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섬의 문화재

춤꾼 박경숙

相民 윤봉택 2008. 1. 29. 14:54

2008. 01. 29.

 

 이동안류 재인청 춤의 원류이자,

 제주 신방청의 전통 춤의 맥을 잇는 춤꾼 박경숙을 소개합니다.


 박경숙은,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79호 발탈예능보유자 이동안(1906~1995)선생의 조선조 재인청류의 춤 한국전통무용전수소에서 이수 받기 시작하여, 1994. 3. 15일 전수 조교로 인정 받아(94-1호) 기본무·태평무·승무·학무·진쇠춤·바라춤·신칼대신춤 등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경남도지정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기능보유자 김수악 선생으로 부터 교방 살풀이·진주굿거리춤을 사사받은,  이 고장이 낳은 최고의 전통 무인(舞人)입니다.

 

박경숙(1948년생), 나는 그를 미친 춤꾼이라고 부름니다. 우리나라말에는 형용사가 많지만, 박경숙을 이야기할 때 달리 표현할 언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미친 춤꾼이라 부른 것입니다.

 

내가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겨울로 기억합니다. 예총사무실이 있는 구읍사무소(전 서귀포시청)에 갔을 때 부속 건물에서 무슨 소리가 나 가보았더니, 거기에는 머리를 풀어 헤친 웬 여자가 혼자서 정신없이 미친 듯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 가끔 거리에서 만나면 또 그 춤꾼이네라고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시절이 지나 2005년 11월 선생으로부터 영맥Ⅱ라는 공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공연을 보면서 나는 ‘아 이 지상에 저렇듯 한서린 오묘한 춤도 있구나.’라는 남다른 감흥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시기상조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인을 만나 박경숙을 얘기할 때에는 ‘박경숙은 제주가 낳은 금세기 최고의 춤꾼’이라고 감히 말을 합니다.

 

이러한 미친 춤이 서귀포시로 부터 인정을 받아, 2006년 4월 20일 시지정 향토무형유산 제3호 『제주민속무(지화무·남천무)』가 지정되었습니다. 비록 시지정 향토무형유산이긴 하지만, 박경숙의 춤이 행정기관에서 제주민속무로 처음 인정을 받았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춤을 출 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춤은 더욱 모릅니다. 춤을 모르면서 박경숙의 춤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춤에는 제주의 혼이 절절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생은 상효동 효돈천변에  『재인청 이동안류』박경숙 전통무용 연구원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춤의 원형이 무엇이냐고할 때에는 이것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궁중무용(呈才)이나 불교무용(작법)·제례의식·무속 등으로 그  원형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춤꾼 박경숙은 조선조의 마지막 명인 이동안 선생 문하에서 1992~4년까지 우리나라 전통 춤의 맥을 사사·전수 받은 전수조교입니다.

 

  명인 이동안(1906~1995) 선생의 선조는 6대 째 재인청 도대방을 지낸 재인청 가문으로서, 이동안 선생은 경기도 수원 재인청(才人廳)의 마지막 도대방 이셨습니다.

 

 이동안 선생은 30여 종류가 넘는 많은 춤의 예능을 보유하신 우리나라 무계(舞界)의 가장 큰 어른이셨습니다. 저는 이 분이 서귀포에서 공연 할 때 먼 끝으로만 바라보았었습니다.

 

 춤꾼 박경숙은 바로 이동안 선생으로 부터 재인청의 춤을 사사 전수 받은 전수조교입니다.

 

 우리나라의 춤을 이야기할 때 이동안 선생은 그 뿌리이자 중심입니다.

 

 이처럼, 이동안 선생으로 부터 춤의 영향을 받았거나 무릅제자로 거쳐간  김백봉, 장월중선, 최현, 김덕명, 문일지, 배정혜, 정승희, 김백초, 최경애, 김진홍, 오은희, 김명수, 정경파 님들이 우리나라 무용계의 거두로 대활약을 하고 계십니다.

 

 이동안 선생의 재인청 계열의 춤 계보를 말할 때는

 박경숙, 이승희, 윤미라(경희대 교수)로 구분(한국일보 1996. 3. 20)을 합니다.

 

 그만큼 박경숙의 춤은 이동안류에 있어서 원류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지며, 재인청이 관할하던 제주의 신방청 춤의 본류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재인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종합예술학교였습니다.

 경기도 수원에 있던 재인청은 우리나라의 8도 재인청을 통괄하였던 곳입니다.

 재인청을 광대청(廣大廳), 화랑청(花郞廳), 장안청, 악공청, 공인청, 공인방이라고도 하였으며,

순조 24년(1824)에는 각 도의 재인도청(才人都廳)을 통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재인청은 한일합방시기에 일본의 민족문화 말살 차원에서 1921년대 강제로 폐청을 하였으며, 폐청 당시 재인청에는 4만 여명의 전국 회원을 거느릴 만큼 거대한 조직이었다고 합니다.

 

 재인청은 경기도 수원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라도·충청도 등 각도에도 있었으며, 도관찰사 관할인 군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재인청 조직으로는 도에는 도청(都廳)을 두었고 책임자를 대방(大房), 하부 조직으로는 대방 아래 좌도도산주(左道都山主)·우도도산주(右道都山主)라하여 그 도를 좌우로 나누어 재인들을 관리하였습니다. 도산주 아래에는 행정을 처리하는 집망(執網/4명), 공원(公員/4명), 장무(掌務/2명)이 있었습니다. 각 군의 책임자는 청수(廳首), 그 아래 공원과 장무를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전라도에는 장흥, 나주, 우수영, 진도, 완도 등에 신청이 있었고,

 노량진의 풍류방,

 함경도의 사무청,

 충청도의 신청,

 제주도의 신방청(神房廳) 등이 있었으며,

우두머리는 향수(鄕首), 신방을 감독하는 자를 도향수(都鄕首)라 하였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에 속한 이들은 나름대로 계(契)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는데, 전라도 장흥 신방에 속했던 이들은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전라도 관찰사 관할 제주목이었기 때문에 청수가 관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문헌 자료는 앞으로 찾아 보도록 하렵니다.

 

 

진쇠춤-1 (2005)

 

진쇠춤-2

 

남천무 (2005)

 

승무-1(2005) 

 

승무-2 

 

신칼대신무-1 (2005)

 

신칼대신무-2 

 

신칼대신무-3 

 

신칼대신무-4 

 

 지화무-1(2005)

 

 2006년 박경숙

 

 2007년 연구소에서 "서천꽃밭" 시연 중, 

 

자료사진

중앙에 이동안 선생-박경숙 

 

자료사진

중앙에 이동안 선생과 공연-박경숙 

  

기본무-태평무-승무-학무-진쇠춤-바라춤-신칼대신춤 등을 이수 받아 전수조교가 되었다는 이수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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