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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흥사 마니전

중국

by 相民 윤봉택 2012. 3. 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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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09. 26.

 

륭흥사(隆興寺) 마니전摩尼殿입니다.

 

마니는 여의如意와 같은 의미로 마니주摩尼珠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니는 부처님을 상징하며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말합니다.

   

첫째날(09. 25) : 북경 계대사

둘째날(09. 26) : 하북성 중심도시 석가장, 백림선사, 광혜사화탑

                       임제사 징령탑을 순례한 후

                       융흥사를 참배하면서 마니전을 참배하였습니다.

 

륭흥사는 하북성 석가장 정정현 성 동쪽에 있는 사찰로서 가람 규모가 매우 큼니다.

그리고 대부분 건조물이 건립 당시의 양식으로 되어 있어 참으로 웅대하였습니다.

 

수나라 개황6년(586)에 용장사(龍藏寺)로 창건된 사찰은

송나라에 이르러 그 규모가 거대해졌으며, 이후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가람 중수가 이뤄졌고,

 

청나라 강희45년(1706)에 지금의 사명인 륭흥사(隆興寺. )로 사찰 명칭이 바뀌었는데,

거대한 청동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저 있어 대불사(大佛寺)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며,

융흥사라는 가람 명칭은 청나라 강희45년(1706) 강희황제가 융흥사라는 편액을 하사하면서부터입니다.

 

융흥사의 가람 배치는 남북 중심축에 주요 법당을, 중심측좌우로 요사와 정원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사찰 입구에는 석교가 있고, 천왕문, 대각육사전(大覺六師殿)터, 마니전(摩尼殿), 계단(戒壇),

우측에 자씨각(慈氏閣), 좌측에 전륜장각(轉輪藏閣),

좌측에 강희어비정(康熙禦碑亭), 우측에 건륭어비정(乾隆禦碑亭),

관세음보살입상을 모신 대비각(大悲閣), 대비각 우측에 어서루(御書樓),

북쪽에 미타전 등 주요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부처님 모신 곳을 어느 불상을 모시느냐에 따라 전각 명칭이 달라집니다만

마니전으라는 전각 당호는 잘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곳 마니전의 건물은 다포양식의 중층으로 상하 통층입니다.

최초 축조는 북송시대인 1052년에 지어졌고, 명-청을 거치면서 중수가 되었습니다.

마니전은, 륭흥사에 현전하는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건물입니다.

 

전각 내에는

송나라 때 만들어진 소조불상  석가여래좌불상과 좌우에는 상수 대가섭존자와 아란존자

협시보살로는 문수-보현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좌우 벽에는

명나라 1563년(가정 42)에 그려진 벽화가 있는데 명나라시대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 건물은 1977~1980년까지 중수가 되었습니다.

 

 마니전 전경입니다. 륭흥사 전체 배치구조가 평지형 사찰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화재를 대비한 인공호수를 만들었고,

 건조물 주변에는 주로 측백나무를 심어 방풍을 하고 있습니다. 

 마니전 전면입니다.

 위치가 평지이기 때문에 평지보다는 1m 이상 높여서 축조하였고

 전면에는 월대를 만들어 야단법석 때 편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마니전 현판입니다.

 '마니'는 최상의 보배로서 여의주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곳에서는 '마니'를 '부처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후면에는 광장묘체廣長妙諦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廣長은 부처님의 설법, 즉 광장설廣長舌을 말하며,

 묘체妙諦는 부처님의 진리를 뜻하는 데, 부처님께서 무한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법하심을 말합니다. 

 전각 내부입니다.

 가운데 주불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에 용상신위龍象神威라는 편액이 있습니다.

 용상경(龍象經)에 보면 석가세존께서는 코끼리 가운데 가장 큰 우두머리를 용상이라한다 하셨는데,

 여기서 용상龍象은 바로 부처님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무한한 위신력과 신통력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가운데 주불은 진흙으로 빚어 조성한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는 대가섭과 아란존자

 그리고 협시보살은 문수-보현보살을 모셨고, 후면에는 탱화를

 그리고 다시 뒷면 벽에는 해수관세음보살상을 모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좌우 협시보살상이 모두 부처님을 향해 있음입니다.

  전각 중심 북측으로 이렇게 수미단을 높게 쌓아 그 우 전면에 삼존불상을 모시고

  후면에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습니다.

 수미단 후면에 모셔진 관세음보살좌상입니다. 

 전각 수미단 상부입니다.

 천장 마감 후에 장식은 만다라 형식을 빌었습니다.

 전각 내부 바닥은 중국 건조물이 그러하듯 모두 전석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수미단은 하부에 석조문을 두고 상부에는 전석을 이용해 다시 8각형 단을 쌓아

 목조로 연화좌를 만든 다음 그 우에 조소상을 모셨습니다.

 건조물 상부 후면 가구입니다.

 건조물 모서리 가구입니다.

 내부 후면 모서리 가구입니다. 주변에 벽화가 있습니다.

 수미단 상단 측면 가구입니다.

 수미단 전면에서 좌측 후불탱화입니다.

 하부에 보면 1977년 보수한 흔적이 있습니다.

 수미단 좌측벽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전면에서 우측벽면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중앙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에는 문수 보현 협시보살을 모셨습니다.

수미단 좌측변을 기점으로 좌측문 부터 사진을 담았습니다.

이 벽화는 보살상이 아니라 천왕(天王)상입니다. 좌우에 동자들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천왕상 벽화입니다. 오른쪽 천왕상은 두건을 하고 있는게 특이한데

모두 24천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비구였을 때 중생을 구제하고자 48대원을 세우셨는데

 이 벽화는 48대원에 대한 내용입니다.

천왕상에 이어 차례로 상단벽화가 있고 가운데에는 지금도 보수 중인 듯합니다.

 벽화를 통해 명나라에 유행했던 건축물을 살펴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벽화는 명나라 성화(1465~1487)년간에 그려졌으며

 후일 북송과 금나라의 사찰 벽화기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건물 상부에는 살창을 두어 통풍이 되도록 하였고,

 창방과 평방에도 당시 단청 채색이 남아 있어

 참으로 웅대하게 장엄하였음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갖은 채색을 통해 당시 수려한 산세를 바탕으로

 이처럼 이곳의 벽화는 단순하게 불화를 뛰어 넘어

 명대 이후 문인화 산수화 등에도 많은 영향을 안기게 됩니다. 

 아미타부처님이 성불하시기 전,

 법장비구가 48대원력을 세워 누구라도 아미타불을  진심으로 10번만이라도 부른다면

 극락세계에 이르게하리라는 원력을 세우신

 

 그 내용을 하나 하나 화폭에 담아 전하고 있습니다.

 

 하여 서측면에는

 중앙에 아미타불과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등 삼존불을 두어

 서방정토의 불 국토가 바로 예임을 나투고 있습니다.

 

 

 

 

 

 

 

 

 

 

 

건물 외벽입니다.

모두 하앙식으로 되어 있음이 특징입니다.

물론 단청을 하지 않았구요

 처마 마다 늘어 선

 잡상은 무엇을 그리워 풍경소리에 돌아서는지 

 

 

 아늑하여라

 나 돌아 다시 그곳으로 건너가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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