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명/어머님 잔영

순다리

相民 윤봉택 2024. 4. 19. 17:09

 

 쉰다리

 

 쉰다리 또는 순다리라고 불려지는 발효음식은 탐라인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입니다.

 

 여름철 밥을 잘못 보관하였다가 상하게 되었을 때, 그 쉰밥에 누룩과 물

그리고 당분을 넣어 몇 일 두어 발효시킨 음식을 말합니다.

 

 이 더운 여름날 논밭에 나가 작업하실 때에는

이 쉰다리를 주전자 담아 가지고서는 간식으로 드시곤 하셨던 음식입니다.

  

 우리 어머님(1920년생)이 살아계실 때에는

쉰다리를 참으로 잘 만들어 주셨습니다.

울 어머님께서는 쉰다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잘 만드셨습니다.

 

 장마철에는 ‘정의논깍’에 나가셔서 ‘폿겡이’를 잡아다가

절구에 넣어 찧으시고는 ‘겡이죽’을 만들어 주셨고,

그 바쁜 농번기에도 잠깐 물 때를 맞추어

개껴시(바닷가)’에 가셔서는 넘패(해초류)를 따다가

 저가 좋아하는 넘패국을 끓여 주셨습니다.

 

 오늘 탐라섬은 제3호 태풍 에위니아의 간접 영향으로 인해 해변에는

너울 현상이 장맛비와 함께 뿌연 포말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집에서 무쇠솥뚜껑 뒤집어 ‘쏠오리(보리쌀)’를 볶아

개역(미숫가루)을 만들어 먹으면 참 좋습니다.

이 ‘개역’과 ‘겡이죽’, ‘넘패국’, ‘개역’ 등에 얽힌 이야기는

담 기회로 넘기도록 하고, 오늘은 우리 어머님의 쉰다리에 대하여 낙서하고자 합니다.

 

저는 쉰다리를 참 좋아 하였습니다. 먹고 싶을 때는

‘어멍 마씸 쉰다리 먹구정 헌거(어머니 쉰다리 먹고 싶어요)’하면

하면 나 칭원(설운)한 우리 어머님께서는

‘요 노모조식 허랜헌 공부는 아니허곡 그저 먹을 타령만,

호꼼(조금)만 이시라 허영 주커메’하시고는

쉬지도 않은 밥을 쉬게 만들어서 쉰다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님에게는 특별하게 쉰다리 만드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동네 여자삼촌들도 우리 집에 누룩 얻으러 오시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쉰다리는 누룩이 좋아야만 잘 발효가 되고 맛도 좋습니다.

하여 우리 어머님께서는 누룩을 스스로 만드셨습니다.

 

정미소에 가서 보리를 도정할 때 처음과 두 번째 나오는 가루를 따로 보관하시어

누룩을 만드셨는데, 그 가루에 엿기름을 적당하게 섞여

물에 개여 반죽을 만드시고, 서늘한 곳에 두어 메주처럼 짚에 엮어 달아 놓으셨습니다.

 

 쉰다리를 만들 때는 여름철인 경우 먼저 쉰밥을 그릇에 담고,

적당한 물을 붓고, 그리고 누룩을 식칼 손잡이로 잘게 부수어 넣고 난 다음,

당분을 적당하게 넣고 나서 휘 저어 뚜껑을 닫아 2일만 지나면,

거품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 손가락으로 맛을 보면서

식구들 입맛에 맞게 먹입니다. 저의 짐작으로 알콜 농도는 4~5%정도 됩니다.

 

그러나 애들에게 먹일 것은 한번 삶아 버리면

알콜이 모두 없어져서 정말 요쿠르트처럼 담백하게 먹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담백한 맛을 즐겼습니다.

 

 겨울철에도 쉰다리 먹고 싶다고 하면,

어머님께서는 미리 물을 미지근하게 만들어서 순다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이 때는 발효를 빨리시키시려고 순다리 통을 아랫목에 넣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3일이면 먹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여간해서는 그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어머님의 손맛이 눈물나도록 그립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님이라는 말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곤 합니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어머님에게는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러한 말을 해야 하는데 어머님은 가고 아니 계시니,

어머님 계시는 지인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후회는 어머님에 대하여 불효했던 것입니다.

 그 어머님이 보고 싶습니다.

 

 

 

 

 

 

 

35619

 

'지천명 > 어머님 잔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은  (1) 2024.03.31
개역  (1) 2024.03.31
울 아가  (0) 200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