의 간기에 <금광명경문구소 권하 원정이년고려국제주묘련사봉선중조 간선폭포사주지 안립(金光明經文句卷下 元貞二年丙申歲高麗國濟州妙蓮社奉宣重彫  幹善瀑布寺住持禪師 安立>이라 하여, '금광명경문구'가 1296년(고려 충렬왕 22년) 고려국 제주 묘련사에서 폭포사 주지인 안립선사의 주도하에 판각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금광명경문구'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널리 알려진 '재조대장경판'이 주조(1236~1251)된지 45년이 지난 1296년에 제주 묘련사에서 주조된 것으로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판각했던 팔만대장경과 마찬가지로 제주인들의 항몽의식을 엿볼 수 있는 제주 최고(最古)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권말간기 부분
이는 1269년 제주도가 몽고가 세운 원나라의 지배시기여서 안팎으로 매우 어려웠던 정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경을 판각해 배포한 사실을 볼 때 항몽의식을 고취시키는 방편과 함께 당시 천태종의 부흥과도 연관된 것으로 해석된다.


자료를 공개한 서귀포시청 윤봉택씨는 "목판이 제작된 시기는 원의 세력이 매우 막강했던 때라 특산물 공출 등 제주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던 시기로서 당시 불교 승려들이 종교를 빌어 국난을 극복하려했던 의지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금광명경'이란 무엇인가

금광명경은 법화경.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과 함께 진호국삼부경(鎭護國三部經)으로서 중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삼국시대부터 국가에 변란이나 외침이 있을 때에는 임금이 고승을 초청해 법회를 열어 설법을 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고려조에서는 1180년(명종 10년) 3월에 불 같은 붉은 기운이 나타나자 이를 불력을 빌어 소멸하고자 금광명경 법석을 대안사(大安寺)에 차려 이러한 기운을 소멸하게 하였다.

'금광명경문구'란 무엇인가

금광명경문구는 금광명경에 대하여 천태지자 대사가 설하고 그의 상수제자인 장안 관정이 기록한 주석서로서 전 3권으로 되어 찬술되어 있으나, 신수대장경에는 전 6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천태는 수나라의 고승으로서 천태종의 개조이다.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창건하고 법화경을 중심으로 천태종을 만들었으며, 법화현의.금광명경문구 등 30여종의 많은 논소를 남겼다.


 

입력 : 2006년 04월 25일 12: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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