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수경스님. 다시 길을 떠나며

相民 윤봉택 2010. 6. 14. 18:21

2010. 06. 14.

 

  다시 길을 떠나며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그날 싸리비 들고

일주문 건너 사적비에서 부터 해탈문 까지 검무 날리듯 마음길 열어 가시더니 

   도법스님과 같이 생명 평화 제주탁발순례(2004. 4. 24 ~ 5. 20) 오셨을 때

   서귀포시 기적의도서관 방문하실 때,33년 만에 상봉하였습니다. 

 

 가야산에서 하얗게 눈이 나려

 길 마져 자취를 잃던 1972년 겨울

 스님과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면서

 섬 생활에 익숙하여 가던

 2004년 4월 햇볕 몹시 눈부시던 날

 스님은 도법스님과 같이

 제주섬 탁발순례를 오셨습니다.

 

 그날에 잠시 뵙고지고

 다시, 시간이 지나 스님은

 화계사에 잠시 머문다하시더니

 누가 수경스님 아니랄까봐

 

 다시 그림자 조차 멀리하며

 바람인 듯, 바람일 듯

 먼 길 떠나가신다 하셨습니다.

 

 다시 어느 회상 인연에 기대어

 뵈올 수 있을런지요.

 언제나 여여하시길

 두 손 모웁니다.

      

 

 

 

37841

 

 


'가슴앓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창후 항소이유서  (0) 2010.07.10
다시 봉하마을에서  (0) 2010.07.02
유월에는  (0) 2010.05.30
반연  (0) 2010.05.28
서귀포시청 문학회  (0) 201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