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 13릉의 정릉 신공성덕비

相民 윤봉택 2008. 1. 17. 00:36

2007. 7. 16.

 

 명 13릉 가운데 정릉 입구에 있는

신공성덕비(神功聖德碑)입니다.

 

 명13릉은 북경 외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나라의 17황제의 무덤의 가운데 헌(獻), 경(景), 유(裕), 무(茂), 태(泰), 강(康), 영(永), 소(昭), 정(定), 장(長), 경(慶), 사(思), 덕(德)릉 등 13릉이 있는 곳,

 

 이 가운데 정릉(定陵)을 답사하는 시간을

지난 2007년 7월 16일 북경을 방문하면서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정릉은 릉에 대한 사진을 올릴 때 설명하겠습니다만

이름은 주익균(1563~1620)이고, 연호는 만력, 재위 48년, 시호는 신종입니다. 

 

 이 사진들은 정릉 입구에 세워진 비로서

비신에는 아무런 글자가 없습니다.

 

 글자가 없는 백비인데 그 사연은 너무 치세를 잘하여 그랬다고 하며,

또 하나는 신종 때 부터 신종의 방탕한 생활로 명나라가 쇠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아무런 내용도 쓸게 없다하여 그랬다는 설이 있습니다.

 

 정릉은 장릉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제13대 신종만력제와 그의 두 명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능으로서

 

 지하궁전으로 이뤄진 이 능은 6년의 세월과 국비 2년분의 투자로 만들어졌으며,

 

 능 안은 지하로 20m 정도 깊고, 최대폭 47m, 안길이 88m의 규모로서

정릉은 1957년 7월에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29438

 

 

정릉, 지하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이곳에 가면 다르지 않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정릉 안내도입니다.

오석에 세겨 놓았습니다. 

 

정릉 입구에 세워진

신공성덕비입니다.

 

처음에는 비를 보호하는 정자(亭)가 있었으나

1644년 청군에 의하여 부서지고 비만 남았습니다. 

 

 육중한 무게를 버티기 위해

하대석을 놓고,

다시 그 우로 부대석 단을 쌓았습니다.

안내문, 

 

비석은 이수부귀螭首趺龜라 하여

비신을 덮는 것을 이수라 하고

비신 받치는 것은 거북 모양이기 때문에 귀부라 합니다.

 

비공과 이빨, 두 눈 모습이 금방이라도 

비신을 박차고 나올 것만 같습니다. 

 

비신을 받쳐든 비좌는 귀부의 등을 고르지 않고 

가운데를 뚫어 전체적인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귀갑 무늬를 하면서도 사방에는 물결 무늬를 넣어 바다를 나타내고 있나 봅니다.

 

 이수입니다.

역시 신종황제 치세가 그래서 그런지

두전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습니다.

 

이수에는 교룡 3마리씩을 좌우에 두어 위엄을 보이고 있는데

 

이수의 우측면입니다. 

 

 귀부에는 각각

4종의 신물을 두었습니다.

 

부대석 우의 부대입니다.

부대에는 고기, 자라, 지네, 게 등의 동물신상을 넣었습니다. 

 

 귀부의 꼬리 부분입니다.

세 가달로 하면서 가운데 꼬리를 둘러 내렸습니다.

 

사는 게 무엇인지

산다능게 무엇 때문인지

 

가는 길이 저렇다면,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에는 꽃이 피고  (0) 2008.07.29
명 13릉의 정릉 - 1  (0) 2008.01.23
산해관  (0) 2007.07.28
갈석궁 유적  (0) 2007.07.25
진황도시 북재하 진시황 행궁 유적  (0) 200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