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삼조선사

相民 윤봉택 2007. 4. 29. 01:17

2007. 04. 13.

 

 

 ● 계명사 ⇒ 황산 ⇒ 구화산의 육신보전 ⇒ 고배경대 ⇒ 화성사 ⇒ 남전사지 ⇒

       안경시 양자강 유람 ⇒ 3조선사

 

 

  3조선사입니다.

 

 순례 3일 째가 되는 4월 13일 오후 시간에는

 천주산에 있는 삼조선사를 찾았습니다.

 

 삼조사의 원래 이름은 산곡사山谷寺였습니다. 양나라 보지寶誌화상이 양무제의 힘을 빌어

 505년에 이곳에 가람을 지으면서 산곡사라 하였는데, 승찬선사는

그로 부터 100년이 지난 다음 이곳에서 수행을 하셨습니다. 하여 삼조선사가 되었고

건원선사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3조는 중국에 처음 선법을 전하신 달마 ⇒ 혜가스님, 이어서 법을 전해 받은 스님이

3조가 되시기에 그렇게 불려진 것이며 그 분이 바로 승찬스님이십니다.

 

 

 3조 승찬스님은 올해로서 탄신 1497주년을 맞는데 606년에 돌아 가셨습니다.

 

3조 승찬스님은 처음에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래서 신병을 고민하다가

안휘성 안경시 악서현의 사공산에 계시다는 혜가 스님을 찾아 깨달음도 얻고

문둥병도 나았습니다.

 

 승찬스님은 후에 안휘성 잠산현 천주진에 있는 환공산(지금의 삼조선사)에 들어가

수행하시다가 593년에 4조이신 도신에게 법을 전하였으며 이곳에서 입적하셨습니다.

 

 승찬스님은 불교인들이 너무나 애송하는 신심명(信心銘)을 저술하셨습니다.

 전체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이 신심명은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요약하여

 신심信心이 둘이 아님을 설파하셨는데,

 

 

    신심명의 그 처음과 마지막 게송은

 

   지도무난至道無難 :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닌데.

   유혐간택唯嫌揀擇 : 오직 중생들이 가린다지,

   단막증애但莫憎愛 :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동연명백洞然明白 : 확연히 모든 것 명백하게 알 수 있으리니.

   ~~~~~~~

   신심불이信心不二 :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며

   불이신심不二信心  : 둘이 아님을 믿는 마음일지니

   언어도단言語道斷  : 문득 언어가 끊어 지면

   비거래금非去來今 :  과거·미래·현재가 아님을 알 수 있으려니

 

 

 

 

20494

 

 

 

삼조선사의 일주문입니다. 패방이라고도 합니다.

 

전면 좌우에는

벽사인 해태석상을 조성하여 놓았고

 

패방  뒤로는

3조선사의 전체 가람이 한 눈에 들어 옵니다.

 

지형에 맞게 가람을 배치하였습니다.

 

일주석문과 삼조선사의 묘탑과는 자오선상에 두지 않고

비켜가도록 하였습니다. 

 

 일주문입니다.

 3칸으로 되어 있으며, 매우 정교하게 석각하여 놓았습니다.

 

 가운데 현판에는 삼조선사의

 

 신심명 마지막 구절에 있는

 좌측에는 신심불이信心不二 믿는 마음이 둘이 아니며

 우측에는 불이신심不二信心 둘 아님을 믿는 마음이라면

 

 이는 승찬대사가 설하신 신심명 마지막 구절입니다.

 신심명은

 수행자들께서 암송하는 수행 경구입니다.

 

3조선사의 주지스님께서

혜국 큰스님을 산문 밖까지 나오셔서 영접하고 계십니다.

 

  굳이 무슨 통역이 필요하겠습니까.

 이심전심일 뿐,

 

 아무리 그래도

 시선은 큰스님에게로만

 가는 참 뜻은

 

가운데 통로 좌우에는

방형으로 연지를 만들어 조성하고

 

그 연지를 지나는 다리는

중자中字 모양으로 형상화 하여

 

중도 사상을 나타내었고,

 

좌우 난간에는 정교하게 석상을 조각하여 장엄하였습니다.

 

순례의 행렬 끝은

어디에서 멈춰서려 하시는지

 

3조선사의 전경

 

빛 바랜 조감도만이

향후 3조선사의

미래 가람 규모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혜국 큰스님 일행을

열열하게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반야문 앞의 계단

 

옮기는 발자국마다, 

내 딛는 발걸음 마다,

3조선사의 신심명 아님이 없습니다.

 

 삼조선사의 사찰 명칭은

 건원선사입니다.

 

 현판 좌우에 목각용상 단청이 우리와는 다르게 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청황으로 구분을 하는데

 

 화마 방지와 위엄 그리고 수호를 상징합니다.

 

 이 문은 반야문이자 삼문입니다.

 

 반야문 좌우에는 다음의 게송이 쓰여저 있습니다.

 천강유수천강월 千江有水千江月 : 천강에 물이 있으니 천강에 달이 비추임이요

 만리무운만리천 萬里無雲萬里天 : 만리에 구름이 없으니 밝은 하늘이라

 

 이 게송은, 금강경의 다음 게송에 대하여 종경宗鏡스님이 붙여 놓은 4구 중 2구입니다.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범소유상 凡所有相 : 형상이 있는 것은

 개시허망 皆是虛妄 : 다 허망한 것이라

 약견제상비상 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즉견여래 卽見如來 : 바로 자신의 참 마음을 보게 되리라 하시니.

 

 이 구절에 대하여, 야부冶父스님은

 

 산시산 山是山 ; 산은 이 산이요

 수시수 水是水 ; 물은 바로 물인데

 불재심마처佛在甚麽處 ;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신다고 하시는가 ? 라고 하셨는데

 

 이 구절은 열반하신 성철 큰스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던 법문구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운데는 지혜를 나타내는 반야문

좌측에는 수행을 나타내는 정진문

우측에는 그래야만 해탈함을 알려주는 해탈문 등

삼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문 안에는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반야문의 천정입니다.

가운데 마루에는 법륜상과 전후하여 용문을 그려 놓았습니다.

 

 

천왕문입니다.

 

이 천왕문은 삼조선사를 모셔 놓은

산곡사의 천불전 전각과 같은 양식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이 삼조선사에는

건원선사와

산곡사 등 두 개의 사명을 쓰고 있습니다.  

 

천왕문 입구에 포대화상 모셨습니다.

이 포대화상은 미륵부처님을 상징합니다.

 

포대화상을 모셔 놓은 좌대 부분입니다.

 

 

좌우 사방에 사천왕상을 모셔 두었습니다.

 

이곳 삼조선사에 모셔진

불상 등의 특징은 위엄보다는 자비롭게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아마 삼조선사께서 나병을 앓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포대화상 후면에는

이렇게 동진보살상을 조성하여 놓았습니다.

동진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말합니다.

 

 신중탱화 등에 중심에 그려져 신중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며

 삼보를 수호하시겠다시면서 굳은 서원을 세우진 보살입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순례가 아닌가 하시면서

함께하신 노보살님의 쉼

 

며느님과 함께 순례에 동참하신

노보살님.

이러한 인연 공덕으로, 부디 건안하시옵길

 

대웅보전 좌측 뜨락입니다.

 

시방 중국에서는 정부에서 사찰을 관리 운영합니다.

그 사무소입니다.

 

삼조선사의 탄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웅보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나 봅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대웅보전 건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법당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등과 같은 곳인데

중국에서 법당은 스님이 설법하시는 곳을 말합니다.

 

대웅보전 전면 창호입니다.

 

대웅보전 좌측면 처마

 

 대웅보전 우측면 처마

  

중생아 !!! 이 ~~~~ 또 뭣고 ??? 

대웅보전 내 모셔진

주불이신 석가모니부처님

 

대웅보전 천장

 

대웅보전에서

 

삼조선사의 유업을 받기 위해 온

혜국 큰스님과 그 일행들이

예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내 천장 가구입니다.

 

지심으로 정례를 드리옵나니

 

바라옵건데

나의 스승이옵신 석가모니부처님께옵서는

...... 

끝없는 중생의 서원은 이어지는데

바람 없는 향연만

사바세계를 휘감고 있나 봅니다. 

서원이 마치시기를 기다리시는 부처님

그 대좌는 나무로 조성하였습니다. 

가지런하게 놓여진 참배석,

 

우측에 서원을 걸어  놓은 번들만

향불 속에 잠기는데,

 

대웅보전 후면에 조성하여 놓은

백의수월관세음보살상입니다.

 

발 아래로는 바다를 상징하는

용을 그려 

중생들의 서원은

대웅보전 좌측에 매달린

북에서도 나타납니다.

 

북은 축생의 고통을 삭혀 이고득락 시켜주시는 울림입니다. 

보살님들의 미소가

법열로 이어지려는 듯

 

삼조선사의 지객스님의 온화한 시선 

그 뒤 좌우 측면에는 부처님의 제자상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예불 후, 주지스님의 안내를 받아

돌이를 하고 계십니다.

 

중국 사찰 건물의 내부는

모두 이렇게 바닥은 벽돌인 전석을 깔아 놓습니다.

하여 저렇게 참배석을 따로 만들어 저 우에서 절을 합니다. 

삼조 승찬선사께서 수행하셨던 삼조굴입니다.

 

삼조선사께서는 나병 환자이셨습니다.

 

저처럼 대머리셨나 봅니다

하여, 삼조스님을 붉은대머리라 하여 적두찬赤頭瓚이라는 별칭을 얻으셨습니다.

 

선사께서는 이 동굴을 벗어나지 않으시고 수행만 하셨다고 합니다.

아마 40년동안 나병을 앓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수행굴 안에 삼조사님의 영정이 모셔저 있었습니다만, 

삼조굴의 전경입니다.

 

1400여년이란 오래 전, 그 시절,

나병이라는 천형을 앓으면서도

2조사이신 혜가스님을 늦게 만나 깨달음을 얻으시고

 

평생 이 굴에서만 수행하셨던 3조사님을 생각하니

저절로 숙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데

속절 없는 불자님들은 자꾸만 다가 서시고.... 

3조사이신 승찬조사님의 영정입니다.

 

조사祖師는

정법을 이으신 큰스님들에게만 붙여지는 호칭입니다. 

그래서 대를 이으셨다는 의미에서, 역대조사라고 합니다. 

 불과 두평도 채 못되는 곳에서

3조사께서는 수행하셨습니다.

 

혜국 큰스님께서는 감회가 남다르신 듯

오래도록 일어나실 줄을 모르십니다.   

삼조사를 모신 영정 위의 상륜부입니다.

 

좌우에 용을 세겨 넣었고

가운데는 상륜을 두었습니다.

 

이 상륜과 같은 상륜이

남전보원 조사께서 수행하셨던

남전사지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서러웠던지요

천하장사 이만기였다면 안고 왔을 터인데 

삼조굴 좌측 암반에 세겨 놓은 마애명입니다. 

해박解縛 얽음을 풀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삼조 승찬선사께서

사조 도신선사에게 법문을 하여주신 곳입니다.

 

14세된 사미승(4조 도신)이 3조 승찬조사가 설법하실 때 물었습니다.

 - 원화상자비 위아해박 願和尙慈悲 爲我解縛 : 원하옵나니, 스승님께서는 저에게 생사를

해탈할 수 있는 참법을 열어주소서.

 

 - 이에 3조 승찬조사님은 어린 사미승이 심상하지 않음을 알고

   "누가 너를 묶어 구속하고 있는가.”

   "아무도 결박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무엇 때문에 해탈을 구하시려 하시는가?”라고 하자 어린 사미는 이에 크게

깨달음을 얻어 3조 승찬조사의 문하에서 용맹정진을 하여 득도를 하게 되는데

 

  바로 그 해박 解縛을 나타내는 마애명입니다. 

 이외에도 주변에 많은 마애명이 있습니다. 

삼조의 선종을 소개하는 표석

 

우측에는 불타라 하였고 , 주 내용은 부처님의 인연이 이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잠산동천 潛山洞天은 잠산의 신선세계라는 의미로서,

 도가에서 말하는 제14동천으로 57복지에 해당합니다.

그만큼, 이 천주산이 잠산에서는 가장 좋은 곳임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잠산은 안휘성에 있으며 천주산은 잠산潛山의 서북쪽에 있습니다.

 옛날에는 환산晥山이라 불렀는데 한무제가 남쪽으로 순찰을 했을 때 남악南岳이라 하였습니다.

 

 앞에서도 우리가 순례를 하였습니다만,

 환남晥南산지에는 황산黃山, 구화산九華山, 천목산天目山 등 고봉들이 많아 수행자들이 많이 찾은 곳이며, 이러한 산세 때문인듯 도가의 으뜸인 장자와 명나라를 개국한 주원장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천향대天香臺와 단하동丹霞洞은

모두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하며

 

이곳 삼조사의 도량이 그만큼

복지福地임을 나타냅니다. 

삼조굴 좌측면의 마애명입니다. 

 

마애명을 지켜 선

청태,

 

바위를 지켜 온 나무의 그림자 

삼조굴을 참배 마치신 혜국 큰스님이 마애명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 주고 계십니다.

 

 노모살님을 모시고 온

그 며느님 정성이 지극하리 만치 아름다웠습니다. 

중국에서는 주지를 방장이라 합니다.

방장실 좌우 조경입니다.

 

좌우 담장에는 용문을 하여 놓았고, 

난향에 기대인 흔적 

일행을 방장실로 초청하신 삼조선사 주지스님께서

혜국 큰스님 일행을 맞아 환영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인하오 ....

 

주고 받는 선물의 미쁨은

중생계 만이 아닙니다.

 

밀감 하나 맛 보고 싶은데

어찌 할꺼나 

스님들의 공양은 역시나

법공양, 신심명 뿐인데

 

불자님들이 공양은 역시나 그렇습니다.

 

왜 경계가 다를 수 밖에 없는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대웅보전에 달린 범종입니다.

 

중국에서는 종루에 따로 종이 있고

 

대웅보전 내에 별도의 종은

불단 우측 아래 보에 걸어 두어

타종은 타종대를 매어 치고 있었습니다.  

역시

종 내부에서도 중생의 염원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종과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우리나라 종에는

용유와 음통 등을 두어 장식을 하고 있는데

이 소원 빌어

일월조상님의 왕생극락을 염원하옵나니 

그래도 먼 길 떠나온 나그네의 손깃이 애처로우셨는지

가는 곳마다

촬영을 쉬 하락하여 주셨습니다.

 

이 또한 큰스님 은덕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산곡사 山谷寺 가는 입구입니다.

 

이곳에 가면

삼조선사의 묘탑을 모신 산곡사와 입화탑, 보곡동이 있습니다.

 

이 표석은 명나라 가정 원년(1522년)에 세웠습니다. 

삼조선사의 그림자를 따라

그길

걸어가다보면 

향암香岩

이 표석은 청나라 강희 60년(1722)에 세웠습니다. 

신심정입니다.

 

신심명을 가슴 깊이 세겨

거듭 서원을 확인 하옵나니 

닿는 발길마다

이 서원 흐트러짐 없게 다져 주시옵고 

 

오르는 이마다 성불의 진면목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삼조선사의 입화탑入化塔입니다. 

서서 열반하셨기 때문에 입화入化라 하였습니다.

 

승찬조사께서는 선 채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대중에게 설법 하신 후, 그대로 입적하신 것입니다.

앉아서는 수행하셨고, 서서는 입적하신 것입니다.

 

평생

천형인 문둥병으로 고생하셨을 조사께서는

홀로 육신의 고통을 여의시며 삼조굴에서 수행하셨고

회향 시간이 다다르시매

대중을 불러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는 선 채로 입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3조선사의 전법제자 4조도신조사께서는

3조선사의 문둥병을 낳게 하시려고, 의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하여, 중국에서는 4조 도신조사님을 의조醫祖라고 별칭합니다. 

후에 승찬조사님의 유골을 다비한 후 수습된 사리 뒤 3백과는

 - 1백과는 조정으로

 - 1백과는 승찬 스님 생가에다  모시고

 - 1백과는 사리함에 넣어 묘탑을 만들어 산곡사 정점에 세웠습니다.  

삼고정 

삼고정입니다.

 

삼조선사의 묘탑을 모신 산곡사 입구에

방형 단칸 맛배지붕 양식의 석조로 세워져 있고

맞은 편에는 삼고정 중건비가 세워 있습니다.

 

이 석정石亭은 삼조사를 짓기 이전에, 이 마을 何씨 성을 가진 하윤何胤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보지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 전 재산을 시주하여 불사를 도왔기 때문에 삼형제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명나라 무종 정덕(1505~1521)에 세워졌으며, 청나라 가경(1796~1820)에 중수하였습니다.  

입화탑과 삼고정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주지스님

저는 중국어를 몰라 한문을 엿들 수 밖에요

중생이여, 중생이여 !!! 

삼고정 중건비입니다. 

삼고정 지붕 

보지화상이 수행하셨던 보공동입니다. 

보공동 마애명

보공은 보지화상을 말합니다.

 

보공동의 제2조가 되실 스님이십니다.

 

삼조선사 탄신을 맞아 기념 세미나가 열립니다.

 

선곡사 입구

삼조선사의 묘탑을 모신 보궁입니다. 

산곡사의 석문을 열면

삼조사의 보탑이 나타납니다. 

순치황제의 출가시가

산곡사 정문 좌측에 붙여 있습니다.

순치황제는 청나라 3대 임금으로서 18년 동안 재위에 있었습니다.

 

 

청나라의 2대황제인 태종이 1643년 급서하자 후계자로 6살난 아들이 즉위하니 세조(世祖) 가

순치제(順治帝)입니다. 1644년 즉위하여 자금성에서 즉위식을 올렸는데, 즉위 선언문은

만주어, 한어(漢語), 몽골어의 세가지하였습니다.

 역대 중국을 통일한 왕조 중 이민족에 의하여 통일된 것은 원나라(몽골)와 청나라(만주족)입니다.

 

순치제는 18년간 재위에 있었고, 24세가 되던 해에 강희제에게 황제위를 물려주고

홀연히 산서성의 명찰 오대산(五臺山)으로 입산하였는데 그 후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음은 그가 재위를 내려 놓고 입산 출가하면서 지은 출가시입니다.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 ; 천하사찰에 산처럼 쌓인 것이 밥이니

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 ; 바루 들고 어디간들 밥 끼니 걱정하랴

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 ;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것이 아니라오

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힘들다오.

  

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 ; 이내 몸 중국 천하 황제가 되었어도

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 ;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번거롭소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 이렇게 백년을 궁궐에서 산다한들

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 욕심떠난 승려생활 반나절에 비하겠소

 

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 ; 돌이켜 생각하면 한 생각 잘 못으로

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 ; 가사를 버리고서 황룡포를 입게 됐네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 나는 본래 인도에서 수행하던 스님인데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 무엇을 잘못하여 제왕가에 떨어졌나. 

 

未生之前誰是我 미생지전수시아 ; 이 몸이 나기전엔 그 무엇이 나였으며

我生之後我是誰 아생지후아시수 ; 세상에 태어난 뒤 나는 또한 누구인가.

長大成人在是我 장대성인재시아 ; 자라면서 사람노릇 잠깐 동안 나라하지만

合眼朦朧又是誰 합안몽룡우시수 ; 한 번 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이런가.

 

百年世事三更夢 백년세사삼경몽 ; 백년동안 세상살이는 하룻밤 꿈 속 같고,

萬里江山一局碁 만리강산일국기 ; 만리강산 다투어도 한판 바둑과 다름없네.

禹疏九州湯伐桀 우소구주탕벌걸 ; 우임금 세운 나라 후손걸을 탕이 치고

秦呑六國漢登基 진탄육국한등기 ; 시황의 삼킨 육국 쳐서 한나라를 세웠네

 

兒孫自有兒孫福 아손자유아손복 ; 자손들은 저 스스로 복을 타고 나왔으니

不爲兒孫作馬牛 불위아손작마우 ; 우마처럼 애를 써도 자손위함이 아니로다

古來多少英雄漢 고래다소영웅한 ; 오랜 세월 지금까지 셀 수 없는 영웅호걸

南北東西臥土泥 남북동서와토니 ; 동서남북 여기 저기 흙구덩이 되어 누워있네.

 

來時歡喜去時悲 내시환희거시비 ; 태어날 땐 기뻐하고 갈 적에는 슬퍼하니

空在人間走一回 공재인간주일회 ; 부질없는 인생살이 한 바퀴를 돌다가네

不如不來亦不去 불여불래역불거 ; 애당초 오는 것 없었으니 가는 것도 없음이여

也無歡喜也無悲 야무환희야무비 ; 기쁨도 없었으니 슬픔 인들 있을 것인가

 

每日淸閑自己知 매일청한자기지 ; 나날이 맑아 내 스스로 알아지니

紅塵世界苦相離 흥진세계고상리 ;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을 떠나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 입안 가득 상큼한 선열미를 들이키고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 내 몸 위에 누더기를 걸치는 것 뿐이라네

 

四海五湖爲上客 사해오호위상객 ; 사해와 오호에서 가장 높은 손님 되어

逍遙佛殿任君棲 소요불전임군서 ;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莫道出家容易得 막도출가용이득 ; 세속을 떠나는 일 쉽다고 말을 마소

昔年累代重根基 석년루대중근기 ; 숙세에 쌓아 놓은 숙연 없이 아니되네

 

十八年來不自由 십팔년래부자유 ; 지나간 18년간 자유라곤 없었도다

山河大戰幾時休 산하대전기시휴 ;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던가

我今撤手歸山去 아금철수귀산거 ; 내 이제 손을 털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 나관천수여만수 ; 천만가지 근심걱정 어이하여 상관하리. 

선종의 의미를 설명한 글을

정문 우측에 두었습니다.

 

 천불전 뒤에 보이는 상륜부가

삼조사님의 삼조탑입니다.

 

 각적탑覺寂塔이라고도 합니다.

 745년에 건립하였으며, 772년에 각적탑이라고 하였습니다.

 1564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천불전 현판 

천불전에 모셔진 석가보니불입니다.

주변 누마다 부처님을 모셔 천불을 두었습니다. 

 

 

돌아 서는 길

 

반송에 기대인 그림자의 무게를

내려 놓고

 

조성문 우에 걸린

스님 내 이불이 낮달에 조으는 시간을

뒤로 하며

 

내려 서는 길

이 또 뭣고 ???

 

혜국큰스님과 애제자 

 

그 인연을 가자하여 저도 신세를 졌습니다.

 

큰스님과 함께하는 것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

 

가는 곳 마다

주지스님과 초상한 것은

훗날 찾아 갔을 때

자료 사진 더 담으려는 속내입니다. 

그러하니 뭐가 >>>>  

 

 나무아미타불

 나무지장왕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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