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19.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입니다.
2007년 10월 19일 봉암결사 60주년 기념법회에 참석하였다가, 돌아오면서 친견하였습니다.
이 탑은 봉암사 입구 개울 건너 우측 채마전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조성시기는 고려 전기로서 보물 제172호로 1963년에 지정되었습니다.
정진대사(878∼956)는 공주(公州) 사람으로서 왕씨(王氏)인데 남혈원(南穴院)에 있던 여해선사(如解禪師)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효공왕 4년(900)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고 경애왕 1년(924)에 돌아와 신라 경명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으며,
고려 태조 18년(935)에는 봉암사를 두번째로 크게 짓고,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고려 전기의 태조·혜종·정종을 선문(禪門)에 들게 한 장본인으로,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왕은 ‘정진’이라는 시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렸습니다.
탑비의 특징은 귀부(龜跌)와 이수(이首)의 형식은 일반적인 방식을 취했으나 비좌(碑座)가 두드러지게 큰 것이 특색입니다. 그리고 정상에 화염보주(火焰寶珠)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비의 높이는 2.73m이며, 너비는 1.64m로서 경내(境內)에 같이 있는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와 그 규모가 똑같습니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화되었으며 조각 기법이 퇴화하였으나,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몽유가 짓고, 명필 장단열이 글씨를 썼습니다.
29153
정진대사 비각입니다.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겹처마 양식입니다.
비문의 필체는 구양순의 해서체로서
당대 문장가인 이몽유가 빚고
당대 명필가였던 장단열이 �습니다.
귀부(龜跌)와 이수(이首)의 형식은 일반적인 방식을 취했으나
비좌(碑座)가 두드러지게 큰 것이 특색입니다.
비의 높이는 2.73m이며,
너비는 1.64m로서
경내(境內)에 같이 있는 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와 그 규모가 똑같습니다
금방이라도 용솟아 걸어나가실 듯
사연도 다하면 인연이 될 수가 있는 것인지,
닿인 글씨마다
물 굴러가는 소리
마디 마디 행간을 이루며
베어 베어 흐릅니다.
이쯤에서는 모든 것
방하착하여야 하는데
무슨 소원이 저리 많기에
여의주를 물어
당대의 인연을 기다리시는가
가시게나
가다가 흐르고 꺽이고 굽이처 가면 되는 것을
정상에 화염보주(火焰寶珠)가 또렷한 것은
길이 무명장야를 밝혀 등불이 되려 하심인데
봉암결사로 다져야 굳어지는 불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