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따라서

정족산사고

相民 윤봉택 2009. 4. 4. 08:46

2009. 01. 10.


정족산사고

정족산 고려 가궐지


 지난 1월 마니산 참성단이 개방되었다는 말을 듣고

1월 10일 토요일

주말을 겸하여 쉼 없이 강화섬에 닿았습니다.


 삼랑성, 전등사를 순례한 후,

절 서쪽에 자리한 정족산사고와 고려가궐지를 찾았습니다.


 정족산사고는 우리나라 역사 기록물을 보관하던

춘추관, 봉화 태백산사고, 영변 묘향산사고, 평창 오대산사고 중 하나입니다.

지금 조선왕조실록이 온전하게 남아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정족산사고와 오대산사고 소장본입니다.

 

 이 사고는 강화군 길상면 정족산성 안에 있습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청군(淸軍)에 의해 파괴되어

기록이 많이 없어졌던 덕포리 마니산사고의 실록을 현종 때 완전히 보수하여,

같은 강화도 안에 있는

정족산에 숙종 4년(1678)사고를 새로 지어 이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세워진 사고의 건축 양식은

대부분 건물 밖으로 경계용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2층 누각식의 기와집 건물 2동을 세웠는데,

하나는 실록을 보관하는 사각(史閣)이고 또 하나는 선원각(璿源閣)이었습니다.

 

 사고에 근무자는 수호관(守護官), 별색호장(別色戶長), 기관(記官), 고직(庫直)등이

있었고,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사찰 주변에 있는 사고인 경우는

승군을 편성하여 사고를 지키게 하고 이에 대한 위토(位土)를 주었으며

 사고 수호는 수호사찰의 주지를 예조에서 수호총섭(守護摠攝)으로 임명하여

수호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보관 중인 각종 사료들은 매년 봄 가을 따뜻하고 습기 없는 날을 가려

햇볕에 쪼여 좀 등으로 인해 책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였는데

이를 포쇄(曝曬)라고 하며, 별도의 포쇄각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정족산사고  아랫길 내려서면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여 세워졌던 고려 가궐지가 있는 데 지금 발굴중입니다.

 

 

  정족산사고 초입입니다.

  밖으로 경계담인 외장을 두르고

  정면에 솟을삼문을 두었습니다.

 좌측이 사료를 보관하던 사각(史閣)이고

 우측이 왕실 족보를 보관하였던 선원각입니다.

 사고 안과 밖으로 통풍이 잘 되도록 통기구를 두었고

 화재에 대비하여 화방벽을 닿았습니다.

 선원각 근경

 맞배지붕 전면 3칸 측면2칸으로 중앙에

 현판입니다.

 담장 밖에서 바라 본 선원각입니다.

 이 정족산사고는 1930년대 전후하여 멸실된 것을

 1999년 다시 세웠습니다.

 

 

  고려 가궐지

 고종46년(1259) 몽고의 난을 피해 강화섬으로 피신하고자 했던

 고려의 가궐지

 원종 5년(1264) 가궐을 지었으나

 결국, 병화에 모든 것 사라지고

 소나무 한그루

 건너 굴묵이낭만 저렇듯 기다림 되어

 무언의 말씀으로 나려 오시는 데

 어디서 부터 산이 되고

 다시 어디서 부터 물이 되어

 바람으로 날리시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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