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바람, 섬 풍경

고사리마

相民 윤봉택 2024. 4. 9. 20:46

2009. 4. 13.

 

 

2월 풀도진마

3월 고사리마

4~5월 오월장마

9월 고슬마

 

제주의 장마는 이월부터 시작된다.

‘풀도진마’로 시작되는 제주의 ‘마’는 ‘고슬마’가 지나야 그 끝이 겨우 보인다.


하늬바람 부는 이월의 찬 끝 무렵, 새 생명이 쉽게 돋아날 수 있도록

는개보다 더 진하게 이슬비가 자주 내리는데,

이때 자주 내리는 비 날씨를 가리켜 제주인들은 ‘풀도진마’라 부른다.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마’가 바로 탐라섬의 첫 ‘마’인 ‘풀도진마’이다.

이름 그대로 풀들이 잘 돋아나도록 나리는 봄비 중의 봄비인 것이다.

겨우살이 끝난 양봉군들은 따뜻한 해변을 찾아 유랑이 시작되고

동물들의 힘찬 부화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 시기가 되면 해변 돌담 사이로 온갖 들풀들의 향연이 시작되고

‘고사리마’가 시작되기 전 해변마을에서는 이른 고사리를 꺾을 수가 있다.


다음에 다가오는 ‘마’가 유명한 ‘고사리마’이다.

지금 탐라섬은 ‘고사리마’에 감싸여 있다.

음력 3월경에 시작되는 이 ‘마’는 묘제가 끝나가는 3월 15일 전후하여 시작된다.

 

 

 

 

제주의 상징인 유채꽃이 섬 곳곳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또한 서귀포의 대표적 과일인 감귤의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하면,

‘풀도진마’에서는 날기조차 거부하던 양봉들도 힘찬 날갯짓을 하며

꿀과 화분을 열심히 모아 산다.


이러한 ‘고사리마’는 ‘풀도진마’와는 달리 며칠간 오락가락하면서 보름 정도 지속된다.

산마다 할미꽃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비온 뒤 새벽녘부터 고사리를 꺾으러

산으로 찾아 나선다.


고사리가 식용으로 사용된 시기는 알 수가 없으나,

불가에서 주로 많이 애용하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된 듯하다.

 

 

 

집에서 제수용품으로 사용할 고사리는 피지 않은 잎을 비벼서 없애나,

일반적으로 판매하는 고사리는 잎을 비비지 않은데,

잎을 비비지 않은 고사리를 ‘손채고사리’라 하여, 어른들은 손님상에

‘손채고사리’ 반찬을 내놓으면 나무라는 말씀을 하곤 했다.


이어서 시작되는 ‘마’가 ‘오월장마’이다.

장마라고 하는 것은 ‘마’가 오랫동안 지루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한다.

오월이라 하는 것도 장마가 음력 5월쯤에 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장마도 마찬가지겠지만,

장마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의 화끈한 만남의 결정체이다.

뭍과는 달리 장마가 대부분 탐라섬의 남쪽 서귀포에서 시작되는 것도

서귀포라는 도시가 화끈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마’에 대한 어원을 알 수가 없지만, 아마 남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에 의해 시작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오월장마가 시작되면 탐라섬의 날씨는

지역 따라 매우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설문대할망’의 몸짓에 따라

서귀포에선 우산을 썼다가 ‘목안’에서는 양산을 써야 하는 진풍경이 일어난다.

 

 


오월장마도 끝나고 태풍 서너 개쯤 대천바당을 휘저어 내리면,

가을바람과 함께 ‘고슬마’가 시작된다.

어느 날씨인들 자연의 조화가 아니랴만,

‘고슬마’는 하필 소와 말의 월동식량인 촐(꼴)을 벨 때 나타나기 때문에

건조가 잘된 촐도 비 한 번만 맞으면 저장 상태가 좋지 않아,

축산농가들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슬마’가 잠깐 스쳐 하늬바람으로나 날리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나 그렇지 않으면 낭패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장마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단지 어르신들의 쉼터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데,

올 삼월부터는 작은 손자 세찬이가 집에 와 있어 ‘고사리마’가 시작되어도 고사리 꺾으러 갈 수가 없다.


하여, 오월장마에는 작은아들과 함께 바닷가로 나가

‘보들레기’라도 낚으면서,

‘폿겡이’를 잡아다가 ‘겡이죽’이라도 쑤어 먹으며 자연의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 같다.   - 2004.06. 01. 제주일보 해연풍 옮겨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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