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길손(나의 시)

구럼비

相民 윤봉택 2024. 4. 19. 17:18

2015. 8. 27.

 

끝나지 않은 이야기 · 16

- 구럼비 도꼬마리   

    

 

시방도 구럼비동산에 가면

나 설운 어멍 물매기가는 잔영이 보인다.

서귀포시 강정동 2742번지

개구럼비, 큰구럼비, 조근구럼비 답케를 가르는

도꼬마리 물코에 정갱이 걷어 부치고

물코판이에 서서

논두렁 다지시던 낡은 골갱이 조록,

춘삼월 개구리 울음 따라 물매기하며

가름에 앉아 답회를 하던 그날 그대로인데,

 

2015811 현장엔

포크레인 한방으로 찍어 날린 흔적 뿐

나 설운 어멍의 손깃 묻은

구럼비 도꼬마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도꼬마리 없는 구럼비는 구럼비가 아니다.

도꼬마리 없는 일강정은 일강정이 아니다.

 

모른다고만 한다.

보지 못했다고만 한다.

알지 못했다고만 한다.

듣지 못했다고만 한다.

전한바가 없다고만 한다.

하면,

팔짱을 낀 채 히쭉거리는, 그대들은

일강정의 심장 구럼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일강정의 자존을 위해 구럼비에 남겨진게 무엇인가.

 

포클레인 다이너마이트로 부서진 게

구럼비 도꼬마리뿐이 아니다.

좀녜들의 단골 개구럼비당, 개구럼비코지, 구답물, 모살덕, 선널,

진소깍, 톤여, 선반여, 할망물, 개경담, 소금밧, 중덕, 너른널,

서문의안통, 너른널, 물터진개, 큰여, 몰똥여, 돗부리암여, 돗부리암,

톤돈지여, 톤돈지불턱, 솔박여, 톤여, 세벨당, 막봉우지, 밧번지,

동도렝이안통, 동지겁

 

우리는 여기에 서 있지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구럼비에서 들숨을 쉬지만 날숨을 내 뱉을 수가 없다.

일강정의 깃발 솔대가 쓰러지고

팔소장 목축이던 몰질이 갈라지고

혼올래 돌담이 하룻밤에 허물어지고

 

집집마다 문지방 긁으며 토하는 각혈소리로

구럼비를 지나는 우리 미쁜 일강정 사람들

하늘이 울고,

밤하늘이 울고,

허연 대낮이 울고

중덕 물마루에 걸린 낮달이 울고 있다.

 

 

* 구럼비동산 : 강정동 2797번지에 있다.

* 구럼비 : 강정동 해안가에 있는 지역으로 강정천의 물을 끌어다가 논논사를 짓던 곳.

* 물매기 : 논농사 시작하기 전에 논골을 정리하기 위해 작업 하는 일

* 답케 : 논이 있는 지역을 통칭.

* 물코 : 물이 들어오는 입구(水口)

* 물코판이 : 물이 처음 들어오는 입구의 논

* 골갱이 : 호미의 제주어

* 조록 : 자루의 제주어

* 2015. 8. 11 : 구럼비의 상징 도꼬마리를 찾기 위해 2015. 8. 11일 강희상군과 현장을 확인하였는데,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 도꼬마리 : 강정천에서 끌어온 농업용수를 개구럼비, 조근구럼비(강정동 4670), 큰구럼비(강정동 2731)로 물을 고르게 나누기 위하여 돌로 조각하여 수로에 세워 놓은 작은 석보(石堡)를 말하는 제주어. 제주도 내에서는 강정동 2742번지에서 큰구럼비개구럼비그리고 가운데 지역 등 3개소로 물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 돌을 보처럼 깍아서 세 개의 작은 보를 만들어 물을 보내는 기구를 말하며, 제주도내에 세 개로 나눠진 도꼬마리는 여기에만 설치되어 있었음.

* 개구럼비당~동지겁 : 해군기지가 조성된 강정천 서쪽부터 강정포구 까지의 해안가 지명

* 몰: 주로 우마가 다니는 길

 

 

 

자료사진 : 다음에서 항공지도(2008년도)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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