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여선사

相民 윤봉택 2007. 5. 13. 22:31

2007. 04. 15.

 

 

진여선사 또는 운거사라고 합니다.

 

순례 11일 중, 5일 째가 되는 4월 15일 오후 4시 30분 쯤, 강서성 영수현 운거산에

있는 진여선사에 도착하였습니다.

 

 

● (첫 날)계명사 ⇒

   (둘째 날) 황산 ⇒ 구화산의 육신보전 ⇒ 고배경대 ⇒ 화성사 ⇒

   (3일 째)남전사지 ⇒ 안경시 양자강 유람  ⇒ 3조선사 ⇒

   (4일 째) 4조선사 ⇒ 5조사 ⇒ (5일 째) 동림사 ⇒ 서림사 ⇒ 여산 ⇒ 진여선사

 

 

진여선사眞如禪寺입니다. 

진여선사는 강서성 영수현의 운거산雲居山(해발 969m) 정상에 있습니다.

 

버스 한대 겨우 다닐 정도의 작은길 따라 해발 800여m의 험산준령을 넘어서면

산문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좀 더 가면 진여선사의 조주관이 활연대오하면서 빗장을 벗기면

산문 사이로 넓은(?) 호수와 같이 돈오점수의 논밭이 나타납니다.

 

 

진여선사는 808년(당나라)에 도용道容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883년에는 동산양개洞山良价(807-869)화상의 전법제자인 운거도응雲居道膺(?-902)이

이곳에와 수행을 하였는데 그 때 당나라 희종은 용창선원龍昌禪院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고,

진여선사는 북송 때 진종이 진여선사라는 사명을 주어 그 때부터 진여선사라고 했습니다.

 

 

진여선사는 조동종의 본산입니다.

송나라 때 부터 중국 선종은 간화선과 묵조선으로 크게 나누어 수행하게 되는데,

 진여선사는 조동종의 시조인 동산 양개화상의 법을 이은 운거 도응에 의해

 묵조선의  중심지였습니다.

 운거 도응선사의 법을 전해받은 신라고승으로서는 여염, 형미, 경유와

고려국의 고승 이엄진철과 대경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수미산문 광조사는 황해도 해주에 있는데,

바로 신라 구법승인 진철 이엄(870~936)선사가 진여선사에 주석하고 계신 운거도응을 찾아

6년동안 수행을 하셨고, 그의 법을 전해 받고 911년 귀국하여서는 태조왕건의 국사가 되면서

 광조사를 창건하여 수미산문을 개산하였습니다.

 

이 광조사는 구산선문 중 유일하게 묵조선을 하는 곳으로, 이엄 진철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묵조선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8개 산문은 간화선입니다.

 

 

그리고 이 진여선사는 참으로 선농불이禪農不二사상을 운거도응 이래 지금까지 그대로

수행하는 선농선풍을 면면이 이어오는 선불장選佛場입니다.

 

지금도 많은 스님들이 주석하시면서 벼농사, 차농사를 직접 재배하고 계셨고,

우리 일행이 찾았을 때에는 비닐보온못자리에서 볍씨에서 발아된

싹들이 앙증스럽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절에서 스님들이 농사일을 운력運力이라 하는데 환자를 제외한 모든 스님은

 나와서 함께 일을 합니다. 큰스님들은 더 앞장서십니다.

 

 

그리고 진여선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다茶입니다.

운거도응선사가 이곳에 주석하시면서 차를 재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차나무가 많으며, 일행이 갔을 때도 차를 따고 있었습니다.

 

 

또한 진여선사는 근대 중국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대선지식인 허운고암虛雲古巖(1840-1959)화상이 세납 120세로 입적하실 때 까지

주석하신 도량이기도 합니다.

 

 

 

20928

 

 

 

 

운거산 입구

이곳에서 차량 출입을 허가 받아야 합니다.

 

 

운거산 또한 매우 광활합니다.

다 살펴 보려면

4일은 머물러야 될 듯 싶습니다.

 

운거산의 종합 안내문

너무 많이 달려온터라

잠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갓길 내려서는데

왠 중국 닭이 다가오며 꾸짖고 있슴다.

 

 

조주관입니다.

조주스님이 운거스님을 찾아 법담을 나눈 후

돌아가는 조주를 배웅하기 위하여

운거노사께서 이곳까지 나오셨다하여 조주관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진여선사의 산문입니다.

 

이 산문을 지나면

방생호 放生湖로 알려진

명월호明月湖가 나타납니다.

 

모두가 조주관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이는 모두가 조주스님으로부터

긱다거 했음을 의미합니다. 

 

담심淡心

마을을 정갈하게

 

명월호에서

몸을 씻고

운거산을 참견하라는 의미인듯 합니다.

 

명월호

또는

방생호라고도 합니다.

 

멀리 비홍교飛虹橋가 보입니다.

 

비홍교를 나는 듯 건너오신

지객스님이 안내 나오셨습니다.

 

비홍교 우에 덮혀진 판석

 

비홍교 난간에 쓰여진

시문

 

역대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전각.

 

명월호를 방생호라고도 합니다.

 

멀리 보이는 표석,

지천智泉이라는

샘이 있는 곳입니다.

 

홍예교를 건너가면

 

반대쪽에서 바라본

비홍교입니다.

 

조주관과 비홍교

 

내가 비홍교에 서 있는지

비홍교가 산을 이고 오셨는지

 

 

비홍교 지나면

바로 쌍홍교雙虹橋가 나타납니다.

 

비홍교에서 날린 무지개가

이곳에 와서는

 

두개가 되어

웅천하는 가 봅니다. 

 

저 씽홍교를 지나면

진여선사 입구에 닿게 됩니다.

 

조주관 건너로 희미하게 비추이는

진여선사

 

굽이 굽이 산길 다한 곳까지

판석을 놓아

 

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는 이도

붙잡지 않고

 

오시는 이도

막아서지 않음이여 !!!

진여선사 스님들께서 농사 지으시는

터전입니다.

 

아마 지금쯤 모내기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조주관 통과가

모든 것에 우선하지는 못한다 하십니다.

 

이곳에서

지친 나그네의 구도의 목마름을,

 

지혜의 샘물인 지천에 잠시

풀어 가야만

진여선사까지 닿을 수가 있다합니다.

 

곳곳에 서 있는 군상은

오래 전

 

이곳에서

운거산인이 되어 계시는

 

운거산의 그림자들입니다.  

 

홍예를 건너고

개울을 건너다 보면

 

분명

안심입명처에 닿을 수가 있겠지요

 

앞에 바라 보이는 다리가

비홍교에서 날아 오른 무지지가

 

이곳에 이르러서는 두 개로 나타 난다는

쌍홍교입니다.

 

멀고 먼

순례의 길

 

그 옛날

대한국인들이 법을 찾아 오셨던

 

그길 따라

가시는 이여

오시는 이여

 

쌍홍교

 

난간에 기대인 저들은

승려가 아니라

진여선사의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이르고

다시

넘어 서고

 

진여선사에 5월이 오면

스님들께서 벼를 심으며

 

참선과 농사 일이 둘이 아님을  +++  선농불이禪農不二

견뇌지신에게 알려 줄 것입니다.

 

쌍비교雙飛橋 건너 숲길입니다.

 

소나무에 기대인 죽순의 하루도

오늘만큼은 길게 느껴지나 봅니다.

 

희미한 능선자락에 감긴

진여선사 전경

 

삶의 여적인들

무엇하리

 

논두렁 건너로 이어지는

사바의 그림자

 

천년을 지켜오신

역대조사 천하종사님들의 부도탑만

나그네의 길을 열고 있습니다.

 

이곳 부주지스님께서

머언 한국 땅에서 순례오신

큰스님 일행을 영접하시려 나오시고 계십니다.

 

오는이와 가는이가 둘이 아닙니다.

 

진여선사의 산문

좌우에 벽사가 우리를 맞고 있습니다.

 

천상운거 天上雲居

하늘 궁전

바로 이곳이

구품연지의 상품상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진여선사의 향기로움은

천상을 감아 도는데

 

 

혜천慧泉입니다.

 

 

 

 

진여선사의 내문입니다.

 

가운데에는

진여선사라는 현판을 세우고

좌우에는

법우래청악法雨來靑嶽

종풍계동산宗風啓洞山

이라는 글씨를

기둥에 각인하였습니다.

진여선사의 종풍이

동산 양개화상의 후예들에 의해

진작되었다하고 있습니다.

 

좌우에는 금강역사를 모셨습니다.

 

水火를 진압하는 금강신입니다.

 

사대천왕을

모신

천왕보전입니다.

 

천왕보전 좌측

운거산이 언제나 운무를 안아 지냄을 아시는지 

운해루雲海樓라 하였습니다.

 

천왕보전 우측

허공을 품어 앉은

허회루虛懷樓입니다.

 

천왕보전 입구

 

천왕보전 계단

 

천왕보전 우측

허회루를 지나 건너면,

 

스님들께서 수행하시는 공간이

열리고,

 

천왕보전 좌측

운해루를 지나 건너면,

백과수 정원이 비켜서는 곳.

 

 

역대 중국왕조에서

진여선사에 내린 칙령을 기록한

진여선사칙한비기의  비문입니다.

 

벽암록의 저자 원오극근선사에 대한 내용도 보입니다.

 

천왕보전 전면에 모셔진

포대화상입니다.

중국에서는 미륵불로 추앙을 합니다.

 

 천왕보전 내

사대천왕입니다.

 

 

후면에는

동진보살을 모셨습니다.

 

후면에는

위태전이라 했습니다.

 

위태보살 또는 동진보살이라 하는데

가람을 수호하시는

보살입니다.

 

대웅보전 우측에 모셔진

종루

아래는 객당입니다.

 

대웅보전 정면에 걸린

사생자부 四生慈父의 현판입니다.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보전이라는 의미입니다.

 

대웅보전의 어문을 활짝 열어

혜국 큰스님 일행을 영접하시려

진여선사 주지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웅보전입니다.

 

큰스님을 맞이 하시는 진여선사의 방장스님

 

대웅보전 내 본존불이신 석가여래이십니다.

 

 

우측 약사여래불 좌대

연화문양 아래로는

매기 닮은 물고기와

가재 닮은 커다란 가재가

망망대해에서 파도를 타고 있습니다.

 

좌측 아미타여래의 좌대

아래에는 청용 한마리와

늙은 거북이가

망망대해를 건너오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내 삼존불입니다.

 

가운데 석가여래

전면 좌측 아미타여래

전면 우측 약사여래(탑)과 내부 천정

 

내부 천정

 

천정 중심의 가구

 

대웅보전에서 예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원하옵나니

자비하신 부처님께옵서

 

사생육도의 모든 번뇌를

운거에 실려 보내시옵고

 

대웅보전 좌측 우에 모셔진 보현보살마하살

 

좌측에 모셔진 부처님의 제자 나한상

 

대웅보전 내 우측에 모셔진

문수사리보살마하살

 

우측에 모셔진 부처님의 제자 아라한상

 

대웅보전 삼존불 후면에 모셔진

수월관세음보살마하살과 32응신 관음 화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후면에도

똑 같이 수월관세음보살이 탱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1430년 조선조 초기에 세워진 건물입니다.

그 때 수월관세음보살상을 모셨는데

이는 중국의 불상 배치와 일치합니다.

 

고려조 중엽에 수월관세음이 많이 그려진 것도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조전조 초기를 넘기면서 부터는

이러한 불상 배치가 사라지고

억불숭유에 따른 기복신앙이 시작되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상입니다.

 

대웅보전 지나 후원입니다.

스님들이 거주하시는 공간입니다.

 

틈 새이로 원형화단을 조성하였고

바닥에는 판석을 놓았습니다.

 

대웅보전

전면

정면7칸의 중층입니다.

 

대웅보전 우측 회랑에 걸린 운판

스님들의 공양시간을 알릴 때 울리기도 합니다.

 

객당

 

객당 내부에 모셔진 보살상

 

객당에서는 접객을 합니다.

 

가람신을 모신 곳입니다.

절을 지켜 주는 신장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람신이라는 말 대신에

국사신局司神이라 합니다.

 

절을 지켜주는 신이란 의미인데

더러는 나라를 수호하는 국사신國社神을 모신 곳도 있습니다. 

 

가람신입니다.

대웅보전 후면에 위치한

후원 공간으로서

조경이 잘 되어 있습니다.

 

고방입니다.

 

우화대 雨花臺입니다.

 

아래는 법당입니다.

법당은 설법하는 곳을 말합니다.

우화대라는 말은 법화육서에서 비롯합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에

여섯가지 상서로운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설법서, 입정서, 우화서雨花瑞, 지동서, 중희서, 방광서 등입니다.

 

우화서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 네 가지 꽃비가 나렸다는데서 유래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완주 화암사에 가면 우화루라는 누각이 있는데

이 보다 더 장엄한게 특징입니다.

  

법당 후면의 후원입니다.

소방시설도 잘 되어 있습니다.

 

후원에 심어진 각종 관목류

대웅보전 후면입니다.

장실丈室은 방장실 곧

주지스님이 거주하시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방장실 입구 회랑에 걸어 놓은 소종입니다.

 

방장실 옆 후원

 

방장실 입구에서 쉬고 있는

범종

1982년에 제작되었으나

교체된 듯합니다.

 

방장실 입구

 

방장실 건너 조당祖堂 입구

주변 통로가 모두 회랑으로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 주변의 후원으로서

동백나무도 심어져 있습니다.

 

조당 입구 후원

 

무쇠가마입니다.

참 큼니다.

저 솥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아마 동짓날에 팟죽을 끓였다면,

돛단배를 타고

노로 휘저어야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조당입니다.

그 아래에는 영당影堂입니다. 

 

 

대웅보전의 전면에서

우측면 기단부와 벽면입니다.

 

아래 판석에는

각종 암각이 세겨져 있고

 

중간 부분에 나무를 박아 놓은 것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좌우측과 후면의 벽면 하부 면석에 저렇듯 암각을 하여 놓았습니다.

 

벽면 암각

 

대웅보전의 우측벽면의 암각

 

대웅보전의 우측 퇴문

 

방장실로 안내하시는 주지스님

 

 

방장실에서

두 스님께서 담소를 나누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스님들이십니다.

 

의발요규약衣鉢寮規約입니다.

스님들께서 사찰 살림을 하시는 동안

지켜야하는 일곱가지의 규범입니다.

 

아마 두분께서 먼 기억의 섬에서

이곳

진여선사로 잠시 나투신 듯

 

아마 이 스님은 홍보담당 소임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저보다 더 빨리 담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후원도 보고지고

 

방장실 건너

후원 축대입니다.

 

가지런하게 잘 정돈하여 놓은 것은

백장청규의 가풍이 면면하기 때문입니다.

 

저 우물을 길어
빨레도 하시고

 

또한

저 대 우에 널어

바람을 말리기도 하시고

건물 기둥옆에 놓인 조각석상인데

원숭이 같기도 하고 ???

 

 

오잉

제주섬에 있는 동백꽃이

어찌 이곳까지

아마 구름 타고 오셨는가 봅니다. 

 

이 돌은

스님들께서 공양하시거나

무슨 신호를 보낼 때

막대기로 세게 불규칙하게

치는데

 

가장 먼저 침니다.대웅보전 후면 모서리

 

대웅보전 정면에서

좌측 회랑 중간 쯤에 있는 공덕당입니다.

 

공덕당 내부입니다.

 

서귀당西歸堂입니다.

서귀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서귀당이라고 하니

아니방가울수가요

 

서방정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곳

 

서귀당 내부

 

대웅보전 좌측 회랑

 

그 회랑 곁에서

행자님께서 빨레를 하고 계시는데

뉘뭣고 ??? 하여도

눈치 없는 가이드는

글쎄 자꾸만 질문을 합니다.

 

대웅보전 전면

 

대웅보전 좌측 회랑

방장실로 통하는 곳이기도 하는데

 

걸어 오시는 스님께서

저가 사진을 마구 찍으니까

잘 안내 하여 주셨습니다.

 

대웅보전 좌측 측면에 설치된

우수 배출구입니다.

 

우수 배출구가 물소 닮기도 하고

???

 

회랑 마지막 부분이 조사전임다.

 

백과수 안내비입니다.

운거스님이 직접 심은 은행나무임다.

 

운거스님이 심으신 은행나무 == 백과수

 

진여선사의 토지를 관장하시는

토지신을 모신 곳입니다.

 

참으로 인자하신 토지신입니다.

허운기념관 입구에 있습니다.

 

진여선사 좌측 후원 뜨락 건너에 있는 건물은

허운대사(1840-1959)탑이 모셔진 기념관입니다.

 

허운스님의 기념관입니다.

허운스님은

현대 중국불교의 중흥조로 추앙받는 대선지식입니다. 

 

 

 

 

기념관 건너에서

차잎을 따시는 자원봉사자들

 

끝없이 이어진 다전

 

다전 아래로 이어진 채마전

 

채마전에서 바라 본

진여선사 

 

기념관에서 진여선사로 이어진 소롯길

 

천왕보전 앞에서

모두다

 

이 또 뭣고 ??

乭乭乭

네이 !

진여선사 주지스님이시고요

저는 그냥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

담에 사진들고 찾아 뵙는다고 안내원에게 통역 부탁하였더니

빙그레하시는 데 ......

다시 오시라는건지

아니면 아예 가지 말라시는건지

 

 

돌아가는 길

5월에 심을 벼가 못자리 하우스에서

날로 서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다시 산문에

기대어

 

5월 지나

6월 그리고 9월이 오면

황금물결 일렁이며 오시겠지요

 

저 넓은 논을 스님들께서 직접 경작하고 계십니다.

 

진여선사는 그냥 절이 아닙니다.

중국 선종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이며

또한

거찰의 주지(방장)을 하려면

반드시 진여선사에 와서

일정한 기간동안 참선 수행을 하여야만 할 만큼

이곳은 인재육성의 선불장選佛場입니다.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저 못자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불인교佛印橋

또는

담심석談心石이라고도 합니다.

 

처음 당나라 시대에는 벽계교碧溪橋라 하였습니다

후에 불인요원佛印了元선사(1032-1098)가 새로 개축하면서 불인교라 하였습니다.

 

요원선사는 운거산에 40여년을 거주하셨는데

소동파와는 매우  친교가 깊었습니다.

이곳이 담심석이라한 것은

소동파와 요원선사가

이곳에서 계契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담심석에서 바라본 진여선사 전경

 

가까이에서 멀리로 이어진 것이

모두가 차 밭입니다.

 

운거산 진여선사의 차는 중국에서도 으뜸 명다로 꼽힙니다.

운거산에서 차 재배는 운거스님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속절 없이 운거산의 낙조는 더해만 가는데

자꾸만 무뎌지는 발걸음이여

여산을 둘러본 후 점심을 하였던 한당궁漢唐宮입니다.

 

여산에서

진여선사로 2시 20분에 출발하여

4시 40분에 진여선사에 도착하였고

 

 

 

 

 

진여선사에서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하여

남창시내에 8시 20분에 도착한 후

강서성 남창시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시내 중심에 있는 금봉대주점에 여장을 내렸습니다.

 

호텔 숙소입니다.

 

 

시내 풍경

 

시내 광장 풍경

 

야경 살피러 나들이 온

모녀

참 다정도 하십니다.

 

 스님과 함게 하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움 그 자체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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