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숭산 소림사

相民 윤봉택 2012. 3. 30. 09:14

2010. 09. 27.

 

 소림사少林寺입니다.

   

첫째날(09. 25) : 북경 계대사

둘째날(09. 26) : 하북성 중심도시 석가장, 백림선사, 광혜사화탑

                       임제사 징령탑, 륭흥사

셋째날(09. 27) : 하남성 정주시에서 머무른 다음 일찍 숭산 소림사로 향하였습니다.

 

소림사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찰로서

중국 하남성 정주시 숭산 오유봉(五乳峰)에 있습니다.

 

불자가 아니라도 찾고 싶은 사찰 가운데 하나,

 

그런데 대부분 소림사하면 수행보다는 무술에 대하여 집약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단지 무술은 수행 과정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것이

세속화되면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소림사는 북위 태화 19년(495) 효(孝)문제가

인도에서 온 발타라존자를 위해 처음 창건되었고,

당시에 혜광慧光, 승조 僧稠 등 수백의 승려들이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림사가 선종가람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527년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가 소림사로 오면서 부터 입니다.

 

그후 서기 536년 혜가慧可대사가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면서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남북조시대에 불교 중흥에 힘입어 크게 번창하다가

북주(北周) 무제에 이르러 사찰이 훼손되는 등 크고 작은 부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당시대에 이르러 크게 번창하는 데

수문제 때에는 척호사陟岵寺로 사찰 명칭을 달리하다가

다시 소림사라 부르게 되었고,

 

당나라 건국 때 소림사 13화상이 건국에 참여하면서

소림사는 천하제일가람이 되었고,

 

당송시대에는 가람 규모가 5000여칸,

수행승만하여도 2천여명이 넘는 거찰이 되었습니다.

 

소림사는 이처럼

선무합일禪武合一 사상이 담겨오는 소림공부少林功夫와

중원의 한 중심축을 이루는 소림파少林派

중원의 독창적인 권법 소림권少林拳

진법의 효시 18동인十八銅人, 즉 18나한진으로 널리 알려진 진법과

당태종을 도와 건국에 일익함으로서 천하소림을 세운 13곤승구당왕 十三棍僧救唐王 등

전설처럼 전해오는 가람으로서

 

가람 배치는

산문山門-천왕문天王殿-대웅보전大雄宝殿-법당法堂-방장원方丈院-입설정立雪亭-천불전千佛殿 순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만,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파괴된 것을

복구하여 놓은 것입니다.

 

지난 2010년 9월 27일에 찾았습니다.

 

 

 소림사에 가기 전  머물렀던 정주시내에 있는 숙소

 소림사 주변 안내도

숭산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어 있는 곳입니다.

 멀리 숭산의 오유봉이 보이는 곳에

 소림사 산문이 있습니다만, 이 석주문은 최근에 건립된 것입니다.

 최근, 소림사 초입에 세워진 석조 일주문

 우리가 평소 생각했던 소림사 주변, 온통 무술을 양성하는 학교였습니다.

 소림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지막 건물 위병소(?)에 사정하여 잠시 교정으로 들어가봤습니다.

 마침 휴식 시간이라 연무생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참으로 많은 예비 무술인들이 있었습니다.

 

 산문에 이르니, 먼저 반겨주시는 이들, 찹찹함니다.

  그래도, 산문 입구에는

  지난날 소림사의 기개와 선풍을 느낄 수 있는 당간지주 있어

  순례자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있습니다.

  소림사 산문 입구에 있는

  고정古井, 옛우물입니다. 지금은 폐쇄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물을 긷는 두레박줄이 특이합니다.

  소림사 산문 앞에 있는 석조문입니다.

  석조로 되어 있는 데, 특이한 것은 좌우에 두개가 나란하게 세워졌다는 점입니다.

  낸중에 그림으로 자세하게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맞은 편에 세워진 또 다른 석조문입니다.

 문양이 매우 화려합니다.

 소림사 산문입니다.

 입구에는 벽사 2기가 나란하게 세워 있습니다.

 벽사는 사악한 것, 특히 화마를 물리치는 신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합니다.

 산문 구조는 3칸이며, 문 좌우로는 말을 타고 출입할 수 있도록 마도馬道가 있는게 특이합니다. 

 내부 후면에는 미륵좌불상을 모셔놓았습니다. 

 소림사 산문에 걸린 현판입니다.

 이 현판은 청나라 강희황제가 쓴 친필입니다.

 산문 입구에 놓여진 신방석입니다. 좌대를 놓고 그 위에 신방석을 두었습니다.

 형태는, 돌북 형태로 가운데 심을 놓고, 여섯 갈래 이음으로 처음 원형을 만들고 나서

 다시 여섯갈래 이음 원형을 반복하고 나서, 마지막 원형으로 '아루(몸통)'을 조성하여

'울음테'에는 대북처럼 징을 박은 모습과 갖은 문양을 양각하여 장엄하였습니다.

좌대 또한 상중하 기단의 형태를 담아 통석으로 마감하면서 기하문을 넣은 게 이채롭기만 합니다.  

산문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있습니다.

그 새이에 이곳 소림과 관련된 당, 송, 원, 명, 청나라 비석들 30여 기가

좌우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지난날, 소림에서 무술을 연마하셨던 무승武僧들이 나무에 손가락을 찍었던 흔적들

나무를 가르켰던 손가락은 이제 달을 가르키는 지월指月이 되었나 봅니다.

입구 주변 좌우에는 향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소림을 이루고 있는데

저 중생은 무얼 찾아 예까지 와서는 수고로움을 더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천왕문입니다.  1982년 유지에 복원된 것입니다.

우주를 지키는 사대천왕상을 모신 곳으로 내부에는 금강역사와 함께 있는데

사대천왕상은 진흙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사천왕문 후면에는

 소림사가 천하제일조정(天下第一祖庭)임을 알리는 현판이 있습니다.

 이는 선교가 동토초조 달마대사가 이곳에서 부터 수행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달마대사가 이곳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하는 동안 주변에 살던 혜가대사가 찾아와 법을 구하면서

소림사는 천하 제일의 조사 정원이 되었습니다.  

사천왕문을지난면 대웅보전이 나타납니다. 구조는 2층 중층으로 다포양식입니다.

좌우에는 석비가 비림(碑林)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림사와 관련된 역대 왕조의 비석들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은 대부분 경내에 나무를 심지 아니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나무를 많이 심습니다.

이는 무덤에서도 쉽게 구분이 됩니다. 왕조의 무덤일수록 나무를 많이 심어 치장을 합니다.

좌우에는 고루와 종루, 그리고 나한전과 육조전六祖殿이, 동서에는 선당禪堂과 화승원和僧院이 있고,

대웅전 주변에는 북송시대 원우2년(1807)에 세워졌던 전탑 유구 2개소가 남아 있습니다.

 

대웅보전 현판입니다.

대웅전은 주불을 석가모니불을 모실 때 당호입니다.

법당에서는 조계종 수좌대표이신 혜국큰스님께서 일행들을 다리고 직접 예불을 집전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지 순례하실 때 마다 동행토록 배려를 하여 주십니다.

법당 내부에는 석조로 수미단을 세워 그 위로 연화좌대를 놓아 삼존불상을 모셨습니다.

 법당 후면 좌측면에 모셔진 약사여래입상

법당 우측 후면에 모셔진 여래입상

 법당 내부의 고주 주추를 벽사를 이용해 놓았음이 특이합니다.

 벽사 추초석에는 차안과 피안의 경계를 나타내는 V형 기하문양을 넣어

 상부에는 깨달음의 세계를, 아래에는 중생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웅전 위에 있는 법당에서 바라 본 고루입니다.

 대웅보전 우측 변에 건립된 승화원 전각들입니다. 

 

법당 전면에서 바라본 종루와 선당 건조물입니다.

법당을 지나면 장경각입니다.

장경각은 부처님의 말씀을 세겨 놓은 각종 경판과 경전, 각종 기록을 보관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중화대장경中华大藏经, 일본대정신수대장경日本大正新修大藏经, 고려대장경高丽大藏经의 경전과

소림권보비급少林拳谱秘笈, 명대장경동판明大藏经铜版,  청소림사지목판清少林寺志木版,

달마면벽영석达摩面壁影石 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장경각 현판입니다.

 법당 내부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와불상이 모셔 있습니다.

 장경각 주변에 있는 각종 수련기구로서  맷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명나라 1564년(가정43년)에 제작된 맷돌 일종입니다.

 

 건조된지가 오래된 듯, 석면에는 환경 변화로 인해 생물 흑화현상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멍 속에 누가 담배꽁초를 ..........

 석면에 년도 표기가 되어 있는 데,  가정43년등봉선인시재조嘉靖43年登封善人施材造라고하여

 당시에 선인의 시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솥 또한 무예를 읽혔던 한 기구입니다. 만력4년(1576)에 제작된 것으로서 무게는 1300근입니다.

 주변에 손잡이가 다섯개소로 그만큼 큽니다.

  면에는 만력4년11월 소림선사상주조대과일구 중일천삼백근 萬歷4年11月 少林禪寺常住造大鍋一口 重一 

千三百斤이라하여 명나라 만력4년(1576) 소림사에서 솥 하나를 만들었는 데 무게가 1300근이 된다 하였습니다. 

방장(方丈)원 입니다.

방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총림에서 가장 큰 어른을 가르키는 데

중국에서는 주지를 말합니다. 

 방장 편액입니다.

방장원 우측에 종이 걸려 있는데, 우리나라 종처럼 세밀함이나 정교함에 있어

차이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부에는 사방과 간방에 8괘를 넣어 도교적 의미를 가미하였습니다.

 종 측변에는  숭산조정 대소림선사大少林禪寺라 세겨 넣었고

 이 종은 원나라 지정2년(1265) 10월 25일에 주조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입설정立雪亭입니다.

달마정達摩亭이라고도 합니다. 지붕 구조는 우진각입니다.

 

입서전 입구 우측에는 입설정이라는 석비가 세워져 있고

어칸 전면에는 입설전 현판이

그리고 우측에는 선종초조천축승禪宗初祖天竺僧 중국의 선종 초조는 천축에서 오신 달마대사인신데

          좌측에는 단비구법인설인斷譬求法立雪人 혜가(입설인)는 팔을 끊어 오히려 법을 구하셨네 

라는 주련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현판은 명나라 때 쓰여진 것으로서, 立雪은 달마대사의 제자인 혜가慧可(487-593)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는 달마대사를 찾아 법을 구할 때 칼을 가지고 왼쪽 팔을 잘라내어 법을 구하였고,

이 때부터 소림사에서는 상대방과 인사를 나눌 때, 두손 모아 합장하지 않고

오른손으로만 인사하는 풍습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내부에 모셔진 달마대사입니다. 우측이 혜가대사 상인데

내부 관리자가 사진 담는 것을 워낙 싫어하셔서 ........

달마대사 입상

때문에 청나라 건륭황제의 친필휘호인 설인심주雪印心珠라는 편액을 바라볼 수 밖에요

천불전千佛殿입니다만, 현판은 천불전이 아니라 서방성인西方聖人

즉 서쪽에서 온 달마대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만력 년간에 동으로 주조된 비로자나좌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처음 이 건물은 명나라 만력16(1588)년에 세워졌었습니다.

서방성인 - 서방(인도/천축)에서 오신  성인(달마대사)라는 의미입니다.

 천불전 내부 수미단에는 명나라 때 동으로 주조된 비로자나좌불상이 상중하 연화좌대에 모셔져 있고

 천불은 인연이 다하셨는지,

좌우 3벽면에는 명나라 때 그려진 채색벽화 오백나한조비(오백나한朝毗)도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내부에는 천불은 없고, 대신 바닥에는 당시 승려들이 무술을 연마하였던 흔적,

  움푹 패인 발자국들이 남아 있는데 이를 참장갱站桩坑이라고 합니다.

   수나라 말기 나라가 혼란하여 사방에 도적들이 날뛰자, 당시 소림사에서 수행하 젊은 승려들이

  곤법棍法을 창안하여 수련을 하였고,

  그 승려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당태종을 도와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를 하는 데,

   당시 대표 승려가 13인이었습니다.

 자세하게 바닥을 보면 군데 군데 패어 있는 자욱을 살필 수가 있습니다.

 좌우 기둥에는 주련이 있는데

  희원낙수요영대喜園樂樹繞靈臺 숭산의 다섯봉우리는소림을 감싸 안아 있음이여

  산색계성함정조山色溪聲涵靜照 그 산빛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그대로의 청정법신인걸

 아마 지난날 당태종을 도와 당나라를건국했던 13인 승려들이

 이곳에서 무림수행할 때의 수련자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처럼,

 이곳에서도 삼재업장소멸기도가 있었는데

 내부 사진은 담지를 못하였습니다.

법당 전면에 놓여진 인등공양구입니다.

 이곳 스님들의 복식 구조입니다.

 특이한 것은 사찰 경내 모두 전석을 깔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소림사 외부 

 소림사 산문 입구

탐립으로 가는 길가

이곳을 벗어나면

저 유명한 소림사의 탑림塔林이 있습니다.

 

 소림사 탐림에 대하여는 별도로 소개합니다.

 탐림 순례 후 돌아 오는 길

 주변에는 석재로 단장하여 오는 순례자의 여정을 더하게 하는 데

  다시 또 무슨 바람이 불어와 석주문을 두드릴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숭산의 오유봉은

소림사를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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