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실상사 철제여래좌불상

相民 윤봉택 2024. 8. 26. 13:45

 

2008. 04. 19.

 

 보물 제41호

 실상사 철제여래좌상(實相寺鐵製如來坐像)입니다.

 

지난 4월 19일

동료들과 같이 남원 실상사를 시작으로

백장암을 지난 합천 해인사 장격각 까지 순례답사하는 도중

첫 순례지인 남원 실상사를 찾았습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실상사 내 약사전에 보존되어 있는

이 철조여래좌불상은, 한국철조불상의 효시로서,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실상사를 창건할 때 조성하여 세운 철불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철불의 역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개산조인 도의국사가

중국으로 부터 선법(禪法)이 도입되면서,

 이전 까지 통일신라의 불교는계율과 교리에만 치중되었으나

도의선사의 선종 도입으로 불교 대중화가 시작이 되면서, 철불이 본격 조성되기 시작했다고 보아집니다.

 

 

흥덕왕 9년(834년) 사치 풍조를 금하는 법제가 선포되면서

금은청동 사용이 엄격이 제한되었으나,

 

당시 철은 육두품 이하 서민층에서 주로 농기구 등에 사용될만큼

유통되었기에 비교적 재료 구하기와 제작이

청동에 비하여 용의하였기 때문에 철불이 신라하대에 와서 고려조까지

선종과 함께 유행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철불의 양식적 편년은

830년대 실상사 철불을 효시로

한천사, 보림사, 도피안사, 삼화사, 은적사, 증심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양식 편년이 이어집니다.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실상사 철불은 다른 철불과 마찬가지로

통일신라 후기에는 지방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한 예로서 당시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은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8세기의 불상이

다소 느슨해지고 탄력이 줄어드는 9세기 불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입니다.

 

 

 

 실상사 철제여래좌불상이 봉안되어 있는

 약사전입니다. 

 

 

 이 약사전은 실상사의 금당 우편에 있으며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주심포계로서 처마에는 할주가 있습니다. 

 

 

외2출목 겹처마로 주초는 자연석을 놓아 주심 부분만 도드락한 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다계 올리는 다계주전자를 놓아 두는 판입니다.

좌측문 입구에 있습니다.

 

실상사는 평지형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이 약사전 또한 기단부가 단층 마감으로 처리되어

 

금당보다 낮게 동선 처리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약사전 내부입니다. 

이 철불은 한 때 1884년 화재로 약사전이 소실되자

노천에서 공양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1986년 철제불상 해체 수리시에 복장 내부에서 철제로 조성된 수인 두 점이 나왔는데

수인으로 보아서는 아미타불의 미타수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로 보아서는 이 철제불은 철조아미타불좌상이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높이 269cm, 어깨 너비 130cm

 풍만한 상호와 당당함은 통일신라의 중대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세부기법에서는 하대의 요소가 많이 등장하는 철불입니다.

 정갈한 나발과 육계, 이마는 좁으나 백호와 미간이 또렸하고

 삼도는 선각이나 계단식이 아닌 굴곡모양을 하였습니다. 

 

 가슴의 넓은 띠 모습은 승각기(上內衣)인듯, 

 

알맞게 내려선 귀의 선형, 목은 굵고 짧으며, 착의는 통견으로 가슴이 열려 있고, 부드러운 옷주름은, 왼손으로 와서는 물결주름식(번파식)을 하여 중대의 영향을남겨 놓으며,오른손은 시무외인으로 왼손은 무릅 우에 놓아 중생들을 향해 설법하고 계십니다.

 
 

 

 

 코와 입 사이의 인중은 길고,

 두틈한 귓볼

 열려진 가슴에는

 법의 안쪽 왼쪽 겨드랑이에서 오른쪽 가슴으로 지나는 넓은 띠의 승각기 

 

 

 왼쪽 팔에 드리운 물결주름식(번파식) 옷주름은

 중대의 전통 주름양식이기도 합니다. 

 

 

시무외인으로 모든 중생의 두려움을 사하시니

결가부좌한 평발의 발가락이 참으로 유난한데

 

중생의 염원이 이곳까지 이어졌는데 >>>>

.  

 

 

 

 

1884년 약사전이 소실되면서

이 철불 또한 화마를 입은 듯

무릅 부분에 많은 덧이 나 있고 

 

 

 천장에서는 황용이 물을 토하고

 건너에는 가릉빈가가 음율의 강을 노저어 오시는데

 

 

가시는 이여

가는 이여 

 

 

부처님 뒤 모습입니다.

철불도 시간이 지나면

지남을 아시는지 

 

 

1884년 화마가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  

 

 

예서는 그 또한 부질 없음을 기억하기에 

 

 

 결가부좌에서

 홀연히 일어서는 실상사의 미풍이여

 

 

이대로 흐르다 보면

저 문을 열고

저 생으로 무진행을 할 수가 있을지 

 

 

 섬돌에 비낀 그림자에 누운

 풍경 나그네 !!!

 

 

 

 

33383

 

'문화유산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암  (0) 2024.08.26
성웅 스님  (0) 2024.08.26
예천 동본동 석조여래입상  (1) 2024.07.20
개심사지오층석탑  (1) 2024.07.20
가남정  (0)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