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해인사 금강계단

相民 윤봉택 2007. 12. 17. 19:03

 2007. 12. 17.

 

해인사 금강계단의 구족계 호계첩입니다.

 

불기 2519년(서기 1975년) 3월 8일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연 비구계첩입니다.


그 때의

 전계아사리는 고암상언 율사로서 조계종 종정을 3대나 역임하신 큰스님입니다.

    갈마아사리는 금성도견 율사

    교수아사리는 청산지관(2007년도 조계종 총무원장) 율사 

    존중아사리는 유나는 성호 율사

    일곱 분의 증명율사는 영암·혜암(전조계종 종정)·법경·대우·달산·운범·월호율사 

    인례사는 무관·진각스님

 

 그날 구족계를 전해 받은 제자는 정효正曉 스님으로서,

 그는 2514년(1970년) 3월 15일 출가하여 성학性學화상을 은사로 삭발하였고,

 2519년(1975년) 3월 8일 해인사 금강계단에서 고암 상언율사로부터 구족계를 전해 받았습니다.

        마하가섭 초조 이후 전법 33조 조계혜능 - 57조 태고보우 - 67조 환성지안(제주에서 유배 후 순교) - 75조 용성진종

        76조 古庵祥彦 - 77조 禪曉性學


 우리나라 불교의 계맥은,

 신라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전해 받고,

귀국(서기 645년)하여 통도사를 창건하여 금강계단을 세워 계율이 전해지기 시작한 이후

우리나라 불교는 열개 정도의 계맥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의 금강계단은 서상수계의 계맥을 잇고 있습니다.

 

 자장율사 → 지공화상 이후 조선조 전·중기에 계맥이 단절되었다가,

영암 도갑사의 대은화상이 칠불암 아자방에서 하안거 해제 후 기도를 통해 서상수계(瑞祥受戒)를 하신 후 다시 계맥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대은大隱은 해남에 초의율사에게 율맥을 전하였고,

이후에는 율맥이 상전하여 초의 → 범해梵海 → 선곡禪谷 → 용성龍城 → 古庵祥彦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계첩은 계단마다 다 다릅니다.

 이유는 계를 전해받은 계맥(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계맥은 대부분 신라의 자장율사에서 시작됩니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가사와 사리등을 받고 돌아와

양산 통도사를 창건하고 금강계단을 열면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 후 진표율사 때 까지는 성황되었으나 점차 율종이 쇠태하면서 조선 전·중기까지는 사실상 계맥을 잇지 못했습니다.

 

 1826년(순조 26년)7월 칠불암 아자방에서 결제가 끝난 후, 금담 金潭장노와

영암 도갑사에 있는 그의 제자 대은大隱화상이 부처님 앞에서 7일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기도 후에 상서로운 빛이 내리면서 대계大戒 및 구족계具足戒계를 전해 받으셨는데, 이를 서상수계(瑞祥受戒)라 합니다.


 다른 분들은 이를 황당하다고 말할 수가 있으나,

“범망경 48경계(輕戒) 제23조에는  말세에 보살계를 받고자 하나 계를 수여할 자가 없을 때는

7일, 27일, 37일, 1년 기도로 서상을 받아 수계할 수 있다.”고하여 서상수계가 계율을 전하는 한 방법임을 명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종남산에서 계를 전해 받은 자장율사 또한 이러한 서상수계를 통해 율맥을 우리나라에 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불교에는 아래와 같이 약 10갈래의 계맥이 있습니다만,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의 금강계단은 바로 이 서상수계의 계맥을 잇고 있습니다.


 

 ① 순창 구암사 백파(白坡)율사 파,

 ② 지리산 칠불암에서 서상수계한 월출산 대은(大隱)율사 파,

 ③ 중국 담자산 수운사(岫雲寺) 혜관율사에게 수계받은 팔공산 보담(普曇)율사 파,

 ④ 중국 남경에서 수계받은 신천 구월산 능허(凌虛)율사 파,

 ⑤ 자장율사의 뒤를 이은 통도사 해담(海曇)율사 파,

 ⑥ 자장율사의 뒤를 이은 오대산 월정사 연파(蓮坡)율사 파,

 ⑦ 중국 법원사(法源寺) 창도율사에게 수계받은 대구 용연사 만하(萬下)율사 파,

 ⑧ 중국 법원사(法源寺) 창도율사에게 수계받은 장안사 한파(漢坡)율사 파,

 ⑨ 중국 북경 염화사(拈花寺) 덕명율사에게 수계받은 금강산 유점사 영봉(靈峰)율사 파,

 ⑩ 중국 북경 원광선사(圓廣禪寺) 경연율사에게 수계받은 철원 보개산 심원사 월운(月雲)율사 파.

  


 

 계첩을 넣어 보관하는 호계함입니다.


  수계자 가운데 아홉번째 라는 표시가 하단 좌측에 9라고 쓰여 있습니다.

  수계자는 석정효입니다.



護戒牒

慶尙道伽倻山海印寺金剛戒壇

觀夫 佛說諸法其所以爲 綱領者有三學也 而戒爲定慧二學之首 况有以戒爲師之囑 此不可不傳之於世 世之人欲八聖地者 不可不受之護之然 吾邦諸祖師 皆以不立文字爲宗 故其所相承之蹟多不現於世也 新羅第二十七代善德王師慈藏律師 貞觀十二年求法入唐 太宗皇帝奉師爲國師 師往終南山雲際寺 文殊像前勤求大法 一夜文殊化作梵僧說偈曰 了知一切法 自性無所有 如是解法性 卽見盧舍那 卽以緋羅金點袈裟一領 舍利百枚 佛頭骨持節珠貝金葉經傳授于 師云此佛遺囑 而吾待汝至今也 兼付金剛戒壇圖於是皇帝請于 式乾殿受戒十七年七月 師還本國創通度寺 設戒壇大昌戒律 載三國遺事大明洪武九年中 天竺指空律師隨緣而來高麗 恭愍王禮遇之就於通道金剛戒壇 盛說戒法本寺住持元無大師 得其宗 本朝靈巖郡道岬寺大隱和尙與其師金潭長老 憂戒學之失其傳 純祖肅皇帝二十六年丙戌七月於七佛亞字房室 解制後 依佛敎勅誓祈佛前之七日 一道祥光注和尙頂上 長老云吾惟爲法 卽受大戒及具足戒於和尙 傳之海南草衣律師 師傳之梵海律師 師傳之禪谷律師 師傳之龍城律師 師傳之祥彦律師 所受持和尙 今於本寺佛像前結界戒壇 傳受戒法內有僧名正曉 號 佛紀二五一四年三月十五日 出家禮性學和尙削髮爲僧 今於佛紀二五一九年三月八日 受具足戒 自從以後謹潔奉持

 

              羯磨阿闍梨 錦城 道堅

       傳戒和尙阿闍梨 古庵 祥彦

             敎授阿闍黎 靑山 智冠

 

                                            (七證)  映岩. 慧岩. 法鏡. 大愚. 達山. 月浩. 雲梵

 

                             尊重阿闍梨 維那 性浩

 

                                                                                                             引禮師 眞覺 無觀

 

 

                                                      日右牒受戒弟子印持 正曉

 

 

 

이 호계첩은 해인사 금강계단의 계첩이다.

1975년 음 38일 해인사 대적광전 금강계단에서 전계화상 윤고암 대율사에 의해 전계 수계식에 내려진

해인사 금강계단 구족계 호계첩(목판본/한지)으로 당시 수계자 중 하나가 정효(正曉)가 받은 계첩이다.

 

따라서 이 율맥은 조선조 서상수계로 계맥을 중흥 시킨 대은율사의 율맥으로서,

이 율맥은 신라의 자장율사 지공화상 원무대사 율맥 단절 / 마정수계 대은낭오 금담보명 초의의순

                                          법해각안 선곡율사 용성진종 고암상언으로 전계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호계첩 내용을 보면,

선덕여왕의 왕사 자장율사가 638(정관 12)에 당나라로 들어가 당태종을 알현하였고,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 상 앞에서 부처님 법을 구하려고 부지런히 기도하던 중,

하루는 문수보살이 법승으로 화현하여 금가사 1벌과 부처님 사리 100, 부처님 정골사리, 발우, 패엽경,

그리고 금강계단 그림을 전해 받고서 643(정관 17) 7월에 신라로 돌아와서 통도사를 창건하면서

금강계단을 설치하여 계율을 널리 알렸다는 것은 이미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바이다.

 

1376(홍무 9)천축에서 지공율사가

고려로 와서 공민왕을 배알하고 통도사 금강계단으로 가서는

통도사 주지 원무대사에게 계율을 전하여 주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고 억불숭유 정책이 시행되면서 불교가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세종시대에 이르러서는 선교양종의 통합과 함께 율종이 급격하게 쇠퇴하여

율맥(律脈) 전계는 사실상 단절되어,

 

계율은 입산 출가하는 사암에서 스승에 의해 계단 없이,

사전상승寺傳相承에 의해 수계가 이뤄졌을 뿐, 계율을 전하는 전계는 이뤄지지 아니하였다.

 

그러던 18267월 연담유일蓮潭有一(1720-1799)의 제자인

영암 도갑사의 금담보명金潭普明(1765-1848)장노와

그의 제자 대은낭오大隱朗旿(1780-1841)화상은 지리산 하동 쌍계사 칠불암 아자방에서 하안거 해제 후,

 

금담장노께서 제자 대은화상과 함께 조선의 율맥이 끊어짐을 탄식하시면서

부처님으로부터 서상수계(瑞祥受戒)를 통하여 부처님 계율을 이어나가시고자하여

7일 동안 제자와 같이 서상수계 하여 주시길 기원 드렸다.

 

7일에 이르자 한줄기 서광이 대은화상의 머리에 비추어 서상수계가 이루어지자,

이에 대은화상의 스승인 금담장노가 내가 비록 그대의 스승이긴 하나,

서상수계가 그대에 의해 이뤄지게 되었음으로,

오로지 부처님 법을 위해 바로 대계와 구족계를 받아 지니고자 하시니,

 

석가여래친수마정수계계승역대율사(釋迦如來親授摩頂受戒繼承歷代律師)인 대은화상이 조선 율맥의 중흥조가 되시고,

금담장노가 제2조가 되었다.

 

이어서 금담장노는 해남대흥사에 있는 초의의순(草衣意恂1786-1866)율사에서 전하고,

초의는 다시 범해각안(梵海覺岸(1820-1896))율사에게,

범해는 다시 선곡禪谷율사에게,

선곡은 다시 1884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용성진종(龍城震鐘1864-1940)율사에게 구족계를 수지하게 하시니,

 

용성은 다시 고암상언(1899-1988. 해인사), 자운성우(해인사), 동산혜일(범어사),

                 전강영신(용주사), 인곡창수(해인사) 46인에게 수계를 하여 율맥을 전승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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