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봉정사 고금당

相民 윤봉택 2024. 7. 20. 07:20

 

2008. 3. 8.

 

 

봉정사 고금당(古今堂)입니다.

 

지난 3월 8일

찾았습니다.

 

여기서 고금(古今)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옛이 아니고〈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만세에 길이 이어져 있어도 과거가 아닌 지금이다〈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라는 의미입니다.

 

고금당은 보물 제44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69년 해체 복원 시에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616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초에는 조선조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나,

현재의 건물 양식은 익공의 날카로움으로 보아 조선조 중기 이후인 것 같습니다.

 

건물구조는 화엄강당과 흡사하나 주간 거리가 짧고 기둥이 좀 큽니다.

자연석 기단우에 장대석을 놓아 안정감을 주면서

정면 3칸, 측면 2칸,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익공은 주심포계입니다.

어칸과 협칸에는 두 짝의 띠살문을 두었고, 좌우측면에는 모두 벽으로 마감을 하였습니다.


 

그날, 이곳에서는 선원에서 참선하시는 납자들이 거주하시면서천등산의 화엄선풍을 드날렸던 듯 합니다. 고금당 오랜 세월이 지나가도 옛이 아니고〈歷千劫而不古(역천겁이불고)〉,

만세에 길이 이어져 있어도 과거가 아닌 지금이다〈亘萬歲而長今(긍만세이장금)〉.

 

전면기둥에는 주련을 걸어 두었는데

청나라 3대황제로 즉위한 청세조 순치황제〈재위18년(1644~1661)〉출가 시 가운데

한 구절을 세겨 놓았습니다.

 

 이 출가시는 운수납자들이 즐겨 암송하는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순치황제 출가시는 10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 주련은 제4구에 해당하는 백미입니다.

 未生之前誰是我(미생지전수시아), 이 몸을 받기 전에 무엇이 내 몸이며

 我生之後我是誰(아생지후아시수),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長大成人裳是我(장대성인재시아), 자라서 사람 노릇 잠깐 동안 내라 더니
 合眼朦朧又是誰(합안몽룡우시수),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구런가

 

좌측면 가구입니다.

벽 중앙에는 귀기둥보다 약간 긴 원형의 고주를 놓아 대들보를 받치고,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쳤으며,

이 위에 다시 짧은 기둥을 세워서 마루도리를 떠받치고 있는데,

도리와 장여를 길게 밖으로 빼내어서 측면 지붕에 깊이감을 주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화엄강당에는 대들보와 마루보 사이에 조그만 살창을 두고 있지만 고금당에는 없는데,

이것은 화엄강당이 판고 등으로 쓰이던 건물이어서

측벽에 살대를 꽃은 통풍창이 있는데 반하여

 

고금당은 선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살창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 그렇습니다.

좌측면에는 아궁이를 내어 난방을 할 수 있도록 꾸몄고,

내부는 3칸 통으로 공간 활용을 넓게 하였습니다

 

 

공포의 구성은

기둥 위에만 포작을 짜올린 주심포계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주두 밑에 헛첨차를 끼우고

그 위에 주두 위에서 나온 살미첨차를 포개 놓았으며,

이 위에 도리 방향으로 일출목의 행공첨차를 얹어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는 관계로

익공계로 볼 수도 있지만, 주심포게에 더 가깝습니다.

 

 

극락전 뒤에서 바라본고금당 우측면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굴뚝이 앙증스럽기만 합니다.  

 

좌측면 종도리에 기대어 선봉정사 말벌통입니다. 건드리면 천등산 산신령이 노한다고 합니다.그냥 보기만 하셔도 됩니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극락전과 고금당, 그리고 화엄강당입니다.  산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길따라 가고 있음을 느낌니다.   가는이여 !        가는이여 !              피안으로 가는이여 !!! 

 

 

32188

 

 

'문화유산을 따라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인사 마애불상  (0) 2024.07.20
영천 백흥암  (0) 2024.07.20
봉정사 화엄강당  (0) 2024.07.20
봉정사 대웅전  (0) 2024.07.20
거조암 영산전  (0) 202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