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해관

相民 윤봉택 2007. 7. 28. 08:53

2007. 7. 15.

 

산해관입니다.

 

 만리장성, 동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곳입니다.

 만리장성을 쌓으러 떠나간 남편을 찾아 만리길을 달려온 孟姜여인이 남편의 주검 앞에서

피를 토한 애잔한 넋이 서린 곳

 

 7월 15일에는 산해관과 하북성 건너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요녕성 서쪽 발해(渤海)와 접한

수중현(綬中縣) 바닷가에 있는

진시황의 행궁인 갈석궁(碣石宮) 유적을 들리고 나서 산해관을 보고 북경으로 돌아 왔습니다.

 

 산해관山海關은 하북성 진황도시의 산해관구에 있는 성으로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자 시작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와 만주족과 한족을 경계하는 곳에 서 있는 산해관은 연산산맥의 줄기인 해발 500m의

각산角山과 발해渤海의 마지막 글자를 따서 산해관이라 했다고 합니다.

 

 산해관은 주성인 관성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섯 개의 성곽으로 되어 있으며, 동문에 해당하는

 관성 입구에는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관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동익성(東翼城)ㆍ서익성(西翼城)ㆍ남익성(南翼城)ㆍ

북익성(北翼城)이 있고 위원성(威遠城)이 밖에서 응원을 하며 ‘노룡두(老龍頭)’가 있는

영해성(寧海城)은 바다쪽을 지키고 있는데, 대부분 성벽은 높이 12m에 두께 6m 정도됩니다.

 

 산해관이 천하제일관으로 알져진 것은 청나라 강희 황제가 이곳을 지나며 “두 서울을

 잠그는데 더할 나위 없는 곳, 만리장성의 첫번째 관문이라”는 시구를 남기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중국이 만리장성을 처음 세운 것은 기원전 3세기말 진(秦)나라로부터 시작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명나라 이후 것이 대부분입니다.

 

 산해관은 명이 건국된 후 북쪽에서 군사작전을 총지휘했던 사람이 서달(徐達)이 1381년에

몽골 및 만주 세력들을 방어할 목적으로 관문 공사를 시작해 1년만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산해관이 간직한 역사는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명나라는 17세기 들어와

신흥세력인 청에 밀리면서 만리장성까지 후퇴를 했고, 마지막으로 1644년 산해관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중국은 다시 이민족(청)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청과 대치하고 있던 명의 장수는 오삼계(吳三桂)였다고 하는데, 마침 이자성 농민봉기로

 명조는 내부에서 무너졌고, 오삼계는 오히려 청과 결탁을 했다고 합니다.

 

 이자성군과 청ㆍ오삼계군과의 전투가 산해관에서 벌어졌고 이에 승리한 청군이 북경에

 입성하면서 만주족이 중국을 통치하게 되었는데, 북경 시내에는 여러 곳에 명왕조를

무너뜨린 농민 출신 이자성의 동상이 세워져 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23732

 

 

 

산해관의 첫 관문인 천하제일루입니다. 

1381년, 명나라 때 축조된 성입니다.

진鎭 동쪽에 있다하여 진동루鎭東樓라고도 합니다.

 

 

누 내부에는 진열장과 판매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저 홍예문을 지나면

천하 제일루의 옹성이 보입니다. 

 

이 진동루를 포함하여 주변에는 남-북 등에도 각각 누가 있습니다.

 

 

 

 

 

천하제일루의 관람을 위해 동선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하제일루에서 목영루牧營樓까지 연결된 성도입니다. 

 

천하제일루 후면입니다. 

 

제일루의 후면 옹성 내부입니다. 

 

옹성 내부에 열거된 점포 

 

옹성 동향에 축조된 서련각공원입니다. 

 

서련각공원 일부입니다. 

 

 

 

 옹성 외부

 

 

 

빗물을 흘려보내는 관로입니다. 

 

 

제일루 우에서 이처럼

가마를 이용하여 손님을 모시고 있나 봅니다. 

 

제일루 전면 광장 

 

 

 

 

2박 3일 동안

함께 하며 안내하여 주신

북경 서복협회 부비서장님과 담당국장님입니다. 

 

 1584년에 세워진 목영루입니다.

목영루 牧營樓 현판 

 

 

 

 목영루 하대 통풍구 문양입니다.

 

내부에 전시된 각종 총통과 보검 화살 등입니다. 

 

 

 

 

 

 

 

 

목영루 남쪽으로 이어진 장성 보수 현장

 

지금도

만리장성의 보수는 부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실물 크기의 현대판 대포입니다. 

 

성 좌우에는 전석을 이용하여 겹쌓기를 하고

내부에는 판축 다짐으로 하면서

진흙으로 견고하게 다져 놓았습니다. 

 

목영루 후면 입니다.

전시에는 내부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간문을 달아 놓았습니다. 

 

층을 달리하는 지점에는 전석을 걸처 놓고 있는데

이는 전탑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서리 부분에 이어 놓은 선은

피뢰침의 접지선입니다.

 

 목영루 측변

 

 

 성 내부입니다.

 

무궁화이긴 한데

우리나라 꽃이 아닙니다.

 

 

한국 서귀포시 서복문화국제교류협회

산동성 용구시 서복협회

북경 중국서복협회

진황도시 서복협회 임원들과 더불어 담았습니다.

 

가운데 중국 진황도시 서복협회 전회장님

좌측 산동성 용구시 서복협회 부비서장님

 

진황시도시의 한족 아가씨입니다.

 

연변대학교 한국어학과를 졸업하였는데

15일 우리 일행들을 위해 통역하여 주셨습니다.

 

한국 서귀포를 아느냐고 묻자,

2002월드컵이 열렸던 도시가 아니냐고하면서 와보고 싶다하였습니다.

한국에 오면 연락을 달라며 연락처를 전했습니다.

 

 성 내부에 있는 토산품 판매점과 식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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